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48
047화 나는 용왕이 아닙니다 (2)
기본 방어 전략을 수립한 후 우리는 팔렘방 외항에 머물렀다.
유흥을 비롯한 먹거리, 즐길 거리는 전부 80km 안쪽 내항에 있는 상황.
평소라면 교대로 즐기게 해줬겠지만, 언제 해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강행군 끝에 전투 준비 및 경계 임무라니.
당연히 선원들의 불만은 쌓일 수밖에 없······.
“괜찮아유~”
“왜 괜찮냐?”
진심으로 궁금한데.
“선장님도 같이 하잖아유~”
“전투가 끝나면 선장님이 알아서 허락해주시겠죠.”
“물론 선장님께서 잘 챙겨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그래도 좀 더 챙겨주는 거 잊지 마세요!”
분위기가 대체로 이렇다 보니 불만이 있어도 드러내는 이가 없었다.
“물이 빠져야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예?”
“아니다.”
승리에 도취하여 아픔을 잊고 있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구나.
나.
그리고 진조의.
패자는 몰락하고.
승자는 독식한다.
따라서 절대 질 수 없다.
“이소군.”
“예. 대인.”
“안타깝지만 너도 예외는 아니야.”
마음 같아서는 내항에 있는 안전한 왕궁으로 보내고 싶다.
하지만 우리 선단은 온갖 민족과 종교, 국적이 섞인 혼성 부대.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진다.
“만약 대인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셨다고 해도, 저는 단연히 거부했을 것입니다. 이제 겨우 입지를 잡아가고 있으니까요.”
이소군은 이전에 뜨거운 화약 재를 맨손으로 긁어내면서 공을 세웠다.
그 덕에 그녀를 백안시하는 이는 이제 없다.
“좋아.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줄게.”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이번 전투에서는 분명 부상자가 나올 거야.”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고.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전투로 인해 죽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어.”
“상처가 도져서 죽는 이가 더 많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처가 왜 도질까?”
“적절한 약을 처방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위생’이라는 것 때문이야.”
“위생······ 이요?”
인간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잘 먹고, 잘 쉬어서 충분한 면역력을 확보한다면 어지간해선 죽는 일이 없다.
하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그보다 강력할 때가 많다.
특히 상처가 난다면 더욱 그렇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맹장은 ‘이질’로 젊은 나이에 급사하는 예가 많은데, 이 대부분이 감염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될 정도니까.
“간단히 말해서 약보다 깨끗한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인간의 수명을 급격하게 올린 3대 발명품.
비누, 질산암모늄(비료), 항생제.
유감스럽게도 내가 화학 지식이 빈곤해서 만들어내진 못했다.
비누는 기름에 잿물을 섞어서 어쩌고······ 라고 들어본 것 같은데 시도해본 적은 없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가난했기에 기름 구하는 것부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와······ 기름이 그렇게 비싼 줄 처음 알았다.
심지어는 돼지비계를 녹여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비싸더라.
한국에서는 정육점 가서 말만 잘하면 공짜로 받을 수 있지만, 조선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대신 원정대에는 비누를 대신할 만한 물건이 실려 있다.
바로 무환자나무의 열매.
이름부터가 무환자(無患者), 환자가 없음을 뜻하는 이 나무의 열매는 전염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염병을 최대 난관으로 생각한 정화는 이 열매를 배에 가득 실었다.
현대 기초 의학지식을 지닌 나는 나무 열매가 전염병을 예방한다는 말에 회의적이었으나 의외로 효과적이었다.
열매가 아니라 열매껍질이.
열매는 약재로 쓰고 열매껍질은 비누 대용으로 사용하는데, 기름 묻은 손이 참 잘 닦였다.
계면활성 성분이 있는 듯했다.
“부상자를 위해 깨끗한 치료소로 만들고 지휘해줘. 네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청결한 장소여야 할 거야.”
“저도 함께 싸울 수 있습니다!”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투 이후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일은 네가 적임이야.”
“왜 그렇습니까?”
“우리 중 유일하게 상류층 생활을 해봤으니까.”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
다른 사람에게는 ‘깨끗해야 해!’라고 말해도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청결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까.
쥐와 벼룩이 돌아다니는데도 ‘이만하면 깨끗하지 않습니까?’라고 되묻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특히 환부를 감싸는 면포는 겉보기에 깨끗해 보이더라도 물에 삶고 햇볕에 잘 말려둬. 환부를 닦을 땐 한 번 끓였다가 식힌 물로 닦아내고. 그게 약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항이다.”
“알겠습니다. 대인의 명을 받들어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단순히 그녀를 배려해서 후방으로 빼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듯했다.
“한 환자를 치료하고 나면 무환자 열매껍질로 손을 씻고, 그다음 또 다른 환자를 봐. 환부를 만졌던 손으로 다른 환자를 만지면 큰일 날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걸로도 모자라긴 하지만, 이 이상으로 하기도 힘들다.
