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4
003화 탈조선, 입명국 (1)
여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졌지만, 그 길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내 선택에 따라 정해진다.
나는 주사위를 던졌다.
이왕 할 수밖에 없다면.
내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면.
절대 어설픈 결과를 남기지는 않으리라.
“아니 되옵니다. 전하~”
“명예직이라고는 하나, 일개 사관을 갑작스레 종3품으로 승진케 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어찌 10 품계를 단번에 올릴 수 있단 말입니까.”
“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심을 다하는 다른 관리들에게 큰 박탈감을 줄 것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지만,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높은 품계의 명예직을 주는 것부터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니까.
사실 종3품이면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다.
대신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할 만했다.
“흠······.”
조선에 이름을 떨치는 고관 대작들이 일제히 반발하자, 전하께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신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신사는 왕의 비서실장.
왕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기에 엄청난 권력을 자랑한다.
대신 업무 강도가 혹사 수준이고.
나중에 지신사가 도승지로 바뀐다.
“천자께서 직접 지명하셨을 정도이니 어느 정도 품계를 올려주는 게 옳으나, 종3품은 지나치게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신사는 황희.
나중에 육조 판서와 삼정승을 두루 지내게 되는 그 황희 정승이다.
어렸을 때 듣기론 ‘네 말이 옳다. 너의 말도 옳구나.’로 대표되는 인자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심하게 와전되었구나 싶었다.
눈에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것이 꼭 사이코패스 CEO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이었으니.
태조 대왕 때와 정종 때는 그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인해 파직을 밥 먹듯이 당했다든가.
이렇게 엄격한 분이 왜 가족에겐 허술하신지 몰라.
자식들을 아주 개차반으로 키우셨더만.
“어느 정도가 적합하다 보는가.”
“애초에 사관 자격으로 원정에 참여하는 것이옵니다. 따라서 사관 중 최고 품계인 정7품이 옳다 여겨지옵니다.”
내가 종8품이니, 정7품도 3품계나 올리는 파격적인 승진이긴 했다.
“다만 조선의 대표로 참여하게 되는 만큼 다른 부분에서 면을 세워주는 게 좋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특별히 망건에 옥관자를 달 수 있도록 윤허해주시는 게 가한 줄 아뢰옵니다.”
망건은 상투를 틀 때 쓰는 머리 장식이다.
이마에 둘러매는 그것 말이다.
망건을 하면 관자놀이 부분에 장식을 달아놓는데, 이걸 관자라고 한다.
애초에 관자놀이라는 말 자체가 ‘관자놓이’가 변형된 것이라고 하니.
“지신사! 옥관자는 정3품 이상의 당상관만 달 수 있는 것일 진데, 이 무슨 망발인가!”
하지만 이조차도 대신들이 즉각 반대했다.
“천자께서 지명하신 조선의 대표입니다. 말단 관리를 그냥 보내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법도가 있거늘!”
토론이 격렬해지자 전하는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대화는 끊겼다.
“사관 강해인은 어찌 생각하느냐.”
“저는 조선의 질서를 흐트러뜨릴 생각이 전혀 없사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너희들만 아는 리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옥관자로 하든, 먹는 관자를 달아놓든 명나라 사람이 알아볼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
“저는 호패를 원합니다.”
“호패? 호패가 무엇이냐?”
분명 태종 때 호패 제도를 시행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호패가 보급 안 됐나?
어쩐지 발급받으라는 소리를 안 하더라.
“신분을 나타내는 증패입니다. 신분에 따라 나무, 뿔, 상아, 금, 옥 등의 재질로 만들며, 그 패에는 이름과 본관, 고향 등을 적어 넣는 식이지요.”
전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이내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호······ 그것참 묘수로구나. 본래 호패는 없던 것이니, 새로 만들어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으렷다.”
“예. 전하.”
감탄하던 전하께서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더니 곧 엄하면서도 단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뭔가 큰 결심을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호패를 조선 백성 전체에게 적용하면 세금과 군역, 요역을 파악하기에도 좋겠구나.”
“······.”
탈세하면서 꿀 빨던 녀석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겠네.
장수할 징조인가?
“용단을 내리겠다. 정5품 ‘안정 사관’을 신설하고, 사관 강해인을 그 자리에 임명한다.”
“정5품도 너무 높사옵······.”
“쓰읍.”
어떤 대신이 바로 반대하려고 했으나, 전하의 표정이 추상같은지라 결국 입을 다물었다.
정5품!
정7품과 정5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정5품은 관복이 파랗고, 정7품 이하는 녹색이다.
······어차피 관복 입고 배 탈 것도 아니니 큰 의미는 없다.
“또한, 금으로 호패를 만들어 외국에 가서도 신분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겠다.”
“금으로 말씀입니까?”
