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60
059화 거짓말은 안 했다 (2)
유학은 인명을 매우 중시한다.
백성이 굶는다고 군주도 소식해야 하고, 나라의 창고를 열어 구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가는 몇 없다.
그중 상당수가 유학의 영향을 받는 국가이고.
그래서 유학은 농업을 중시한다.
다른 것에 빠져 농사를 잊었다간 흉년이 왔을 때, 수없이 죽어 나갈 테니까.
반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천한 일이다.
따라서 농민의 눈을 현혹하여 떼죽음으로 몰 수도 있는 상업은······ 천하다.
“결국, 상업이 천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는 거네?”
농업의 발전을 위한 상업.
근데 이게 진짜 어이가 없는 말인 게, 먹는 게 늘어나면 인구가 또 늘어난다.
잘은 모르겠지만 명나라 초기 인구가 6천만 정도로 알고 있다.
근데 이게 600년 뒤에는 15억 명이 된다.
“감당할 수 있나?”
물론 의학과 위생 수준을 생각하면 15억 명까지 늘어나진 않겠지만, 현재 생산량으로는 3억 명만 되더라도 감당 안 된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차 한 잔 올리겠습니다.”
“들어오세요.”
방에서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데 허신애가 다기를 들고 들어왔다.
“전에 원하셨던 홍차입니다. 어떤 걸 원하실지 몰라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다(製茶) 해봤는데, 그중에서 소군 언니가 추천해준 종으로 준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를 받고 천천히 마셨다.
홍차다.
개인적으로는 우유와 설탕을 넣은 데자와······ 아니, 밀크티를 선호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불과 3개월 사이에 홍차를 만들어내다니.
허신애의 수완이 좋은 걸까, 허가장 인재들의 실력이 좋은 걸까.
“향이 좋고 떫은맛이 없네요. 아주 좋습니다.”
“역시 소군 언니가 차에 대해서는 참 잘 알아요. 맛과 향을 섬세하게 구분하더군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열여섯 살인 소녀가 안주인 노릇이라도 하려는 건지.
질투는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연적을 띄워주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본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걸까.
“고민이 많으신가 봅니다.”
“정답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가 없네요. 시간이 필요해요.”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혹시 그거 알아요? 번개가 많이 치는 지역은 땅이 기름지다는 걸.”
“······들어본 것 같습니다.”
이는 번개가 치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질소 비료를 뿌린 것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이를 아는 고대인들은 번개의 신을 풍요의 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질소 비료를 만들려면 강철관에 고온, 고압을 유지한 채 전기를 통과시키면 된다고 들었다.
근데 촉매가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고온과 고압을 내는지도 모른다.
압력밥솥 정도의 고온 고압으로는 택도 없을 텐데.
전기는 어떻게 만드는 거야?
뭔가 회전하면 어떻게 어떻게 해서 전기가 나온다 하던데.
“인위적으로 번개를 일으켜서 땅을 기름지게 만든다든가.”
“용왕의 특기 아닙니까. 그 ‘시바알’하고 외치면 번개가 친다든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아니면 저수지 같은 수리 시설을 대량으로 만들어 이앙법을 대대적으로 보급한다든가.”
“쉽지 않을 겁니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드니까요.”
“구라파에는 노퍽 농법이라는 게 있어서, 그 방법을 사용하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왜 사용할 수 없죠?”
“소규모 경작지로는 힘드니까요. 지주들의 땅을 모아 한 번에 경작하고 생산물을 분배해야 하는데······ 조율하는 게 너무 어렵죠.”
또 유학은 부의 재분배를 매우 강조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부는 보통 땅에서 나오기에 땅 분배에 관해 굉장히 민감하다.
적어도 현재 조선에서 농지를 마구 사들여 대지주가 된다면 킬방원이 직접 칼 들고 쫓아올 거다.
네가 농사지을 땅을 다 사면, 농민은 어디서 농사를 짓냐면서.
“아니면 바다 밖에 빈 땅이 많으니 사람들을 이주해서 농지를 경작하게 하면······.”
맙소사.
호주와 아메리카에 중국인이 바글바글해진다고?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큰아버님께서 말씀하신 건 상업이 농업에 확실한 도움이 된다는 증명입니다.”
“예?”
“솔직히 현재 시점에서 상업은 농업의 방해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왜죠?”
