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이단 심문 (1)
인도와 유럽을 잇는, 세상에서 가장 돈이 되는 황금 항로.
유럽의 거점.
저울에 올릴 필요도 없이 압도적으로 전자가 더 가치 있다.
하지만 내게 유럽의 거점은 아마 왕태자 두아르테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럽 거점을 통해 아메리카로 갈 수 있으니까.
태평양을 건너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대서양 횡단과 태평양 횡단은 그 난도가 천지 차이다.
게다가 태평양을 횡단하면 황량한 서부가 맞이할 것이며, 대서양을 횡단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미국 동부와 카리브해가 맞이해 주겠지.
“설마 왕태자께서는 그게 거래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정보의 격차가 있다.
나는 다 알고 있고.
상대는 극히 일부밖에 모른다.
게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와 같은 의미 없는 공수표는 지켜질 리 없는 약속이다.
“저는 비교질을 하는 걸 싫어합니다. 비교하면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질 뿐이니까요.”
모국어처럼 운율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뜻은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안 할 수가 없군요. 제가 그 정도밖에 안 돼 보입니까? 또, 포르투갈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국가가 얼마나 많을 것 같습니까?”
“…….”
“단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카스티야 왕국이나 아라곤 왕국만 해도 그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을 말할 것 같군요.”
“저는 포르투갈의 국운을 걸고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대는 아직 왕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귀인과 이해관계를 떠나 한 몸으로 일체가 되시겠다고요.”
여기서 그 떡밥이?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포르투갈 왕국에서 귀인을 어찌 대우하는지, 직접 느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혹시 가보고 싶은 곳은 없으십니까? 리스보아 내라면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사실 리스본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집창촌.
뭔가 하려고 가보고 싶은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엄청난 의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2백 년 정도 후에 리스본에 엄청난 대지진이 일어난다.
당연히 지진해일의 규모도 엄청나게 컸고.
그 피해도 엄청난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보통 유럽에서 이런 재앙이 터지면 ‘신의 경고입니다. 참회해야 합니다.’ 혹은 ‘신께서 시련을 주신 겁니다.’ 같은 논리로 흉흉해진 민심을 다독였다.
하지만 리스본 대지진 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신의 보호를 받아야 할 성당과 신도가 제일 큰 피해를 봤고, 기독교가 죄악이라 말하는 집창촌과 매춘부들의 피해가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별로 유명하진 않지만, 유럽에서는 신앙의 뿌리를 흔드는 대사건이었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은데, 만신의 만화처럼 ‘집창촌으로 갑시다.’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투우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간신히 투우를 떠올린 나는 아차 했다.
투우하면 스페인이다.
포르투갈에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포르투갈의 투우는 유명하지요!”
이런 말 하면 양쪽 국민이 둘 다 화내겠지만,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투우뿐만 아니라 마상창시합도 유명합니다. 동방의 귀인이 참관한다고 하면 더욱 자리가 빛날 것입니다.”
“좋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만국의 초대 왕으로, 왕이 되기 이전에는 사관이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쓴 기록은 지팡구에서 인도까지 동방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지요.”
마침 이야기가 나왔기에 내가 가진 패 하나를 더 오픈했다.
“기록은 제삼자의 시선에서 봐야 더 객관적인 법. 잘 기록해서 널리 알려드리지요.”
악의 축으로 기록되기 싫으면 알아서 기어라.
이런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시간을 줄 테니, 다시 확실한 계약 조건을 만들어오라는 뜻이기도 했다.
***
굳이 포르투갈 왕실에 기회를 주면서 여기 머무는 건, 포르투갈은 웬만하면 안고 가야 할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까우니까.
‘유럽에 왔으면 나머지 국가는 가깝지 않냐?’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42.195km 풀 마라톤을 뛴 사람에게 ‘우리 2km만 더 달릴까? 풀 마라톤에 비하면 별거 아니잖아’라고 말한다면 따귀 맞을 수도 있다.
오랜 항해로 지친 선원들에게 포르투갈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위치다.
물론 대체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카스티야 왕국.
사실 카스티야 왕국이 포르투갈보다 더 가깝다.
난 모르고 있었는데, 인도 항로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북아프리카 서쪽, 카나리아 제도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프랑스인 탐험가 장 드 베텡쿠르가 카스티야 왕국의 후원을 받아 카나리아 제도를 발견했고, 교황의 승인을 받아 카나리아 왕국의 왕이 되었다나.
하지만 후원자였던 엔리케 3세에게 충성을 바쳐야 했기에, 카나리아 왕국은 독립국이라기보다 카스티야 왕국의 봉신국이다.
수십 년 후에는 포르투갈 소속이 되는데 정확한 시기도, 과정도 잘 모르겠다.
즉, 나는 포르투갈과 카스티야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죽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나와 함께 하고 싶으면 알아서 좋은 조건을 가져오라고.
한마디로 기 싸움이다.
내가 먼저 찾아가면 또 더러운 꼴 볼까 봐, 괜히 헛걸음할까 봐 미리 방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마 투우 경기나 마상창시합에 맞춰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곳에 외교관을 파견하지 않을까 싶다.
홍보하라고 주앙 1세에게 유럽에서 보기 드문 귀한 선물을 공개적으로 줬으니까.
“전하.”
“응?”
무함마드가 내 방에 찾아왔다.
매우 기운 없는 모습으로.
“오스만은 언제 가요?”
“거래를 끝내야 가지.”
“하아…….”
늘 낙천적이던 무함마드는 폐에 바람을 쥐어짜듯이 한숨을 토해냈다.
“무슬림이라 박해를 많이 받는 모양이구나.”
“아예 숙소 밖으로 못 나가요. 이럴 거면 차라리 배를 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다른 무슬림 선원들은 잘 돌아다니던데.”
