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4
023화 무장상선 (1)
“엿 됐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예를 배워놓을 걸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어설프게 배울 것이라면 배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도망쳐야 할 때 ‘싸운다.’라는 선택지가 생기면 망설이다가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배 위에서는 도망친다는 선택지가 없다.
“게다가 대인은 어깨가 넓은 편이고 사대부이신데도 하체가 단련된 것 같습니다. 정말 무술을 전혀 배우시지 않았습니까?”
펑퍼짐한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어떻게 알아본 거지?
“따로 무예를 배우거나 연마한 적은 없습니다.”
오래 살기 위해 팔굽혀펴기나 스쿼트 정도는 하고 있다.
달리기도 하고 싶었는데, 선비는 비가 와도 뛰면 안 된다는 개소리 때문에 못 했다.
“다만 활은 조금 쏠 줄 압니다.”
50발 쏘면 30발 정도는 맞출 수 있다.
“공자께서는 ‘활은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니 군자와도 같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과연 사대부다운 교양이십니다.”
그냥 재밌어서 익힌 건데.
문제는 활이 없다.
설마 3만의 원정대와 함께하는 데 싸울 일이 있을 줄 몰랐지.
“중용에 나오는 말씀이군요. 논어에도 나옵니다.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으나, 다툼이 있다면 활쏘기에서만 있다.’라고 하셨으니까요.”
“그 다툼이 조용하고 온화하며 예를 갖추었으니 군자의 다툼이라.”
“소가주님께서도 학문에 조예가 깊으십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노력이 부족하여 번번이 낙방한 서생에 불과합니다.”
“대국의 과거 시험은 조선의 과거보다 무척 어렵다 들었습니다. 낙방했다고 해서 노력과 재능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약관 이전에 대과에 합격하고, 폐하께 인정받은 대인에 비교하면 아무래도 많이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부귀영화를 누리기 전에 이승 하직할 것 같다는 것.
대비책이라면 역시 대포다.
함포를 다량으로 배치하여 오기 전에 족족 침몰시킨다면 안전이 보장된다.
문제는 내게 권한이 없다는 것.
게다가 여태까지 그렇게 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테니.
출항하기 전에 정화와 진지하게 이야기해봐야겠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만찬을 준비할 터이니 드시고 가시지요. 식사도 대접하지 않고 빈객을 보낸다면 천하가 허가장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아까 막 대한 걸 더 비웃지 않을까?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시 올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광동성의 진미를 기대하지요.”
“그러하시다니 어쩔 수 없군요.”
소가주는 잠시 이소군에게 눈길을 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대인은 남이지만, 남 같지 않으니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힘껏 돕겠습니다.”
남이지만, 남 같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이소군과 확실히 선을 긋되, 사적으로는 가족의 연을 이용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의향을 비친 것이다.
“사양 않겠습니다. 폐하께서 배를 하사하신 후에는 자주 신세를 지게 될 것 같군요.”
“신세라니요. 영광입니다. 하하.”
갈등, 화해, 협력으로 이어지는 정석적인 시나리오다.
내가 일방적으로 득을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식이 아닌 이상 전부 Give & Take를 기본으로 한다.
당연히 나도 그만한 대가를 제시해야 협력이 지속할 수 있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건 권력자와의 끈.
부정 청탁을 받아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법과 대화보다 권력과 권한이 옳고 그름을 정하는 시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높은 분께 호소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권한이다.
그래서 ‘영락제가 준 배’를 언급했고, 허가장의 소가주도 영광이라 답한 것이다.
그로서도 적당히 투자해보기에 상당히 괜찮은 거래처다.
이소군이라는 요소까지 들어가면 보통 거래처보다 훨씬 끈끈한 유대 관계도 맺을 수 있을 테니.
“선자불래, 내자불선. 불가의 말씀이 꼭 옳은 건 아닌 것 같군요.”
“가끔은 선한 자도 찾아와 줘야 주인으로서도 빈객을 대접하는 맛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서로의 본심을 뻔히 다 알지만, 모르는 척 손을 잡았다.
그것이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니까.
***
허가장에서의 만남을 뒤로하고 대보선으로 돌아왔다.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제독. 벌써 오셨습니까?”
배 위에는 이미 정화가 있었다.
그의 권세를 생각하면 광주의 관리나 유력자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준비할 게 많아서 말이야.”
“아랫사람을 시키지 않으시고 직접 하십니까?”
