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57
256화 그 나라 (1)
“그게 무슨 소리인지…….”
동양인에게 로마의 황제를?
중국 황제를 백인에게 맡기는 것만큼이나 이상하다.
정식으로 인정된 건 아니지만, 일제가 패망한 후 맥아더 장군이 푸른 눈의 쇼군이라 불렸고, 백인 중에 몽골의 대칸이 된 사람이 있었다고 하기는 하지만.
떠보는 건가 싶었는데, 마누일 2세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진심일세.”
“나는 로마는커녕 유럽에서도 외부인입니다.”
“오스만에게 강탈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아…….
이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오스만 술탄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다.
그리고 자신의 칭호를 술탄에서 카이세리 롬으로 바꾸었다.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 로마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오스만 술탄국은 오스만 제국이 된다.
그쯤 되면 오스만도 제국이라 부를 수 있는 영토와 국력을 갖췄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잔틴 제국에게 제위를 찬탈했다는 이미지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대가 외부인이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네. 혹시 로마의 건국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로 알고 있습니다.”
“그 형제의 어머니가 누군지 알고 있소?”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모글리처럼.
이게 가능한가 싶기는 하지만,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보다는 그럴듯하지 않나 싶다.
“그렇소. 암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지. 그리고 리비우스의 에 따르면 당시 로마에서는 매춘부를 암늑대(Lupa)라는 은어로 불렀다고 하지.”
엄…….
리비우스의 는 사놓기는 했는데 바빠서 보지는 못했다.
그런 내용이 있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동로마는 어떠한가. 동로마의 기틀을 잡고, 정체성을 세운 군주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였소. 그는 빈농 출신이오.”
“예. 그건 들었습니다. 현명한 황후 테오도라에 대해서도 들었지요.”
테오도라는 총명하고 정치력이 탁월한 여인이지만, 술집의 댄서이자 매춘부 출신이라 알려져 있다.
“이렇듯 로마는 매춘부든, 매춘부의 자식이든, 빈농이든 능력만 있다면 황제가 될 수 있는 나라였소. 그렇기에 번성했고, 이를 막는 순간 쇠퇴했지.”
“그것 때문에 쇠퇴했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로마의 가장 큰 장점인 관대함과 포용성, 그리고 상대의 장점을 배우려는 자세를 잃어버리면서 쇠퇴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외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특히 전생에 단일민족, 단일문화 국가인 한국에서 살다가 외국을 나가게 되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한국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딱 하나만 안다.
그래서 그 하나를 얻기 위해 전 국민이 목숨 걸고 경쟁한다.
그 결과 소수의 행복한 사람과 다수의 패배자가 양산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다민족, 다문화 국가가 되어야 하느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문화 충돌이나 범죄, 혐오, 갈등에 소비되는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기다릴 테니까.
“하지만 그대를 겪어보니 참으로 큰 충격이었소. 생각이 너무나도 혁신적이고 자유롭지만, 기존의 상식이나 문화와 그리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마누일 2세는 인자하게 웃었다.
“그대는 내 짧은 식견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대단한 인재이자 위대한 군주요.”
나를 엄청난 인재라 알아보는 걸 보면, 마누일 2세도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위인인 모양이다.
시대와 환경만 받쳐주었다면 마누일 2세도 꽤 날개를 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척 궁금했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와야 그대와 같은 사상과 자질을 갖게 되는가.”
나는 이유를 안다.
환생했으니까.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마누일 2세가 이 사실을 알 리는 없을 테고, 어떤 이유를 말할지 궁금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바다에는 성을 쌓을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소.”
“네?”
“에는 이런 구절이 있소. 로마의 멸망은 성을 쌓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 성이란 ‘소통의 벽’을 뜻하는 은유요.”
현대의 단어로 바꾸면 ‘갈라파고스화’ 정도가 될 것 같다.
“이걸 보시오. 천년 간 로마의 심장을 지켜온 저 강력한 성벽을 보시오. 보기만 해도 소통을 거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소이까?”
궁전에서 보자니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이 만리장성처럼 보이기는 하네.
“하지만 그대가 왔소. 거대한 파도를 타고, 성안에 고여있던 물을 쓸어내기 시작했소. 그때, 나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직감했소.”
