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9
028화 화포 기술자 (3)
사실 대포 설계는 별거 아니다.
아마 무기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이 시대 대포보다 훨씬 좋은 대포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직접 만드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야금술은 관련 학과를 나오지 않는 한 알기 어려운 영역이니까.
내가 무함마드 빈 아지즈를 포섭하려는 이유도 높은 수준의 야금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도 고구려 때는 야금술이 매우 발전했다고 들었는데, 질 좋은 철광석과 석탄이 나오는 만주를 상실하면서 많이 퇴보했다고 들었다.
반면 현재 중동 지역은 다마스쿠스 강이라는 고품질 철광석 덕분에 야금술이 매우 발전했다고.
다만 정말 야금술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질 좋은 철광석 덕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비교가 필요했다.
조선, 명나라, 오스만.
지금 시대에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기술 선진국이다.
세 나라의 야금술을 비교·분석해서 장점을 합치면 제대로 된 대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형제여~”
“근데 나 대포 못 만들어.”
“······동생.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는 안다며.
“구조는 아는데, 직접 만들라고 하면 못해. 대장장이 필요.”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아니, 더 발전된 것도 할 수 있어.
“대포의 구조는 기존의 포를 해체해서 분석하면 되지 않나요? 개발하는 건 어렵겠지만 복제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응. 맞아.”
와. 이거 쓸모없네.
적당히 손절해야겠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연금술사. 화약 연구만 했음.”
“따거. 그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
이런 인재가 초야에 묻혀있다니.
통탄할 노릇이로다.
그렇지.
오스만, 사파비, 무굴은 화약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화약 무기를 발전시켰다.
개중에서도 오스만은 단연 으뜸.
오스만의 화포 학자가 쓸모없을 리가 없지.
“근데 오스만에는 염초 광산이 없다고 들었는데 혹시 특수한 정제법이 있습니까? 아. 알려달라는 건 아니고요······.”
순수하게 궁금할 뿐이야.
애국심보다는 형이 고향에 무사히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서.
“초석? 델리에서 가져옵니다.”
“아······ 그랬어?”
인도에서 수입했구나.
동생은 수입한 재료를 섞어서 화약만 만들었고.
그래놓고 연금술사?
밀키트로 음식 만들고 셰프라 하지 그러냐.
“근데 티무르가 길을 막아서 요즘은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아 그러십니까?”
역시 형이야.
그렇지?
뭔가 있지?
“응. 똥과 오줌을 삭힌 거랑 나무 재를 섞으면 돼.”
“······동생.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조선에서도 하고 있으니까.
워낙 소량만 만들어지고, 대규모로 만들려고 하니 장마가 올 때마다 다 쓸려가서 안 될 뿐이다.
에라이.
괜히 감정 노동만 했네.
“그래서 내 사부가 초석의 위력을 훨씬 강하게 만드는 실험을 했어.”
그런 게 있나?
“결과는 어때요?”
“대폭발이야. 펑 하고 터져서 일대가 다 날아갔어.”
흑색화약이 그런 위력을 낸다고?
그게 말이 되나.
“터뜨린 게 아니라 터졌습니까? 그러니까 성공이 아니라 사고라는 말씀이죠?”
“응. 사부도 그때 돌아가셨다. 나 그래서 상인 됐다.”
그럼 그렇지.
흑색화약을 개량한 게 아니라 실수로 터뜨려서 유폭 사고로 이어진 모양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제자까지 둘 정도면 화약 연구에 일가견이 있으셨을 텐데. 역시 화약 연구는 쉽지 않나 봅니다.”
“나는 그거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스승님 안 들었다.”
“뭘 어떻게 하셨는데요?”
“음······.”
“말씀하시기 가슴 아프시거나, 비밀이라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기대도 안 하니까.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없는 법이지.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실패한 연구니까.”
“아. 네.”
“유황과 촉매를 넣은 다음 물을 넣으면 슐프릭이라는 게 만들어져. 슐프릭과 초석, 그리고 주정을 넣고 섞으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슐프릭.
유황과 촉매, 물을 넣는다는 걸 보면 황산 같은데.
초석.
이건 질산칼륨이고.
주정.
알코올이다.
잘 폭발할 것 같은 거 다 집어넣었다가 터졌나 보다.
이것이 남자의 평균 수명이 낮은 이유지.
“······.”
잠깐만.
알코올 중에 어떤 종류를 글리세린이라고 부른다고 들은 것 같은데.
황산, 질산, 글리세린을 섞으면······.
“맙소사.”
니트로글리세린이다.
다이너마이트의 원료.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지만, 숨결만 닿아도 폭발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엄청나게 불안정한 물질.
그 탓에 위인(진) 화학자와 산업의 역군을 수없이 골로 보낸 악마의 물질이기도 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19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비공식으론 이미 만든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 개발한 분이 셀프 분서갱유하시는 바람에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됐고.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그거 하지 마라. 위험하다.”
“알고 있어요.”
자체 폭발했다면 발열 반응 때문일 터.
비커를 얼음통에 넣고 천천히 반응시켰어야 했는데, 그걸 안 한 모양이다.
하필이면 처음 개발한 곳이 중동이라서 얼음 구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고.
“정리해보자면······.”
대포 구조야 내가 더 잘 알 테니 필요 없다.
야금술을 모르니 가치 없다.
하지만 이 시대에 매우 귀한 화학 지식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채용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허가장에서 어떻게 빼 오냐 하는 건데.
옆을 보니 가주와 소가주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허신애는 무척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고.
“왜 그런 눈으로······.”
“놀랍습니다. 처음 뵐 때부터 범상치 않은 분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이토록 처세술이 뛰어나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나의 우두르 급 태세전환을 보고 감탄한 건가.
