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38
237화 제국의 보물 (4)
유럽으로 떠나기 전.
1년 동안 항해를 준비할 때 가장 신경 쓴 것이 무기였다.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모든 국가가 우리를 평화롭게 맞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적재량에는 한계가 있기에 양이 아닌 질을 올려야만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쏟아붓고, 각국의 야금술 노하우를 총집합하여 새로이 총과 대포를 만들어 내었다.
그렇다고 시대를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고.
기존의 총에 강선과 정교함, 그리고 양산성을 더한 정도다.
확연한 발전이 있다면 다이너마이트였다.
그동안은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켜서 만들었는데, 이제는 면섬유에 흡수시켜 만든다.
실수로 흘린 니트로글리세린을 면포로 닦고, 이를 찬물에 씻고 말리는 도중 면포가 폭발했다는 점에서 착안, 면화약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여러 실험 끝에 이게 더 위력적이고, 만들기 쉽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마찰 전기를 방지하기 위해 기름종이로 포장했더니 정말 안정적인 다이너마이트가 완성되었다.
……공법이 불안정해서 그런지 만드는 도중에는 여전히 사고가 잘 나지만.
그리고 이곳.
로마의 심장에서 처음으로 그 무기들을 시연한다.
우리는 가장 높은 성벽인 안쪽 성벽에서 가장 바깥쪽인 낮은 성벽 쪽으로 왔다.
전방에 왔다는 게 불안하긴 하지만, 해자와 성벽 방어벽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잠시 후.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카타프락토이와 시파히가 얽힌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에 놈들부터 치워. 아군과 붙은 쪽은 알아서 떨쳐낼 것이라 믿고.”
“예!”
하지만.
카타프락토이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성문이 열리지 않았으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성문을 열라고 명령을 내릴 권리가 없다.
그리고 그리스어를 모르기에 이쪽 상황을 설명할 방법도 없다.
고민 끝에 옆에 있는 비잔틴 병사의 깃발을 뺏었다.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프로 로마(Pro Roma)!”
라틴어로 ‘로마를 위하여!’라는 뜻이다.
카탁프락토이 중 라틴어를 아는 이는 적겠지.
하지만 유럽은 이게 좋다.
언어를 몰라도 대충 뭔 소리인지 알아듣는다는 것.
“오오오오!”
실제로 카타프락토이의 눈에는 다시금 투지가 돌며 함성을 질렀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뿌리치며 성문 가까이 다가왔다.
훅훅훅훅!
내 모습이 거슬렸는지, 시파히가 일제히 창을 던졌다.
투창은 해자를 넘어 성벽에까지 닿았다.
“맙소사.”
그중에서는 정확히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도 있었다.
“위험합니다!”
바로 옆에 있던 석피가 칼로 투창을 쳐냈다.
마지막에 힘을 거의 잃었긴 하지만, 창이 거의 100m 가까이 날아왔다.
아무리 말의 추진력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게 말이 되나?
고대의 전사들은 인간 병기였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어따대고 신성한 로마에서 창질이야?”
수신호를 내렸다.
선원들은 가늠쇠로 적을 조준했다.
“아예 뼈도 추리지 못하게 진짜 싸움 맛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화약의 질이 좋지 않다.
그런데도 최대 사거리는 200m.
유효 사거리는 100m.
50m 이내라면 확실하게 맞출 수 있고, 어지간한 갑옷은 다 뚫을 수 있다.
“쏴!”
두두두두!
총열에서 일제히 불이 뿜어졌다.
상대적으로 경무장이라고는 해도, 기수가 체인메일을 입어 중기병 역할을 하는 시파히다.
그런 그들도 총탄 세례에 우수수 낙마했다.
다만 아직은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판금 갑옷을 입은 카프쿨루 시파히에겐 피해를 주지 못했다.
조금 더 가까워져야 하는데, 카타프락토이는 죽기를 각오한 듯했다.
성문으로 가까이 오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죽을 듯이 싸웠다.
“성문을 열어라.”
“그리 전하겠습니다.”
통역사는 잠시 사라졌다.
그 사이 선원들은 계속해서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안 된다고 합니다.”
통역사가 다시 나타났다.
“제대로 통역한 게 맞나?”
“예. 맞습니다.”
“저 정예를 그냥 내다 버린다고?”
“카타프락토이가 소중한 건 맞습니다만, 콘스탄티노플의 안위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쯧.”
안타깝지만 내가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럼 알려주게. 그리스어로 ‘성문 가까이 와라.’라는 말은 어떻게 하지?”
