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76
275화 당동벌이 (5)
순조롭게 제물포에 기항했다.
제물포는 보선이 어떤 배인지 잘 알고 있기에 특별히 놀라거나 제지하지는 않았다.
제물포의 관리도 나를 보고 놀라기는 했으나, 사정을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빌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파발마를 한양으로 보냈다.
“우리는 천천히 가자. 저쪽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니까.”
“예!”
어차피 빨리 간다고 해도 파발마보다 빠를 수는 없다.
이쪽은 배당금이나 선물 등 여러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까.
“조선이 그리 강력한 나라입니까?”
헨리 왕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물었다.
“산수는 아름답습니다만, 도로도 정비되어 있지 않고, 항구도 그리 발전해 보이지 않습니다만.”
“고요한 새벽의 나라는 전쟁 기술을 통달하고,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마스터들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전쟁터에 생각 없이 발을 들이지 마십시오.”
“네?”
“아니야.”
게임으로 전쟁을 했다면 아마 세계를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선의 수군은 남쪽에, 정예병과 기병은 북쪽에 있어. 수도를 지키는 군대는 조금 더 가야 나오고.”
헨리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항구와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게 상당한 마이너스로 작용한 것 같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조선이 보유한 군대는 20만이다. 지금은 상당한 정예지.”
“지금은…… 입니까?”
“음.”
문종 때까지는 꽤 강군이었다고 하는데.
세조 때 이시애의 난으로 정예병이 한번 갈리고, 임진왜란 전까지 지속해서 군비를 축소하면서 급격히 약해진다.
그나마 수군은 왜구, 기병은 여진족과 싸우느라 나름 강력했지만, 보병은 한없이 약해졌다고 들었다.
그 절정이 바로 용인 전투.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천도 안되는 일본군에게 5만 이상의 조선군이 대패했다고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지금은 강력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 전략일세.”
“전략?”
“20만 대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엄청난 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게 진짜일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이다. 하지만 옆 나라는 50만 대군을 원정 보내는 나라지. 지금 떠나 있어. 한때는 빈 근처까지 왔던 몽골의 잔당을 완전히 박살 내기 위해서.”
“지옥에서 왔다는 그 군대가 이 근처에 있단 말입니까?”
“북서쪽으로 조금 가면 몽골의 본진이 나와.”
“오호.”
군대 이야기가 나오자 헨리 왕자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호승심이 들끓는 모양이었다.
“국가 전략이란 무엇입니까?”
“조선은 수천 년 동안 외침에 시달렸어. 과장이 아니라 한때는 진짜 100만 대군의 침략을 받은 적도 있으니까. 그 뒤로도 수십만 대군의 공격을 받은 적도 많다.”
몽골이나 거란, 여진족의 침입은 숫자는 적다.
하지만 전원 전투병이자 기병으로 이루어진 군대.
실질적인 전투력으로 치면 수십만 대군과 같다.
“그래서 조선 왕조에 이르러서는 국가 전략을 수정했어. 맞서 싸우기만 하면 너무 피해가 크다. 그러니…….”
“압니다. 무슨 말씀인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래서 나와 조선의 왕은 한 가지 이상을 공유했다.”
육로로 뻗어 나가지 못한다면, 바다로 뻗어 나가자고.
아마도 이것이.
한반도 국가가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조선은 담장을 쌓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이후에 찾아올 미래는 원 역사와 비슷하겠지.
“왕과 왕이 생각이 통했다면 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아. 잉글랜드도 그렇듯, 나라가 왕의 뜻대로만 굴러가는 건 아니니까.”
잉글랜드와는 달리 조선은 중앙집권이 되어있다.
하지만 그 권력은 왕에게 집중된 것이 아니라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따라서 아무리 킬방원이 원한다고 해도 안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조선은 명나라의 대월 정벌과 북벌로 인해 겁을 크게 집어 먹은 상태니까.
조선이 전쟁터가 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져있다.
“미국의 심정이 이해가 되네.”
“예?”
“아니다.”
더는 말하지 않았다.
킬방원을 설득할 근거를 가다듬어야 하니까.
부디.
조선이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를 않기를 바랐다.
***
공식 방문은 아니기에 환대는 없었다.
우리 일행도 태평관이 아니라 내가 몇 년 전에 새로이 건축한 내 저택에서 머물렀고.
여기서 며칠 머무르다가 알현이 허락되면 킬방원과 만난다.
하지만.
밤이 되자 나는 약속한 것처럼 기방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킬방원이 있었다.
