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36
235화 제국의 보물 (2)
우리 함대가 북쪽 항구로 향하자 병사들이 바짝 긴장한 게 확연히 보였다.
“나는 로마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인이며,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하모니아의 공작이기도 하다. 급박한 상황 판단하여 구원하러 왔다. 기항 허가를 요청한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북쪽 성벽을 지키는 지휘관 중 하나가 유창한 라틴어로 대답했다.
다행이다.
매우 급한 상황이라 고급 인력들은 다 서쪽 성벽으로 차출된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는데.
“폐하께서 허가하셨습니다. 기항하셔도 좋습니다.”
어지간히 급한가 보다.
내가 메흐메트에게 포섭된 간첩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간단히 통과시켜주네.
우리는 천천히 항구에 배를 댔다.
급하게 되면 놀랄까 봐.
아까 라틴어로 대답했던 지휘관은 이미 밖에 나와 있었다.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다만 순수한 선의는 아닐세. 만약 우리가 공을 세운다면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줄 수는 있나?”
“부족하다면 신께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뭔 개소리야.
내 표정을 봤는지, 잼민이가 끼어들었다.
“아. 선장님. 이 말은요 ‘정 안 되면 교회의 유물을 녹여 금화로 만들어서라도 주겠다.’라는 뜻이에요.”
“아니. 그럴 거면 그냥 유물을 주지.”
그게 더 비쌀 텐데.
“성물을 팔 수는 없으니까요.”
“어휴. 복잡하기도 해라.”
한국에서 살 때 늘 나오는 말이 허례허식이었는데.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네.
전쟁 중에도 이럴 정도니. 원.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다.
만약 제대로 보상을 못 준다면, 이미 배린 몸의 4차 십자군처럼 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난 애니멀들과는 달라서 백성은 털지 않는다.
“적은 어디 있는가?”
“성벽 밖에 있습니다. 아직 공성 준비가 갖춰지지 않았는지 제대로 공격해오지는 않았습니다.”
“바다에서 보니 성벽을 향해 화살과 대포를 날리던데?”
“조금이라도 이쪽의 피로를 누적시키기 위한 흔한 수법입니다. 물론 신의 전사들이 그 정도로 지치지는 않습니다만, 귀찮은 건 사실이죠.”
“흠. 알겠네.”
허가를 받은 나는 곧바로 서쪽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으로 향했다.
***
“…….”
“…….”
선원들은 딱히 힘든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딱 봐도 힘들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게 배에다가 싣는 무거운 대포를 사람의 힘으로 옮기고 있으니까.
“대한민국 포방부의 방침이 옳았네.”
바퀴가 달려있으면 포를 달고.
포가 있으면 바퀴를 달고.
다 이유가 있구나.
난 또.
6·25전쟁 초기에 탱크가 없어 밀렸던 한이 응어리진 건 줄 알았다.
많이 늦었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로 대한민국 포병들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해군도 쉬운 건 아니었어.
대포를 들고 가장 안쪽에, 가장 높은 성벽 위로 올라갔다.
와.
선원들 진짜 힘들어 보이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고생한 만큼 다 챙겨줄 테니까.
성벽 위로 올라가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와우.”
역사로만 보던 테오도시우스의 성벽.
직접 보니 이렇게 장관일 수가 없다.
해자의 폭은 대략 20m 정도.
바로 뒤에 2m 높이의 작은 성벽이 있다.
폭이 15m 정도의 공터가 있고, 그 뒤엔 약 10m 높이의 외성벽이.
다시 20m 정도의 공터가 있고, 마지막으로 20m 높이의 내성벽이 있다.
그야말로 고대의 마지노선.
이 정도면 영락제도 뚫기 힘들 것 같다.
중국이야 수십만 인부를 동원해서 성보다 높은 토산을 쌓아 공격한다지만, 해자와 3중 성벽 구조로 인해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이니까.
“Είστε καλεσμένος από την Ανατολή;”
비잔티움의 장군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외모는 무척 흔한 편이지만, 왼쪽 눈에 안대를 썼고, 무척 과묵해 보이는지라 상당히 묵직하게 느껴졌다.
