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6
005화 탈조선, 입명국 (3)
“으헉. 살려, 푸헉!”
석피는 거친 파도에 휩쓸려 연신 손발을 휘저었지만, 바다는 점점 그를 삼켜가고 있었다.
몸에 힘을 빼고 최대한 천천히 접근했다.
그리고.
“꾸르륵······.”
단번에 석피의 산발한 머리를 잡아채 바닷속에 거칠게 처박았다.
마음 같아서는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지만, 사태가 시급하니 이 정도로 봐준다.
석피는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체력을 크게 소진한 상태라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기절한 석피를 뒤에서 안았다.
“줄을 당겨주시오!”
보선에 탄 수군들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밧줄을 잡아당겼다.
바다에서 배 위로 올라갈 때는 양어깨와 허리에 맨 밧줄이 상당한 고통을 선사했지만, 어떻게든 무사히 보선에 승선할 수 있었다.
“태감. 이 자가 숨을 쉬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출한 수군이 곧바로 석피의 몸을 살피더니 그렇게 보고했다.
“비키세요.”
석피가 기절한 건 얼마 안 되는 시간.
골든 타임은 지나지 않았다.
석피의 상의를 풀고 가슴을 드러냈다.
“후우······.”
한 번도 심폐소생술을 해본 적 없으나, 눈과 귀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배웠다.
환생하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과정이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로.
익수 환자이기에 먼저 목을 뒤로 젖혀 기도 확보를 하고, 깍지를 낀 손바닥 뒤꿈치를 흉골에 댔다.
이어 체중을 실어 강하게 눌렀다.
“일하고, 이하고, 삼하고······.”
박자를 일정하게 맞춰야 하기에 조사를 붙여 외치는 숫자의 글자 수도 맞춘다.
“십일에, 십이에, 십삼에······.”
연습할 때는 한두 사이클만 했는데, 이번에는 석피가 깨어날 때까지 해야 한다.
나 말고는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지쳐 쓰러지는 순간, 석피는 죽는다.
“이십일, 이십이, 이십삼······.”
석피야. 석피야.
안전대 좀 처 잡으라니까 그걸 못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냐.
그래도 난 널 반드시 살린다.
네가 죽으면 나도 위험하니까.
전하께서는 나를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며 두고두고 발목 잡힐 터.
이에 따라 조선에서 벌일 수많은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모든 걸 떠나서, 내 눈앞에서 사람 죽어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삼십 끝. 후~읍! 후우~”
이어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배웠던 대로 턱 끝을 올리고 세 번에 걸쳐 숨을 깊게 불어 넣었다.
“······.”
다시 확인했지만, 여전히 숨을 쉬지 않는다.
괜찮다.
이제 시작이다.
“일하고, 이하고, 삼하고······.”
네가 살아날 때까지.
“이십일, 이십이, 이십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십육, 이십칠, 이십······.”
몇 번의 사이클을 반복했을까.
“푸헉! 켁! 켁!”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다행히 그는 토사물을 쏟아내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곧바로 석피의 고개를 옆으로 돌린 후,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토사물을 꺼냈다.
자칫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바다에 빠지기 전 많이 게워냈기 때문인지, 토사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대부분 위액이었고.
“후우······.”
일을 마친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몸은 땀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소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응?”
그제야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나를 기이하게 바라보는 명나라 수군들.
특히 정화의 표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뒤틀려 있었다.
“어찌하여 호위를 바다에 집어넣었나?”
“예?”
내가 민 게 아니라 자기가 떨어진 건데요.
“어찌하여 저 사내의 머리를 바닷속에 담갔냐고 물어본 것이네.”
“아, 기절시키기 위함입니다.”
“어째서?”
“태감 대인께서 말씀하셨듯, 바다에서는 자맥질의 달인이라도 목숨 잃기 쉬운 곳입니다. 오늘처럼 파도가 심한 날에는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의 발버둥은 처절합니다. 자칫 구하러 온 사람마저 같이 수장될 수 있지요. 안전하게 구하려면 일단 기절시켜야 합니다.”
정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네는 바다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 들었네. 맞나?”
“예······.”
“그럼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어디서 배웠나?”
“그······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강의 어부였던가······.”
“얼핏 들었던 것을 이 위기 상황에 바로 떠올려 실천한다?”
