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55
054화 전후처리 (3)
“조선에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안 가도 되긴 한다.
딱히 그리운 사람도 없으니까.
하지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으면 몰라도, 가면 안 된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자네를 위해서야.”
“······.”
“현재 대명과 조선은 ‘어떤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긴 상황일세.”
정화는 인도네시아 팔렘방에 있는데도 명나라 내부의 소식을 훤히 알고 있네?
원정대는 전부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는다.
일부는 외교를 위해 남기도 하고, 일부는 명나라와 본대를 오가며 소식과 보급을 전해주기도 한다.
특히 이건 정화의 버릇인데, 그는 조공·책봉이 완료되면 그 나라의 사절단을 원정대의 배에 태워 명나라로 보낸다.
덕분에 원정대는 항상 바쁘다.
이걸 알면서도 내가 놀란 까닭은 영락제의 반응 때문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정화에게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전부 다 알려주는 모양이니까.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네가 조선에 가는 순간, 조선 왕은 분명 자네를 활용하려 할 터. 괜히 민감한 외교 문제에 끼어서 난감한 일이 벌어질 수 있네.”
“저는 대명의 내각군보이며, 조선의 안정 사관이기도 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는데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모른 척할 수 있지.
대놓고 눈뜬장님이 될 수도 있다.
근데 그냥 발 빼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이잖아.
없어 보이는 것도 괜찮은데, 충성심을 의심당하면 인생 피곤해진다.
그러니까 우리 정화 제독님.
좀 더 강하게 말해주세요.
안 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못 한 게 되도록.
“원정대의 일에만 집중하게. 잠깐만 참으면 자네의 미래는 창창대로 일 걸세.”
“하오나······.”
“다시 말하지. 자네가 끼어들어서 해결될 일도 아니거니와, 대명과 조선의 우애를 해칠 정도의 사항도 아닐세. 조용히 모르는 척하게.”
“제독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어휴. 정화가 아니었으면 멋모르고 조선에 갔다가 난감한 일을 겪을 뻔했잖아?
근데 민감한 문제가 뭘까.
공녀와 환관 요청이라면 대월 정벌 이후에 벌어지니까 아닐 테고.
설마 나 때문에?
‘강해인 같은 유능한 인재는 내 신하다!’라며 싸우는 건가?
“그래도 호기심 많은 자네라면 내용이 궁금할 테니 간략하게 말해주자면 국경 분쟁일세.”
“아 네······.”
“그리고 대명에 사서인 조훈조장에 관련된 문제도 있지.”
“종계변무를 말씀하시는군요.”
“바로 그렇네.”
사건을 요약하자면 고려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의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인 공양왕 시절, 이성계 일파에 의해 권력을 잃은 반이성계 파벌 중 명나라로 망명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성계에게 앙심을 품다가, ‘이성계는 공민왕을 시해한 권문세족 이인임의 아들입니다.’라는 거짓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명나라는 곧이곧대로 받아 적었다.
이게 엄청난 문제인 게, 유교 사회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건 도덕적으로 엄청난 결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명나라는 유교의 총본산.
비유하자면 중세시대 바티칸 교황청 기록에 ‘현 프랑스의 왕은 기독교 왕조를 무너뜨린 무슬림의 후손이다.’라고 쓰인 격이다.
당연히 조선에서는 이성계의 명예를 지키고,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사신을 보내어 정정을 요청했다.
명나라에서는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으나······.
11년 전, 홍무제가 조선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시작되는 국서를 보냈다.
조선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난리가 났다.
선배들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태조 이성계는 그야말로 역린을 눌린 용처럼 발작했다고.
태조 이성계는 다시 사신을 보냈어 정정을 요청했다.
그 사신에게 조선 왕실의 족보는 물론,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세세한 사유서까지 함께 보냈다.
그때도 명나라는 알았다고 했다.
그러다 3년 전, 명나라로 갔던 사신이 명나라 기록인 조훈조장을 봤는데,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우리 킬방원 전하께서 발작하시며 사신을 보냈다.
온갖 사료를 다 긁어모아 함께 보냈다.
그러자 영락제는 ‘잘못됐으면 고쳐야지.’라고 하교를 내렸다고.
하지만 난 안다.
아직 안 고쳐졌음을.
왜냐하면, 저거 200년 동안 안 고쳐지기 때문이다.
