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8
027화 화포 기술자 (2)
명나라의 결혼은 부모(가주)가 절대적인 결정권을 행사한다.
부모는 매파의 조언을 참고하여 결정하며 사실상 이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매파의 권한은 점점 커졌고, 그에 따른 책임도 커졌다.
중매 잘못 섰다가는 귀싸대기 맞는 정도로는 안 끝날 정도로.
그래서 중매쟁이끼리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고, 같은 등급끼리만 중매를 섰다.
놀랍게도 결혼정보회사 같은 시스템이 15세기 초인 지금에도 있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 싶다.
하지만 부모나 가주가 야심이 있는 사람일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떻게든 높은 사람에게 장가·시집을 보내려고 하기에 매파에게 많은 재물을 쥐여주거나, 아니면 직접 혼처를 찾아다니게 된다.
보통은 자식이 13살쯤 되면 혼처를 찾아다니고, 15~18살 정도면 대부분 혼례를 올린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아동학대지만, 이 시대는 이게 보통이다.
춘향이도 이팔청춘, 2×8인 열여섯 나이에 그 난리를 쳤는데.
허신애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빨리 혼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나타났다.
하필이면 가주에게 나는 매우 매력적인 먹잇감······ 아니, 사윗감이다.
광주는 국제 교역항이라는 특성상 개방적인 문화고.
조선은 중화 세계관에서 가장 문명인에 가까우며.
겉보기에 나는 영락제의 총애를 받는 우량주니까.
“그러고 보니 조선의 결혼 문화는 어떻습니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가주는 더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기본적으로는 명나라와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아직 고려의 영향이 남아있어서 연애결혼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단, 연애가 곧 결혼이지만.
그리고 지체 높은 양반가에서는 당연히 연애결혼 따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고구려도 매우 문란······ 자유롭게 결혼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실수한 척하네.
연애결혼은 문란하다는 이미지를 새겨주려고 한 거면서.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고 한 나라이니 당연히 그렇지요. 다만 조선은 옛 조선을 계승했습니다.”
갑자기 한왕 주고후한테 처맞은 게 떠오르네.
에라이 무식한 새끼.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러면 대인의 혼례는 대인의 부모님께서 결정하시겠지요?”
“제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오. 이런. 의도치 않게 무례를 범했군요. 이거 사죄드립니다.”
“몰라서 그런 건데 어찌 무례라 하겠습니까.”
“대인께서 이렇게 훌륭하게 장성하신 걸 보면 극락에 계실 대인의 부모님도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허가장의 정보력으로 봤을 때 내 가정사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언급한 이유는 이거다.
‘가주 대 가주끼리 여기서 깔끔하게 결정합시다.’
‘장성했으면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대를 이어야 하지 않겠냐.’
이거······ 쉽지 않다.
절대 쉽게 놔줄 것 같지 않아.
이래서 사대부들이 상인을 싫어한다고 한다.
이익을 목전에 두면 예의나 체면을 버려두고 철면피가 된다고 해서.
“그러길 바라야지요. 아직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부족하다니요. 천하에 누가 대인을 부족하다 하겠습니까.”
“조실부모하여 오래 궁핍하게 살았으며, 관리가 된 이후에도 기울어진 가세는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군요.”
나 가난해.
네 손녀 고생시킬 거야.
“하하하. 태감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지요. 걱정은 하지 말고, 고민을 하라.”
고민한다고 돈 문제가 해결되면 세상에 부자 아닌 사람이 없겠다.
일단 조선에서부터 지금까지 씨는 착실하게 뿌려뒀는데, 과연 계획대로 씨 발아가 될지 모르겠다.
워낙 변수가 많아서.
“제가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재복이 있어 나름 부유하게 살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대인께 후원을 해드리고 싶군요.”
“분수에 맞는 삶도 나쁘지 않더군요. 금전을 탐낸다면 어찌 선비라 하겠습니까.”
“분수라니요. 대인의 분수는 그야말로 거대합니다.”
“네?”
“송구하오나 제가 관상을 볼 줄 압니다. 대인은 눈빛이 살아있고, 흰자위와 눈동자의 구분이 명확하며, 짝눈이 아닌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부자의 상입니다.”
“그, 그래요?”
“또한, 왼쪽 눈썹 밑에 있는 점은 재복과 자수성가를 뜻하며, 이마가 반듯하고 넓으니 관운이 있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대인은 부와 권력을 모두 대성할 매우 좋은 관상입니다.”
관운이라는 건 권력운.
왕이 될 상과는 다른데,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된다는 뜻이다.
에이······ 내가 관상 같은 비과학적인 걸 믿을 것 같아?
