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53
052화 전후처리 (1)
전투가 끝나고 정화는 곧바로 나를 찾았다.
“······고생했네.”
목이 메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만약 이것이 연기라면, 나는 아마 인간불신에 걸리지 않을까.
“내가 판단을 실수했네. 진조의라면 분명 정예만 이끌고 구항으로 향하고, 일부는 남겨 우리의 발목을 잡을 거라 생각했어.”
“싹싹 긁어모아 왔더군요.”
“혹시나 밀림에 숨은 게 아닐까. 매복해서 뒤를 공격하는 식으로 시간을 끌려는 게 아닐까. 혹은 배를 버리고 육로로 이동한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떠올랐지.”
“이해합니다.”
전쟁이라는 게 본래 예상대로 되는 일이 없다.
삼국지연의처럼 뛰어난 책사가 ‘적은 반드시 이럴 것입니다.’라고 조언하는 예도 많지 않고, 했다 해도 수없이 틀린다.
실제 책사는 조언자보다는 매 맞는 시종에 가깝다고 한다.
뛰어난 장군이 패배했을 때를 대비하여, 그 책임을 대신 지기 위해 배정한다고.
참모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시기는 머스킷이 보급된 이후.
평범한 농민도 손가락 까딱하는 것으로 수십 년간 수련한 기사를 죽일 수 있을 때부터다.
이때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에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시기로, 그전에는 아무리 작전을 잘 짜봐야 정예 기사단이 짓밟으면 아무 의미 없었다고 한다.
“자네의 공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폐하께 보고하여 충분한 포상을 받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하오나 선원들의 공을 더욱더 챙겨주십시오. 특히 참파의 해군은 훈련받은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으나, 하루 내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하루 내내 말인가? 대단하구나.”
신병은 생각보다 쓸모가 없다.
막말로 10분에서 15분 싸우면 탈진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물론 이건 창이나 검을 들었을 때 이야기고, 대포를 다룰 때는 상대적으로 체력 소비가 덜 하긴 했다.
그래도 태풍 속에서 한나절을 버틴 건, 거기에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압박 속에서 끝까지 싸웠다는 건, 역사에 길이 남을 정신력의 승리라 할 수 있었다.
“한 달 만에 이 정도까지 싸우게 만든 자네의 능력도 대단하이.”
“과찬이십니다.”
“이런. 힘든 사람을 붙잡아두고 너무 말이 많았군. 어서 가서 쉬게.”
“감사합니다.”
다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한곳에 모여 열심히 식사를 하는 우리 부대로 향했다.
진짜 밥은 기가 막히게 잘 먹네.
아주 복스러워.
“힘든 거 아는데, 잠깐만 집중하자.”
나도 힘들다.
빨리 끝내자.
“부상자 손.”
“““······.”””
“왜 아무도 손을 안 드냐. 조금이라도 다쳤으면 전부 말해. 빨리 치료해야 덧나지 않지.”
그래도 없었다.
정말?
아무도 안 다쳤다고?
그럴 리가.
“이소군이 부상자 치료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냥 철수하라고 해야겠다.”
그러자 100여 명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야 이······.
“작열탄을 준비할 때 살짝 데였습니다!”
아주 살짝 데였네?
“태풍 때문에 배의 벽에 머리를 박았습니다!”
괜찮아.
원래 못생겼는데, 조금 더 못생겨진 것뿐이야.
“배가 흔들려서 굴러다니는 포신에 발톱을 찧었습니다!”
와. 넌 아프겠다.
“넘어졌을 때 발목을 삔 것 같습니다.”
발목이 두 배로 커졌네.
이걸 참으려고 했다고?
“뱃멀미가 가라앉지 않아 계속 토할 것 같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잘 먹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토할 것 같은 게 아닐까?
“방금 체한 것 같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손에 든 고기부터 놓고 말하자.
“또 없어?”
“““없습니다!”””
부상자 명단을 전부 받아 적었다.
사소한 고통이라도 일단 치료받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아픈데도 숨기는 일이 없지.
“각 조장은 사망자 보고해.”
“““······.”””
“없어?”
“““없습니다!”””
“왜?”
“““······.”””
전사자는 보통 선상 백병전이 일어나면 많이 발생한다.
함포전 위주의 전투에서 전사는 보통 바다에 빠져 익사하거나, 화살이나 대포에 맞아 죽는다.
이번처럼 우리만 일방적으로 쏘는 전투에서는 전사자가 나올 확률이 극도로 줄어든다.