대체 뭘 의심하는 건지 모르겠다.
“난 말일세. 온갖 일을 겪어서 어지간한 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네. 그런데 방금은 세 번이나 놀랐어.”
“세 번이나 말입니까?”
“아랫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로 뛰어든 것에 놀랐고,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검증되지 않은 편법을 행하는 담력에 놀랐으며, 죽은 이에게 숨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기예에 놀랐네.”
“아······.”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대에는 심폐소생술이 없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한답시고 기절시키는 건 자칫 살인이 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행위다.
“그 괴상한 기예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내 부족한 식견으로는 판단이 되지 않는구나.”
평소라면 수긍하고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설 수 없다.
무사히 항해를 마치려면.
또, 내 계획대로 큰 성과를 내려면 정화의 신뢰가 꼭 필요하니까.
적어도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날 믿어야만 한다.
“약이 됩니다.”
“어찌 확신하는가?”
“같은 물이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젖이 되는 게 세상의 이치.”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이 시대에는 그렇게 믿는다.
“태감 대인께서 저를 이롭게 쓰시리라 믿기에 저는 약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나는 물에 불과하다.
모든 결정권은 너에게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는가.
정화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강한 심지가 드러나는 눈빛과 함께 온화한 표정으로 지었다.
“그 기이한 지식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렸으니 가히 선술(仙術)이라 할 수 있겠구나.”
“송구합니다.”
“계속 내 안목을 넓혀주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신뢰라는 건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보여줘야겠지.
예상 밖의 좋은 결과로.
***
석피는 뱃멀미와 해양 사고로 인해 반쯤 시체가 되었다.
“죄송합니다. 나리.”
“괜찮아. 덥고 습한 시기라 멀미가 더 심할 거야.”
당연하게도 멀미약 같은 건 없다.
생강이 멀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안타깝게도 생강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나리께서는 생명의 은인입니다. 반드시 이 빚을 갚겠습니다.”
“그래. 기대할게.”
바람이 거친 탓에 선실은 계속 흔들렸다.
짐 상자 위에 가죽을 올려놓은 침대도 충격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덕분에 석피의 회복도 더뎌지고 있었고.
“해먹을 준비해야겠네.”
안락한 침대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최소한 짐 상자로 만든 침구보다는 괜찮을 터.
튼튼한 천에 그물을 달아 연결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남경에 가서 주문해야지.
“대인. 곧 경사(京師)에 도착하니 채비를 하시랍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경사란 남경의 공식 명칭이다.
홍무제가 중원을 통일한 이후 이름을 바꾸었다.
다만 워낙 남경으로 불린 기간이 워낙 길다 보니 아직은 남경이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나가 볼게.”
“저도 가겠습니다.”
석피는 초주검 상태에서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무예는 잘 모르겠는데 충심 하나는 제일일세.
“괜찮아. 쉬어.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회복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하오나······.”
“괜찮다니까.”
석피를 다시 눕히고는 선실 밖으로 나갔다.
“음?”
명나라 수군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괴상하다.
“저······ 대인.”
개중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장수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 녀석.
입 냄새가 엄청 심하네.
“무슨 일이죠?”
“제가 뱃사람 병에 걸렸사온데, 혹시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의원이 아닙니다만······.”
“죽은 사람도 살리는 신의가 아닙니까?”
아, 다른 명 수군이 나를 이상하게 본 이유가 죽은 사람을 되살린 강령술사처럼 생각해서 그런 거구나.
이 장수는 나를 의원이라고 생각한 거고.
“어디가 불편하시죠?”
“생니가 절로 뽑히고 자꾸 입에서 피가 나옵니다.”
“입을 벌려보세요.”
“아~”
와······.
입 냄새 진짜 심하다.
이게 아니지.
괴혈병이네.
내륙 수군이 왜 괴혈병에······.
“평소에 과일이나 채소를 먹지 않습니까?”
“어찌 아셨습니까?”
장수는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채소나 과일, 특히 신 과일을 먹어야 낫는 병입니다.”
“하오나······ 어찌 바다 사나이가 풀 쪼가리를······.”
“바다 사나이요? 남경의 수군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민(閩)족입니다. 이번에 태감께서 원정을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했습니다.”