“…….”
“다시 권유하겠소. 내가 죽거든 그대가 로마의 황제가 되어 주시오. 어차피 뺏길 거라면, 차라리 가치 있는 곳에 기증하는 게 낫겠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거절하자니 아깝기는 하고.
받자니 긁어 부스럼 같은 느낌만 드는데.
“만약 내가 로마의 황제가 된다면…….”
차분히 고민했고.
“로마의 제위를 정당한 주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신중하게 대답했다.
“정당한 주인이 누구요?”
“시민입니다.”
로마의 번영은 공화정에서 시작되었고.
건강한 시민이 권력을 견제했기에 번성할 수 있었다.
나는.
역사상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정치 체제 중 ‘그나마 나은’ 자유 민주주의의 신봉자다.
“그런데도 나에게 제위를 넘겨주겠습니까?”
***
길었던 동지중해 항해를 끝내고 다시 포르투갈로 향했다.
이제 마지막 정비를 하고 귀국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유럽에 더 있고 싶기는 했다.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했고.
하지만 선원들에게서 향수병 증상이 점점 심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더 지체했다가는 항해에 지장이 생길 것 같다.
대양 항해는 쉬운 게 아니니까.
익숙해질 때까지는 최대한 조심하는 게 낫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석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소피아 공주님을 콘스탄티노플에 두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녀의 의지야.”
처음 만났을 땐, 새장 같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꺼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할 일이 생기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회중시계를 개발하는 것 외에도, 내가 없는 사이 비잔틴 제국에 내 영향력을 퍼뜨리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니까.
“그보다 사샤는 어때?”
메흐메트 술탄이 내게 선물한 슬라브족 노예.
“아직까진 별 반응이 없습니다. 조용히 할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혹시 이상한 낌새는 못 느꼈어? 춘자는 뭐라고 안 해?”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춘자가 말하길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이소군이 경계하기에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메흐메트가 보낸 첩자나 암살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각 하니만큼은 기가 막힌 석피나 춘자가 괜찮다고 하는 걸 보면, 진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질투…… 는 아니겠지.
오히려 나에게 더 아내를 들이라고 해서 곤란할 정도니까.
“근데 예쁘기는 정말 예쁘더군요.”
“네 눈으로 봐도 그러냐?”
“우리끼리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봤던 모든 여성 중에서 제일 아름답습니다.”
슬라브족 여성은 이 시대 관점으로 봐도 미녀다.
눈처럼 흰 피부에, 금발벽안이 많고, 팔다리가 길쭉해서 미의 기준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는 백인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미디어의 세뇌 때문이라고 하던데.
현재 오스만에서도 백인 노예는 유색 인종 노예보다 몇 배의 가격을 받는 걸 보면 꼭 그러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사람의 감정은 잘 안 믿지만, 가격의 냉정함은 잘 믿는 편이거든.
문제는 모스크바 대공국은 그리 강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바로 옆에는 약탈로 유명한 나라가 있다는 것.
백성들이 수없이 약탈당하고 노예로 잡혀간다.
덕분에 ‘슬라브’가 노예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였다.
이게 슬레이브의 어원이 되는 모양이다.
“그럼, 네가 유혹해 볼래? 사샤의 동의만 얻는다면 뭐라고 안 할게.”
석피라면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사양하겠습니다. 가정이 평화로워야 만사가 잘 풀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는데 아내에게 소박맞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하하. 네가 어지간한 유학자보다 훨씬 낫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나도 그게 걱정이니까.
시대가 시대다 보니 심각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운 나쁘면 자는 도중에 머리와 몸이 사맛디 아니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혹시 이대로 브리스톨로 가는 겁니까?”
“아룬델 백작 부인.”
베아트리스다.
이복동생인 엔히크 왕자와 함께 있기 위해…… 라는 명분으로 내 배에 탔다.
속셈은 뻔히 보였지만, 내 배에는 여성 선원이 많으므로 아무래도 더 편하겠지 싶어서 허락했다.
“아닙니다. 하모니아에 갔다가 리스본을 들러 보급한 후 곧바로 귀국할 생각입니다.”
“…….”
“잉글랜드에는 다음 항해 때 꼭 가겠습니다. 이제는 무역품도 거의 다 처분한지라 팔 것도 없군요.”
