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3
022화 광저우 (3)
“허허허. 기담이라니요. 태어나서 기담을 쓰겠다고 겁박하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누가 그런 풍문을 믿겠습니까?”
“삼인성호라는 말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세 명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지요.”
내가 강하게 나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광주는 남방 무역의 핵심 거점.
그리고 이소군의 외가는 광동성에서 손꼽히는 유지라고 했다.
앞으로 광주에 기항할 일이 많을 텐데, 호구 잡히면 귀찮은 일이 수없이 생길 터.
불화보다는 협력을 원하지만, 협력을 원한다면 존중을 받아야 한다.
존중은 위협에서 생기고.
상대가 영락제나 킬방원이라면 내가 알아서 수그리겠는데, 어디서 주제넘게 나서고 있어.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이라 믿게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그리고 노야에게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크흠.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가는 대인의 발걸음이 머지않아 멈추게 될 것이외다.”
“그럴 지도요. 하지만 그 전에 이 가문의 역사는 확실하게 끊어드리겠습니다.”
장춘삼 총관은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읽어봐라.
순도 100% 진심이니까.
“그만하게.”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석피가 알아차리고 살짝 신호를 주었으니까.
“귀한 손님을 맞았는데, 접대가 변변치 않았군요. 가문의 소주인으로서 사죄드립니다.”
흰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장년인이었다.
세월의 직격타를 맞았기 때문인지 이마의 주름도 꽤 깊었다.
“약속도 없이 찾아와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조선에서 온 사관 강해인이라고 합니다.”
“허가장의 소가주, 허관영이라고 합니다. 강 대인의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황상께서 칭찬하시고, 삼보 태감이 아끼시는 인재라지요?”
“과찬입니다. 작은 재주가 있어 저를 귀여워 해주시기는 합니다.”
“황상과 삼보 태감께 직접 고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한 분이라는 뜻이지요.”
소가주는 곧바로 총관을 매섭게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총관! 허가장이 언제부터 빈객을 막 대했나! 당장 사죄하게!”
“죄송합니다. 소인이 존귀한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를 간절히 청합니다.”
“사죄를 받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저는 조선의 관리지만 정5품입니다.”
“오······ 이런.”
총관은 아예 바짝 엎드렸다.
장유유서?
그런 건 같은 신분일 때나 따지는 것이다.
조선과 명나라는 명확한 신분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사대부라 하여 특권 계층으로 분류되어 각종 의무에서 면제된다.
또한, 중범죄가 아닌 이상 면책특권까지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조선 관리 전부를 사대부로 인정해주진 않고, 정5품부터 사대부로 인정해준다.
그리고 난 딱 정5품.
아마 킹방원 전하도 이점을 고려하여 무리해서 정5품으로 승진해준 거겠지.
즉, 내가 총관 싸대기를 날린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다.
오히려 사대부를 이리 막 대했으니 총관이 치도곤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터.
이 가문도 여러 의미로 곤욕을 치러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항이다.
그런데 어디서 감히.
“다시금 사죄드립니다. 천노가 무지하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알았으니 가보세요.”
총관은 소가주의 눈치를 봤고, 소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춘삼은 다시금 허리를 푹 숙인 후 빈객실을 떠나갔다.
“부하의 잘못은 주인의 잘못. 저도 사죄드립니다.”
“사죄를 받겠습니다.”
후우······.
이것으로 역할 놀이는 끝났나.
소가주는 날 시험해본 것이다.
어떤 성격인지 확인해 보려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점.
이유를 불문하고 먼저 사죄부터 시켰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일종의 좋은 경찰, 나쁜 경찰(Good cop, Bad cop) 전략이라고 할까.
두 사람이 짜고 한 명은 나쁜 사람 역할을, 다른 한 명은 좋은 사람 역할을 맡아 협상력을 올리는 기술 말이다.
미래에는 워낙 유명한 기술이지만, 지금 시대에는 당연히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부하를 다룰 때 채찍과 당근을 잘 이용해야 한다는 말은 곧잘 하지만.
“허가장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대인 정도 되는 분이면 삼보 태감과 함께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제독께서는 제가 얽매이는 걸 원하시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스스로 깨우치길 원하시지요.”
“과연······ 폐하께서 대인을 가리켜 기이한 지식과 독특한 안목이 있다 하셨지요. 태감께서도 대인의 장점을 더욱 갈고 닦기를 바라신 모양입니다.”
“다양한 시각은 조직의 도움이 되니까요.”
다시금 차를 마셨다.
역시 홍차 향이다.
이거 제다법을 알 수 없으려나.
약점 잡힐까 봐 지금은 못 물어보겠네.
“허가장에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보를 얻고자 왔습니다.”
“정보요? 정보가 무엇입니까?”
“아. 견문 지식을 말합니다. 비교적 정확한 부류의 풍문을 뜻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하나 더 배웠습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제가 평생을 조선에서 살다 보니 남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괜찮다면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지요. 다만 태조께서 해금령을 내리신 뒤로, 예전만큼 상세하게 알지는 못한다는 점은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밀무역으로 얻은 정보가 아니다.
그리고 내 필요에 따라 적당히 숨길 텐데, 그래도 좋다면 말해주겠다.
라는 뜻이다.
“약속도 없이 찾아온 빈객입니다. 호의를 베풀어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현재 가장 뜨거운 이야기라면 단연 해적왕입니다.”
해적왕?
그런 게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강성한 세력이었다면 분명 정화의 원정대와 부딪혔을 텐데······.
