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52
251화 무수한 악수의 요청 (1)
알렉산드리아 총독에게 경고를 날린 후 우리는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다.
기함인 대보선이 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오스만은 상당히 강력한 나라긴 하지만, 조선술은 후진국이다.
오스만의 군함이 베네치아의 상선도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다.
이 시대 상선은 무장상선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쪽으로 가자니 베네치아에 습격받을 위험이 있고, 포르투갈로 가자니 도중에 침몰할 위험이 있어서 콘스탄티노플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지중해 바다는 잔잔한 편이지만, 바람이 불규칙하고 변수가 많아서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다행히 콘스탄티노플 항구에 기항할 때까진 바다가 얌전한 편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석피가 물었다.
“뭐가?”
“맘루크 술탄국의 모든 항구를 다 불태운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항구도 삼 분지일밖에 태우지 않았습니다.”
“하아…….”
이게 참 그렇다.
설렁한 사람이 독하게 마음먹었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
‘스즈키네는 무기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는 곡식을 재배해서 맘루크를 키운다. 그러니 우리는 무장한 적군하고만 싸우는 게 아니다.’
라는 식의 논리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하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만약 프랑스 항구를 태워야 했다면, ‘이것은 병인양요의 복수다!’라고 자기합리화했을 텐데.
그래도 얼마든지 더 태울 수 있다는 힘도 보여줬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만하면 됐다.
나머지는 반응 보고 결정하자.
“전하.”
“음?”
콘스탄티노플, 소피아의 궁전에 있는 내 방에서 쉬고 있는데 이소군이 들어왔다.
우리가 전투하러 간 사이, 이소군은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다.
언제나처럼 치료 준비를 하고서.
본래는 이즈미르 항구에 머물려고 했는데, 소피아가 오스만에 머무는 것은 불안해하기에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것이다.
이즈미르 항구가 오스만 내전에 가장 중요한 전장 중 하나였던 곳이라는 점도 꺼림칙하긴 했다.
“대보선 수리에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확실히 느낀다.
내 동료들이 내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걸.
어떤 말이든 ‘조금’이나 ‘좀’을 붙이는 건 한국인 특유의 말버릇이니까.
“설마 용골에 손상이 갔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혹시 아십니까. 골든 혼 건너편에는 제노바의 식민지가 있다는 것을요.”
“설마 제노바가 베네치아의 복수를 하겠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현대에서야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두 도시지만, 지금은 지중해를 양분하는 해상 세력이다.
그것도 지난 100년간 무려 4차례의 큰 전쟁을 했을 정도로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였다.
“반대입니다. 제노바에서 수리비를 전액 지원하고, 숙련된 조선공을 지원해주고 싶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제노바가 왜?”
“아마도 대보선을 수리하면서 기술을 훔치려는 듯 보입니다.”
“아~”
이해한다.
다른 건 몰라도 대양을 건너온 배, 그리고 지중해에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범선이라는 점은 해상 강국인 제노바에도 매우 매력적일 테니까.
참고로 진극.
서양말로 정크선은 아편 전쟁의 삽질로 인해 ‘쓰레기 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의외로 연안 항해와 대양 항해가 모두 가능한 만능 배다.
단점이라면 전투에 매우 약하다는 정도.
실제로 정크선으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기록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이 좋은 기술을 스스로 말소했다는 것이겠지.
원 역사에서는 사대부들이 정화의 원정 기록을 지우고, 다시 해금령을 내려서 바다와 관련된 사람들을 탄압하니까.
청나라로 가면 한술 더 뜬다.
초기에는 정성공이 세운 남명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천계령까지 내릴 정도다.
천계령은 해안가의 백성을 내륙으로 이주시키고, 바다에 널빤지 하나라도 띄우면 처형한다는 명령이다.
이 탓에 유럽이 계속 발전하는 동안, 중국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계속 쇠퇴했다.
바다판 문화대혁명이다.
“우리끼리는 수리하기 어렵나?”
