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18
217화 성인의 행보 (3)
포르투갈은 나를 환영하고 정중히 대접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새로이 나타난 강대한 세력에 대한 경계심도 섞여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극진하기 그지없는 모습.
뭔가 부탁할 게 있는 모양입니다.
“호세에게 들었습니다. 아국의 백성을 아비뇽의 사악한 추기경으로부터 보호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 기사의 이름이 호세인가 보다.
딱히 기억에 없는 걸 보면 대단한 위인은 못 되는 모양이다.
역사에 이름 남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포르투갈 왕국은 엄연한 독립국이지만, 아직 카스티야에서는 나를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 협약이 종료되면 언제든 침공하기 위해 계속 도발하며 명분을 쌓는 중이죠.”
“카스티야 왕국이 강력하다는 건 알지만,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닐 텐데요?”
아직 남쪽에는 그라나다 왕국이 버티고 있고, 동쪽에서는 이슬람 함대에 의해 계속 거점을 뺏겨가는 중이니까.
“게다가 현 카스티야의 국왕은 이제 겨우 여섯 살이지 않았습니까.”
“혹시 시칠리아 왕국에 대해 아십니까?”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반도 남부를 차지하고 있는 왕국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시칠리아 왕국의 여왕은 마리아였습니다. 현 아라곤 왕인 마르틴의 아내이기도 하죠.”
부부왕이야 유럽 역사에 흔하니까.
“하지만 10년 전, 여왕의 후계자가 죽었습니다.”
“저런…… 어쩌다가요?”
“마상창시합을 구경하다가 튕겨 나간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맙소사.
위험한 스포츠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위험한 거였나?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안 괜찮네?’라고 말을 바꾸는 사람은 없다.
그 말하기 전에 죽었으니까.
마상창시합 관전…….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마리아 여왕은 그 일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역병에 걸려 죽고, 대신 마르틴과 마리아 사이의 소생, 마르티누가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 되었죠.”
“오호. 그럼 마르틴이 죽으면 그 아들인 마르티누가 아라곤의 왕까지 겸하게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왜죠?”
“시칠리아의 왕 마르티누는 작년에 죽었으니까요.”
“……어쩌다가요?”
“사르데냐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렸습니다.”
말라리아는 라틴어다.
나쁜 이라는 뜻의 Mal과 공기라는 뜻의 Aria의 합성어.
나쁜 공기로 전염된다는 뜻이다.
실은 모기가 전염의 매개체지만 이때는 그런 걸 알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하여 마르틴은 마르티누 2세가 되어 아라곤과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을 겸하게 되었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받는다.
이것도 참 희귀하네.
유럽이니까 가능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 마르틴이 오늘내일하고 있습니다.”
“혹시 말라리아입니까?”
내가 치료해주고 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노환입니다. 벌써 55살이니까요.”
55세면 한창땐데.
“소문에 의하면 거위 한 마리를 통째로 먹었다가 급체했는데,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궁정 광대에게 웃겨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손 따면 직빵인데.
이 미개한 것들에게 동양 의학의 신비로움을 가르쳐 줄까?
“그래서요?”
“너무 재미있어서 3시간 동안 웃다가 침대에 떨어져서 머리를 박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오늘내일하고 있습니다.”
허준이 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겠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따라서 아라곤의 왕위 계승 전쟁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 후보 중에는 카스티야 선왕의 동생이자, 섭정이기도 한 페르난도도 있지요.”
“그게 됩니까?”
“가능합니다. 그의 어머니 레오노르는 아라곤의 선선대 왕인 페드로 4세의 딸이니까요.”
복잡하다.
선왕이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고, 옆에는 야심만만한 숙부가 있으면 계유정난이나 정난의 변이 일어나야 정상이거늘.
옆으로 새버리네.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거대한 카르텔 같은 느낌이었다.
왕가끼리 횡적으로 연결된 카르텔.
동북아시아에는 그런 거 없는데.
“그래서 무척 우려하고 있습니다.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 시칠리아 왕국이 연합하여 포르투갈을 공략하고는 히스파니아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욕을 부리지는 않을지…….”
을 할 때 늘 하던 루트다.
원 역사에서도 합스부르크 가문이 포르투갈 왕위까지 계승하여 이베리아 연합을 형성하기도 하고.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이번에 매우 안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인가.
정치가들과의 대화는 이래서 피곤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사전 설명이 너무 길어.
“피사의 교황께서 선종하셨나 봅니다.”
정작 나는 다 알고 있는데 말이다.
“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신기하시죠?”
주앙 1세는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긴 왜야.
호세라는 기사가 나보고 성자라고 불렀으니까 짐작했지.
설마 벌써 요아힘스탈러 은광이 발견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세 교황 중 피사의 교황인지 궁금하시겠지요.”
주앙 1세는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허가장의 선대 가주가 관상을 볼 때 내 표정이 이랬지 않았나 싶다.
좋다.
이대로 끊김 없이 가보자.
“간단합니다. 경고입니다.”
“피사의 교황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업적과 성덕을 남기셨지요.”
“문제는 다음입니다.”
“다음이요?”
“다음에 선출되는 피사의 교황은 신의 뜻을 부정하고, 순결한 복음을 따르라는 신의 뜻을 철저하게 탄압할 테니까요.”
그 사람은 요한 23세.
종교개혁가 얀 후스를 파문한 교황이기도 했다.
“……아무튼, 덕분에 아국은 무척 곤란한 상황입니다.”
예상했다.
포르투갈 왕국은 피사의 교황에게 줄을 대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제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군요. 이교도인 제 말이 기독교인들에게 먹히기나 하겠습니까?”