새삼 600년 뒤의 미래가 얼마나 발전한 건지 깨닫게 되네.
“바쁘십니까.”
한창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데, 갑옷을 입은 시이저가 무리를 이끌고 다가왔다.
보급품을 가져온 듯했다.
“준비라는 건 아무리 해도 모자라지요.”
“용왕이지 않습니까. 신묘한 술법으로 손쉽게 해결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몇 번을 말씀드리지만, 저는 용왕이 아닙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시이저는 호탕하게 웃었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연기하고 있다기보다 천성이 그러한 것 같았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그녀의 말에 아유타야에서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이쪽으로 전향한 해적의 말에 의하면 해적왕의 본거지는 믈라카 해협이 아니라 팔렘방이라고 했다.
하지만 외항의 상황으로 보건대, 해적이 끼어들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내항 도시 쪽에 첩자가 있겠지.
그것도 상당한 수가.
아마 해적왕이 올 때 맞춰서 양동 작전을 펼칠 것이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꼴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역시 외부인이니 내부의 적을 상대하는 건 무척 어렵다.
“분명 팔렘방 내부에도 해적왕의 첩자나 심복이 있을 겁니다.”
“그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확신하십니까?”
“예. 덕분에 골치가 아픕니다. 해적왕을 막으려면 화포의 힘이 필요한데, 적이 언제 올지 모르니 배에 화약을 실어놓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만약 누군가 배에 불을 지른다면 심한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연쇄 유폭이 일어나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하게 될 수도 있겠지.
“차라리 외항을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외부 항구에서 팔렘방 내부 항구까지의 거리는 대략 80km.
이 시대의 배로는 대략 5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게다가 바다와는 달리 폭이 그렇게 넓지는 않으므로 강에 진을 치고 화포를 쏘아대면 상대의 숫자가 몇이든 우주 방어가 가능하다.
“불가합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이전에 그런 방식으로 했다가 큰 낭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죠?”
“팔렘방 내항에 잠복해있던 진조의의 수많은 첩자가 밤에 일제히 들고 일어나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왕국 군은 피아를 식별하기 어려웠고 그 혼란 통에 그만······.”
함락당했다.
“팔렘방을 수복한 후, 첩자를 색출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성과는 적고 민심만 나빠졌지요.”
“첩자라······.”
이쪽으로 전향한 해적이 있는 걸 보면, 분명 저쪽은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는데······.
그림자 속에 숨어있으니 그 상황을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선장님!”
선원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항구에 작은 배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음?”
“사공이 없습니다.”
지금 시각은 아침이다.
이 시기는 해무가 짙게 끼는 시기.
그런데 사공도 없이 작은 배를 보냈다?
무언의 기 싸움이다.
나도 네가 한 거 할 수 있다.
잘난 척하지 마라.
당연한 말이지만 내 업적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항구 근처에서 조각배 하나를 띄우고, 바람 때를 맞춰 이쪽으로 향하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까.
그런데도 이런 일을 한다는 건 그만큼 저쪽도 심하게 압박을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유령 함대, 혹은 귀신 함대의 소문이 점점 퍼지고 있으니까.
“그냥 배만 온 거야?”
“그게······.”
선원은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었으나, 이미 공포에 전염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 눈치챘다.
“똑바로 말해. 안에 뭐가 있었지?”
“······.”
“시체가 있었다. 사람 머리가 여러 개. 그렇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해적왕 머리로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밖에 없을 테니까.”
역사를 배울 때 간혹 이런 내용이 나온다.
‘OOO 장수는 적의 도발을 참지 못하고 성문을 열고 뛰쳐나갔다가 매복에 걸려 성을 빼앗겼다.’
글로 볼 때는 왜 그걸 못 참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당해보면 알게 된다.
상세한 역사 기록을 보면 ‘야 이 바보 멍청아!’같은 귀여운 도발을 하지 않는다.
눈앞에서 포로를 천천히 생매장한다든가.
포로의 목을 베고, 그 머리로 축구를 한다든가.
인근 백성들을 잡아서 구해주지 않는 나라를 향해 저주를 퍼붓게 하기도 한다.
너희 가족도 이렇게 될 거라면서.
저주가 끝나면 잔인하게 죽인다.
시체도 알뜰하게 잘 쓴다.
투석기로 성안에 집어넣으니까.
때로는 산 사람을 투석기로 날려버리기도 한다.
전염병을 유도하기 위한 생화학 테러라는 말이 있던데, 그보다는 성안에 시체 파편을 뿌려서 공포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더 애용된다.
이러한 공포를 가장 잘 이용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칭기즈칸이라고.
“전부 불태워. 굳이 적의 도발에 당해줄 이유는 없다.”
“하오나······.”
“왜?”
“아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누구?”
