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58
057화 지자요수 (3)
드디어 출항일이 다가왔다.
3개월 만에 귀향······ 은 아니구나.
명나라가 내 고향은 아니니까.
웅성웅성.
출항을 앞두자 많은 이들이 항구로 몰려들었다.
원정대의 출항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규모지만, 팔렘방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왔다는 점.
그리고 정화와 팔렘방의 왕 시진경, 차기 왕인 시이저까지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자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네만, 바다는 변화무쌍하여 예측이 어려우니 조심히 가게.”
먼저 정화가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감사합니다. 무사히 다녀오겠습니다. 다만······.”
“무엇인가?”
“남경에 도착할 때까지 진조의가 살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포로로 잡을 때부터 오늘내일하긴 했는데, 지금은 숨조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살아있는 걸 보면 명줄이 대단하다.
“굳이 그의 목숨을 신경 쓸 필요는 없네. 도적놈 죽었다고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하오나······.”
“중요한 것은 자네의 목숨일세. 무사히 잘 다녀오게.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예.”
“남경으로 가면 자네를 시기하는 이가 많을 걸세. 항상 상선약수를 기억하게.”
상선약수(上善若水).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로, 물은 항상 선하며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물은 항상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며 다투지 않으니까.
평소와 다르게 이렇게까지 우려하는 건, 그만큼 명나라 정치가 무섭다는 뜻.
그의 생각으로는 전쟁보다 정치가 더 위험한가 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낮은 곳을 향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워져 버렸다.
“저는 상선약수보다 지자요수라는 구절을 더 좋아합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움직이며, 어진 자는 오래 살며 고요하다.
논어에 나오는 구절.
지혜로운 자는 너와 나의 다른 점을 구별하고, 그 관계를 어떻게 원만하게 유지할지를 고심한다.
즉,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호기심이 많고, 지식을 얻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자네에게 어울리는 말이로구나.”
반면 어진 자는 나와 하늘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모든 가치를 지닌 하늘을 향하여 오르고 또 오른다.
즉, 수직적 관계를 지향한다.
“제독과는 달리 저는 고요하지 않으며, 중심이 없어 가볍고, 마음의 수양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을 지향하면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면 어디로 흐르겠는가.”
“아래로 흐르는 건 같습니다. 다만 목표가 아니라 과정일 뿐입니다. 저는 바다로 향할 생각이니까요.”
“그 또한 훌륭하다. 자네의 성격에 맞는 삶이겠어.”
어쩌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정화는.
서로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함께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성향이 너무나도 다르니까.
“혹시나 했는데 이걸 준비하길 잘했구먼. 받게나.”
정화는 내게 종이 두 장을 건네주었다.
“이것은 사례태감에게 주고······.”
환관의 우두머리를 태감이라고 부른다.
태감은 총 12명이 있는데, 그중에서 모든 환관을 총괄하는 사례감의 태감을 으뜸으로 쳤다.
본래 사례태감은 정화였으나, 원정대의 제독으로 임명되면서 다른 이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정화가 사대부의 적대와 견제를 받기는 하지만, 환관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인물.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사례태감이라 해도 정화가 훅 불면 날려버릴 수 있다.
“이것은 태감 황엄에게 전해주게.”
“황엄······.”
황엄은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태감이다.
그는 조선 출신인지라, 명나라에서 조선에 사신을 보낼 때면 항상 함께 왔으니까.
내가 갓 임관했던 2년 전.
그때만 해도 두 번 왔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자식이다.
환관이 여자를 밝히질 않나,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질 않나, 심지어 조정 대신은 물론 킬방원에게까지 갑질을 하더라.
‘조선에 복수하려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재물을 탐하고 무례한 행동을 자주 한다고 들었으나, 윗사람에 대한 복종은 확실하네. 맡은 바 임무도 확실하게 해내고.”
“지혜가 탁월하다 들었습니다.”
잔머리가 기가 막힌다.
창의적인 갑질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할까.
한국사에서는 명나라가 조선에 공녀를 요구할 때, 공녀의 선발을 맡은 사신으로 유명하다.
“잘만 제어한다면 매우 유용한 인재지. 인재를 보는 안목도 뛰어나고.”
정화가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 할 계제는 안 된다.
웬만하면 마주칠 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 서신에는 자네를 잘 봐달라는 부탁이 들어있네. 황제 폐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자네의 말을 잘 들어줄 걸세.”
정화의 부탁?
부탁 같은 소리 하네.
정화는 환관들에게 신적인 존재.
부탁이 아니라 신의 계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가, 감사합니다.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네 덕에 폐하께서 내린 임무를 쉽게 달성할 수 있었네. 그 보답일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폐하를 만난 것이고, 그다음이 자네를 만난 것일세.”
“저는······.”
머릿속으로 여러 인물이 떠올랐다.
“제독을 만난 것이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남자는 인정을 갈구하는 동물.
그는 내 부모님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조건 없이 순수한 호의를 주고 나를 인정해준 사람이다.
그만큼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동안 남자들의 우정 같은 헛소리는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런 건 설화 속에나 존재한다고 여겼지요.”
시이저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오늘부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직접 보니 참으로 부러운 일이로군요.”
“공주님도 그렇게 될······ 어렵긴 하겠군요.”
“왜죠?”