“기대는 했지만, 실제로 기다리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킬방원은 피식 웃었다.
“이 사람아. 여기는 조선이야. 그리고 나는 조선의 왕이고.”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이 자리에서 한 회담이 항상 선택의 방향을 바꾸곤 했다.
좌절도 했고.
성취감도 맛보았지.
이제는 그 결실을 확인할 때다.
“혹시 들으셨습니까?”
“천자가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소문이 꽤 빠르군요.”
“이쪽도 대륙의 정세에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니까.”
킬방원은 술을 들이켰다.
“알고 있었나?”
“천안문 말입니까?”
“아니.”
탁!
상 위에 내리치듯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았다.
“죽었다고 알려진 폐제가 살아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폐제.
폐위된 황제.
건문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남경 황궁에 있는 조선 사신에게 의문의 집단이 접촉했다. 네가 말한 천안문이라는 패거리지.”
“그렇습니까?”
비밀 조직처럼 굴더니.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면 뭘 어쩌자는 건지.
“그리고 조선 사신을 통해 내게 한 통의 서신을 보냈다. 뭐라 쓰여있을 것 같은가.”
“협력을 요청했습니까?”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하였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본래 조선은 명나라의 책봉을 받지 못했다.
홍무제가 의심이 많아서인지, 명나라가 주변 신생국을 길들이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책봉을 피했다.
현대로 치자면 UN에서 승인하지 않은 미승인 국가가 된 셈이다.
처음 정식으로 책봉을 하게 된 것은 건문제 때.
건문제도 바로 책봉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정난의 변이 일어나자 건문제는 조선에 군마를 요청했고, 조선에서 군마를 보내준 대가로 책봉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킬방원은 건문제가 확실히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군마를 보내되 일부러 병약하거나 하자 있는 군마만 보냈으니까.
결국 영락제가 승리하자, 킬방원은 잽싸게 갈아탔다.
그리고 건문제에게 받았던 인증을 돌려주면서 다시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영락제를 정당한 천자로 인정한다는 이야기.
정통성이 약했던 영락제는 기꺼워하며 다시 정식으로 책봉했고, 그렇게 킬방원과 영락제는 서로의 정통성을 보장해주며 우호 관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건문제에게는 치명적인 배신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조선이 건문제의 편을 확실하게 들었다면, 영락제는 건문제 참수 작전을 감행할 수 없었을 테니까.
북경의 후방에는 조선이 있거든.
“폐제가 보낸 것이 확실합니까?”
“틀림없다.”
“어찌 확신하십니까?”
“잃어버렸다고 알려진 대명전국지새. 그것이 찍혀 있었다.”
대명전국지새.
명나라의 국보 1호.
명나라 그 자체를 상징하는 옥새.
“조금 이상하군요.”
대명전국지새.
정확한 명칭은 황제봉천지보(皇帝奉天之寶)는 국새가 아니라 어보다.
국새는 실질적으로 직인을 찍는 도장이고, 어보는 의례나 행사 때 보여 주기용 보물이다.
즉, 대명전국지새는 도장이지만, 도장으로 쓰지 않는다.
“도장으로 쓰지 않는 대명전국지새를 어찌 알아본단 말입니까?”
“대명전국지새를 알아보진 못했지. ‘수명어천 기수영창’이라 쓰여있긴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마지막에 찍힌 인장. 그것은 분명 천자행보(天子行寶)였다.”
천자행보는 황제가 제후를 임명하거나 상을 내릴 때 사용하는 도장이다.
“본래라면 제후를 소집하는 천자신보(天子信寶)를 써야 하지 않습니까?”
“명은 조선에 천자신보가 찍힌 문서를 보낸 적이 없다.”
하지만 천자행보를 찍은 문서는 보낸 적은 있다.
처음으로 조선 국왕을 책봉할 때.
“네놈도 알겠다만,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낸 흔적까지 동일하게 만들기는 어렵지. 그것은 분명 폐제가 썼던 천자행보였다.”
“누군가 그것을 주워서 위조했을지도…….”
“이 사람아. 내가 대명전국지새를 갖고 있다고 해도 효용이 있겠느냐? 명나라 황족이 아니라면 그걸 써봐야 아무 의미 없다.”
그 말이 옳다.
정통성은 힘과 권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지, 어설픈 사람이 옥새를 쓰려고 했다간 꿀물 황제 원술 꼴이 된다.
실제로 야사에 의하면 고려는 전국옥새를 가졌던 적이 있다.
진시황이 만든 거 말고, 원나라 때 만들어진 전국옥새 mk2를.
