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61
060화 거짓말은 안 했다 (3)
현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정치인, 법조인, 종교인과는 말싸움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너무 잘해서 네가 이길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상대해야 하는 유학자는 정치인이자 법조인이고, 동시에 종교인이기도 하다.
이들의 말빨은 세계 최강이다.
특히 비유법이 미쳤다.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그렇게 믿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할까.
예를 들어 맹자와 고자의 논쟁.
고자는 물은 동서의 구분이 없으니 인간의 본성에는 선함과 선하지 않음의 구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맹자는 물은 동서의 구분이 없지만, 위아래의 구분은 있으니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했다.
무슨 소리야 이게.
생물인 인간과 무생물인 물과 대체 뭔 상관인데.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같은 건가?
상관이 있다고 해도 물은 위아래의 구분이 없다.
중력 때문에 내려가는 것뿐이지.
중요한 건 사실이든, 아니든 다른 이들의 동의와 공감을 끌어내는 쪽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방향성을 정하자는 거지, 과학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이 천명이다.
***
남경 황궁 대전에는 영락제의 명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어······.”
뭐가 이렇게 많아.
나는 대학사와 이름 높은 대제학, 그리고 각국의 사신 몇 명만 상대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여기 모인 사람은 대충 봐도 한 300명쯤은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이 300명을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이걸 든든한 지원 사격으로 봐야 하냐.
확실한 공개처형으로 봐야 하냐.
개중에는 각국의 사신도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 아군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신 중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다름 아닌 조선 사신이었으니까.
킬방원은 왜 이리 많은 사신을 보냈을까.
종계변무 때문에?
국경분쟁 때문에?
어느 쪽이든 지금은 반갑지 않다.
조선 사신들은 상업을 장려한 고려가 어떻게 망해갔는지, 그 결과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똑똑히 본 이들이니까.
제일 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황제 폐하 납시오!”
전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았다.
“모두 고개를 들라.”
무릎은 꿇은 채 상체만 세웠다.
영락제는 단상 위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황태자 주고치나 한왕 주고후, 황태손 주첨기까지 있었다.
“내각군보 강해인은 앞으로 오라.”
“예. 폐하.”
조선 사신도 가득한 자리인데, 내 공식 관직인 안정 사관은 상큼하게 씹어버리고 겸직인 내각군보만 말해버리시네.
심지어 나는 조선 관복을 입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간 고생 많았다. 바다 밖으로 나가보니 어떻던가.”
“폐하의 은덕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원정대의 공로로 짐이 책봉한 조공국들의 사신이 모여있다. 그대의 공이 실로 적지 않다.”
“어찌 저의 공이겠습니까. 천자의 위엄이 그만큼 드높기 때문이고, 폐하께서 임명한 제독 정화의 공로가 큽니다. 저는 그저 옆에서 쫓아가기도 벅찼습니다.”
“하하하. 사람이 이렇게 겸손하다니까. 이제 겨우 약관인데 이만한 능력을 갖추고도 겸손하기 이를 데 없으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공을 세웠으면 포상을 내려야겠지. 태자야.”
“예. 폐하.”
황태자 주고치.
전에 봤을 때는 거동이 힘들 정도의 고도비만이었는데, 지금 보니 살이 더 찐 것 같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불어나는 거지?
“내각군보 강해인은 어떤 공을 세웠는가?”
“내각군보 강해인은 남해를 어지럽히던 해적 진조의를 소탕했으며, 원정대 제독 정화가 극찬할 정도로 많은 일을 도왔고, 또한 100여 일 만에 은 천 냥의 이익을 남겨 전부 황실에 진상하였으니 실로 충신의 귀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3개월 만에 은 천 냥.
큰돈이지만, 명나라 황실이 보기엔 추켜세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언급한 이유는 ‘공식’으로는 중형 함선 조 한 척으로 달성한 수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대단하구나. 대체 조선 왕은 어떻게 이런 인재를 키워냈단 말인가. 안 그런가 내각군보.”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킬방원에게 ‘네 신하 쩔더라.’라고 대놓고 놀리기 위함이다.