“마상척 대인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낯익은 원정대 선원의 얼굴도 보입니다.”
포로로 잡혔던 이들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과 ‘낯익은’이라는 수식어의 모순에서 그들의 머리가 상당히 훼손된 상태라는 걸 짐작하게 했다.
원정대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상당한 고문을 했겠지.
단순 화풀이도 당했을 테고.
“원정대 규칙에 따르면 사망자는 전부 수장하라고 되어 있다.”
이 규칙을 만든 정화조차도 7차 원정 도중 사망하자 예외 없이 수장되었다.
“수장해.”
“괜찮으시겠습니까? 선장님이 걱정되어서 그렇습니다.”
“뭐가?”
“혹여 명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선장님을 해코지하지 않을지······.”
정화라면 날 옹호해주겠고.
영락제라면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그걸로 약점 잡아 목줄을 채우려 들 것 같은데······.
“진행해.”
“예!”
나중 일이다.
당면의 일이 더 중요하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만 하면, 사소한 시시비비는 전부 덮어지기 마련이니까.
다만······.
산서 마가인지 뭔지 하는 가문과는 완전히 틀어질 각오를 해야겠네.
그들로서는 해적왕보다 나를 원망하기 더 쉬울 테니까.
최악의 경우 명나라의 외교를 담당하는 예부와도 싸울 수도 있고.
본의는 아니지만, 슬슬 권력 투쟁에 참여할 계획을 짜야겠다.
언제까지고 명나라 똥꼬 닦아주면서, 숙청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릴 수는 없으니까.
***
사태는 일파만파 퍼졌다.
나름 입단속을 했음에도 워낙 목격자가 많은 탓에 공포는 소문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갔다.
특히 아직 첫 전투도 치러보지 못한 참파의 해군이나, 그간 해적왕에게 수도 없이 시달려온 팔렘방의 해군의 상태가 심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싸워보기도 전에 무너질 판이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외항에 머무는 모든 군을 한 곳으로 모으고, 단상 위에 섰다.
내 옆에는 시이저가 섰다.
내가 하는 말을 곧바로 통역하기 위해서.
단상 위에 서자 병사들의 표정이 훤히 보였다.
완전히 공포에 물든 모습.
반면, 전투를 겪어본 원정대 선원들은 공포가 상대적으로 덜 했다.
“두려운가.”
“······.”
“너희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겁에 질린 개가 더 크게 짓는 법! 작은 짐승이 몸을 부풀리는 법! 적이 이런 도발을 하는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다! 본인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숨기기 위함이다!”
진정한 강자는 짖지 않는다.
그 근거로 나는 미군이 열병식을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악몽을 꾼 적이 있는가? 저항할 수 없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나를 봐라. 그리고 자신을 봐라. 우리는! 이곳에! 살아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시이저가 통역을 시작했다.
심지어 그녀는 효과적인 연설에 필요한 나의 몸집이나 발성법까지 그대로 따라 했는데, 그 덕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듯했다.
“악몽을 꾸는 이유는 너희의 머리가 막연한 불안을 기억으로 구체화하여 저항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정확한 이해는 필요 없다.
느낌만 전달할 수 있으면 된다.
“심장이 빨리 뛰는가? 심장이 뛰는 이유는 어떻게든 공포에 저항하여 싸우라는 내면의 목소리다!”
지지 말라고.
넌 할 수 있다고.
심장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심장이 포기했다면, 심장은 뛰지 않는다.
“이렇듯 강인한 너희가 어찌하여 해적왕을 두려워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너희는 해적왕이 두렵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보다 강하다면 상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상대가 정말 강한지는 부딪혀 봐야 안다.
“결국!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해적왕이 아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반면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단결하여 싸운다면 무조건 이긴다는 사실을.
나는 나를 믿고.
우리 배에 잔뜩 실려 있는 대포와 화약을 믿는다.
“여기서 쓰러질지 더 높이 올라갈지는 너희의 선택이다. 나는 짐승만도 못한 이들에게 내 가족, 내 후손, 내 나라가 학살당하는 미래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내 수신호에 맞춰 석피와 부선장, 무함마드 등이 일제히 깃발을 들어 올렸다.
적, 백, 황, 청, 녹.
오방색이 다섯 줄로 배치된 깃발.
본래는 풍어를 기원하는 만선(滿船)기다.
하지만 용 신앙이 퍼지면서, 가운데인 황색에 용(龍) 문자를 쓰는 풍습이 생겨났다.
용왕기.
드넓은 바다를 지배하는 용왕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깃발.
“난 싸울 것이다. 너희가 모두 도망치더라도 나만은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너희는 어떠한가! 해적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 살려달라고 빌겠는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 진짜.
정말 하기 싫었던 건데.
살아남으려면.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
“힘을 합쳐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우리에겐 용왕의 가호가 함께한다!”
그 순간.
팔렘방 앞바다를 흔들 정도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