“제 처세술이 놀랍긴 하지요. 이런 기회주의자 같은 사람은 허가장 같은 명문가에는 어울리지 않······.”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대인이야말로 허가장이 원하는 인재 중 인재입니다.”
“······네?”
“허가장은 처세술을 매우 중시하니까요.”
그러네.
생각해보니까 지역 유지라고 해도 근본은 상인 가문이잖아.
처세술이야 기본이지.
슬쩍 이소군을 보았다.
외손녀를 칼같이 손절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상대가 그 영락제고, 딸린 식구가 몇인데.
그런 의미에서 허가장의 사위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로의 필요는 강인한 유대를 낳으니까.
수틀리면 칼같이 손절할 수도 있으니, 오히려 이편이 깔끔하달까.
다만······.
“혹시 소저의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올해로 열여섯입니다.”
“허허허.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라고 할 수 있지요.”
꽃이 아니라 꽃봉오리 같은 나이가 아닐까.
너무 어려.
생각해보니 나도 어리구나.
이제 스무 살이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목에 걸려있는 폭탄 목걸이가 한두 개가 아니다.
“게다가······.”
이소군의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합니다.”
얘가 잘못되면 나까지 숙청될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제가 허 소저께 성심을 다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럴 마음이 있다 해도 그럴 환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열여섯에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무섭고 힘들 텐데, 남편이라는 놈이 신혼에 배 타고 싸돌아다니기만 하면 가슴에 한이 서리지 않을까?
“그러니 결혼은 어렵······.”
결혼은 어렵고, 차라리 거래하자.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좋군요.”
하지만 가주는 오히려 좋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께서는 혹시 ‘잉첩’이라는 걸 아십니까?”
발음으로 보아 잉은 ‘잉여’할 때의 그 잉, 남는다는 뜻 같다.
“‘여분의 첩’이라고 해석됩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네?”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입니다. 그 결합을 공고하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지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고개를 끄덕이겠는데, 외손녀인 이소군을 칼같이 손절한 가주가 말하니까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것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법. 오래 함께하더라도 불행히 아이가 생기지 않는 예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죠.”
“그래서 잉첩이라는 걸 둡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자매나 사촌 자매를 한 남자에게 시집보내어 정실부인과 첩을 동시에 맞게 하는 문화지요.”
“······.”
“혹은 양갓집 규수를 처로 맞이할 때, 그 시녀를 첩으로 들이는 것도 잉첩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려 태조 왕건도 호족 가문의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맞았다는 기록이 있긴 했다.
고려 인종도 친이모 둘을 동시에 아내로 맞이하기도······.
역시 중세 사람들 대단해.
600년 후에는 음란 동인지에서나 상상할 법한 일들을 현실에서 하니까.
“이소화를 첩으로 삼으신다면, 오히려 제 손녀를 처로 맞이하시는 게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서로 안면이 있는 만큼 더욱 화목할 테니까요.”
이소화가 본명인가?
의문은 일단 뒤로 미루자.
“왜 첩이라고 생각하죠?”
“설마 사대부가 기녀를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실 생각입니까? 천하가 비웃습니다.”
그게 아니라 이소군과 결혼한다는 말이 아니었다는 뜻인데······.
“아!”
“예?”
“아닙니다.”
이소군이 손을 꽉 잡아서 깜짝 놀랐네.
악기를 연주해서 그런지 의외로 악력이 어마어마하다.
“만약 대인께서 약조만 해주신다면, 소화를 다시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할 의향도 있습니다.”
기분이 나쁘다.
마치 자기가 갑인 것처럼 으스대는 꼴이.
전생, 현생을 겪는 동안 단 한 번도 자각한 적이 없었는데, 난 의외로 독점욕이 상당히 강한 모양이다.
내 사람을 건드리니까 왜 이렇게 열 받지?
“오호. 그래요? 폐하의 분노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두렵지요. 무척 두렵지요. 허나 폐하께서 대인께 하사하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녀를 용서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어설프게 추측하다가 잘못되면 따끔한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자신의 안목을 탓해야겠지요.”
한없이 뻣뻣한 목.
기분 상해죄를 적용하여 기를 꺾어놔야겠다.
“혹시 문당호대라는 말을 아십니까.”
“신분이나 지위가 비슷한 가문끼리 결혼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허가장이 광주의 유지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만, 하늘 높은 줄 모르니 사돈을 맺었다간 제가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군자는 남을 무시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그 말씀을 받들어 굳이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석피를 보았다.
“긴 상자 좀 줘봐.”
“여기 있습니다.”
상자를 열고 비단 두루마리를 꺼내 펼쳐 보였다.
영락제의 성지를.
“저를 정5품 내각군보에 임명한다는 황제! 폐하의! 성지!입니다.”
내각대학사는 수보든, 차보든, 군보든 전부 정5품이다.
국회의장, 국회 부의장, 국회의원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허가장도 광주라는 거대한 도시의 유지인만큼 어지간한 관직에 꿀리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조선의 정5품 안정 사관이라는 걸 알면서도 예우는 하되, 절대 밀리지 않는 태도를 보여줄 정도니.
하지만 명나라의 정5품은 이야기가 매우 달랐다.
더욱이 요즘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는 내각 소속.
또, 갓 스무 살인데 정5품이라는 것도 중요했다.
10년 정도 후면 어지간한 권세가는 다 씹어먹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
영락제의 성지를 펼쳐 보이자, 그와 동시에 가주와 소가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넙죽 엎드렸다.
허신애도 이소군도 조용히 엎드렸다.
석피와 무함마드만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의심스러우시다면 제독께 확인해보셔도 좋습니다.”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몸과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걸 보면 기강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보란 말이야.
사람이 좋게 좋게 나오면 응?
알아서 응?
“일어나세요.”
모두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주와 소가주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죽은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