선원 중에서는 당연히 조선술을 알고 있는 이도 있다.
만일의 사태 때 배를 수리해야 하니까.
“나무가 달라서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야…….”
“그러자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장인이 사위를 도와주는 데, 외부인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어라?”
“오스만에서도 형제의 나라에 꼭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합니다.”
이래서 사람이 잘나가야 한다.
잘나가니까 이렇게나 다들 잘 도와주잖아.
만약 우리가 개털이었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6·25전쟁.
“어…….”
튀르키예. 참전국.
그리스. 참전국.
이탈리아는…… 의료 지원국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다 받아줘.”
“예?”
“괜찮아.”
수리한다고 해서 베낄 수 있는 기술이면, 어차피 금방 퍼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조선과 대포에 한해서는 유럽 쪽 기술도 만만치 않다.
엄청난 우열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보다 부상자들은 어때?”
“치료는 마쳤습니다. 상처를 깨끗이 하고, 신약을 사용했습니다.”
신약이란 페니실린을 말하는 것이다.
페니실린이라고 표현했지만, 진짜 페니실린인지는 모르겠다.
오렌지류 과일에서 곰팡이를 배양하고, 굉장히 배율이 낮은 현미경으로 항생제로 추측되는 부분만 따로 떼어내서 만든 거니까.
일단 쥐에 실험했을 때는 괜찮았는데, 실제로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괜히 곰팡이에 오염되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
“후우…….”
“왜 그러십니까?”
“상녕공주는 살아있을까 싶어서.”
영락제의 다섯 번째 공주.
정실인 인효문황후의 소생은 아닌데, 공주의 직위를 받은 이례적인 케이스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건강하지 않았습니까.”
“건강…… 하다고 하기는 어렵지. 게다가 대만이 요양하기엔 별로 좋은 환경은 아니잖아.”
오히려 병균이 잘 자라기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덥고, 습하고.
한반도도 덥고 습하지만, 대만은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런 곳으로 요양으로 보낸 영락제의 머리가 의심스럽다.
어차피 죽을 딸이니 명분 만들기로 쓰려는 건가 싶기도 했고.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공주의 목숨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 후폭풍을 걱정하는 거지.”
공주를 죽였다는 명분으로 쳐들어올까 봐.
그나마 다행인 건 영락제가 몽골로 친정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
적어도 내가 대만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괜찮을 것이다.
“이제 슬슬 그 대책도 제대로 세워야겠네.”
아무 일 없다면 다행이지만, 대비는 항상 미리 해둬야 하는 거니까.
***
이번 전쟁만 끝나면 대만으로 귀국하려고 했는데.
대보선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는 미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값지게 쓸 것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왔다.
유럽에서는 파티가 참 많이 열린다.
이게 귀족들의 사치를 나타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니 달랐다.
유럽은 파티는 경제를 순환하는 역할을 한다.
마치 조선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잔치를 열어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으로 선물 경제를 구축한 것과 비슷하다.
왜 다들 향신료에 목매는지 알 것 같다.
파티에서 향신료는 부와 권세를 보여주는 장치니까.
이러한 이유로 다 망해가는 비잔틴 제국에서도 자주 파티가 열렸다.
영화에서 보던 절대 왕정 시대의 화려한 파티는 아니지만 말이다.
배를 수리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머물 때도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쫄딱 망해서 관심도 없던 비잔틴 제국의 파티에 곳곳에서 사람을 보냈기 때문이다.
오스만이나 세르비아, 헝가리 등 가까운 나라는 물론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포르투갈이나 잉글랜드에서까지 참여했다.
“하하하! 승전 축하드립니다!”
딱히 승전 파티는 아니다.
애초에 베네치아의 힘이 빠지면 곤란한 건 비잔틴 제국이니까.
나를 위한 연회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오만한 베네치아 놈들이 한 방에 쓸렸다는 소문을 듣고,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개중에서 가장 승전을 축하하고, 기뻐한 나라는 다름 아닌 제노바 공화국.