알긴 알지만 그래도 물어보자.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상업으로 큰 부를 버는 사람을 보게 되면 농민보다 상인이 되고자 하는 이가 많아집니다. 농민이 줄어들면 농업에 방해가 되지요.”
예상한 내용이긴 하다.
근데 사람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하냐고.
“또, 상업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쌀과 같은 꼭 필요한 작물이 아닌, 목화와 같은 상품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합니다. 심지어 목화는 물을 많이 먹고 지력을 크게 소진하고요.”
그 말을 듣고 떠오른 예가 있었다.
바로 미국의 남북전쟁.
남부는 농업지대.
북부는 공업지대.
하지만 정작 전쟁이 시작되고 나니, 남부는 식량이 없어서 장기전으로 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남부의 대농장은 대부분 목화밭이었으니까.
지배층 입장에서는 쌀이 남아돌아 가격이 폭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목화 재배하느라 쌀이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낫다.
적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을 테고, 민심이 떡락하는 일도 없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상인은 돈놀이를 하기 때문입니다. 돈놀이로 피땀 흘려 농사지은 농민들의 재산을 손쉽게 뺏어간다고 생각하지요.”
없애면 안 되는 일이며,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상업은 천하다.
왜냐하면, 상업은 국가의 바탕인 농업을 방해하니까.
“그러니까 저는 상업의 필요성이 아니라, 상업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했던 거네요?”
“상공께서 시대를 바꾸고자 하신다면 무해함이 아니라 이로움을 증명하셔야 할 것입니다.”
열여섯 살이 말하기엔 너무 논리적인데.
허관영이 귀띔을 해준 걸까, 허신애가 그만큼 뛰어난 걸까.
게다가 상공이라니.
은근슬쩍 확실하게 도장 찍어 놓기도 하고.
만약 스스로 생각해서 이렇게 했다면 타고난 여우다.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남해 믈라카에서 만백유라는 과일의 묘목이 들어왔습니다. 이것과 탱자를 교잡하여 당귤(오렌지)을 만들어내었지요.”
허신애가 나를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이런 점을 잘 정리하면 상업도 농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지만.
왜냐하면, 내게 부족한 건 시간이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장립종 볍씨를 들여와 단립종 볍씨와 붕가붕가시키면 뭔가 나오겠지.
근데 그게 1, 2년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 전에 내 이용가치가 떨어져서 숙청될 위험이 너무 크다.
차라리 공업이 농업에 이롭다는 걸 증명하는 건 쉽다.
이앙기 같은 농사에 도움이 되는 농기구를 제작해서 뿌리면 되니까.
실제로 이런 이유로 사농공상, 대장장이를 상인보다 더 높게 쳐준다.
“상공.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초심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 어떻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허신애는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상업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옮기는 거죠. 그 대가를 받는 거고요.”
“그렇다면 항상 쌀이 넘쳐나는 곳이 있을까요?”
“없지요. 그런 나라가 있었다면 대륙을 제패한 건 명나라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면 쌀 대신 주식으로 할 만한 작물이 많은 곳은 없을까요?”
밀은 쌀보다 더 부족하다.
밀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적고, 지력도 크게 소모하니까.
괜히 쌀이 주식인 나라의 인구가 많은 게 아니다.
“있어요.”
“어디죠?”
“아득히 머나먼 곳에요.”
아메리카에 감자 같은 구황작물을 가져온다면 상업의 유용성을 설명할 수 있겠네.
근데 거길 언제 가.
모든 문제가 시간으로 귀결된다.
빨리 후딱 갔다 올 수 있는 곳 중에 괜찮은 게 없······.
“있네?”
“네?”
“있다고요. 그거.”
“예? 그게 무엇인지······.”
“아, 그거~ 그~ 구아노! 인광석!”
이름도 잊고 있었네.
인광석은 플랜테이션의 핵심이 되는 광석으로, 사실 돌이 아니라 새똥 같은 게 굳어진 거다.
근데 인산과 질소가 엄청 많아서 비료로 매우 좋다.
심지어 화약의 재료로도 쓴다.
인광석이 많은 곳은 서아프리카의 서사하라.
남미의 페루.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는 곳.
나우루.
“······.”
근데 거긴 또 언제 가냐.
갔다 왔다고 해도, 인광석이 효율적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1~2년 걸릴 텐데.
“시간이 문제네. 시간이 문제야.”
5년.
아니, 2~3년 정도만 주어진다고 해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데.
지금 당장 증명하려고 하니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유학은 문자를 중요시한다.