진짜배기 장군이라고 할까.
하긴. 이 시대에 가짜 장군은 거의 없지.
그런 장군은 진작에 죽었을 테니까.
“뭐라 하는 건가?”
비잔틴 제국이 붙여준 통역사에게 물었다.
“동쪽에서 온 귀인이냐고 묻습니다.”
“동쪽에서 온 건 맞는데, 귀인인지는 잘 모르겠네.”
통역사는 그리스 장군에게 통역해서 전해주었다.
“소문은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동쪽에서는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들었다고 합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
“‘아닙니까?’라고 묻습니다.”
“맞긴 하는데, 소문을 믿지 말고, 실력을 보라고 전해주어라.”
“그런데 여기서 괜찮겠냐고 묻습니다.”
“뭐가?”
“여기서 대포를 쏘면 적까지 안 닿는다고 합니다.”
아직 공성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적은 멀리 있다.
당연히 우리 쪽 대포도 안 닿는다.
우리 함대가 쓰는 개량 불랑기포의 사정거리는 1500보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600m.
공기의 밀폐를 더욱 신경 쓰니까 확실히 사정거리가 늘어나더라.
위력도 강해지고.
이 시대에 이보다 사정거리가 긴 대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포 선진국인 포르투갈에서 쓰는 대포도 사정거리가 150m 정도니까.
듣기론 메흐메트 2세가 썼던 우르반 거포가 쏜 포탄이 1.5km까지 날아갔다고 하는데, 그건 규격 외의 대포니 논외로 치고.
“저…… 뭐라고 답할까요?”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전하거라.”
“예.”
게다가 배에 있는 대포를 전부 가져올 수는 없는 노릇이라 좋은 거로만 가져왔다.
포신에 강선을 넣은 고급 대포와 강선 대포 전용 고급 포탄 말이다.
“어디 보자.”
비싼 거니까 잘 쏴야 하는데.
마침 좋은 목표가 있네.
바로 적의 대포.
오스만은 화약 제국이라 불릴 만큼 화포를 잘 쓰는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석 광산은 대부분 중국, 인도, 칠레에 몰려있다.
즉, 화약값이 무척 비싸다는 뜻.
화약값이 비싸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병사들이 실사격을 많이 못 해봐서 숙련되기 힘들다는 것.
반면 우리 선원들은 항해 다음으로 잘하는 게 포 쏘는 거다.
“다들 준비됐냐?”
“예!”
“딴 건 내버려 둬라. 적의 대포만 노려라. 격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려줘라!”
“예!”
선원들은 매우 능숙하게 준비를 마친 후, 포탄피를 장착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탄피의 주둥이 부분.
여기를 마개로 막았더니 기밀이 높아져서 확실하게 위력이 올라가더라.
분명 알았던 건데, 나중에 떠오르는 걸 보면 환생한 이 육체도 하드웨어 성능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들 준비됐나?”
“예!”
선원들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마치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사격술 예비훈련)를 마치고 실사격 훈련장 안으로 들어간 예비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준비가 귀찮아서 그렇지 총 쏘는 건 재밌지.
게다가 사람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적의 무기를 파괴하라는 명령이니까.
“잘 조준해라. 적의 대포는 그렇게 가치가 있진 않아. 몇 발 빗나가면 오히려 이쪽이 손해다.”
“하하하!”
농담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진심인데.
“쏴라!”
콰콰쾅!
포탄이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명중률은 생각보다 낮았다.
성벽같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해 쏘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첫발은 연습이지. 바로 장전해.”
“예!”
한 명은 두꺼운 가죽 장갑을 낀 채 포탄피를 제거.
두 명은 진흙을 묻힌 천으로 열심히 포신을 닦았다.
화약의 열기를 식혀주기 위한 작업이다.
그사이 다른 한 명이 새로 포탄피를 가져와 끼웠고, 다른 한 명은 포탄을 가져와 대포 안에 넣었다.