“‘엘라 피오 콘타 스티스 피예스.’입니다.”
다시금 비잔틴 제국의 깃발을 들고 열심히 흔들었다.
솔직히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왜 비잔틴 사람도 아닌 내가…….
조선인보다 조선을 사랑했던 구한말의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된 느낌이었다.
“엘라 피오 콘타 스티스 피예스!”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전장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배에 달린 확성기도 가져올걸.
“여기서는 퇴각 신호를 어떻게 보내나?”
“글쎄요. 저는 무관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군요.”
“하하. 시바.”
장전된 총 하나를 들고 통역사의 미간에 들이댔다.
“내가 예의를 갖추라고 했을 텐데?”
“모르기에 모른다고 대답했을 뿐입니다.”
“모르면 끝인가! 알아와야 할 것 아니냐!”
“알겠습니다. 알아 오지요.”
통역사는 두려운 표정도 없이 태연하게 답했다.
하 씨.
나라가 망조가 드니까 별 미친놈이 다 나오네.
통역사가 사라진 지 몇 분 후.
둥! 둥! 둥!
거대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퍼지는 방향을 보니 북 옆에는 거대한 뿔피리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뿔피리가 공격 신호, 북이 퇴각 신호 같았다.
북소리를 들은 카타프락토이들은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성문 가까이 다가왔다.
다이너마이트의 투척 거리는 대충 20~30m.
해자의 폭은 20m다.
따라서 적이 최대한 가까이 올 필요가 있었다.
“용왕의 분노 준비.”
“예!”
충분히 가까이 왔다.
기병들의 싸움인 만큼 보병들은 저 멀리 있는 상태.
그야말로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쇼타임이다.
“던져!”
“예!”
다이너마이트가 일제히 날아갔다.
불은 주석 튜브 안의 화약을 태우며 타들어 갔고, 다이너마이트가 땅에 떨어질 때 즈음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다.
콰콰콰쾅!
지금까지는 야금야금 피해를 줬던 총과는 차원이 달랐다.
해자 너머에 불기둥이 치솟으며, 그 충격파는 시파히들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
전장의 시간이 멈췄다.
가공할 위력에 카타프락토이, 시파히도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아드리아노플도 날려 보내주지.”
아랍어로 외쳤다.
“넌 누구냐?”
카타프락토이의 근처에 있어서 피해를 받지 않은 카프쿨루 시파히가 나를 향해 물었다.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휘관인 듯했다.
“라자 나가.”
“콘스탄티노플의 아군인가?”
“역사의 아군이다.”
“……가자.”
시파히들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와 함께.
굳게 닫혔던 성문이 열렸다.
***
초전을 치른 후, 우리는 마누일 2세의 초대를 받아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콘스탄티노플에는 세 개의 궁전이 있다.
800년간 중심지 역할을 한 콘스탄티노스 대궁전.
11세기 후반에 이전한 블라헤르네 궁전.
4차 십자군에 의해 약탈당한 이후 라틴 제국이 사용한 부콜레온 궁전.
현 비잔틴 제국의 황가인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다시 블라헤르네 궁전을 주로 사용한다.
내가 초청받은 곳 역시 이곳이고.
“어서 오시구려. 프로메테우스.”
한 청년이 껄껄 웃으며 라틴어로 나를 반겼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
금발과 푸른 눈이 잘 어울리는 잘생긴 미남이다.
“프로메테우스?”
“아~ 그대는 우리의 신화를 모르겠구려.”
“압니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나누어준 지혜의 티탄 신이 아닙니까?”
“오. 놀랍구려. 라자 나가의 지식은 세상을 꿰뚫어 본다더니 거짓이 아니었소이다. 하하하!”
“그래서 내가 왜 프로메테우스죠?”
“제우스의 벼락을 훔쳐 저 간악한 이교도를 몰아냈으니, 콘스탄티노플의 프로메테우스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요.”
다이너마이트를 말하는 건가.
겨우 이 정도로 뭘.
제우스의 벼락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칭호는 오펜하이머쯤 되어야 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뭐, 좋습니다만 프로메테우스는 그 뒤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형벌을 당하지 않습니까. 나는 어떤 형벌을 당할 것 같습니까?”
“괜찮소이다. 제우스보다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 이해하고 지켜주실 테니까.”
할 말이 없네.
옆에서 또 다른 귀족이 다가왔다.
그는 라틴어를 할 줄 모르는지, 그리스어로 뭐라 뭐라 했다.
“이 자는 아까 오스만을 향해 멧돼지처럼 돌격했던 타그마타의 장군이오.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있소.”
