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73
072화 조선의 용 (4)
“제가 출항하기 전, 전하께서 보여주신 천하의 지도를 기억합니다.”
3년 전에 만든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말하는 것이다.
시대를 참작했을 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지만, 진실을 아는 나로서는 터무니없는 거짓에 가깝다.
중국이 천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조선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합친 것보다 크게 그려졌으니까.
“제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사오나, 제 측량법과 천문학, 그리고 각국의 지도를 합쳐 만든 천하의 지도는 이것입니다.”
내가 그린 것은 로빈슨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
직사각형이 아닌, 위아래가 잘린 타원형으로 그려진 그 지도다.
항해용으로는 메르카토르 지도가 더 유용하지만, 그린란드가 아프리카 대륙만 하게 보이는 등 고위도로 갈수록 왜곡이 너무 심하니까.
“먹으로 칠한 지역은 아직 확인이 안 된 곳으로, 이곳에도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혹여 탐험하게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아프리카는 일부만 그렸고, 호주, 아메리카, 시베리아, 남극과 북극이 있는 곳은 먹으로 넓게 칠해버렸다.
“……조선은 어디에 있는가.”
동쪽의 작은 반도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곳이 명나라입니다.”
“……작구나.”
그는 무척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내 말을 허무맹랑한 거짓으로 여길 수도 있음에도 말이다.
“조선과 명나라가 작은 게 아니라 세계가 넓다고 생각합니다.”
“겉치레하지 않아도 괜찮다.”
“겉치레가 아닙니다. 이 넓은 천하에 제대로 된 나라가 있고, 백성이 충분하며, 문명이 높게 발전한 곳은 생각보다 거의 없습니다.”
중동을 가리켰다.
“이곳은 대부분 사막이라 땅은 넓되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프리카를 가리켰다.
“이곳은 무척 덥고, 사나운 맹수들이 우글대며, 학질이 창궐하는지라 제대로 된 국가가 들어선 적이 손에 꼽는다고 합니다.”
이어 인도네시아를 가리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해를 지배했던 패권국 마자파힛 왕국은 대단히 큰 국토를 지녔습니다만, 인구수와 국력은 조선만 못합니다.”
마자파힛 제국의 인구는 3~4백만.
반면 조선의 인구는 현재 550만 정도로 본다.
그리고 태종과 세종, 문종의 선정 아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100년 이내에 두 배로 불어난다.
“이 넓은 천하에 빈 땅이 태반입니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겠습니까?”
“…….”
다시.
이방원의 눈에 힘이 들어왔다.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불타올랐다.
‘온 천하의 질서를 대명 천자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영락제처럼.
“조선이 그리 강한 나라라면 명나라는 어떠한가?”
“……명나라는 천하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나라라 추정됩니다.”
명나라의 인구는 현재 6000만 명을 넘고, 100년 이내에 두 배로 불어나서 1억을 넘긴다.
심지어 땅도 넓고, 자원도 많으며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에 기술력도 엄청나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냐.
“비견될 나라조차 손에 꼽을 지경이지요.”
“손에 꼽는다?”
나는 허탈해하는데, 오히려 이방원은 눈을 번뜩였다.
“그 말인즉, 비견될 나라가 있다는 뜻인가?”
“가까운 나라로 하자면 이곳, 천축국이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이 땅을 지배하는 델리 술탄국은 얼마 전 티무르국에 크게 당하여 골병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제대로 힘을 쓰려면 족히 100년은 걸릴 것입니다.”
델리 술탄국의 뒤를 이은 무굴 제국은 결국 명나라를 앞질러버릴 정도로 세계 최강대국이 되니까.
하지만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금방 또 역전당한다.
“그리고 이곳에 비잔틴 제국, 혹은 동로마 제국이라 불리는 큰 나라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 년을 버틴 이 나라도 국운이 크게 기울었습니다.”
이어 독일 쪽을 가리켰다.
“이곳에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다고 합니다만, 여러 제후국의 연합국 같은 성격인지라 하나의 엄청난 세력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대가 보기에 가장 떠오르는 나라는 어디인가.”
“현시점에서 가장 눈여겨볼 국가는 역시 명나라입니다. 다음이 이곳에 있는 오스만 술탄국입니다. 자세한 것은 확인해 봐야 알 듯합니다만, 이야기만 들어서는 이들이 비잔틴 제국을 점령하고 패권국이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이방원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다음이 조선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크, 하하하! 패기는 정말 좋구나. 그래. 한낱 신하의 야망이 이렇게 큰데 군왕인 과인이 기죽어 있을 수야 없지.”
