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33
032화 참파 왕국을 향하여 (2)
나는 전생에 항해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GPS와 네비게이션이 발명되었기에 하늘의 별을 보고 위치를 측정하고······ 이런 건 안 할 거라 생각한다.
아니다.
원양 항해의 경우 현대에도 자주 사용한다.
먼저 출항하기 전에 날씨와 해류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어떤 항로를 이용할 것인지를 계획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배에 타면 내 선박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이때 GPS나 네비게이션으로만 보고하진 않는다.
천체 관측 등 전통 방식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써서 내 위치를 각각 입력하여 보고한다.
계획서대로 항해하지 않거나, 항로를 이탈하면 국제 해사 기구에서 난리를 치니까.
최악의 경우 영해 침범 같은 외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당시에는 귀찮았는데, 습관을 들인 덕에 배를 안 탄 지 20년이 되었음에도 금방 적응했다.
다만 이렇게 날씨가 우중충한 날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침반이 있긴 하지만, 배의 속도를 측정할 수 없으니까.
“2시진 정도 후면 서사군도 인근에 다다를 것 같긴 한데······.”
서사군도는 현대에 파라셀 군도라 불리는 곳이다.
대충 절반 정도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람만 좋다면 하루 하고도 한나절 후면 참파에 도착하겠지.
“어떻게 알았소?”
옆에 있던 부선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대충 계산해봤어.”
“거참 신기한 사람일세. 사대부가 어디서 이런 잡기를 배워온 건지.”
“너도 알잖아.”
“나야 수없이 다닌 길이니까 알지.”
나도 수없이 다녔어.
게다가 유명하기도하고.
파라셀 군도와 조금 더 남쪽에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가 그 유명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무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국이 뒤얽힌 가장 화끈한 바다 중 하나지.
내가 죽기 전까지는 미국이 승자였다.
‘여기는 공해야. 항행의 자유를 실현해도 된다.’
‘우리 신성한 영해를 침범하면 그냥은 안 넘어간다.’
‘쏴보든가. ㅋㅋㅋ’
대충 이런 식으로 주고받더니 미 해군이 ‘일부러’ 중국의 인공섬에 딱 붙어서 지나갔는데······.
그냥 넘어갔다.
그 뒤로도 미 해군은 늘 인공섬 주변을 거쳐 이동하는 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건 미군이니까 그런거고, 다른 나라가 그러면 얄짤없다나.
갑자기 옛날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한국도 어떻게 꼽사리 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이나, 일대일로의 명분이자 동기로 사용되는 게 정화의 대원정이니까.
내가 잘만 된다면, 600년 뒤의 한국은 아마 ‘이 바다는 강해인이 주로 이용했던 바다다!’라며 숟가락 두어 개는 올려놓겠지.
국뽕 한 사발 들이킬 수 있도록 지금 시대에 미리 인근 국가에 항로 이용권이라도 받아둘까?
심심하니까 별생각이 다 드네.
“이대로 있으면 너무 심심한데.”
“선장은 너무 부지런하군.”
“심심하니까.”
환생했음에도 망가진 도파민 체계는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어지간한 자극과 성취로는 내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
더 큰 게 필요하다.
“선원들에게 여유가 있었으면 언어라도 배울 텐데.”
“한가할 때니까 배워도 돼. 내가 불러올까?”
“됐어.”
선원에게 제일 바쁜 시기는 출항할 때와 기항할 때다.
막 바쁜 일을 마치고 꿀 같은 휴식 시간인 지금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먹구름이 무거워 보여. 조만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그때까지 체력을 온존해야지.”
“비가 오면 바빠지긴 하지.”
특히 우리 배처럼 화약과 상품이 많은 배는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비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는 정도일까.
“혹시 모르니 곳곳에 기름 천을 둘러 대비케 했소. 어지간한 폭우가 아닌 이상에야 별문제 없을 거요.”
“부선장은 한가한가?”
“바쁜 일은 끝났지.”
“오. 능력 있는데?”
“제독이 붙여준 부관이 뛰어나. 그가 수군의 군기를 잘 유지해주고 있어서 일이 쉬웠소.”
“수군은 부관이 지휘하는 건가? 선원은 부선장이?”
“그렇지.”
“다들 한 성격 해 보이는데, 통솔은 잘 되나?”
부선장은 이를 드러내고 흉악하게 웃었다.
군데군데 빠진 이는 우스꽝스럽다기보다 기괴함과 공포를 자아냈다.
“그럼~ 모두가 말을 잘 따르지. 잘 안 따르는 녀석들은 배에서 내리게 될 테니까.”
“······어디로 내리는데?”
“그때그때 다르지.”
“바다 한가운데는 아니지?”
“나도 그렇게 잔인한 사람은 아니야. 기껏해야 무인도일세.”
존나 잔인한데.
“한가하면 배 구조에 대해서 알려주게. 공사다망하여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흥······ 고맙다.”