조선 사신들이 돌아가면 이 일을 소상히 보고할 테니까.
“아니지. 조선에서는 내각군보 강해인을 말단 사관으로 쓰고 있었을 터. 그럼 인재 보는 눈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야.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리시네.
“제가 원했습니다. 다양한 기록을 두루 살피는 사관이라는 관직이 제게는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정화가 그러더군. 자네는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독서와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고. 그런 자네에게 사관은 어울리는 관직이긴 하겠어.”
“망극하옵니다.”
이렇게 넘어가 주는 건가.
“허나 그런 자네에게는 더 어울리는 관직이 있을 듯하군. 태자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럴 리가 없지.
어우. 영락제는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어.
“예. 폐하.”
“어떤 관직이 좋겠나.”
“내각군보는 남해에서 용왕으로 칭송될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합니다. 또한, 조선의 사관이기도 하지요.”
이래 봬도 정 5품 안정 사관인데.
그냥 사관이라고 하면 내가 조선에서 말단 관리로 천대받는 것처럼 여겨지잖아.
“따라서 예부(외교부)의 관직을 내린다면 대명과 조선의 우애, 나아가 남해의 여러 조공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예부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서 누군가 째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꼬장꼬장하면서도 탐욕이 덕지덕지 붙은 노인이었는데, ‘너 잘 걸렸다.’라는 감정을 담은 것 같달까.
누구야?
“다만 그는 황궁에 머무르지 않는바. 친선을 위한 명예직이 가한 줄 아뢰옵니다.”
“그런가. 태자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합리적인 판단이건만 영락제는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재미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내 왼쪽에 모인 무리를 바라보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조공국 사신 중 가장 상석.
조선 사신들이 위치한 곳이다.
“조선에서는 어찌 생각하나?”
“······.”
조선 사신들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으나, 쉽게 답할 수는 없었다.
“관직은 임금이 내려주시는 것. 소신들이 어찌 관직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하냐.”
이번에는 다른 곳, 특히 팔렘방에서 보낸 사신들을 보았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나?”
“폐하께서 윤허만 해주신다면, 속히 본국에 연락하여 높은 관직을 수여할 것입니다. 내각군보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아국 왕은 그를 관내후로 봉하고 싶어 했습니다.”
관내란 ‘수도 내부의 도성 안’이라는 뜻, 관내후란 자신의 영지가 없는 제후를 말한다.
이름에서 나오듯이 관내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제후다.
한 마디로 ‘영지는 없지만, 제후로 인정해줄게.’라는 뜻.
하지만 억지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것참 지독한 구애로구나. 구항에서는 여자가 왕위에 오른다던데, 혹여 국서로 맞이하겠다는 뜻인가?”
그리고 당연히 영락제는 후자였다.
“국서는 아니고 부마로 맞이하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오호······.”
영락제의 얼굴에 다시금 흥미가 스쳐 지나갔다.
“태자야.”
“예. 폐하.”
설마 여기서 황실 부마 이야기를?
안 된다.
이렇게 사람 많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가득한 자리에서 선언하면 뒤로 물릴 수가 없게 된다.
무조건 해야 한다.
아니면 걍 죽든가.
“관직은 조선과 의논해서 처리할 것이다. 일단은 관직 외에 다른 포상을 하사하여라.”
“예. 폐하.”
의외로 무난하게 넘어갔다.
뭘까?
이렇게 넘어가 줄 인간이 아닌데.
“내각군보 강해인에게는······.”
황태자는 쭉 포상 목록을 읊었다.
대충 은과 비단, 쌀, 그리고 남경에 멋진 저택 한 채, 그 저택을 관리할 인부를 주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진조의에게 짐의 보선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혔다가 죽은 신하도 있다지?”