“다만 얼굴에 힘줄이 도드라진 것으로 보아 인생에 풍파가 많을 것입니다. 이런 관상은 만사가 쉽게 풀리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쉽지요.”
맙소사.
용하네.
도사야.
도사.
“따라서 이런 분께는 배려심 깊은 내조가 필요하지요. 대인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내자를 들인다면 만사가 술술 풀려 대운을 성취할 것입니다.”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나에겐 섬세한 배려가 필요해.
근데 이 썩을 영락제랑 킬방원이 자꾸 험하게 굴려.
“그런 의미에서 제 손녀는 예의가 바르고, 천성이 밝으며, 하인들에게도 배려가 넘쳐 호평이 자자합니다. 관상을 보니 둘의 궁합도 천생연분이군요.”
“아······ 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 완전 영업 사원의 말빨에 넘어가는 모양새잖아.
하마터면 결혼식장까지 홀리듯이 따라갈 뻔했네.
이래서는 안 된다.
서희의 담판처럼 내 페이스로 끌고 와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근데 결혼 문제를 어떻게 주도적으로 진행하지?
주도적으로 고백해서 혼내주면 되는 건가?
“일단 시간이 촉박하니, 말씀하신 화포 기술자를 볼 수 있겠습니까?”
“예. 그러지요.”
가주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내가 화포 기술자를 보겠다는 시점에서 절반은 넘어갔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만약 그 오스만 술탄국 상인이 정말 화포에 능통하다면······.
기꺼이 호랑이굴에 몸을 던져주지.
***
우리는 정원에서 나와 빈객실로 향했다.
집 참 넓고 좋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네.
조선에서는 사치를 금해서 부귀한 재상이라도 백 간을 넘는 집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1간이 1평인데, 정원을 포함해서 100평을 넘는 집이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갔다가, ‘와! 여기는 천 간 크기의 집이 많네?’라고 놀란다.
명나라를 자주 오고 갔던 역관이 ‘중원에는 이보다 더 큰 집이 많다.’라고 대답한다.
내가 진짜 대성해서 사치의 기준을 확 높여 놓는다.
능력 되면 사치가 아니라 건전한 소비지.
“혹시 회회도 상인을 만날 때 조심해야 할 점이라도 있습니까?”
“그······ 대인께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회회도 상인은 대국어가 서투릅니다. 대명의 예법에도 익숙하지 않고요.”
······그걸 왜 이제 말해.
미리 확인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부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예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요. 제가 그리 관대하지는 않으나, 어지간하면 괜찮습니다.”
좋았어.
이걸로 꼬투리 잡아서 결혼은 없던 일로 해야겠다.
부디 오스만 상인이 싹수없기를 바라며 계속 걸었다.
“이곳입니다. 안에 있는가?”
“주인?”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터번을 두른 중동 남자.
······잘생겼다.
석피가 전형적인 중동 미남이라면, 이 녀석은 100년에 한 번 나올법한 중동 미남으로 보였다.
화포 학자였다가 상인이 된 것도 너무 잘생겨서 쫓겨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였다.
괜히 화나네.
“보시다시피 외모가 괴상하긴 합니다만, 실력은 확실해 보입니다.”
“주인. 나 이래 봬도 잘생겼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
“코끝이 둥글지 않으니 성공이나 재물운이 낮고, 귀의 폭이 좁고 긴 것을 목이(木耳)라 하는데 그야말로 빈곤의 상입니다.”
갑자기 관상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시대는 부처님 얼굴이 최고의 미남 관상이다.
부처 핸섬.
“다만 상관을 잘 만난다면 기회를 잡고 날아오를 것이니, 그 날이 올 때까지 재능을 갈고닦아야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이런. 주책맞았습니다. 이 상인의 이름은 무함마드 빈 아지즈라고 합니다. 상선을 타고 오는 중 해적을 만나 광주에 표류한 것을 제가 거둬들였습니다.”
이어 가주는 나를 소개했다.
“이분의 성은 강해인으로 조선의 사대부네. 무척 존귀한 분이니 예를 갖추게나.”
“반갑다. 아지즈의 아들 무함마드야.”
무함마드의 말에 가주는 이마를 짚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강해인이라 합니다.”
“어디 사람이라고? 코레를 말하는 거야?”
“고려가 아니라 조선입니다.”
“좆센?”
“생각해보니 코레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일부러 이런 발음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반갑습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오. 설마 무슬림입니다?”
“저는 아니고, 원정대의 제독이 무슬림입니다.”
“맙소사. 여기서 이런 우연이. 알라후 아크바르! 혹시 날 오스만으로 데려가 줄 수 있습니까?”