‘고맙다.’ 소리는 매우 작게 들렸다.
정말 츤데레냐?
그 얼굴과 덩치로?
“알려달라는 게 고마울 필요는 없지. 오히려 내가 고마우니.”
“선장이 항해를 정확히 아는 것만큼 고마운 일도 없어. 전 선장은 선장실에 앉아서 답답한 소리만 해댔으니까.”
“뭐라고 했는데?”
“음식이 이게 뭐냐고 성질을 내지 않나, 선실 안이 어둡다고 불을 켜려고도 하고, 광주에 다다랄 때 즈음에는 대체 언제 도착하냐고 난리 치기도 했지.”
당연하지만 원정대는 전부 목선으로 제작되어 있다.
까딱해서 불이 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난다.
배마다 양의 차이는 있지만, 황실의 하사품과······ 화약이 가득 실려있으니까.
“아무튼 부탁하네.”
“그러지.”
유럽에서는 중국의 배를 가리켜 정크 선(Junk ship)이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쓰레기 배라는 뜻이다.
아편전쟁 당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죄다 쓸려나가면서 그런 이미지가 굳어졌다.
다만 원래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중국 함선을 대표하는 대형 함선이 진극(眞克)인데, 이게 중국 발음으로 쩐커다.
이 발음이 유럽으로 전해 내려가면서 정크선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당선이라고 부르는데, 당나라 배라는 뜻이다.
당대에는 당해낼 배가 없는 최고의 배 중 하나다.
특히 조선의 배인 한선과는 달리 원양 항해에 매우 적합하다.
저평가된 정크선의 능력을 입증하고자, 정크선으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다만 내구력이 약해서 해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조선에서도 당선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기각됐다.
조선의 한선과 비교하면 선회력이 좋지 않아 섬이 많은 조선 지형에는 맞지 않았으니까.
또, 오는 왜구를 막아야 하는 조선으로서는 전투력이 약하면 쓸모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중구조로 만들어져서 제작 단가가 비싸다.
내가 괜히 킬방원이 아니라 영락제한테 배를 요구했던 게 아니다.
“먼저 돛은 알지?”
“알지.”
여기서는 그냥 돛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항해학교에서 배울 때는 정크 세일(Junk sail)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유럽 범선에서 사용하는 사각 돛이나 삼각돛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 있었으니까.
일반적으로 사각 돛은 순풍일 때 속력 내기 좋고, 삼각돛은 역풍에도 나아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정크 세일은 생긴 건 사각 돛인데 삼각돛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돛의 중간중간에 대나무로 돛살을 넣어 미약한 바람에도 돛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조작도 쉽다.
바람 오는 방향으로 틀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강풍이나 폭풍도 잘 이용한다.
돛살을 접으면 평평한 돛이 배불뚝이처럼 나오게 되는데, 이때 강풍을 이용해서 쭉 나아갈 수 있다.
폭풍이 오면 접어버리면 되고.
이게 블라인드처럼 줄만 당기면 되는 구조라 대처가 참 쉽다.
구조가 직관적이고 단순해서 수리하기도 쉽고.
단점은 무겁다는 것.
그리고 순풍일 때는 사각 돛, 역풍일 때는 삼각돛보다 속력이 덜 나온다는 정도일까.
올라운더 같은 느낌이다.
잘하면 만능이지만, 잘 못 하면 이도 저도 안 될 수 있는 그런 포지션.
“딱 돛까지만 알아. 그 외 나머지 구조는 모르네.”
“설명하기 편해서 좋군. 우선 선미(船尾)에는 알다시피 선장실과 주방이 있지.”
“그러게. 주방을 왜 여기다 만들어놨는지 모르겠어.”
“가장 눈에 띄니까. 불이 나기라도 하면 조기 진화가 중요하니.”
그런 이유일 거라 생각은 했다.
다만 내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내가 곧 배인데 말이야.
“일단 넘어가자.”
“그럼 아래로 내려가지.”
우리는 그물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오히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심할 때를 대비한 건가?”
“그래. 배가 흔들리면 계단도 흔들리면서 사고가 일어나니까. 오히려 일거리가 더 늘어나지.”
“내가 그물침대를 권한 이유도 이것과 같아.”
“흥. 계속 써보니 꽤 쓸만한 것 같기도 하다만······ 어디까지나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나처럼 능숙한 뱃사람은 그런 게 없어도 잘 잘 수 있어!”
“누가 뭐라고 했냐?”
왜 혼자 급발진하고 그래.
“······갑판 밑에는 선원실과 화물칸이 있다. 이제 선장의 명대로 대포도 추가했지.”
“그래도 햇빛이 들어오니까 좋네. 환기도 되고.”
“대신 가축을 딴 배에 그냥 넘겨야 했지.”
“잘했어. 이렇게 작은 배에서는 가축 같은 건 키우면 안 돼.”
배의 크기를 고려하여 닭이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이긴 했지만.