리스보아에 도착하자마자 선원들에게 용돈을 두둑이 주고 교대로 휴가를 줬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곳에서는 ‘절대’ 사고 치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혹시 몰라서 매일 저녁에 점호하면서 특이사항을 묻는데, 아직은 별일이 없는 모양이다.
참고로 소감은 비슷했다.
포르투갈 여인들이 화끈해서 아주 좋았다고.
“외모가 다르잖아요. 저는 개나 소나 무슬림으로 봐요.”
우리 선원 중 유일한 중동인이니까.
“전하~ 오스만으로 가요~ 제가 어떻게든 술탄과 다리를 놔 드릴게요.”
“…….”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지금 오스만 술탄국도 내전 중이지 않냐?”
“그렇긴 하죠.”
신기하지.
지구 작가가 15세기 초반은 일괄적으로 내전의 시기로 정한 모양이다.
내전을 안 하는 나라가 없네.
참고로 조선도 1차 왕자의 난이 1398년, 2차 왕자의 난이 1400년에 일어났다.
“다섯 왕자 중 쉴레이만하고 메흐메트가 우세하다고 그랬지?”
“그렇죠.”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쉴레이만하고 메흐메트 중 누구에게 줄을 대야 하는가.
쉴레이만도 대제고, 메흐메트도 대제인데, 서순 착각하면 오스만과의 거래는 붕 떠버린다.
“여기 오기 전 이야기를 들어보면, 쉴레이만 왕자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승기를 거의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흠…… 혹시 오스만 술탄국에 메흐메트라는 이름의 술탄이 즉위한 적 있니?”
“없는데요.”
“그렇구나.”
“왜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비잔틴 제국을 사실상 멸망시킨 황제는 메흐메트 2세다.
2세는 두 살이라는 뜻이 아니라, 두 번째로 메흐메트라는 이름의 황제라는 뜻.
그래서 현대에서도 영국 여왕이 엘리자베스 2세라는 것에 스코틀랜드인 중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스코틀랜드에는 엘리자베스라는 여왕이 없었는데 왜 2세냐는 것.
사실 이 이유는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흡수하다시피 하여 연합했기 때문이다.
파나마를 식민지로 만들려다가 스페인과 모기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패가망신했다나.
잠깐 말이 샜네.
“나는 메흐메트에게 걸겠다.”
“예? 지금 대세는 쉴레이만이라니까요? 오스만 대부분을 그가 다스리고 있어요.”
“한번 만나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아마도 내 예상에는 결국 메흐메트가 이길 거야.”
그래야 메흐메트 2세가 나올 테니까.
제발 서순을 착각한 게 아니기를.
“원래 인생은 한 방. 역배가 걸어야 제맛이지.”
“……전하니까 다 생각이 있겠죠. 저도 이제 포기했습니다.”
“어허. 알라의 선지자이자…….”
“알았어요. 그래서 오스만은 언제 가요?”
“포르투갈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가 언젠데요?”
우리가 포르투갈에 도착한 지도 2주가 지났다.
현재 포르투갈 왕실 주최로 마상창시합과 투우 대회 개최가 공식적으로 선포된 상황.
이제 곧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방랑 기사들과 나와 거래하고 싶은 외교관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 것이다.
그럴수록 포르투갈 왕실도 더욱 몸이 달아올라서 좋은 조건을 제시할 테고.
이런 대목을 개인의 사정으로 포기할 순 없다.
“걱정하지 마라. 형이 있는 한 넌 못 건드려.”
“그거야 믿죠. 답답해서 그래요. 다들 열정적인 라틴 미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데 왜 나만…….”
“정 답답하면 배 한 척 내줄 테니까 가까운 모로코라도 갈래?”
“그쪽 말 몰라요.”
“아랍어면 통하지 않을까?”
이슬람 경전은 대부분 아랍어로 쓰여있기에 아랍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이슬람 사제들은 기본으로 알 것이다.
“아닙니다. 그냥 얌전히 있을게요.”
“왜?”
“괜히 제가 모로코에 갔다가 전하의 거래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너도 남을 배려할 때가 있구나.”
“이래 봬도 전하는 꽤 공경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함마드.”
“예.”
“너한테 배 두 척을 내어줄 테니까, 무슬림으로 이루어진 선원들을 이끌고 오스만으로 가라.”
“예?”
“가서 미리 자리 잡아놓으라고. 시간은 금인데, 오스만에서도 이렇게 낭비할 수는 없잖아.”
겸사겸사 분란의 소지를 떼어내는 느낌도 있다.
아비뇽, 피사, 로마의 교황들도 나를 파악하기 위해 이쪽으로 주교를 보낸다는 소문도 있으니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오히려 그래 주면 고맙겠다.”
다음 목적지를 잉글랜드로 할까, 오스만으로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렇게 되면 다음 행선지는 오스만으로 결정이구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상단 공금 맡길 테니까, 빚부터 갚아라. 괜히 트집 잡힐 일 없도록.”
“에이. 그 정도 빚이야 제 녹봉 선에서 해결 가능합니다.”
무함마드는 신이 나서 뛰쳐나갔다.
하긴.
폭발 사고로 빚쟁이가 되어 고향에서 쫓겨나고, 해적에게 털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다음, 몇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자, 그럼 혹은 떼어냈고…….”
이제 나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볼까?
정확히는.
내가 대접받을 준비를.
***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기대에 부풀어 기다리고 있는데.
놀랍게도 제일 먼저 찾아온 손님은…… 종교 재판관이었다.
다른 이름으로 이단 심문관.
그리고 현재 이베리아반도는 매년 3~40명 정도가 종교 재판으로 화형당하는 ‘성전’이 벌어지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