“옥이나 상아를 깎아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출항이 코 앞이니까. 그렇다고 나무를 깎아 만들자니 안 만드니만 못하고.”
킬방원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전하께서는 고려 시대 문과 급제자로 엄청난 엘리트다.
머리 회전이 보통은 아니다.
문제는 이토록 총명한 전하께서 왜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5품의 높은 벼슬을 내리셨나 하는 건데.
“사관 강해인은 혹여 혼례를 올렸는가?”
“아직 올리지 않았습니다.”
“어허. 사관은 혼례를 올려야만 될 수 있거늘.”
아니, 본인이 2년 전에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나이가 어리고, 조실부모했으니 아량을 베풀자면서.
“너도 이제 약관이다. 슬슬 혼례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
“송구하오나 전하. 사관은 본인은 물론, 아내의 4대조까지도 흠이 없어야만 할 수 있사옵니다. 그런 집안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내 직접 중매를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
전하가······.
중매를?!
“소신은 곧 바다로 나가 언제 돌아올지, 심지어는 살아 돌아올 거라는 기약도 없사옵니다.”
“그대는 3대 독자라 알고 있다.”
쓸데없이 기억력은 좋으셔.
“따라서 더더욱 혼례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가문의 대를 끊는 불효를 저지를 생각이더냐.”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문제는 조선에서는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
젊은 여인이 청상과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는 내가 이상한 놈으로 여겨질 테니.
“어떠냐? 설마 과인의 안목을 못 믿겠다는 건 아닐 테지?”
그동안은 적당히 넘겼건만, 전하께서 언급하신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가문의 대를 끊는 건 엄청난 불효고, 불효는 조선 전체에서 지탄받는 반인륜적인 범죄다.
외통수에 걸린 셈이었다.
“······.”
알겠다고 하기엔 배필이 될 여성에게 못 할 짓을 저지르는 느낌인데.
생각해보자.
전하께서 갑자기 왜 혼례를 언급하신 걸까.
빠르게 머리를 굴려봤더니 이상한 점이 두 개가 생각났다.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정5품이라는 높은 벼슬을 내린 점.
그리고 저번에 ‘그대가 섬기는 이는 누구인가.’라고 물은 점.
그렇구나.
전하께서는 걱정하시는 것이다.
내가 명나라에 포섭될까 봐.
안 그래도 영락제가 날 눈여겨보고, 제독 정화가 날 추천할 정도로 각별하게 생각하는 듯하니까.
나 같은 일개 사관이 포섭되어봐야 조선에는 손해가 없다.
하지만 전하께는 큰 타격이 있다.
바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눈’을 잃어버린다는 것.
이번에 나를 위해 신설하는 ‘안정 사관’에서도 단서가 있다.
안정(眼精)이라 하면 임금의 눈.
‘내 눈이 되어 세상을 둘러보고 오라.’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으니.
따라서 귀찮다고 대충 거절할 게 아니라, 확실하게 안심시켜 드려야 한다.
내 본진은 조선이니까.
“다른 이야기옵니다만, 전하께 간절히 청할 일이 있사옵니다.”
“무엇이냐.”
“무예가 뛰어나고 우직한 무사를 호위로 붙여주시옵소서.”
나만 고생할 순 없지.
한 명이라도 더 지옥의 동반자로 삼겠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말이 호위지, 나에게 감시를 붙이라는 뜻이다.
“그런가······ 그렇구나. 미처 그 점을 살피지 못했구나. 과인이 부덕한 탓이다.”
“전하께서는 종묘와 사직을 지키는 막중한 의무를 지고 계십니다. 사소한 건 신들에게 맡기시옵소서.”
“알겠다. 내 조선에서 제일가는 무사를 네 호위로 붙여주도록 하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과연 전하께서는 내 말뜻을 금방 이해하셨다.
‘그 방법도 괜찮겠네.’
‘이제 안심이 되십니까?’
‘너의 충심을 믿지만, 그래도 감시는 붙이겠다. 자신 있어?’
‘물론입니다. 다만 전하의 관심과 사랑보다 제 노력이 더 큰 듯합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세요.’
대충 이런 말이 오고 갔다고 보면 된다.
‘감시도 괜찮으니, 자꾸 혼례를 강요하지 마세요. 그러다 진짜 명나라로 튈 수도 있습니다.’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고.
“전하. 아무리 그래도 정5품은 너무 높은 건 아닌지······.”
한 대신이 조심스럽게 반발했지만,
“그럼 그대가 목숨을 걸고 이역의 땅에 가겠는가?”
“······.”
“이미 용단을 내렸다. 더는 말하지 말라.”
“송구합니다.”
저자는 목숨이 여벌로 있나 보다.
전하께서는 현재 킬방원 모드.
그보다 높은 품계의 고관도, 깐깐하기로 유명한 황희도 입을 다문 상태인데 거기서 태클을 거네.