선조 때인가 정정되지 아마?
이 200년간의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 분쟁을 가리켜 종계변무라 한다.
종계란 종가의 혈통, 변무란 확인하여 억울함을 밝힌다는 뜻이다.
“아직 안 고쳐진 모양입니다.”
안 고친 거야 알고 있지만, 그걸 어쩌다 들킨 거냐.
잘 좀 숨기지.
“총명한 자네라면 짐작하겠지만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닐세.”
“예. 대명에서 조선을 제어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니까요.”
여차하면 이를 명분으로 쳐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의 확실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으로서는 발작 버튼이요, 심각한 뒤통수를 맞은 셈.
그런 전가의 보도를 그냥 버릴 바보는 없다.
영락제는 당연히 바보가 아니고.
하지만 대놓고 정정을 거부하면 아예 사이가 틀어질 수 있으니 ‘해주겠다.’라고 말하며 안심을 시키고 실수인 척 내버려 두는 식으로 계속 괴롭히는 것이지.
“만약 자네가 조선으로 가게 되면, 조선 왕은 분명 자네에게 종계변무를 해결하라고 명할 터.”
“······.”
“게다가 장백산 인근과 회령의 여진족에 대한 지배권 문제도 첨예하게 갈등을 일으키고 있네.”
4군 6진 개척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사에서는 세종 시기에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실은 태조 이성계 때부터.
아니, 고려 태조 왕건 때부터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시작된 북진 정책의 연장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쭉 진행되다가 세종대왕 때 마침표를 찍은 셈이지.
“아무튼, 이런 상황이니 조선으로는 가지 말게.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누가 뭐라 하거든 내가 제독의 권한으로 빠르게 돌아오라 명했다고 하게.”
“예. 제독.”
어휴. 하마터면 조선에 갔다가 인생 엿 될뻔했잖아.
종계변무야 200년 뒤 최속의 군주 선조 때 빠르게 해결될 테고, 국경 문제는 우리 킹갓세종대왕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테니 나는 빠져있자.
“하하하. 무슨 말씀을 그리 재미나게 하십니까.”
화려한 궁중 의상을 입은 시이저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갑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엄청난 글래머네.
이소군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데, 그보다 한 차원 위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절로 그쪽으로 눈이 갈 정도로.
“세상 사는 이야기지요.”
“하하하. 용왕도 인간의 육신을 가지게 되니 속세에 얽매이게 되는 모양입니다.”
“저는 용왕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비밀 사항을 말해버렸습니다. 강 사관은 용왕이 아니지요. 암요. 아니고 말고요.”
싸우자는 건가?
······내가 질 것 같으니 참자.
“정화 제독께서는 이대로 팔렘방에 머물면서 마자파힛과 외교 관계를 조정한다 하셨고······ 강 사관은 어쩔 계획입니까?”
“용무가 있어 명나라로 돌아가 봐야 할 듯합니다.”
“언제요?”
“준비되는 대로 바로 가야지요.”
시간은 금이라고 친구.
교역품 싣고 배 타기만 하면 돈이 굴러올 텐데 어찌 쉴 수 있겠는가.
휴식이야 배에서 쉬면 되지.
“무척 아쉽습니다. 금방 돌아오시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곧장 오가면 돈이 안 되잖아.
가능한 곳은 전부 들렀다 와야지.
“하긴. 강 사관을 원하는 곳은 많으니 쉽게 돌아오긴 힘들겠지요. 무엇보다 명 황제의 총애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니 남경으로 가면 영락제를 만나야 하네?
갑자기 가기 싫어졌다.
“하하하. 그럼. 우리 강 사관이 얼마나 폐하의 총애를 받는데. 잘하면 명 황실의 부마가 될 수도 있는 몸일세.”
내 속도 모르고 정화는 과하게 웃었다.
“······.”
하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웃어넘길 수 없는 단어가 들렸으니까.
“부마요?”
“부마라는 건 황실의 사위를 말하네. 영예롭고,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지.”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야.
“하하하. 제가 어찌 감히 명 황실의 부마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다못해 홍희제나 선덕제의 부마라면 그래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근데 영락제는 안 된다.
그 미친놈은 어울리지 않게 딸 바보로 유명하다.
영락제의 부마가 되기라도 했다간 제 명에 못 죽는다.