“예부의 마상척이라 합니다.”
그 말에 예부의 관리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중에는 나를 매우 날카롭게 째려보던 꼬장꼬장한 노인도 있었다.
지금 보니 마상척과 상당히 많이 닮은 것 같네.
친인척 관계인가?
“쯧쯧. 입으로만 떠들 줄 알지 전쟁을 경험이나 해봤겠나. 인생은 실전인데 말이야. 그걸 모르는 녀석들이 너무 많아.”
“······.”
“그래도 대명을 위해 힘쓰다 먼 타지에서 죽었으니, 추서하고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어라. 유가족에게는 위문품을 전달하고.”
“예. 폐하.”
이런 말을 왜 여기서 하는 거지?
명나라로서는 치부라고 할 수도 있는 사항인데.
아니지.
치부가 아니지.
‘공식’적으로는 친선을 위한 사신이 탄 배를 빼앗긴 것뿐이니까.
막상 전투를 치르기로 마음먹으니, 수년간 남해를 괴롭히던 해적왕의 세력을 단번에 소탕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해적 소탕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내각군보는 참 대단해. 입만 산 놈들이랑은 확실히 달라.”
나다.
“이렇게 대단한 내각군보가 그대들에게 주장할 게 있다던데. 맞는가?”
“예. 폐하······.”
사대부들은 이번 토론에서 지면 ‘전쟁도 못 하고, 입도 못 터는 쓸모없는 녀석.’이 될 터.
내가 무엇을 주장하든, 어떻게든 날 끌어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달려들겠네?
엿 됐다.
좋게좋게 편승해서 조금씩 유화적으로 다가가려던 내 계획이 다 망가졌어.
“상업을 장려하고, 교역을 늘려야 한다. 맞는가?”
“예. 폐하.”
“그래. 어디 한번 내각군보의 사상 검증 좀 해보자꾸나.”
영락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에 모인 누구나! 내각군보의 주장에 반론을 말할 수 있다. 물론 옹호할 수도 있지.”
하하하.
멋지다.
그러네.
영락제도 거짓말은 안 했네.
독기에 찬 수백 명의 난적을 상대해야 하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토론할 기회를 주기는 했으니까.
세상 참 쉽지 않아.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이유에는 영락제가 9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할 것 같고.
이쯤 되면 히로인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으니.
“내각군보 강해인. 먼저 시작하라.”
“예. 폐하.”
방법은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화려한 언변으로 찍어누른다?
그런 거 기대도 안 한다.
개같이 처맞더라도 어떻게든 안건만 통과시키겠다.
딱 한 번만 기회가 생기면.
그다음엔 결과로 증명하면 되니까.
해보자.
일단 부딪혀 봐야 누구 머리가 깨지는지 알 수 있지.
“가격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운을 떼었다.
꼭 필요하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한 ‘가격’이라는 단어로.
가격이야말로 경제의 처음이자 끝.
이 개념이 받아들여지냐, 아니냐가 승패를 가른다.
“예를 들어 농민이 농사를 지을 때, 어떤 작물을 기르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몇몇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라는 말에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그들에게 돈을 추구하는 건, 탐욕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개인으로 보면 단순히 이익을 위해 한 행동이지만,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개인의 도덕에 맡기지 말고.
개인의 이기심을 조율하여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사상.
“공급자인 농민 혹은 장인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 만큼 효과적으로 공급하게 하니까요. 이로써 다른 이들은 본인의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물건은 다른 사람이 제공해줄 테니까.
“그리고 돈은 그러한 거래를 위한 매개체입니다. 즉, 돈이란 탐욕의 상징이 아니라, 내가 생산한 가치를 숫자로 환산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돈을 추구하는 것은, 내 노동의 가치를 높이려는 행위.
부정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돈을 추구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저는 이것을 시장 경제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손을 들었다.
너의 주장을 전부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