그의 이름이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조만간 파직되거나, 목이 날아가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나 보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인주(인천)까지 배웅하지는 못하지만, 준비가 끝나는 대로 성대하게 연회를 열어 그대의 헌신을 치하하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아이고 머리야.”
일개 사관을 위해 연회를 열어주신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회의 때 거품 물고 반대했던 대신들은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친근하게 굴며 자꾸 술을 권했다.
‘천자와 전하께서 눈여겨본 인재.’
‘원정에 성공하면 출세가 보장됨.’
‘미혼.’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나 싶다.
자꾸 자기 딸을 자랑하며 한번 만나보라고 운을 띄우는 걸 보면.
혼례에 대해서 확답을 피하느라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하필이면 인주(인천)로 떠나기 바로 전날에 말이다.
“우욱.”
말이 자꾸 흔들려서 속이 뒤집힐 것 같다.
“괜찮으십니까. 나으리.”
“안 괜찮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짐은 연회 전에 전하께서 짐꾼들에게 명해 이미 보내 놨다는 것.
가볍게 몸만 가면 된다.
“조금만 더 가면 역참이 있습니다. 거기서 꿀물을 타오라 하겠습니다.”
“역참에 꿀이 있습니까?”
“없으면 만들어 오라고 하겠습니다.”
“백성을 괴롭히는 행위는 주상 전하께서 용납지 않으십니다.”
옆에서 자꾸 귀찮게 하는 남자는 석피.
전하께서 호위라고 붙여준 무사다.
신장이 무려 6척(187cm)에 달하며, 어깨도 넓고 턱은 네모진 데다 돌 같이 단단해 보였다.
그야말로 천생 무인이라고 할까.
가장 특이한 점은 눈동자가 파랗고 머리털이 붉다는 것.
아마도 원나라가 멸망하고 한반도에 들어온 유목민, 달단(타타르)의 후손으로 추측되었다.
조선인 관점에서야 괴상하게 생겼지만, 내가 보기엔 중동의 미남처럼 보였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네.
600년 정도 뒤에 태어났으면 스포츠 스타든, 연예인이든 한 이름 날렸을 것 같은데.
“저······ 나리.”
“무슨 일이죠?”
“저는 천민입니다. 아버지는 화척(사냥꾼)이고, 어머니는 재인(광대)이죠. 나리께서 말씀을 높이는 건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고기와 놀이를 좋아합니다.”
“예?”
“고기와 놀이를 좋아하기에,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하는 화척과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재인 역시 귀하게 생각합니다.”
“······.”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데다가, 이 녀석은 특히 잘 해줘야 한다.
미지의 세계에서는 이 녀석이 내 최후의 보루니까.
게다가 무사히 원정에 성공해서 돌아왔을 때, 이 녀석이 혀를 잘못 놀리면 엿 되는 수가 있다.
‘강해인 나리는 명나라의 환대에 반쯤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말을 했다간 내 계획이 대차게 꼬일 테니까.
“그래도 역시 말씀을 편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나라 사람들과 같이 있는데, 저 같은 천인에게 너무 정중하게 대하시면 얕잡아 보일 우려가 있습니다.”
“천한 일은 없습니다. 천한 사람도 없고요.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뿐입니다.”
신분제 사회이기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같은 소리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말은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불편하시다면 말은 편하게 하겠습니다. 괜찮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검이 특이하네?”
일반적으로 조선에서 쓰이는 검과는 그 생김새가 확연히 달랐다.
검날이 뒤쪽으로 확 꺾여있는 장검.
게임에서 많이 보았던 샴쉬르를 닮았다고 할까.
검에 조예는 없지만 상당한 명검 같다.
“아버지께 물려받았습니다.”
“활도 좋아 보이는데? 잠깐. 그거 편전이네?”
“전하께서 하사하셨습니다.”
편전의 위력은 조선 밖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국에서는 조선의 비밀병기라고 할 정도로.
다만 만들기는 어렵고 다루기는 더 어렵다.
숙련자가 아니라면 이상한 데로 날아가거나 자기 손바닥 꿰뚫기 좋기에, 장군이나 편전수가 아닌 이상 안 쓰느니만 못한 물건이다.
“편전은 군사기밀이잖아. 명나라 수군 앞에서 쓰는 건 문제가 될 것 같다만······.”
“전하께서는 ‘되도록 자제하되,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호.”
전하의 세심한 배려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이국적인 외모의 석피를 내 호위로 선택한 이유도 해외에서 녹아들기 편하도록 고려한 것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가자. 명나라를 너무 기다리게 하면 안 돼.”
“예. 나으리.”
우리는 역참에서 말을 바꿔 타며 쉬지 않고 달려 하루 만에 포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뭐?”
“삼보 태감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배에 오르시지요.”
정화가······.
직접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