“방법이 없겠습니까?”
“글쎄요…….”
일부러 뜸을 들였다.
방법이 하나뿐인 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근데 내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말이잖아.
“귀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왕이고, 저 역시 왕입니다. 왕과 왕 사이에는 거래만이 있을 뿐이지요.”
상황이 기울었으니 대등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게 누가 시간 끌래?
고생한 만큼 보상은 챙겨야지.
진작에 무역 시작했으면, 북해나 오스만까지 갔겠다.
그 기회비용은 확실하게 얻는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포르투갈은 기독교 세력권에서는 변방이지요?”
“…….”
“그리고 이슬람 세력에 밀려 지중해를 점점 빼앗기고 있고요.”
거점들도 날아가고 있지만, 이슬람의 사략 함대에 의해 기독교 상선들이 계속 털리고 있다.
심지어 왜구처럼 육지까지 쳐들어와서 마을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파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해결책으로 귀결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판을 뒤집는다.”
내가 명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했던 것과 똑같다.
궁지에 몰렸으면 판을 엎어야지.
“그리고 저는 이 판을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입니다.”
상황을 확실하게 인식시킨 후, 이제 내 조건을 꺼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지중해 무역과 전쟁 경험입니다.”
“전쟁이요?”
“물론 저 역시 전쟁 경험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처럼 소규모 전쟁은 익숙지 않군요.”
“이쪽도 수만 대 수만이 부딪히는 대규모 전쟁이 꽤 잦습니다.”
“이쪽은 천 년 전에 백만 대군을 모아 싸울 정도로 규모 자체가 다릅니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거짓 하나 없는 진담입니다. 정찰 부대가 3만이고, 별동대가 30만이죠. 참고로 원정대의 인원도 3만입니다. 다 데려오지는 않았지만요.”
“허…….”
그러고 보니 영락제의 북벌 일자가 확정되었던데.
작년부터 준비했건만 출발은 올해 5월에 한다고 한다.
두 달 뒤에나 출발하겠네.
역사가 뒤틀려서 영락제가 눈먼 화살에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전염병이나 이질에 죽든지.
“참고로 이대로 가면 기독교 세력은 몰락합니다. 이슬람 세력은 이곳 서방과 동방 양쪽에서 문물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 벌어지겠죠. 그래서 말입니다…….”
몸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은근하게 말했다.
“향신료 무역에서는 이슬람이 기득권이지만,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반도의 도시국가들도 기득권이 아닙니까.”
나와 손을 잡고 기득권 카르텔을 깨버리자.
어떻게 보면 기독교 왕국을 배신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질서를 완전히 뒤엎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걸 원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먼 길로 올 필요가 없지요.”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의문이 드는군요. 왜 굳이 포르투갈을 선택하셨습니까?”
“저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Deus id vult. 신께서 인도한 곳으로 왔더니 포르투갈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꽤 망설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주앙 1세는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조건을 이야기해보지요.”
네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해야지.
다행히 포르투갈은 지금 궁지에 몰려있으니 다소 과한 요구를 해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포르투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고.
“우선 예언이 들어맞았으니, 포르투갈의 외교력을 총동원하여 하루빨리 저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주십시오. 명칭은…… 그렇군요. 바다의 수호성인 정도가 어떻습니까?”
드래곤의 수호성인 같은 거 하면 후세에 두고두고 놀림 받을 것 같아.
포세이돈 정도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지요. 그리고요?”
“서쪽 바다에는 카스티야 왕국이 발견하지 못한 무인도가 다수 있습니다. 그곳을 내 영지로 공언해주십시오.”
마데이라섬과 아소르스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카나리아 제도와 함께 유럽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아마 연안 항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삽화 별도 첨부
시대가 발전하면 그리 쓸모가 없어지지만, 앞으로 수백 년 동안은 유럽과 아메리카를 잇는 항로로써 번성할 것이다.
마데이라섬을 넘어가면 다음 기항지는 카리브해의 섬일 테니까.
“무인도?”
“카나리아 왕국 인근에 있습니다. 그들도 아직은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더군요.”
“더 있습니까?”
“총포와 대포 기술을 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술자를 원합니다.”
“그건…….”
“미리 말씀드리지만, 기술은 이쪽이 더 우위일 겁니다.”
아직 화승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우리는 부싯돌을 이용한 수석총이다 이 말이야.
“그러면 왜 아국의 기술자를 원하십니까?”
“이곳에 전쟁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저쪽에서는 개발해도 써볼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사실은 명나라에서 제대로 개발을 시작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서 못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영락제가 신무기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아서 별문제 없지만, 그 가치를 깨닫는 순간 자칫 파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자칫 팍스 시니카가 현실화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또, 핵확산 금지조약처럼 나에게 화약 무기 개발 금지 명령 같은 걸 내릴 수도 있으니, 위험은 미리 분산해두는 게 제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에도 후원하여 공동 연구하고 있고, 벵골 술탄국에도 준비해 두었고, 유럽에도 거점을 마련하고 싶다.
각지에서 개발하면 결국 바다를 통제하고 있는 내가 모든 기술을 독식하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더 없습니까?”
“서로 배신하지 맙시다. 저는 한번 신뢰를 잃어버린 상대와는 다시 거래하지 않으니까요.”
이전의 일을 기억하라는 듯.
말에 힘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내가 성인임을 확실하게 인지시키고, 유럽의 국민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
“포르투갈의 괜찮은 항구를 하나 할양해 주십시오.”
이것은 마카오의 복수다.
아니지.
일본에게 조총을 판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