“군주는 범인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고독한 자리라고 하니까요.”
“하하하. 그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그대라면 내 순수한 벗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너 내 친구가 돼라.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는 팔렘방과 교역으로 얽혀 있으니 완전한 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군요.”
친구비 내셈.
“생각해보니 벗보다는 혈연이 더 좋을 듯하군요. 내 동생이 장래가 아주 촉망됩니다.”
돈 아까우니까 그냥 혈연으로 하자.
“양심 어디?”
시수안 공주님의 미모는 유명합니다만, 이제 겨우 열 살이 아닙니까.
“응?”
아······ 실수.
“소인은 이미 혼례를 약조한바. 이를 깬다면 세상이 제 양심의 출처를 물을 것입니다.”
“하하하. 그러합니까. 용왕의 혀는 뱀처럼 날렵하기 그지없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니, 참 신비롭습니다.”
“태양과 달을 보좌하는 진정한 별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좋아하는 이와 싫어하는 이를 모두 미치게 해야 한다지요. 전 아직 멀었습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보이자, 시진경이 끼어들었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은 법. 먼 길 떠나는 사람 너무 붙잡지 마라.”
“예. 아버님.”
“용왕께 신세 많이 졌습니다. 다시 돌아오신다면 더욱 융성하게 대접할 터이니 잊지 말고 들러주십시오.”
“전하께서 인제 그만 오라고 말리셔도 자주 올 터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팔렘방에서 뽑아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여기가 자원의 보고다.
“그럼 이만 가보게. 조심하게나.”
“예. 제독.”
***
우리는 팔렘방을 떠났다.
이대로 비자야를 들려 해군을 돌려주고, 곧바로 광주로 간다.
빨리 남경에 가야 하는데, 참파 해군은 배의 특성상 속도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 것도 아니고.
“아쉽습니까?”
“이소군. 여기 배 위다. 자주 까먹네?”
“미안. 아쉬워?”
“뭐가?”
“시이저 공주의 가슴이.”
“푸훗. 켁켁.”
물 마시다 사레들렸다.
“너 오해받을 소리를!”
“나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스물두 살인데 성장기야?”
“글쎄. 요즘 고기를 잘 먹어서 그런가. 그래도 공주님 정도까지는 안 될 것 같아.”
매우 개방적인 당나라 시대 때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명나라는 의외로 가슴 노출에 관대하다.
용모와 자색을 중시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경향이 있었다.
대신 배꼽과 맨발을 보이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참고로 조선은 명나라보다 가슴 노출에 더 관대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심지어 백성들은 계곡에서 혼욕도 자주 한다는데, 양반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풍속이 음란하다고 경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들은 기생 끼고 놀면서.
어쨌든 가슴 노출에 관대한지라, 날이 갈수록 한복 윗옷인 저고리가 점점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이 역시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조정에서는 백성들의 삶이 궁핍하여 저고리 만들 옷감을 아끼기 위함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솔직히 이건 개소리 같다.
“저번에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대책은 있어?”
“뭐가?”
“선단을 꾸린다며.”
“있지.”
“영끌인지 뭔지 잘될 것 같아?”
“영끌도 위험을 줄이면 투자가 된다. 반대로 위험을 무시하면 도박이 되는 거고.”
따라서 영끌러가 반드시 해야 할 건 리스크 관리다.
영끌이니까 당연히 리스크가 있지.
하지만 그 리스크를 내가 다 끌어안을 필요는 없다.
많은 이들에게 리스크를 나누는 것도 리스크 분산이라 할 수 있지.
“위험은 다른 사람에게 분산해버리면 돼.”
“누구? 허가장?”
“나를 믿는, 혹은 내 능력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에게.”
“남경에 온갖 사절이 가득하다던데. 적어도 남해 출신은 선장을 믿어줄 것 같네.”
“정작 조선에서는 안 믿어줄 것 같지만.”
안 믿어주기만 하면 다행이지.
만약 조선 사신이 와있다면 게거품 물고 반대할 것 같다.
조선은 고려의 부패를 보다 못해 들고 일어난 급진파 신진 사대부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다.
그런 만큼 고려의 폐해를 어떻게든 수습하고 보완하려 했으며, 특히 사치와 상업을 대단히 경계했다.
내가 중상주의를 외친다면 적어도 지금은 찬성할 사대부가 하나도 없을 거다.
“설득할 방법은 있어?”
“처음부터 모두를 설득할 필요는 없어. 나를 믿는 몇 명에게 증명하면 돼. 공자도, 석가도 처음에는 따르는 이가 얼마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조선도, 명나라도 초기야. 개혁의 의지를 가진 이가 많지. 상업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한다면, 생각을 바꾸는 이가 조금씩 늘어날 거야.”
지금 아니면 500년 동안 못 바꾼다.
내 어깨에 동아시아의 역사 500년이 걸려있다.
“할 수 있어. 지금이라면.”
나는 고인 물을 싫어한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데 고이면 썩어버리니까.
따라서.
바다를 만들겠다.
나중에 머리 굳은 사대부들이 탄압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해류와도 같은 거대한 순환을 만들어 내겠다.
심지어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힘이 해류를 막는다고 해도!
그 밑 심층에서 흐르는 해류까지는 막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바뀐다.
“딱 한 번이면 된다.”
그리고 옥새가.
그 한 번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