“전에 말한 것 같은데, 명나라 황실에서는 본래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한문이나 졸부의 집안으로 공주를 보낸다네. 이를 하가(下嫁)라고 하지. 따라서 자네라도 충분히 부마가 될 수 있다네.”
한문은 가난하고 문벌이 없는 집안을 의미한다.
내가 과거에 합격하긴 했지만, 명나라에서 보기엔 한문이긴 하다.
근데 솔직히 말해 명 황실 입장에서는 그 어떤 가문에 시집보내도 하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 대상이 조선 왕실이라 해도 말이다.
“게다가 소인은 이미 혼례를 약속한 여인이 있고, 심지어 첩도 둘 생각입니다.”
“허가장의 딸과 이소군을 말하는 거라면 괜찮네. 둘 다 첩으로 두면 되지 않는가.”
“부마가 어찌 첩을 두겠습니까?”
“자네가 왕후에 오른다면 첩을 둘 수도 있네.”
이건 또 뭔 개소리래.
조선 사람인 내가 어떻게 명나라의 왕후가 되겠냐.
명예직인 내각군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부마도 그 권세에 따라 첩을 들이기도 하지. 대표적으로 고려왕도 원나라의 부마였지만 후궁을 수없이 들이지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자네의 동의는 두 번째로 중요하네.”
“어······.”
“첫 번째는 폐하의 의지지.”
그렇긴 하다.
단적으로 우리 킬방원 전하도 이속의 아들을 정신 옹주의 부마로 삼으려다가 거절당하자 엄청난 보복을 가했다.
이속에게 곤장 100대를 치고 유배 보냈으며, 이속의 가문은 평민으로 강등하고 가산을 몰수했으니까.
물론 그냥 거절한 게 아니라, 감히 킬방원에게 ‘정신옹주는 몸종의 딸이라 싫어.’라고 패드립을 쳤으니 맞을 만하긴 했다.
그 몸종이 킬방원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 신빈 신씨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아직 일어난 일은 아니고, 약 7년 뒤에 일어날 일이긴 하지만.
근데 영락제는 우리 킬방원 전하보다 더한 인물이란 말이지.
“하하하. 명 황실은 하늘 위의 하늘 같은 느낌인지라 보통은 감당하기 어렵지요. 더욱이 용왕은 바닷사람이 아닙니까.”
잠시 침묵이 흐를 때 시이저는 자연스럽게 끼어들더니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정 걱정이 된다면 미리 혼례를 올리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금혼령이 내려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미리?
내가 이미 혼례를 약조한 사람이 있다고 말을 했던가?
“하하. 시이저 공주님. 아직 강 사관은 정식으로 왕후로 책봉된 게 아니니, 용왕이라는 말을 공식 자리에서 쓰는 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아직?
해적을 잡은 정도로는 왕후로 책봉되지 않는다.
왕후 책봉이 그렇게 쉬웠다면, 원나라를 몰아낼 때 활약한 장군들은 전부 왕후가 되었겠지.
“고유 명사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해적왕도 왕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렇게 불렀지 않습니까.”
“재미있는 말씀이로군요. 그런데 공주님께서 혼사를 꺼내실 정도면 설마 직접 나서실 생각입니까.”
정화는 평소처럼 온화한 표정이었지만,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이런 모습 처음 보는 것 같다.
“강 사관은 매우 매력적인 사내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팔렘방의 여왕이 될 몸이니까요.”
시이저는 나를 보았다.
“용왕께서는 당연히 팔렘방의 국서로는 만족하지 못하시겠지요?”
“······.”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게 맞나?
어쩐지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보시다시피 이런 사정이라 제가 지원할 수는 없겠군요.”
“그렇다면 굳이 끼어드실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만.”
“왜 없겠습니까. 그는 온 팔렘방에서 칭송하는 영웅인데 말입니다. 미래의 여왕으로서 괜찮은 가문의 딸, 혹은 아직 어리지만, 제 여동생을 보내어서라도 용왕과 혈연을 맺고 싶습니다.”
“자꾸 여왕을 언급하시는데 공주님이 왕의 딸이며, 팔렘방에서는 여자가 왕위에 오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도 함부로 보위를 언급하는 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아~ 미처 그 부분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시이저는 당당하게 가슴을 쭉 폈다.
“전후처리가 끝나는 대로, 저 시이저가 팔렘방의 3대 왕으로 즉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