지금 제노바와 베네치아는 지중해 곳곳에 식민지와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박 터지게 경쟁하는 사이다.
“저…… 그런데…….”
“음?”
“혹시 지중해에서 동맹이 더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동맹?”
“느끼셨다시피 지중해에는 온갖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곳입니다. 그 탓에 기독교 국가가 이슬람 국가를 돕는 일도 생기지요.”
“그런 것 같긴 하다만, 그게 동맹과 무슨 상관인가?”
“만약 성인 예하께서 우리 공화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지중해에서 활동하실 때 매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제노바와 동맹이라.
이번 일이 없다고 해도 나는 제노바를 굉장히 좋아한다.
전생에 내가 항해사로 일할 때 최종 기항지였으니까.
마치 제2의 고향 같다고나 할까.
부유한 도시라 그런지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고, 친절해서 무척 좋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것도 다 추억이지.
추억…….
잠깐만.
기억을 더듬다 보니까 제노바 사람들에게 당했던 기억도 생각나는데?
에스프레소가 너무 써서, 물을 타서 아메리카노로 만들었더니, 가게 안에 아저씨들이 엄청나게 화를 내며 뭐라 뭐라 했고.
스파게티가 너무 짜서, 단맛으로 중화하고자 케첩을 뿌렸더니, 사장이 ‘당장 내 식당에서 나가!’라고 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이 시대 이탈리아에는 커피도, 케첩도 없기는 하지만 갑자기 기분 나빠졌다.
참고로 케첩은 놀랍게도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의 굴 소스 같은 액젓이 동남아시아로 전파되고, 동남아시아에서 영국과 미국으로 넘어가 케첩이 되었다나.
“동맹을 원한다는 건 나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겠지?”
안 좋은 추억 덕에 냉정해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향신료나 동방의 무역품을 제노바에도 할당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럽에 오시면 저희가 포르투갈까지 곧바로 가겠습니다.”
이거였네.
뜬금없이 콘스탄티노플까지 부리나케 달려온 이유가.
이 시대 향신료는 유럽의 부와 패권을 좌우할 힘이 있고, 사실상 그 거래를 독점하던 맘루크의 바다가 막혔으니까.
이는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연합한다고 해도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나로서는 지중해에서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으면, 인도양에서 길을 막아도 되는 일이니까.
그래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곧바로 움직인 점은 높게 평가할 만했다.
역시 훌륭한 상인의 반응 속도는 범인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글쎄 동맹이라…….”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게 별다른 메리트는 없어 보인다만.”
“왜 없겠습니까?”
“이번엔 말 그대로 선발대에 불과해. 다음에는 훨씬 더 많은 배를 끌고 올 수 있지. 그다음에는 더 많이 올 테고. 그쯤 되면 굳이 나를 건드릴 나라가 있을까 싶네.”
“해군력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노바는 지중해의 예금과 환전을 담당합니다. 예하께서 큰일을 하고자 하신다면, 제노바의 자금과 돈을 다루는 능력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 들어봤다.
제노바가 지중해 금융 허브라고.
스페인이 제국을 건설해서 잘나갈 때도, 돈을 번 건 제노바의 은행가들이었다.
스페인이 빚이 없어지는 마술을 보여준다고 대부업을 담당하던 유대인들을 다 쫓아내면서 금융업이 쫄딱 망했거든.
제노바는 그 틈을 잘 파고들었고.
괜찮네.
라고 생각한 순간 다른 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예하께서는 딱히 자금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전에 한 번 봤던 사람이다.
나폴리 왕국의 왕 라디슬라오.
그의 누나인 조반나가 보낸 어용 상인이라고 했던가?
이름은…….
기억 안 난다.
금욕주의가 퍼진 중세 유럽에서 노골적인 미인계를 썼는지라 풍만한 가슴골만 기억난다.
“예하. 이번에 돌아가실 때는 나폴리 왕국을 꼭 들러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그리고 전에 애원하듯이 말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매우 당당하게 말했다.
“매우 좋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