동방에서 가져온 무역품은 다 처분했다.
오우. 정말 짭짤하더라.
왜 대항해시대 때 기를 쓰고 신항로를 개척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크게 벌었다고 해서 탱자탱자 놀면 부자가 못 되는 법.
포르투갈에서는 특산품을 사서 오스만과 비잔틴에 팔고, 비잔틴과 오스만에서는 다시 특산품을 사서 돌아가는 중이다.
“잉글랜드에도 훌륭한 상품이 많습니다. 그걸 동방으로 가져가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뭐가 있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모직물이군요. 잉글랜드에서 자랑하는 명품입니다.”
“이쪽에서 모직물은 그리 인기가 없을 겁니다. 더운 나라가 무척 많고, 추운 곳은…… 사치를 매우 경계하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모직물을 살 만한 재력이 없다.
그나마 가능성 있다면 명나라에서 북경으로 천도한 후에 황실에 납품하는 것.
북경은 상당히 춥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선물용 외에는 수요가 매우 적을 것 같다.
“그러면…….”
베아트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시대에는 영국의 특산품이라고 할만한 게 거의 없을 테니까.
영국에서 팔 정도면, 포르투갈에서도 팔거든.
“위스키는 어떻습니까? 더블린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술인데, 맛이 좋고 숙취가 없어 상당히 좋은 술로 여겨집니다.”
“더블린이요? 스코틀랜드가 아니었습니까?”
위스키 하면 스코틀랜드잖아.
스카치위스키.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만…… 아일랜드에서조차 5년 전에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아…….”
처음 알았네.
위스키의 원조가 아일랜드였구나.
아이리시 위스키라고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더블린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는 런던과 브리스톨에 납품됩니다. 또, 브리스톨에서 여러 상품을 보다 보면 예하의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민되긴 한다.
마지막으로 잉글랜드도 가볼까?
궁금하긴 하잖아.
대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치면 세계사의 원흉…… 이 아니라, 대영제국이 될 수 있을까.
“잉글랜드의 왕이 헨리 4세였죠?”
“네. 그렇습니다.”
고대 영국사는 잘 모르지만, 이 시기 잉글랜드 왕국의 역사는 꿀잼 그 자체다.
멀리서 봤을 때 그렇다는 거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그 자체겠지.
먼저 선왕은 리처드 2세다.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그 유명한 흑태자 에드워드의 차남이다.
이때 농노제 폐지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 와트 타일러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고.
하지만 그는 공포 정치를 펼쳤고, 이에 반발한 삼촌이 반란을 일으켜 리처드 2세와 그 직계를 멸문한다.
그 삼촌이 바로 현재 잉글랜드 왕인 헨리 4세다.
그 탓에 헨리 4세는 찬탈자라 불리며,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상태다.
원 역사에서 보면, 헨리 4세는 의심병이 많아 유능한 아들마저 의심하고 견제했다고 한다.
아마도 왕위가 매우 불안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권력자의 의심병은 고질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찬탈자의 경우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수양대군도 대범한 척했지만,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그 속내를 훤하게 드러냈을 정도니,
개인적으로는 헨리 4세에는 별로 관심 없다.
하지만 유능한 왕자이자, 다음 대 잉글랜드 왕이 궁금하긴 했다.
헨리 5세.
백년 전쟁의 백미 중 하나인 아쟁쿠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
하지만 잔혹하고 무자비한 포로 대우로 인해, 백년 전쟁이 결국 잉글랜드의 패배로 끝나게 된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 탓에 구국의 성녀 잔 다르크와는 여러모로 대비 되고.
개인적으로는 중국사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이지만, 장평대전에서 45만 포로를 생매장하는 대학살을 일으킨 백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지요.”
“정말입니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현 잉글랜드의 왕 헨리 4세는 병상에서 힘든 상태라 들었습니다. 따라서 다음 대 잉글랜드 왕이 될 왕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찐막이다.
헨리 5세를 도와 아쟁쿠르 전투에서 꿀을 빨고.
‘아~ 잉글랜드는 너무 잔인해서 안 되겠어~’
라는 명분으로 나중에 잔 다르크를 도와 프랑스에서 꿀을 빨기 위한 밑작업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