“대보선과 보선만 봐서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 배도 그리 작은 배는 아니다.”
“······.”
대보선도 작은데.
전생에 컨테이너선을 타고 다녔으니까.
“괜히 전염병이라도 생기면 골치 아파져. 맛없는 걸 먹더라도 며칠만 참으면 되잖아.”
무역상과는 다르게 원정대는 한 번 기항하면 오래 한다.
빨리빨리 움직이는 것보다, 확실하게 조공·책봉을 하면서 움직이는 게 목적에 더 맞으니까.
건문제와 옥새를 수소문해야 하기도 할 테고.
“가축이랑 역병이랑 뭔 상관이지?”
“매우 큰 관계가 있지.”
“어떻게?”
이걸 어떻게 설명한다?
내가 바이러스나 세균에 관해 설명하면 ‘강해인은 사대부인데도 괴력난신을 믿는다!’라는 소문이 퍼질 것 같은데.
······뻔뻔하게 나가자.
“나는 말로만 하는 서생이 아니다. 결과로 증명하지.”
“그러니까 어떻게 증명하냐고.”
“우리 배는 모든 함선 중 유일하게 노데스 원정에 성공할 테니까.”
“노데수가 뭔데?”
“아무도 안 죽는다는 뜻이다.”
“거참 자신만만하구먼. 가축만 안 키우면 되는 건가?”
“아니지. 매일 목욕을 시키고, 손은 틈날 때마다 씻길 거야.”
“배에서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이지. 하지만 계속 강경하게 나오면 불만이 커질 텐데?”
나도 그 점이 우려된다.
조선인은 씻는 걸 좋아하지만, 명나라 사람들은 참······ 안 씻으니까.
정말 안 씻는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구려나 고려에 왔던 당대 중국 왕조의 사신이,
‘쟤네 씻는 거 정말 좋아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보고 더럽다고 뭐라 한다.’
‘지들은 남녀 구분 없이 계곡에서 같이 옷 벗고 목욕하면서.’
‘하여간 오랑캐들. 쯧쯧’
이런 식으로 역사서에 기록해 놓았을 정도다.
안타깝게도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혼욕 문화는 없어지고 있다.
······일본에 가면 해볼 수 있으려나.
꼭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어떤 느낌일지 굉장히 궁금해서.
어디까지나 학자로서의 탐구심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이 배에는 옷 벗으면 곤란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나 커! 곤란할 거 없어! 오히려 너희가 곤란할걸?”
“······선장 말고. 선장이 데리고 있는 기녀.”
“아······.”
욱하는 마음에 급발진해버렸다.
광주에서 기녀원이나 홍등가를 한 번도 안 갔다는 사실 때문에 근거 없는 낭설이 퍼지고 있었으니까.
고자라느니.
물건이 너무 작다느니······.
“선원이 목욕할 때는 선장실 안에 머물라고 하면 돼.”
“바다는 변화무쌍하지. 언제나 시간 맞춰서 딱딱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게다가 한꺼번에 끝내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녀는 어디서 목욕시킬 텐가.”
“선장실에서.”
“선장실에서 말인가? 자칫 배가 크게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주요 문서나 서적이 다 젖어버릴 수도 있어. 괜찮겠나?”
확실히 이성이 한 명 끼니까 불편한 일이 생기네.
기록을 보면 동인도 회사나 해적 중에도 남장 여자가 적지 않았다고 했는데.
문제는 이런 ‘사소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역사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여성도 할 수 있다.’, ‘남존여비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식으로 사상적인 목적만 끼워놓더라.
나도 알지.
실제로 유능한 여성 항해사도 많으니까.
잘 아는데, 그래서 옛날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냐고.
현대의 배처럼 샤워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잖아.
유일하게 기억나는 거라곤, 명사수 여자 해적이 싸울 때 맨가슴을 보여주면서 ‘넌 여자에게 죽는다.’라고 한 뒤 쏴 죽였다는 설화뿐이다.
“어차피 자주 기항하니 굳이 배에서까지 요란 떨 필요 없지 않나. 배에서 내리면 꼼꼼하게 시킬 테니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말게.”
“원정은 1년에서 2년 동안 계속될 거야. 따라서 미리 깨끗하게 씻는 습관을 들여놓을 필요가 있어.”
상황에 따라 적당히 봐준다면, 느슨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강경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위생이 곧 생존이다.
“저는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응? 이 소저. 왜 여기 있습니까?”
옆에는 석피가 반쯤 좀비인 상태로 골골대고 있고.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창고의 물건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물건이요?”
“찻잎과 약초입니다. 코와 혀가 민감한지라 혹시라도 상했다면 구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네.
그녀처럼 민감한 감각의 소유자라면 감별사 역할을 할 수 있겠다.
“그보다 신경 쓰지 말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오. 혁신적인 해결책이 있는 건가?
“저로 인해 목욕이 어렵다면, 저도 다른 선원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야이씨.
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