한참을 웃던 이방원은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차분하되, 진중했다.
“나는 조선 밖을 모른다. 전적으로 그대에 의지하는 만큼, 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꾸나.”
세계 지도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기운에 차서 일본을 가리켰다.
“왜국은 생각보다 가깝고, 생각보다 크구나.”
“크기뿐만 아니라 국력도 조선에 비견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너무 무(武)에만 치중된 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중앙의 통제력이 무척 약하여 다이묘…… 그러니까 호족의 세력이 너무 강합니다. 아마 이 나라는 백 년을 못 가고 크게 분열되리라 봅니다.”
신장의 야망으로 유명한 센고쿠(전국) 시대의 시작이다.
이후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나니까 대충 역산해 보면…… 1470년 정도쯤에 오닌의 난이 일어나겠네.
일본을 쭉쭉 갈라버린 그 사건 말이다.
현재가 1405년이니까…….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하겠다.
“조선은 어찌해야겠나?”
“이전에 전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조선은 거대한 명나라에 막혀 뻗어 나가기가 너무 힘듭니다.”
“크흠…….”
“반면 바다로 나가면 빈 땅이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또한, 북쪽 땅과는 달리 험하지도, 춥지도 않고, 농사도 잘되지요. 덥고 습한 게 문제긴 하지만, 조선인이라면 능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기후가 워낙 지랄 맞아서 조선인은 어지간한 무더위나 추위도 잘 버틸 수 있게끔 진화했으니까.
이거 의외로 진짜 강점이다.
“그렇다면 육로는 완전히 포기함이 옳겠는가?”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요동반도까지 국경을 확정하면 좋겠으나…….”
솔직히 불가능하다.
“아시다시피 현 황제는 북경으로 천도할 생각입니다. 조선이 북경 코앞에 칼을 들이미는 형세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지요.”
북경에서 조금 더 가면 그 유명한 산해관이 있고, 산해관의 앞마당이 요동반도니까.
영락제의 명나라군은 현재 세계 최강이다.
지금 얘네랑 싸우자고 주장하는 자는 나라를 말아먹을 간신이다.
운 좋게 대승을 거둔다고 해도 피로스의 승리.
조선 병사가 5만 명 충원될 때, 명나라 병사는 60만 명 충원된다.
그 청나라조차 결국 산해관을 뚫지 못했다.
만약 명나라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청나라가 중국을 점령하는 역사는 없었을지도 모르고.
“따라서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압록수(압록강)와 만수(두만강) 이하를 조선의 국경으로 확정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옵니다.”
“흠…… 그건 과인이 대신들과 의논하여 신중히 생각해보겠다.”
“그리하시옵소서. 아무래도 소신은 육지의 일은 잘 모르니까요.”
“크크크. 육지는 모른다? 그대의 전문은 바다인가?”
“바다와 상업이라 생각하옵니다.”
“사대부가 상업을 전문이라 생각하다니. 참으로 기괴하구나.”
“나중에 조선 사신단이 돌아와서 보고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그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유상 자공을 본받고, 넓게는 관이오를 본받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마도를 가리켰다.
“따라서 이번 대마도 정벌은 호기입니다. 대마도는 농업으로 보기엔 척박한 땅이지만, 상업으로 보기엔 상당히 훌륭한 자리니까요.”
기물을 들어 지도에 차례대로 내려놓았다.
“왜국과 교역하기에 적합한 대마도, 그리고 지금은 거의 빈 땅이나 다름없는 마닐라 일대를 세력권으로 두는 것도 좋겠지요. 그리고 마닐라 이남은 소수 원주민을 제외하면 무주공산입니다.”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거대한 제국을 세우자는 뜻이냐?”
“저는 굳이 다투고 싶지 않습니다. 다투는 데 쓸 힘을 좀 더 뻗어 나가는 데 쓰고 싶지요. 같은 이유로 왜국 정벌도 반대합니다. 왜국은 조선 국력의 태반을 낭비할 정도로 가치 있는 땅이 아니라 봅니다.”
그렇게 뻗어 나가다 보면 마지막엔 호주와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자원의 보고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원주민들이 얌전히 있겠는가?”
“저는 재물의 힘을 믿습니다.”
“허허허. 참 사대부답지 않은 말이로구나. 그대는 과인 역시도 유학자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게 아닌가.”