하지만 우리는 태풍 속에서 싸웠다.
정확히는 인도차이나반도로 향하는 태풍의 끝에 걸렸지.
이렇게 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충격으로 튕겨 나가 강에 빠져 죽어도 이상하지는 않다.
“저······.”
조장 하나가 손을 들었다.
“응?”
“동료는 아니지만, 선장님께서 구하라고 하셨던 포로 중에 강에 빠진 이가 있습니다. 현재 생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자 몇 명이 추가로 보고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선단에서 사망자는 없고, 구한 포로 중에서 13명 정도가 강에 빠져 실종된 듯했다.
안타깝지만 전쟁 중 실종은 보통 사망이라는 뜻이다.
다만 보고하기는 어렵다.
그 포로가 누군지 아는 바가 전혀 없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너희 중에 죽은 이가 없어서. 천운(天運)이었다.”
이것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
“으으윽.”
우두둑.
기지개를 쭉 켰더니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대인.”
방문 밖에서 이소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이소군이 들어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참 예쁘다.
우리 애들이 어떻게든 치료받으러 가려는 이유를 알겠네.
“왔어? 부상자들은?”
“전부 치료했습니다. 중상자가 적고, 시이저 공주가 약초와 면포, 그리고 사람을 충분히 지원해주었기에 빨리 끝날 수 있었습니다.”
“계속 잘 봐줘. 상처는 제때 치료해야 후유증이 적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안 쉬십니까?”
“기록을 정리해야 해서.”
기억이 온전할 때 써놔야 한다.
안 그러면 상세한 부분을 까먹을 수 있으니까.
중요한 것만 쓰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의외로 사족도 중요하다.
그 사족이 중요한 내용에 신뢰성을 부여하니까.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이 위대한 기록문화유산으로 칭송받는 이유가 온갖 일을 다 적어놓기 때문이다.
‘킬방원이 사냥 나갔다.’
이것만 쓰면 그런가 보다 한다.
하지만,
‘킬방원이 사냥 나갔다가 낙마했다.’
‘낙마한 사실을 사관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시다.’
이렇게 쓰면 재미도 있고, 훨씬 더 신뢰성이 올라간다.
나는 자랑스러운 조선의 사관.
내가 쓰는 기록이 곧 동남아시아의 역사다.
그 자부심으로 항상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원정대나 팔렘방에도 사관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을 믿고 일단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허. 조선의 사관은 레베루가 다르다 이 말이야.”
“레베루······ 가 무엇입니까?”
“그런 게 있어.”
명나라 사관이 쓴 기록은 어차피 초기화될 테고.
팔렘방 사관이 쓴 기록은 굉장히 간략할 텐데.
내가 상세히 적어둬야 후손들이 기뻐하지 않겠는가.
특히 600년 뒤 수험생들이 ‘강해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좋아 죽게 해주지.
“아니지. 역사만으로는 너무 쉬우니까, 송강 정철처럼 문학을 써야 하는데······.”
각 세계의 문학을 도입해서 조선의 문학을 다양화하면 수험생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여기에 내가 알고 있는 시를 미리 써두면, 후세의 시인들이 더 발전된 시를 쓸 터.
공부할 게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야.
배우고 또 배우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 즐거움을 나만 느낄 수는 없으니까.
“대인. 무척 사악한 표정을 짓고 계십니다. 10년 치 사랑도 식을 것 같네요.”
“그럼 이제 9,890년 남은 건가?”
“그동안 늘어난 게 있어서 39,890년 남았습니다.”
봤지?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남자······.
“어······.”
39,890년은 너무 무거운데.
게다가 별일 없었는데 증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이러다 얀데레로 진화하는 건 아니겠지?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아무것도.”
다행히 동공에 초점이 없다거나 하는 모습은 없었다.
조심하자.
Nice ship을 타야 하는데, Nice boat를 탈 수도 있다.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볼 수 있다면 봐도 돼.”
이소군은 의문을 띄우더니 기록을 보았다.
“이건······.”
“사관에게 기록은 생명이니까.”
기록은 전부 한글로 기록해두었다.
오직 나만이 읽을 수 있도록.
“나중에 조선으로 가면 옮겨 적을 거야.”
“그럼 대인께서 새로운 문자를 고안하신 것입니까?”
“내가 고안한 건 아니고······ 음······ 여러 가지 문자를 조합한 거야.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에 대해선 함구하도록 해. 괜히 곤란해질 수 있으니.”
어디까지나 한글은 세종대왕님이 창제하신 게 되어야 한다.