다섯 명이 한 조.
이것이 우리가 연구한 최적의 팀이다.
“조준!”
“…….”
“쏴!”
쾅!
이번에는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쐈다.
그래서 그런지 느낌이 좋았다.
그 있지 않은가.
계속 오류가 나는 작업을 하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이번에는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 때.
지금이 그랬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차차창!
무사가 이끄는 오스만군.
그들의 대포가 곳곳에서 터져 나갔다.
퍼펑!
심지어 폭발하는 대포도 있었다.
장전한 대포를 맞춘 모양이다.
“다음.”
“예!”
포격부터 재장전까지 대략 30초.
시대를 고려하면 엄청나게 빠른 장전 속도다.
적에게는 정신 나갈 것 같은 속도고.
“쏴!”
펑!
다시 한번 기분 좋게 거의 동시에 발사되었다.
무사가 이끄는 오스만의 대포를 작살을 내놨으며, 빗겨나간 대포는 적 대포 대신 사람이나 구조물을 때려 부쉈다.
이것이 화약의 물리력.
근데 위치 에너지를 곁들인.
흔들리는 배에서 쏘다가 높은 성벽 위에서 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
이래서 언덕 탱크, 언덕 탱크 하는구나.
“…….”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비잔틴 장군도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입을 쩍 벌린 채 다물 줄 모르는 걸 보면.
“적이 몰려옵니다!”
대포가 파괴되자 성질났나 보다.
갑자기 달려드는 걸 보면.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메흐메트의 동생 무사는 꽤 다혈질 성격 같았다.
나였다면 바로 퇴각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포도탄 준비. 주석통에 넣은 거 말고. 그물에 넣은 걸로.”
“네!”
아, 잠깐만.
강선 대포에 이런 탄환을 쓰면 다 긁히는데.
그래도 지금은 보여줘야 할 때라 어쩔 수 없다.
이 대가는 톡톡히 받아내도록 하지.
“쏴…… 아니! 사람을 노리면 안 되지!”
“네?”
“정확히 맞춘다고 해도 범위가 한정돼서 큰 피해를 못 주잖아!”
이게 해전인 줄 아나.
“위로 쏴. 자갈이 넓게 퍼지게.”
“예!”
바로 알아들었는지 포병들은 일제히 대포의 각도를 높였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자신이 없는지, 제각각 다른 각도였다.
상관없다.
가장 잘 맞추는 각도로 다시 조정하면 되니까.
“쏴!”
콰콰쾅!”
자갈을 담은 그물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면실로 만든 거라 금방 찢어지기 시작했다.
넓게 퍼지며 땅으로 떨어지는 자갈 세례.
흡사 유사 메테오를 보는 것 같았다.
“석피야.”
“예.”
“저놈은 닿을 것 같은데 어때?”
무사라는 녀석도 바보는 아닌지, 최정예인 예니체리는 뒤에 두고 최하급 징집병들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징집병은 무장 수준도 낮고, 사기도 낮아서 머릿수 맞추는 데에만 쓸 뿐, 제대로 된 전투를 잘 못 한다.
따라서 반드시 독전관 역할까지 해줄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하다.
그놈을 노린다.
“다행히 바람이 좋군요. 닿을 것 같습니다.”
“해봐라. 태조 이성계 전하처럼 왼쪽 눈 맞추면 내가 크게 쏜다.”
“하하하. 아무리 왕이 되셨다고 해도 피휘를 안 하셔도 되는 겁니까?”
“몰랐냐? 이성계 전하는 왕이 되고 피휘를 위해 개명하셨다.”
이성계의 성(成)자가 너무 자주 쓰는 한자라서.
개명한 이름은 ‘이단’이다.
“알겠습니다. 태조 전하처럼 머나먼 서역에서 전설을 써보지요.”
석피는 맞추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매우 편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그와 함께, 질 수 없다는 듯 편전 수들도 일제히 활을 당겼다.
로마의 심장 위에서.
조선의 최종병기가 활약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