홍건적이 원나라 수도를 함락하고 고려로 도망쳐왔다가, 고려가 이를 격퇴하고 잠시나마 보유했다.
원나라의 강력한 요청과 협박으로 인해 돌려주었다고 하지만.
그 옥새는 현재 북원에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번 북벌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북원 황제가 도망갈 때 마누라나 자식보다 옥새를 먼저 챙겼을 테니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그래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폐제는 현 황제를 상대할 그릇이 못 된다.”
“현 황제가 붕어했다면요?”
“그래. 그런 소문도 있지. 따라서 움직일 수 없다. 확실해질 때까지는.”
역시…….
전생의 대한민국이 생각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전략적 불투명성을 국가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거는 행위는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네놈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구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너같이 생각하는 이는 오랜 옛날에도, 얼마 전까지도 많았지. 연개소문이 그러했고, 정도전이 그러했으니까.”
“…….”
“분명히 말하지. 연개소문 같은 자가 한 번 더 나왔다가는 이 땅은 한족의 역사에 편입되었을 것이고, 정도전이 북벌을 감행했다면 대월보다 조선이 먼저 사라졌을 것이다.”
안다.
전생에도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좋습니까?”
나도 전쟁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바짝 웅크려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진정 맞는가.
그게 옳다고 치자.
보통 무릎을 꿇는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인데, 대체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당장은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놈들은 속이 좁아. 본토를 공격한 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
“돌궐, 거란 등 수많은 이민족이 그렇게 사라졌지. 몽골족도 곧 그리될 것이다. 만약 이번에 실패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한족에게 흡수되거나 엄청난 견제를 받아 이도 저도 못 하게 되겠지!”
그 말이 옳다.
하지만…….
시대는 분명 바뀌고 있다.
“조선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르지?”
“조선에게는 바다가 있습니다.”
나와 킬방원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후우…….”
그가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느냐?”
“직접 싸우는 건 저도 부담입니다. 하지만 저 거대한 대륙은 하나가 아닙니다. 조선도 내부엔 얼마나 많은 의견이 있습니까.”
붕당정치가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양한 파벌로 나뉘어 있다.
건국 초기라 파벌이 정립되지 않아서 더욱 그러한 면이 있다.
“때마침 폐제가 권토중래하려는 상황입니다. 이 점을 이용한다면 저 거대한 나라를 갈가리 찢어놓을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나.
오호십육국시대.
오대십국시대처럼.
“당돌벌이의 계책입니다.”
내 계획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흥. 이런 게 성공한다면 천행(天幸 : 기적)이겠군.”
“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으니까 천행이라고 하는 거다.”
“일으켜야 하니까 천행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지 않는 자에게 절대 행운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동아시아 역사에서 수없이 나오는 말.
진인사대천명이다.
“너는 모두가 해내지 못하리라 생각한 일을 이루었지. 그러니 네가 하는 허무맹랑한 말에도 조금은 신뢰가 생기는구나. 그래…….”
추상같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그러면 조선이 무엇을 하면 되겠느냐.”
가지고 왔던 목함을 꺼내었다.
그리고 열었다.
“이것은…….”
“금강석입니다.”
다이아몬드다.
유럽으로 향할 때 희망봉에서 코이코이족이 주었던, 내 주먹보다 큰 다이아몬드.
이 시대는 물론, 현대를 다 뒤져봐도 이만한 보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세공하여 천하지보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아시다시피 중원에 혼란이 오면, 중원의 각국은 항상 이 땅에 있는 왕조에 조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중국은 워낙 거대하고, 수많은 민족이 살아가는 나라이기에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정통성보다 더 큰 정당성이 필요하다.
부족한 정당성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조공 책봉 시스템이다.
주변국들이 모두 인정했으니까, 너희 백성들도 나를 천자로 모시라는 논리다.
이러한 이유로 조공 책봉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은 항상 받은 것보다 더 값어치가 큰 회사품을 내놓는다.
천하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지출, 즉 친구비 같은 것이다.
그리고.
현재 명나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공국은 조선이다.
분명 건문제나 한왕 주고후, 그리고 아마 영락제의 빈자리를 대신할 황태손 주첨기도 조선의 조공을 원할 것이다.
그 점을 노린다.
“금강석을 세공하십시오. 그리고 그 세공품에 이렇게 새겨두십시오.”
그리스 신화.
트로이 전쟁의 트리거를 당겼던 유명한 일화.
“‘진정한 하늘의 대리자에게 바친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