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2
021화 광저우 (2)
광주는 현대에 광저우라는 이름으로,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등 무척 번성한 도시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도 엄청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송, 원나라 시대에 주요 국제교역 항구였으니까.
특히나 몽골족에게 광주의 기후는 맞지 않았고, 유목민에게 바다는 그리 좋은 땅이 아니었으므로 한족에게 자치를 위임.
몽골 문화의 영향을 극도로 적게 받으며 한족의 문화를 발전시킨 보기 드문 도시다.
다만 그런 광주에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었는데, 현대의 말로 번역하면 ‘노잼의 도시.’
번영은 했지만, 수도에서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다 보니 딱히 즐길 거리가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내가 전생에 20년을 살았던 고향, 노잼의 도시 대전에도 성심을 다하는 빵집이 있듯이 광주에도 자랑거리가 있다.
바로 요리.
본래 광동성 요리는 맛있기로 유명한데, 광주 요리는 광동성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진미라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정보를 얻기 전에 배부터 채워야지
우리는 항구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음식점을 찾아갔다.
승조원 중 광주 토박이가 추천해준 곳으로.
“광동성 요리는 튀김이 많다더니······.”
어째 시키는 요리마다 튀기거나 기름에 볶은 거다.
“엄청 맛있습니다!”
석피는 진심으로 만족한 듯했다.
내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았다.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석피가 살짝 눈치를 보며 물었다.
“맛있어. 맛은 있는데······ 조금 아쉽네.”
전생에 광저우에서 먹었을 때는 정말 맛있었는데, 뭔가 불만족스럽다.
MSG가 없어서 그런가.
“저는 튀김을 처음 먹어봅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
이 시대에 기름은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 비싼 기름을 아낌없이 써야 하는 튀김은 상당한 고급 요리고.
산골짜기에 살았다는 석피에게는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었을 것이다.
“이 소저는 어떻습니까?”
“요리 솜씨는 나쁘지 않으나, 기름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기름을 꽤 오래 쓴 것 같네요. 기름에서 탄내가 나고, 산패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거였네······.”
너무 오랜만에 튀김을 먹어서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이 요리는 등심으로 해야 하는 요리인데, 앞다릿살로 했군요. 그 탓에 상당히 퍽퍽합니다.”
“그걸 알아요?”
“아, 네. 어머님을 닮아서 선천적으로 코와 혀가 예민한 편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보존식도 잘 드시던 것 같던데······.”
“당연합니다. 미식 투정할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원정대의 식사는 말린 밥을 물에 불려서 어장(젓갈)과 육장(염장 고기), 절임 채소를 곁들이는 데 최악을 가정했던 나에겐 꽤 괜찮았다.
다만 항해가 3일 넘어가니까 식수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서 그 부분이 참기 힘들었다.
위생을 생각하면 끓여서 먹고 싶은데, 바람이 안정적일 때 말고는 불을 다룰 수 없다나.
앞으로도 이런 고생이 계속될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동남아시아 항해 특성상 자주 기항한다는 점.
몇 달씩 배를 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근데 주변에서 뭐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네요.”
제주도 토속 방언을 듣는 느낌이랄까.
정보를 얻으려고 식당에 온 것은 아니지만,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조금 답답했다.
“광동어는 다른 언어라고 말할 정도로 다릅니다. 어떤 학사분이 말씀하시기로 대국어보다는 월나라말에 더 가깝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외지인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합니까?”
“통역사를 두기도 하고, 정 어렵다 싶으면 문자로 소통하시면 됩니다. 진시황 이래 문자는 대륙 공용이니까요.”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문자는 상형, 표의, 표음 문자 순으로 발전되었다고는 하지만, 표의 문자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네.
발음과 상관없이 뜻이 통한다는 장점 말이다.
한국과 일본이 표음문자로 발전시키는 동안, 중국이 한자를 못 잃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넓은 땅을 통치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할까.
이 시대에 표준어를 일일이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녀는 조선어는 몰라도 광동어는 할 수 있으니까요.”
“어디서 배우셨죠?”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외가가 광동성의 유지거든요.”
이소군은 별거 아닌 듯이 말했지만, 엄청난 권세가였을 것이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선장은 명나라에서 홍무제 다음가는 권력자였으니까.
어지간한 격을 갖추지 않는 한 사돈이 되기 어렵다.
그만큼 연좌제로 풍비박산 났을 가능성도 크지만.
“필요하면 부탁하겠습니다.”