오호.
여기서 이런 기회가.
“오스만은 무척 멀기에 확답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그 나라에도 닿겠지요.”
일단 운을 띄우고.
“그보다 화포를 연구하는 학자였다고요?”
“응. 프랑기 토프를 연구했지.”
프랑기 토프?
“혹시 불랑기포를 말씀하십니까?”
“여기서는 그렇게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엥?
불랑기포는 포르투갈 상인이 들여온 거 아니었어?
벌써 있다고?
“그 대포는 오스만에서 만든 게 아닙니까?”
“오스만에서 처음 만든 건 아니고, 비잔틴에서 만든 화포를 우리가 개량했다.”
“근데 왜 프랑기라고 부릅니까?”
“비잔틴이 프랑기스탄에서 배워와서 만들었습니까?”
스탄은 ‘~의 땅’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 하면 우즈벡인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프랑기스탄이면 프랑기의 땅.
프랑기는 아마도 프랑크족을 말하는 것이겠지.
“프랑크 왕국은 멸망했고, 지금은 신성 로마 제국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프랑기스탄이라 부릅니까?”
“코레도 명군을 당나라 군대라 부르잖아.”
······인정.
여기서 오해가 있는데, 당나라 군대는 당대 최강의 군대였다.
그러니까 오합지졸을 의미하는 ‘당나라 군대’는 옳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도 600년 뒤까지 흔하게 쓰였던 이유는 당나라가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조선 시대에 명나라를 비하할 수는 없으니 중국군을 당나라 군대라고 불렀다고 할까.
비슷한 예로 중국인이 한국인이나 조선족을 비하할 때 가오리방쯔라고 하는데, 이게 고려봉자의 중국 발음이다.
봉자는 막대기처럼 융통성 없고 반항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단어고.
한국인에게 조센징이라 비하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겠지.
“게다가 신성 로마 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닙니다.”
“여기에 볼테르의 전생이······.”
“응?”
“아닙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군요. 비잔틴 제국으로선 신성 로마 제국을 로마로 인정할 수 없을 테니 계속 프랑크라 부르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로마는 우린데.”
이건 또 뭔 개소리지?
“오스만은 룸 술탄국의 뒤를 이었어. 룸이 로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이······.”
“비잔틴과 우리는 로마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 하지만 우리가 곧 비잔틴을 먹을 테니까 오스만이 로마의 정통 후계자야.”
오우. 신박한 개소리였다.
비잔틴 제국이 언제 멸망하더라?
비잔틴 제국의 멸망을 중세의 종말과 르네상스의 시작이라고 본다는 것만 기억난다.
“어쨌거나 아직은 있다는 거죠?”
“응. 근데 아나톨리아 반도 대부분을 우리가 먹었다. 발칸 반도도 착착 접수 중이고. 이제 콘스탄티노플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넘기는 어려울 텐데요.”
“와. 너 진짜 똑똑해. 어쩜 그렇게 잘 아는 걸까?”
······그러네.
조선 사람인 내가 아는 게 이상하긴 하지.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어깨너머가 뭔데? 동방견문록 같은 책입니까?”
“······그렇다고 하죠.”
“아무튼 대단해. 널 만난 건 행운이야. 알라후 아크바르. 하지만 걱정 안 한다. 천년의 성벽도 날려버릴 화포를 연구 중이니까.”
비잔틴이 망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오히려 이슬람이 득세하면 나에겐 더 유리하다.
정화가 이슬람교도니까.
덕분에 정화가 중동에 갔을 때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게다가 오스만이 비단과 향신료 루트를 끊어줘야, 내가 유럽에 갔을 때 비싼 값에 팔아먹지.
“그래서 불랑기포의 제작 방법을 압니까?”
“당연히 압니다.”
됐다.
성공이다.
이제 잘 구슬려서 그 제작법을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형제여~”
“내가 왜 니 형제입니까?”
“오스만 술탄국은 튀르크족이 세운 나라 아닙니까?”
“어떻게 알았다?”
“튀르크족은 본디 고구려 옆에 있던 돌궐 민족으로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혈맹이었습니다.”
진짜 돌궐이 튀르크족이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우겨야 한다.
그래야 뽑아먹지.
“정말? 증거 있음?”
“당연히 있지요.”
“그게 무엇이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튀르크어는 왜 주변의 언어인 라틴어와도, 아랍어와도 문법이 매우 다를까요?”
“그러게······ 나도 그게 이상했다.”
“조선말은 튀르크어와 문법이 매우 비슷합니다.”
알타이어족이니까.
“그것이 우리가 형제의 민족이라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