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31
230화 기회의 땅 (3)
유대인들을 거두는 한편, 오스만으로 향할 준비를 계속 진행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한도 끝도 없이 유럽에 머물게 될 것 같다.
도대체 뭔 놈의 대회, 연회, 퍼레이드가 이렇게 많은 건지.
“유럽은 확실히 달라.”
“어떤 점이요?”
“이거 초대장 봐봐. 뭔가 이상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이소군도 이제는 어느 정도 라틴어나 에스파냐어를 할 줄 알 건만,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표정이었다.
“봐봐. 여기 보면 마르세유라는 곳에서 왔지? 여기, 현재 부르고뉴 왕국 영토거든?”
“예.”
“근데 지도를 보면 알듯이, 바로 옆에는 아비뇽이 있어. 아비뇽의 교황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지.”
“아…… 프랑스 국왕이 아니라 마르세유 영주가 보냈군요. 이래도 되는 건가요?”
“그 점이 다르다는 거지.”
현재 나는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로마 교황청과 손을 잡고 있다.
피사의 교황청은 ‘예언’ 사건으로 나에게 감정이 상해서 미적지근한 상태.
반면 아비뇽과 프랑스는 적대적인 상태에 가깝다.
그런데 프랑스의 영주가 나와의 친분을 원한다?
동북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시스템적으로도 힘들뿐더러, 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숙청당하겠지.
“그동안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왜 영주를 두고 군주라고 부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이 대륙에서는 봉건 계약만 지키면 나머지는 상관없나 봐.”
어쩐지 에서는 삼국지 게임에서 하던 것처럼 동맹을 맺거나, 자식들을 여기저기 결혼시키다 보면 끝도 없이 전쟁에 불려나가야 하던데.
역사 고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중세 유럽 게임에서 핵심 중 하나는 살아남기다.
잦은 전쟁 속에서 재정 파탄 내지 않고 버티는 것.
영주들이 왕의 말보다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우선하는 까닭도 알 것 같았다.
나야 잘못되어도 게임 오버로 끝나지만, 여기 사람들은 인생 오버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이런 잦은 행사도 이해가 되지.”
“왕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각 영주가 재량껏 하는 것일 테니까요. 하지만 재정 상태가 안 좋을 텐데 이래도 되는 건가요?”
“나도 처음엔 사치에 미쳐서 정신줄 놓은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다 이유가 있었다.
“대회는 뛰어난 기사와 병사를 영입하고 치안을 높이려고, 연회는 외교를 위해, 퍼레이드는 각 영지를 돌면서 권위를 세우고 세금 수금하러 다니는 거더라.”
물론 다른 이유도 많지만, 대표적인 이유를 뽑자면 이렇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일단 해야 할 일부터 빨리 처리하자. 그래야 놀더라도 마음 편히 놀지.”
“……노는 거였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후훗. 장난입니다. 준비는 되었습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진짜 가보자고.”
***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출항 시기가 다가오자, 유대인의 리더 격인 샤일록 알파치노가 넙죽 허리를 숙였다.
“음?”
“여기 있다가는 언제 살해당할지 모릅니다요.”
엄살이 아니라 진짜로 무섭다는 듯, 샤일록은 두려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덜덜 떨었다.
“알빠노.”
“예. 이제부터 제 성은 알빠노입니다요.”
“…….”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우리가 가는 곳은 이슬람 왕조라서 안 돼. 너네 죽는다.”
“차라리 무슬림이 낫습니다요.”
“엥? 정말?”
“무슬림들은 지즈야만 내면 죽이지는 않으니까요. 니예.”
지즈야는 종교 세금이다.
비무슬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가로 걷어가는 세금.
여기에 병역도 면제되기 때문에 보호비 성격도 지니고 있다.
성인 남성만 대상으로 하므로 노예, 아이, 여성, 장애인은 면제된다.
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합리적인 제도인데, 지즈야가 탄생한 원인은 이슬람교가 굉장히 신흥 종교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현시점에서 유대교는 3천 년, 힌두교, 불교는 2천 년 역사를 자랑하고, 기독교도 1400년 된 유서 깊은 종교이다.
유학도 종교로 본다면 2천 년 전 종교고.
반면 이슬람교는 아직 천 년도 되지 않았다.
800년 되었나?
이슬람 왕조로서는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피지배층 신도를 다스리기 이전의 종교와는 다른, 새로운 교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 이슬람교는 의외로 예수 그리스도도 선지자 중 한 명으로 숭배하는데, 이는 당시 중동인 중 기독교인이 많아서 이들을 흡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중동의 중요 지역이 이슬람교가 탄생할 시기엔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잖냐.