“이런 대규모 원정은 다들 처음 겪는 일. 사소한 일일지라도 권한 있는 사람이 미리 조율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네.”
정화를 처음 봤을 때는 그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 무서운 황제가 총애를 넘어 신뢰하는 사람이니까.
이제는 영락제가 부럽다.
언젠가 나도 이렇게 훌륭한 부하를 거느릴 수 있을까?
“더욱이 군인과 뱃사람이 함께하지 않는가. 생리가 전혀 다른 두 계통의, 그것도 스스로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춘 인재들만 모였네. 분란이 없을 수가 없지.”
“제독의 혜안에 감탄할 뿐입니다.”
“아첨은 됐네. 그보다 자네는 왜 이리 일찍 왔는가.”
“광주에서 기이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혹여 해적왕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대원정에 장애물이 셋 있네. 하나는 바다와 날씨고, 둘은 남만의 혼란이고, 셋은 진조의와 왜구지.”
당연히 알고 있었구나.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하긴 했다.
“너무 걱정하진 말게. 그 정도로 세력을 일군 간웅이라면 전세를 가늠하는 눈이 있을 터. 감히 원정대에 달려들지는 못할 걸세.”
당연하다.
이쪽은 병력이 세 배고, 군대는 정예병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함선만 하더라도 이쪽이 훨씬 더 우위일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만 일어났다면 역사가 역동적이진 않았겠지.
“자고로 도적이라는 것들은 먼 미래보다 눈앞의 이익에 달려드는 법이지 않습니까.”
“대비는 할 걸세. 하지만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낭비하기엔 젊음이 너무 아깝지 않나.”
고민은 하되, 걱정은 하지 마라.
현대의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내용이다.
“그런데 자네가 일찍 돌아온 것과 진조의와 무슨 상관인가. 자네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텐데?”
“대포를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대포를?”
“조선도 화포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려말 최무선이라는 무신이 개량에 성공하여 왜구를 토벌하였지요.”
“그건 아네. 애초에 화약을 만들 때 쓰는 유황을 대국에서 보내주지 않는가.”
······그랬어?
역사 덕후 친구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했다고 했는데.
“조정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더군. 조선이 화포를 너무 선호해서 우려된다고.”
포방부의 전통이 조선에서부터······.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조선에서는 유황도, 염초도 구하기 힘듭니다.”
유황은 조선 중기나 후기에 발견된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유황 광산이 있는지는 기억 안 난다.
염초도 그렇다.
중국이야 양질의 질산칼륨 광산이 있는데, 조선에는 없어서 직접 만들어 써야 했다.
그래서 킹방원께서는 염초 밭을 만들라고 명을 내렸는데, 장마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다고 들었다.
염초를 만드는 데 1~2년이 걸린다나.
덕분에 이것도 명나라에서 수입하는 판국이다.
“대국에서 유황과 염초의 공급을 조절할 수 있으며, 조선에서는 화약 무기를 대부분 왜구 토벌에서 쓰는바. 심려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지. 알고 있고말고. 하지만 지나치게 좋아한단 말이야.”
그건 인정.
신기하게도 조선 왕실뿐만 아니라 신하들도 화력 뽕에 심취해 있단 말이지.
도성 내에 어떤 집에 귀신들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떤 정승은 ‘그럼 대포를 쏴서 날려버리죠.’라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킹방원 전하는 기각했다.
“그래서 보선의 함포를 보니 어떠한가.”
“자세한 건 포격 장면을 봐야 알겠지만, 위력이 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하다?”
“땅에서는 성벽을 부수는 용도이니 당연히 위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야지요. 하지만 성벽과 비교하면 함선은 무척 연약합니다.”
더욱이 해적들이 쓰는 함선이야 고만고만할 텐데 말이다.
차라리 위력을 줄이고 사거리를 높이는 게 훨씬 효율적일 터.
“게다가 함포가 갑판에 배치되어 있군요. 보선처럼 선체가 높은 배에서 함포를 일제 사격할 경우 배가 넘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반대로 선체 중간이나 아래에서 쏜다면, 그 충격을 물이 받아주어 안정적으로 쏠 수 있다.
“자네가 선상 포격을 아는가?”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한 듯했다.
“아······ 예. 왜구를 무찌르는 장군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묻겠네. 이 함포들은 전부 청동으로 만들었지. 왜 그러한가?”
“바닷바람이 철을 녹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동은 철보다 빨리 녹으니 제작이 더 쉽습니다.”
“그리고?”
그밖에도 장점이 있나?