“그 해적왕이 남만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스스로 왕이라 칭하다니. 광오한 자로군요.”
“진짜 왕이긴 합니다. 팔렘방에서 즉위식까지 치렀다고 하니까요.”
“아. 수마트라 사람입니까?”
“고향을 정확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광동성 출신이라고 합니다.”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화교가 해적왕이 되었다?
거참 글로벌한 민폐네.
“그의 이름이 뭐죠?”
“진조의라 합니다.”
기억난다.
에서 고용할 수 있는 항해사로 나온다.
그리 뛰어난 인재는 아니었고, 백병전에서는 꽤 쓸만했던 거로 기억한다.
“휘하의 병력만 해도 무려 1만에 달하며, 그가 보유한 전선도 100여 척에 달한다고 합니다.”
미친.
원정대의 1/3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면에서 부딪히기엔 원정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겠는데?
“그 정도 규모의 해적이 근처에 있다니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말하다 뿐이겠습니까. 그가 약탈한 상선만 해도 무려 만여 척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지요.”
“그렇게 될 때까지 수마트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답니까?”
“남만은 마자파힛이라는 대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영토만 해도 수마트라, 자바, 말라카(말레이반도), 그리고 마닐라 연맹왕국의 남부까지 이를 정도였지요.”
그런 왕조가 있었구나.
나도 세계사를 나름 아는데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역사 덕후인 친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동료였던 필리핀 국적 선원도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해 모르더라.
“하지만 대국을 건설했던 영웅, 하얌 우룩 왕이 죽고 나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언제나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이 죽으면 나라가 분열된다.
이는 영웅 한 명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에 의존한 탓이기도 했지만, 정복 군주 대부분이 화려한 업적에 가려진 폭군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대왕도, 전한 무제도, 프랑스 루이 14세도, 청나라의 건륭제도 마찬가지다.
외적으로는 화려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무리한 정복 전쟁으로 재정을 파탄시킨 폭군이었다.
재미없을지라도 나 같은 백성으로선 세종대왕이나 전한 문제나 경제 같은 내정 중심형 군주가 좋다.
······근데 신기하게도 한국에서는 근 천 년간 정복 군주가 없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곳곳에서 독립 요구가 빗발쳤고, 마자파힛 왕국은 극심한 내전에 빠졌습니다.”
허관영은 왕국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 정도 영토면 제국이라 불러야 하지 않나 싶었다.
함부로 타국을 제국이라 칭하면 영락제가 뎅겅 하겠지만.
“특히 작년에 발발한 내전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예?”
“아닙니다.”
왜 하필 내가 원정 갈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
운도 지지리도 없지.
“마자파힛 왕국이 극심한 내전에 빠진 사이, 진조의는 해적을 규합하여 스스로 왕 위에 올랐습니다.”
“하얌 우룩 왕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죠?”
“그는 과거 태조 고황제의 사절을 죄다 죽여버린 적이 있습니다.”
맙소사.
“태조께서는 크게 반응하시지 않으셨지만,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현 폐하께서 원정대에게 명하여 그를 토벌케 하셨겠지요.”
영락제의 지랄 맞은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대월 정벌도 그렇고 이번 기회에 남쪽에 기강을 확실히 잡으려 하는 것 같으니까.
······잠깐만.
왜 남쪽에 집착하지?
중국 왕조는 베트남을 제외하면 동남아시아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영락제는 고비 사막을 넘어 몽골 본토까지 ‘직접’ 쳐들어간 유일한 ‘한족 황제’라고······.
북방으로 올인 러쉬 들어가기 전에 남방을 안정시키려고 하는 건가?
대체 대원정의 목적이 몇 개냐.
만에 하나라도 실패했다가는 목이 남아나질 않겠네.
“게다가 하얌 우룩 왕은 진조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는 팔렘방으로 쳐들어가 선단을 파괴하고 도시를 약탈했으니까요. 덕분에 진조의는 쉽게 팔렘방을 손에 넣었죠.”
“왜죠?”
“팔렘방의 제후인 우니가 독립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환으로 태조 고황제께 사신을 보내어 왕으로 책봉 받았습니다.”
“아······ 그래서 하얌 우룩 왕이 명나라 사절을 죽인 거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당시 하얌 우룩 왕이 엄청나게 대노했다고 하더군요.”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에 하얌 우룩이라는 엄청난 영웅이 있었다.
그는 말레이시아부터 필리핀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가 죽자 제국에는 내전이 일어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혼란을 틈타 화교 출신 해적 진조의가 득세했다.
무려 1만의 해적과 100여 척의 전선을 거느린 해적왕이라고 한다.
당연히 우리 원정대가 해적왕 진조의와 맞부딪힐 가능성은 크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보선을 비롯해 원정대의 함선에는 상당한 양의 함포가 탑재되어 있다는 것.
다만 화약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대포의 명중률과 사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른다.
게다가 포격 위주의 근대식 해전은 이순신 장군님이 처음 도입했다고 하니, 선상 백병전은 거의 무조건 일어난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난 싸울 줄 모른다.
기록에 따르면 정화의 원정은 7차까지 지속한다고 하니 이기긴 이기는 모양이다.
원정도 성공할 테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죽는다면 9차, 10차를 성공하든 내 알 바 아니다.
석피를 믿기도 어렵다.
석피는 육지에선 신이지만, 바다에서는 병······ 아니, 차라리 내가 더 잘 싸울 것 같으니까.
“엿 됐네.”
대비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