‘멧돼지’라는 표현에서 그리 좋은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타그마타?”
“아. 황제의 친위대를 말하는 것이오. 본래는 황제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귀족 자제를 모아 만든 친위대지만…… 보셨다시피 지금은 오합지졸일 뿐이외다.”
“전투 자체는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정예를 끌고 갔으니까. 그나마도 다 날려버릴 뻔했지만 말이오.”
아직 황제가 등장하지 않아 확신은 못 하겠지만, 비잔틴의 궁전 내에서는 주전파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강렬한 것 같다.
‘어차피 싸워서는 못 이겨’라는 패배주의도 가득한 것 같고.
최근 역사를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에게 이런 대우를 할 건 아닌 것 같은데.
장군은 뭐라 뭐라 더 말했다.
“뭐라고 하는 겁니까?”
“핑계를 대는군요. 카프쿨루 시파히가 나설 줄은 몰랐다고 하오. 그들은 술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최정예 친위대이긴 하니.”
“그에 대해서는 저도 들었습니다. 무사 왕자가 술탄의 친위대를 거느리고 있는 것도 의아하고, 그들이 전장에 나선 것도 의아했습니다.”
“시파히는 루멜리 시파히와 아나돌루 시파히로 분류되어 있소. 카프쿨루도 마찬가지라오.”
루멜리아는 로마인의 땅.
즉, 루멜리 시파히는 발칸 반도의 시파히라는 뜻이겠지.
아나돌루 시파히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시파히라는 뜻이겠고.
이름이 멋지긴 한데, 고유 명사가 많이 나오니 헷갈린다.
“그런데 말입니다. 황제의 친위대인 타그마타도 믿을 수 없다면, 이 나라에서는 더는 믿을만한 존재가 없다는 뜻입니까?”
“신의 가호와 천 년 동안 갈고 닦은 노회한 외교술이 있소.”
“외교란 서로의 카드를 주고받는 것. 콘스탄티노플은 보여줄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을 텐데, 외교가 가능하겠습니까?”
주변국은 죄다 점령되었거나 오스만의 속국이 되었고.
서유럽은 분열과 내전, 전쟁 후유증으로 도와줄 여력이 안 되고.
그 외엔 전부 이슬람 세력이라 적이나 마찬가지다.
외교술을 대체 어디에 쓸 생각인지 궁금하다.
“있소.”
“모스크바 대공국이 구원하러 올 것 같습니까?”
보랏빛 혈통을 준다고 하면 군대를 보내기야 하겠지만…….
“세계를 보는 눈이 넓으시구려. 하지만 아니외다. 좀 더 가까이 보셔야지요.”
왈라키아를 말하는 건가?
드라큘라로도 유명한 가시공 블라드 체페슈가 나오라면 30년은 더 기다려야 할 텐데.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내 기대를 배신했다.
“신의 가호라는 카드가 있고, 교황청이라는 협상 대상이 있소이다. 콘스탄티노플은 정교회의 본산이니 말이오.”
“어떤 교황청을 말하는 겁니까?”
“어떤 교황청이든 상관없지요. 본래 정교회와 카톨릭은 하나였으니, 우리가 지지하는 쪽이 정통 교회가 되지 않겠소이까.”
“…….”
그제야 ‘신의 가호’가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협상 카드라는 걸 이해했다.
그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매우 무서운 말이다.
말이 ‘지지한다.’지, 정교회가 카톨릭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되면 카톨릭도 당연히 십자군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교회 국가와 신하들은 죄다 등을 돌릴 것이다.
실제로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톨릭에 고개 숙였다가 내부 분열이 심각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비잔틴 제국 멸망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구한 말을 보는 것 같네.”
“음?”
“아닙니다.”
오스만에 굴복할 것인가.
카톨릭에 고개를 숙이고 서유럽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
보랏빛 혈통을 내어주고 동유럽 국가에 지원을 받을 것인가.
도움을 받는 것까지는 괜찮다.
오히려 도움을 끌어내는 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스스로는 어떤 걸 해내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비잔틴 제국의 미래를 알기 더더욱 그러했다.
1453.
어쩌면 그 숫자가 더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아. 내 소개를 깜빡했구려. 이곳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서 말입니다.”
그는 매우 정중하게.
그리고 품격있는 몸짓으로 인사했다.
“처음 뵙겠소. 로마의 차기 황제, 요안니스라고 하오.”
아. 이놈이다.
숨통이 끊어져 가는 비잔틴 제국에 치명타를 가한 녀석.
무능한 황제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했기에 참사가 일어났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번 역사에서도 그리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