하나의 문장으로써 확실하게 깨달음을 줄 수 없으면 사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광석을 가져와서, 혹은 다른 곳의 볍씨를 가져와 교잡해서 농업 생산량이 늘었다.
따라서 상업은 유용하다.
이런 귀납적 논리는 잘 통하지 않는다.
“상공이라면 어떻게든 해내실 것입니다.”
“어떻게 확신하죠?’
“허가장을 방문한 여러 사신에게 들었습니다. 상공께서······ 용왕이 하신 일을요.”
“제가 뭘 했죠? 해적 때려잡는 것 외엔 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유학을 모르는 이들에게 측은지심을 알려주어 낯선 땅을 구원하셨는데 어찌 한 일이 없겠습니까. ‘공자 수 분투’라고 했던가요?”
“······잠깐만요. 뭐라고요?”
“‘공자 수 분투’라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요. 그 전에.”
“유학을 모르는 이들에게 측은지심을 알려주어 낯선 땅을 구원······.”
“그거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상인이 오간다고 물건과 이윤만 오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의 시스템으로 설명하자면, 오가는 상인에 따라 종교 영향력, 문화, 그리고 과학 기술도 영향을 받는다.
거래가 꼭 형체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정화의 원정도 ‘중화사상’에 기반을 둔 조공국 늘리기가 아닌가.
본래 대항해시대 때도 상인뿐만 아니라 선교사들도 오고 갔고.
“필요한 기술과 사상을 주고받는다. 그 역시도 상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중화사상이 퍼져있는 남경에서 오랑캐의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건 상업의 유용성을 말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앞선 기술이나 정책을 도입한다면 농업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바다 밖에 대명보다 훨씬 발전한 국가가 있단 말입니까?”
“있죠.”
예를 들면······.
대한민국만 해도 명나라보다는 발전했지.
“그러니 상업은 유용합니다. 다른 나라의 경험과 노력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이 점을 이용한다면 머리 굳은 사대부들도 설득할 수 있다.
***
곧바로 국부론을 보완하고 배에 몸을 실어 남경으로 향했다.
남경에 도착하자마자 영락제에게 알현을 요청했고.
“묻겠노라. 짐이 그대를 살려둬야 하는 이유는?”
옥새를 받아든 영락제가 처음 한 말이다.
귀한 선물을 받았으면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 한다는 상식 따윈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정말 계획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네.
“옥새를 찾아와 진상한 것은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 하지만 짐이 그대를 살려주면, 짐이 옥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발설될 위험이 늘어나지 않겠는가.”
뭔 개 짓거리래.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몇 번의 목숨을 건 전투를 겪고 났더니, 내 간덩이도 좀 부은 모양이다.
“폐하께서 잃어버린 옥새는 이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러할까?”
“다른 것은 몰라도 대명전국지새만큼은 확실히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대명전국지새.”
“하하하! 감히 짐을 협박하는가? 네놈 따위가?”
“옥새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정통성은, 천명은 신물로 결정되지 않지요. 폐하께서는 존재 자체로 천명이요, 정통성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옥새를 가져왔나! 왜 대명전국지새를 찾겠다고 말했나!”
“세상에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신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눈뜬장님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락제는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이 자의 목을 쳐라!’라고 소리칠 것 같다.
“어떻게 대명전국지새를 찾을 생각이냐. 단서라도 있느냐.”
“진조의는 죽기 전에 ‘원보’를 언급했습니다. 옥새를 갖고 있던 그가 생각하는 원보가 무엇이겠습니까?”
“원보······ 대명전국지새의 위치도 알고 있었다?”
“해적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보물 말인가? 원한다면 주마. 어디 찾아봐라! 이 세상의 전부를 그곳에 두고 왔으니!’라고요.”
“이 세상 전부를? 정말 대명전국지새를 그놈이 숨겼단 말이냐! 그곳이 어디냐?”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영락제는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나는 당당했다.
거짓말은 안 했으니까.
진실을 섞었을 뿐이다.
“네놈에게 이익은? 짐은 욕망 없는 자를 믿지 않는다.”
“기회를 주십시오.”
“무슨 기회?”
“저는 상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도 대명의 위세는 천하제일이지만, 이보다 더 부국강병을 추구하려면 상업이 필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나라가 부국강병 하여 명나라의 독주를 막는 데 필요하지.
“상업은 천한 것이 아니라, 부국강병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이를 증명할 토론의 기회를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