공적을 가로챌 생각은 조금도 없다.
대신 최초의 국문 소설 작가 타이틀은 내가 가져갈 생각이지만.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역사대로라면 한글은 세종 후기, 그러니까 대충 3~40년 뒤에나 만들어진다.
그때까지 존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칫 나비효과가 일어나서 충녕대군 대신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를 유지하다 왕위에 오를 수도 있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죽는 한이 생길 것 같으면 말해도 된다.”
암호라고 우기면 되니까.
우리 킹방원 전하는 사관 제도를 인정하고 있으니 사초의 내용을 숨기는 걸 뭐라 하지는 않을 터.
영락제만 아니면 굳이 따지고 들 사람이 없다.
진짜 그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해.
개차반인데 당대 최강국의 황제에, 본인이 전쟁을 잘하니 이걸 진짜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싶다.
영락제가 몽골 깊숙한 곳까지 원정 간 사이에 한왕 주고후를 부추겨서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고······.
아니야.
주고후 그 새끼는 정통성도 없는 주제에 평가가 바닥을 기고, 민심도 좋지 않다.
뭔가 퍼즐 하나만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대명전국지새 같은 거.
한왕 주고후가 삼국지의 원술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길지도?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영락제가 급사하는 거다.
전쟁이든.
병이든.
그렇게 되면 황태자 주고치와 한왕 주고후 구도가 만들어져 내가 좋아하는 명나라가 두 배로 많아질 수 있다.
“꿈 같은 이야기네.”
“꿈 같은 이야기도 좋지만, 일단 꿈을 꾸시러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무척 피곤해 보이십니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 잘 안 올 것 같다.”
“재워드릴까요?”
“자장가라도 불러주게?”
이소군이 멈칫했다.
그리고 미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인께서는 참으로 훌륭하시고 안목도 남다르십니다만, 사소한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순진하시군요.”
순진한 척하는 거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처첩제는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그래도 순서라는 게 있으니까.
본처는 확실하게 대우를 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가정의 기강이 무너진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아무튼, 서로에게 좋을 건 없다.
할 건 하더라도 지킬 건 지키면서 해야지.
“아무튼, 안 잘 수는 없으니 난 이만 자러 간다.”
“푹 쉬십시오.”
***
하루를 꼬박 잤다.
이렇게 피곤한 데도 새벽 5시가 되자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걸 보면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세수를 마친 후 어제 미처 가지 못했던 곳으로 향했다.
해적 포로가 잡혀 있는 곳.
그곳에 해적왕 진조의가 잡혀 있다고 들었다.
“수고가 많아.”
“예!”
“진조의를 보고 싶은데.”
“가장 깊은 곳으로 가시면 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괜찮아. 혼자 다녀올게.”
“예!”
경비병에게 인사를 건넨 후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불쾌한 냄새와 비위생적인 환경이 나를 반겼다.
진조의는 감옥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동남아시아 제해권을 두고 하루 내내 싸웠지만, 얼굴도 모르는 대적.
“어쩌다 이렇게 됐냐.”
진조의의 상태는 처참했다.
크게 화상을 입은 듯 반신이 녹아 있었고, 화상의 후유증으로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었다.
아마 가만히 놔두더라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너는?”
쇠를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너를 막은 놈.”
“네가 강해인이구나.”
“왜 이런 짓을 했지?”
“재미없는 질문이로구나. 그냥 그렇게 되었다.”
“아무 이유 없었어?”
“잘 먹고 잘살고 싶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 넌 거기까지였구나.”
“······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라는 말은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다.
순수하게 내가 왕후장상이 되고 싶다는 의미니까.
독재를 막고 싶은 게 아니라, 독재가 부러워서 그 권력을 훔치고 싶다는 뜻.
사상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면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내세워야 한다.
그것이 도적과 혁명군의 차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기대 이하였다. 잘 가라. 배웅하지는 않겠다.”
진조의는 해적왕이라 불릴 정도로 큰 세력을 일궜지만, 결국 도적에 불과했다.
그 점이 무척 아쉽네.
“······묻고 싶은 건 없나?”
“해적에게 무슨 답을 구할까.”
그래도 해적왕이라니까 이 드립은 꼭 한번 쳐보고 싶었다.
“원보(元寶 : 으뜸가는 보물, 원피스)는 실존하냐?”
“크크큭. 하하하하하하!”
장난으로 말했던 거였는데, 진조의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순진한 척하더니 그걸 노리고 있었구나! 이런 음흉한 놈을 보았나!”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