“언제든 말씀하세요.”
***
식사를 마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정보를 얻는 곳이라면 역시나 주점이다.
특히 뱃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이라면 여러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내 포기해야 했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정보를 얻기는커녕, 주문도 하기 힘들었다.
“마음 같지 않네.”
“거친 뱃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나리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근처에는 가지 않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런 이유도 있고.”
특히 모두의 시선이 이소군에게 꽂히는데, 대번에 남장여자임을 간파한 듯했다.
대보선에서는 다들 모르는 척해줬던 거였구나.
“대인. 예로부터 주점과 다관(찻집)은 온갖 풍문이 오가는 곳이라지만, 알맹이가 있는 내용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입니다.”
이소군도 만류했다.
“그럼 역시 상인을 만나보는 게 좋을까요?”
“상인들도 제대로 된 정보는 내놓지 않을 겁니다.”
“돈을 준다면요?”
“목숨이 더 귀하지요. 널빤지 하나라도 띄우면 처형당했던 시기에, 바다 밖의 소식을 안다는 건 밀무역을 했다는 증좌니까요.”
“민간 무역은 모르는 척 눈감아 주지 않았나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몇몇 상인에 한해 허락했습니다. 그런 상인을 만나고자 하신다면 제독께 주선을 부탁드리는 게 좋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버릇이 남아있기 때문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뛰어드는 건 어쩐지 많이 불안하다.
정신없이 바쁠 정화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정화의 호의는 무한이 아니니, 정말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바다 밖 소식이 필요하시다면 소녀의 외가로 가보시겠습니까?”
“예?”
“소녀의 외가는 광동성의 유지입니다. 무역이 허가된 상인들도 많이 알고 있지요.”
“잠깐만요. 소저의 외가는 무사하다는 뜻입니까?”
“······네. 정난의 변 때 곧바로 사람을 보내어 충성 서약을 함으로써 무사하셨지요.”
그 영락제가 충성 서약을 받아줬다는 게 더 신기한데.
대체 기준이 뭐지?
“광동은 무역 도시입니다. 남만은 물론, 파사국에서도 상인들이 찾아올 정도지요. 하지만 해금령으로 인해 30년 동안 급격한 침체를 겪었습니다.”
“본래부터 홍무제께 불만이 많았다는 뜻입니까?”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그런 광동 사람들이 일제히 현 폐하께 충성 서약을 했으니 무척 기꺼웠을 테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영락제는 홍무제의 아들임에도 홍무제의 정책을 대부분 선회하였다고.
이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른 조선 태종과 반대되는 행보다.
광주에 온 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정통성이 없어서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구나.
홍무제와 건문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을 끌어들인다면 그들의 힘으로 건문제 추종 세력을 눌러버릴 수 있을 테니.
대원정도 그러한 목적으로 이해되었다.
해금령에 불만을 품은 이들에게 ‘이제 너희를 중용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인제 보니 대원정은 정말 엄청나게 복합적인 목적을 지녔구나.”
수없이 쌓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승부수.
굳이 심복 중의 심복인 정화에게 맡긴 이유도 알 것 같다.
절대 실패해선 안 되는 국책이기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맡긴 것이겠지.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외가가 무사하다는 말씀은······.”
이소군과 연을 끊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녀로서는 무척 배신감을 느낄 사항이다.
“대인께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과거를 잊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겉보기엔 약해 보여도, 내면이 강한 사람이다.
“호의에 기대겠습니다.”
원수에게 구걸하라는 뜻이다.
무척 잔인한 일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목숨을 판 돈으로 올린 상태였으니까.
“안내하겠습니다.”
***
이소군이 안내한 곳은 광주에서 고지대에 있는 대저택이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거대한 저택은 이 가문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했다.
“반 랴아 라이야?”
대문 근처로 가자 마당을 쓸던 하인이 우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뭐라는 거야.”
“통역하겠습니다.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원정대의 사관으로 임명된 강해인이라고 하네. 혹시 주인 있는가.”
이소군은 뭐라 뭐라 주고받더니 곧바로 통역했다.
“제독을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아. 그렇네.
광주에서 권력과 돈이 있다는 사람이면 죄다 정화를 만나러 갈 수밖에 없을 터.
그 점을 생각 못 했다.
“어쩐다······.”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그는 하인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하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꼬꼬오 다이 꽁 꼬?”
곧, 백발이 성성하지만 강건한 체구의 노인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무척 살가운 반응을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눈동자는 끊임없이 우리를 살피고 있었다.