민(閩)족은 대만섬과 가장 가까운 복건성에 사는 이들.
민남인이라고도 불린다.
그들은 명나라에서 가장 바다 지향적인 성향을 지녀서 ‘바다는 민남인의 밭이다.(海者, 閩人之田也)’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실제로 송원 시대 최대의 국제 무역항인 천주(취안저우)가 바로 복건성에 있다.
해금령이 내려질 때나, 중원이 혼란스러울 때면 민남인들은 바다를 타고 동남아시아 곳곳으로 퍼져나가 정착.
동남아시아 경제를 주름잡는 화교 세력으로 성장한다.
“과연 태감 대인의 명성과 덕이 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꼭 신 과일을 자주 드셔야 합니다.”
“그······ 예.”
표정을 보아하니 안 먹을 것 같다.
곧 죽어도 ‘바다 사나이는 고기와 술!’을 외칠 것 같은데.
“명령일세. 자네는 경사에 도착하는 대로 탱자와 당귤(오렌지)을 먹도록 하게.”
깜짝이야.
어느새인가 정화가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저 거구가 어떻게 소리도 없이 스르륵 움직이는지.
참 신기하다.
“예. 대인.”
정화의 명령까지 거역하기는 어려운지 장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바다 사내들은 용맹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만큼 다루기가 어려워. 괴력난신을 쉬이 믿는 데다 고집이 어마어마하거든.”
“그만큼 바다가 거칠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신농씨가 이르기를 풀은 음식인 동시에 약이라 하였거늘. 항해가 오래간다면 환자는 점차 늘어날 터.”
“사실 괴혈병은 어지간해선 걸리지 않습니다. 장수가 편식이 심하였기에 생긴 특이한 일이지요.”
그래서 대양 항해가 시작되기 전엔 괴혈병 환자 수가 무척 적었다.
“위험을 알았는데 지나칠 수는 없네. 전쟁 때마다 느낀바, 위험을 무시하면 늘 안 좋은 일이 생기더군.”
생각해보면 좋은 일이다.
나중에는 유럽, 기회가 닿는다면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갈 생각이니 미리미리 습관을 만들어 두는 게 좋다.
나중에 조선 선원들에게도 그래야겠지.
다행히 조선 사람은 김치에 익숙해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추에도 비타민C가 많으니, 하루빨리 아메리카에 가서 가져와야지.
지금도 고추와 고추장이 있긴 한데 내가 아는 그 고추가 아니다.
상당히 밋밋하다고 할까.
“만약 자네의 처방으로 효험을 본다면 원정단에 의무적으로 신 과일을 먹도록 명할 걸세. 근심이라면 신선한 과일은 오래 보관할 수 없다는 것인데······.”
“꼭 신선할 필요는 없습니다.”
“응?”
“착채(짜사이) 같은 절인 채소나 탱자 청, 탱자 차, 여차하면 술로 담가서 먹어도 됩니다. 특히 술로 담그면 바다 사나이들도 거부감 없이 잘 마시겠지요.”
오히려 더 달라고 난리 칠 것이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냐고.
“하지만 선상에서 계속 술을 주면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때는 또 비책이 있습니다.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방법은 공개되면 효과가 없어지니까.
“폐하의 말씀이 옳구나. 기이한 지식과 독특한 안목을 지니고 있으니 묘재라 부를 만하다.”
“높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부탁?
명령이 아니라?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상인을 하나 붙여줄 터이니, 자네가 보기에 원정에 필요하다 여겨지는 약재나 도구를 준비케 하게.”
“하오나 제 지식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바다에 버리면 되느니, 염려치 말게.”
일종의 시험이다.
내 지식이 독인지, 약인지 구별하기 위한 시험.
“성심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하하하. 좋군.”
멀리 육지가 보인다.
암군이 많기로 유명한 명나라에서 손꼽히는 명군.
구족에 더해 친구와 마을 주민까지 몰살하는 ‘십족 멸살’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폭군.
명나라 전성기, 영락성세(永樂盛世)를 구가한 정복 군주라는 평가.
잔혹한 숙청과 무리한 대외 원정으로 명나라가 쇠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
찬사와 비판이 모두 공존하는 복합적인 군주.
영락제.
천하의 주인이 저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