“하긴. 동방에서도 그렇기는 하지.”
“니예?”
“동방에서도 지즈야를 낸다고. 주로 불교도나 힌두교도들에게 받아내지.”
“지즈야는 딤미가 내는 게 아니었습니까?”
딤미란 ‘성서의 백성’이라는 뜻인데,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말한다.
당연히 불교도와 힌두교도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지. 동방의 동방에는 기독교인이 없으니까.”
“아~ 그렇군요.”
예전에 파사이 술탄국의 술타나, 나흐라시야 술타나가 말하기를.
원칙적으로 성서의 백성이 아닌 이교도, 그러니까 불교도와 힌두교도는 성서의 백성보다 더 낮은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특별히 별문제는 없다고 한다.
동방에는 기독교인이 없으니, 차별받는 느낌도 없다고 할까.
“하지만 그래도 이슬람 왕조로 가는 건 어렵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 너희 돈도 없잖아.”
나야 이제 안정되어서 어지간하면 오는 백성들은 대부분 환영한다.
땅은 넓은데 사람이 없으니까.
개척하는 데 돌리면 되거든.
반면 보통은 이민을 꺼린다.
특히나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든 백성들이 들어오면 치안이 불안해질 테니까.
“그…… 괜찮으시다면 저희를 지브롤터로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브롤터? 거기 주민 대다수가 무슬림인데 괜찮아?”
“차라리 지즈야를 내는 게 낫습니다. 이베리아인들은 유대인을 보면 무조건 죽이려고 듭니다.”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어?”
“그게…… 본래 이 땅은 이슬람의 땅이 아닙니까?”
현대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사람이 들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 법한 발언이다.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기 전에는 분명 로마의 땅이었으니까.
“당시 지주는 무슬림이었습니다.”
“그렇겠지.”
이슬람 왕조가 기독교 지주를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테니.
“하지만 백성들은 주로 기독교인이었으므로 중간을 이어줄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아~ 그게 유대인이다?”
“네. 세파르딤이라고 하지요. 우마이야 왕조는 유럽 곳곳에서 탄압받던 유대인들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이제야 이베리아반도에서 유대인 혐오가 더욱 강한 것도 이해되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이거잖아.
무슬림 지주는 일제의 지주.
이베리아 기독교인은 탄압받는 조선인.
유대인은 친일파 마름.
그리고 레콩키스타로 기독교 왕조가 이슬람 왕조를 거의 다 몰아내고 있는 이 시점은, 광복절이 다가오는 상황이겠네.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네.
“혹시 몸속에 무슬림들의 총알이 여섯 개 정도 박혀 있나?”
“네?”
“아니다. 배신한 게 아니라, 원래 탄압받던 이들이 살기 위해 그랬던 거니까 참작해준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였다면 진짜 ‘내 알 바임?’했을 텐데.
오히려 좋다.
이들은 이제 내게 목숨줄이 잡힌 셈이다.
그만큼 내 명령을 철저하게 따를 수밖에 없겠지.
“그럼 너희는 지브롤터에 내려줄게. 내가 오스만 다녀올 때까지 내가 쓴 이론을 잘 공부하고, 준비 철저하게 해놔라.”
“니예.”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어쩌면 이번이 너희 유대인에게 얼마 찾아오지 않는 기회일 수 있다. 나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없으니까. 그 점을 명심하고 잘해라.”
“명심하겠습니다요. 니예. 약속의 땅처럼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역사를 아는 나로서는 무척 안타깝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서유럽과 남유럽에서 철저하게 탄압되자, 살아남기 위해서 동유럽으로 향했다.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등등.
그리고 그렇게 도망간 이들의 후손은 희대의 미친놈을 만나게 되니.
그 미친놈이 바로 히틀러다.
***
오스만으로의 출항은 다시금 지체되었다.
하모니아로 몰려든 유대인들을 이주시켜야 했으니까.
이들은 취향에 따라 지브롤터나 세우타, 그리고 지금은 무인도인 아소르소 제도나 마데이라를 원했고, 나는 그들을 열심히 실어 날랐다.
유대인들에게 머물 곳을 준 결정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기독교 세력과 갈등이 적을 거라는 점에서 안도했다.
그렇게 이주를 끝내고 나니 벌써 9월.
우리는 진짜로 오스만으로 향했다.
포르투갈에 도착한 지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방향 어긋났다. 우현으로 조금만 틀어봐.”