“노이 오 곤 그우 남 낀샤.”
이소군이 한마디 더 하자, 노인은 우리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표준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가씨께서 찾아오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죠.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예. 4년 만이지요.”
“그런데 그 옷은 대체······.”
“배를 타려면 남장이 필요했으니까요. 걱정하지는 마세요. 삼보 태감께서 친히 허락하신 일이니.”
“그렇습니까요. 하온데 저분은 뉘신지.”
“황제 폐하로부터 원정대의 기록을 집필하라고 칙명을 받은 조선 사관 강해인 대인입니다.”
“아 그 유명한······.”
유명한?
“일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도 아가씨가 오셨다는 걸 알면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겉보기엔 화기애애하지만, 물밑에서는 칼날을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망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왔어?’
‘어떻게든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엄청난 권력자가 뒷배야.’
‘말로는 뭘 못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은 잘 대접해줄게.’
라는 느낌이랄까.
그는 우리를 빈객실에 안내한 후 차를 준비한다며 나가버렸다.
“그의 이름은 장춘삼. 이 집안의 총관입니다. 대소사를 모두 관장하는 만큼, 풍문을 원하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을 보는 듯했습니다.”
“예. 철저한 사람이지요. 중요한 견문 지식을 얻고자 하신다면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실 겁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대가라는 게 꼭 형태가 있을 필요는 없지.
잠시 기다리자 장춘삼 총관은 다기와 찻잎을 가지고 빈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능숙하게 찻잎을 우려냈다.
“봉황단총(鳳凰單叢)입니다. 아가씨께서 무척 좋아하셨지요.”
“보잘것없는 저를 기억해주시니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늙으면 과거를 추억하게 되는 법이지요. 허허.”
적당히 해라.
차 마시다 체하겠다.
“음?”
“왜 그러십니까?”
“차향이 매우 좋습니다.”
진짜 좋기도 한데, 그보다는 홍차 향과 비슷해서 놀랐다.
“허허허. 마음에 드셨다면 가시는 길에 챙겨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가라는 뜻인가?
그럴 수야 없지.
“그것참 감사합니다. 총관께서는 저보고 유명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이 유명합니까?”
“호사가들의 허풍에 가깝습니다.”
“궁금하군요. 허풍 안에 진실이 있을지 모르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말 한마디로 상인 수십 명의 목을 날려버렸다던가······.”
내 주변에서 상인의 목이 일거에 날아간 적은 한 번밖에 없다.
복권 상인에 관한 것.
정화는 분명 은밀히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설마 뒤통수?
아니면 영락제가 일부러 소문을 퍼뜨렸나?
그것도 아니라면 정황을 살펴보고 떠보는 건가.
어느 쪽이든 범상치 않다.
이 짧은 시간에 그 먼 거리에 있는 소식을 거의 정확하게 입수할 정도면 말이다.
괜찮은 정보망과 정보 분석가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봐야겠지.
“황공하게도 보잘것없는 소인에게 따라다니는 눈이 많습니다. 그 덕에 가끔은 원치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황공하다.
따라다니는 눈이 많다.
영락제가 날 감시하고 있다는 뜻.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히 허튼짓하지 말라는 경고를 할 겸 말해주었다.
“허허허. 원치 않은 일이라면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이지요.”
그러니까 빨리 꺼져라.
얌전히 몇 가지 소식만 듣고 가려고 했는데, 계속 축객령을 받으니까 짜증 나네.
역귀(疫鬼)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레전드 오브 레전드로 단련되어 트롤 소리 들으면 미드 오픈하는 대한의 건아다.
엿 같이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진짜 엿 같은 게 뭔지 보여준다는 뜻.
“혹시 그런 소문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소문 말씀입니까?”
“조선에서 온 사관은 황제 폐하와 사대부들도 감탄할 만큼 재미있는 기담을 쓸 줄 안다.”
“······.”
“듣자 하니 이가장에서 밀무역에 손을 댔다고 하던데······ 밀무역이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을 만큼 허술한 영역이 아니지 않습니까.”
야생의 무법지대, 그 자체일 텐데 말이다.
이가장은 이소군의 가문을 말하는 것이다.
“조력자가 있다는 뜻이죠. 다만 그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연유를 몰랐는데 광주에 오고 나니 납득할 만한 개연성을 찾은 것 같아요.”
찻잔을 내려놓으며 총관 할아버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