일단 가격은 청동이 더 비싸다.
특히 조선 같은 경우 구리가 나지 않고, 쓸데는 많아서 나라 전체에서 구리 소비를 억제할 정도다.
이를 명분으로 숭유억불 정책에 이용하기도 한다.
절에서 금강저나 금강령 같은 불교용품이나 사찰의 상징인 종을 제작할 때도 구리나 청동으로 만들려고 하면 관리를 보내어 게거품을 물고 난리를 칠 정도로.
“아직 가장 중요한 점을 말하지 않았네.”
“내구성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시대는 강철과 주철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들었다.
밀도도 일정하지 않고, 중간에 기포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런 불량 대포를 쐈다가는 자칫 폭발하여 오히려 아군에게 대참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들었다.
“청동이 철보다 더 무르지 않나. 그런데 내구성 때문에 청동 대포를 사용한다? 말이 되지 않지.”
“내구성이라는 게 튼튼하냐만을 따지지는 않습니다. 얼마만큼 버틸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내구성이 아니라 신뢰성이지만, 여기서는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하하하. 그렇지.”
그제야 정화는 미소를 지었다.
“철은 튼튼하기에 징조가 보이지 않아. 반면 청동 대포는 약한 부분이 부풀어 오르기에 위험한 상태라는 걸 미리 알 수 있지.”
후우······.
아는 척했다가 큰일 날뻔했네.
겨우 시험에 통과했다.
역시 옛날 사람이 바보라서 그렇게 했던 게 아니라,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럼 대포를 어떻게 개량해야 해전에서 쓸모가 있을까?”
“송구하오나 지금 대포를 개량하기엔 시간이 촉박하지 않겠습니까.”
“원정은 이번이 끝이 아닐세. 다음을 생각한다면 미리 폐하께 고해두는 것도 좋겠지.”
원정은 이번이 끝이 아닐지라도, 내 목숨은 이번이 끝일 수 있는데.
“일단은 대포의 크기를 줄이고, 대신 포신을 더 길게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
대포 개량 방법은 안다.
지금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첫째는 강선을 넣는 것.
둘째는 대포의 겉관을 청동, 속관을 주철로 하는 것.
셋째는 전장식이 아니라 후장식으로 구조를 바꾸는 것.
현재 중, 고등학생 나이일 장영실을 영재 교육한다면 더 대단한 것도 만들어내지 않을까?
아마도 부산 관아의 노비일 테니 킹방원 전하께 샤바샤바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고.
문제는 이걸 명나라에 알려주면 안 된다는 거지.
영락제가 힘을 길러서 조선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해.
명분도 생긴다.
감히 엄청난 위력의 대포를 개발한 뒤 대국에게 알리지 않았다.
여러모로 최악이다.
그렇다고 화약을 개량하자니 내가 화학 쪽 지식이 없다.
고등학교 수준의 기초지식은 있지만 말이다.
애초에 내가 화학적 지식이 풍부했으면 질산암모늄을 개발해서 식량 생산량을 엄청나게 늘려놨겠지.
남은 건 포탄인데······.
응? 포탄?
“혹시 포탄을 볼 수 있겠습니까?”
정화는 대포 옆에 있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
“여기 있네.”
“서, 석탄이군요.”
사석포다.
둥그렇게 깎은 돌을 포탄으로 쏘는 대포.
지금의 대포는 구조가 단순해서 아무거나 대충 때려놓고 쏴도 위력이 나온다.
돈 아깝게 포탄을 굳이 철로 만들 필요는 없을 테지.
게다가 돌은 철과 비교해 내구성이 약한 만큼 목표물에 부딪힐 때 돌이 부서지면서 샷건 효과도 낸다고 하니, 지금은 오히려 석탄이 더 유용한 면이 많다.
“당연히 돌을 쓰지. 한 번 쏘면 끝인 포탄까지 철로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정화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자네에겐 당연하지 않나?”
생각해보자.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보선도 대포를 쏘는 걸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함선의 역할은 대포를 쏘는 것뿐이 아니다.
대포를 맞는 것 역시도 함선의 역할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금 시대의 선박 대부분은 대포를 맞는 걸 대비하지 않았겠지.
이 점을 고려한다면 포탄을 개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낼 수 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당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하. 그런가. 대단한 자신감이군. 사내라면 응당 그래야지.”
정화는 미묘한 웃음을 유지한 채 나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배 한 척을 빌려줄 터이니, 원정 동안 그 배를 지휘해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