보통은 낮에 일하고 밤에 쉬지만, 나의 경우 밤에 일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밤에 늦게 자고, 새벽에 해가 뜨기 전 일찍 일어난다.
왜냐하면, 별을 보고 현재 위치를 파악한 뒤, 항로를 재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관이 영혼까지 각인된 까닭인지, 환생한 지 20년이 지난 이후에도 매우 쉽게 할 수 있었다.
“조타륜이 굉장히 쉽게 돌아가네요?”
“잼민아. 어렸을 때 푹 자지 않으면 키가 안 큰단다.”
“저 다 컸어요.”
“아직 6년은 더 클 거다.”
군대에서도 키 크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키가 크지 않은 남자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품기도 하지.
잘 안다.
헛된 희망이라는 걸.
내 경험상 1mm도 안 커지더라.
군대에서도 키 큰 사람은 성장판이 버프에 걸렸거나, 구부정한 골격이 교정된 것일 거다.
아니면 제대로 못 먹다가, 군대와서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다든가.
“하긴. 선장님은 키도 엄청나게 크시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체감상 175cm 정도다.
이 시대에서는 큰 편이다.
“그래서 어떻게 조타륜이 이렇게 잘 돌아가는 거예요?”
“이쪽의 배도 잘 돌아가던데?”
“톱니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도 돌아가게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보다 쉽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 그 차이를 깨닫다니. 예리한걸?”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차이인가요?”
“답은 방향타란다.”
러더(Rudder)라고 부르는데, 비행기의 러더와 기능이 똑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행기에는 수직 꼬리 날개에 붙어있고, 범선에는 후면 아래에 붙어있다는 점이겠지.
“유럽의 배는 통짜 나무로 방향타를 만들잖아. 동방에서는 물살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 방향타에 구멍을 뚫어 놓는단다.”
“구멍을 내도 괜찮아요?”
“잘 내면 별문제 없단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에서 조선술의 차이가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우수한 조선술을 갖고 있던 명나라는 해금령을 내리면서 다 날려버렸다는 점이겠지.
덕분에 나중 가서는 쓸만한 배가 없어서 조선에 배를 구걸하는 처지가 된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은 이순신 장군에게 새로이 만든 판옥선 받고 그렇게 좋아하며 날뛰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중국의 문화 초기화.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나요?”
“응?”
“여기 처음 오는 곳 아닌가요?”
참 질문이 많네.
예리하기도 하고.
차라리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같은 질문이면 더 쉽게 답해줬을 것 같은데.
“지도를 보면서 나아가고 있지. 지중해의 지도야 워낙 흔하잖냐.”
로마 시대 때부터 정밀하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지도를 보는 것과 읽는 건 다르지 않나요? 아니면 유럽과 극동의 지도 읽는 법이 같나요?”
“다르긴 하지. 하지만 보면서 몇 가지 오차를 짚었더니, 어지간히 잘못된 지도가 아니면 잘 보인단다.”
어차피 유럽의 지도는 내 머릿속에 있기도 하고.
전생에 지중해 항해도 꽤 많이 했기도 하고.
“게다가 주요 암초 지역만 아니라면, 좀 틀려도 큰 문제는 없고.”
“아하~ 그렇구나.”
“이제 답이 되었니?”
“네! 선장님!”
“그럼 이제 가서 자렴.”
“아~ 맞다. 그거 말씀 안 드렸네요.”
“또, 뭐니?”
나중에 내 자식도 이렇게 질문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버지의 위대함을 깨달을 테니까.
“혹시 이 해역은 해적이 자주 침몰한다는 거 알고 계세요?”
“하프스 왕조의 사략 함대 말이지? 의식은 하고 있단다.”
“만약 그들이 온다면…….”
“쉿.”
이 자식이 어디서 플래그를 세우고 있어.
이쪽도 규모가 꽤 큰지라 사략 함대가 무섭지는 않지만, 웬만하면 화약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하하하. 그렇네요. 설마 이 밤 중에 사략 함대를 만나겠어요?”
땡땡! 땡! 땡땡! 땡!
잼민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망루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쪽으로 함선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내가 모스 부호에 착안해서 새로이 도입한 방식이다.
“오네.”
“죄송합니다…….”
“네 잘못은 아니니까. 아직 해적이라고 확정된 것도 아니고.”
이곳은 유럽.
지중해의 밤 항해는 의외로 흔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해적들이 더욱 설치는 감이 있다.
상대의 깃발이 잘 보이지 않아서 접근하기가 쉬우니까.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해놓자.”
별일 없기를 바라지만, 별일 없었던 적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이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