“재물을 어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으음?”
“남해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진짜 동남아시아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고, 영국이 호주로 죄수들을 보낼 때 있었던 일이다.
“죄수를 외딴 섬으로 유배 보내는데, 그 배를 운전하는 선장에게 돈과 식량, 약초 등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선장이 식량과 약초 등을 빼돌리는 바람에 유배지에 도착할 때쯤엔 살아있는 죄수가 4할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겠지. 그러니 과인이 상인을 믿지 않는 것이고. 돈이라면 사람의 목숨도 중히 여기지 않으니까.”
“죄수들이 계속 죽어 나가자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어떻게?”
“유배지에 잘 도착한 죄수 한 명당 돈을 주는 것으로요. 그 결과 9할 8푼의 죄수가 무사히 유배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상인들의 욕망도 잘 이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데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술도 그렇다.
의사에게 ‘사람이 먼저지, 돈이 먼저냐?’라고 말하는데, 정말 사람을 우선하게 되면 오히려 죽는 환자가 더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돈을 무시하면 병원의 환경도, 의료 품질도 낮아질 테고, 더 좋은 약을 개발하려는 사람도, 이에 투자하려는 자본도 크게 줄어들 테니까.
반대로 돈이 된다고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연구를 거듭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장점이다.
돈이 되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
“다만 상인들에게 권력을 쥐여줘서는 절대 안 되겠지요. 그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 사람 목숨마저 부리며 철저하게 착취할 테니까요.”
“상업을 부흥시키되, 고삐는 명망 있는 사대부가 잡아야 한다는 뜻이더냐.”
“그렇습니다.”
반면 자본주의의 단점도 있다.
돈이 안 되면 꼭 필요한 것도 무시한다는 것.
예를 들면 환경 파괴나 노동 착취, 독점과 담합 같은 것 말이다.
이 단점을 억제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겠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잘될까 모르겠다.
분명 정경유착이 일어날 텐데.
최선은 백성들이 빨리 부유해지고, 교육의 기회를 얻어서 국민이 모든 걸 감시하는 것이다.
“그 점은 신중히 생각해보겠다만, 관학파는 워낙 상업을 경원시하는지라 어려울 것 같긴 하구먼.”
“제가 본을 보이겠습니다. 자세한 계획은 이쪽을 참조해주십시오.”
부산포, 군산항, 제물포를 중심으로 한 항만 개발 사업과 해운 발전 계획서이다.
“특히 남해로 뻗어 나가려면 대양 항해를 위한 선박이 필요한바. 부산포가 중요합니다.”
서해와 남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섬이 많아서 대양 항해를 위한 거대 범선이 오가기 힘드니까.
“그렇다면 그대가 부산포를 관리해 보겠는가?”
이걸 이렇게 해준다고?
미끼일지도 모르겠지만 꼭 필요한 만큼 덥석 물었다.
“맡겨만 주신다면 조선에 부유함을 가져다주고, 상업의 인식을 바꿔 보이겠습니다.”
“허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0년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굳이 제가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 바로 손을 떼겠습니다. 조선은 전하의 것이니까요.”
진심으로 상관없다.
부산포를 원하는 진정한 목적은.
장영실이니까.
기다려라.
귀여운 공밀레.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열다섯 살쯤 되지 않았을까?
영재교육 바로 간다.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지. 어차피 대마도를 정벌하려면 부산포가 꼭 필요할 터이니.”
“예. 전하.”
“다음을 논하지. 남해로 뻗어 나갈 생각이라면 대만도 손에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곳도 거의 비어있을 터인데 말이야.”
“대만을 손에 넣는다면 명나라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눈치 보는 것 아니냐.
자주성은 어디 갔어?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게 별로 안 중요하다.
상대가 강할 때는 조용히 힘을 기르는 게 제일이니까.
자칫 나폴레옹에게 본토가 털린 스페인 제국 같은 꼴이 될 수 있다.
그럴 위험을 무릅쓰느니, 갈등이 없는 선에서 조용히 뻗어 나가는 게 훨씬 더 이익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기회는 분명히 오니까.
“이 점을 미리 고려하여 제가 허가장이라는 광주의 유력자와 혼담을 통해 친분을 맺어두었습니다. 허가장의 이름으로 천주와 대만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명나라에서도 그리 반발이 없을 터.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뭐라!”
갑자기 이방원이 극도로 분노하여 일갈했다.
“네?”
“누구 마음대로 네 혼사를 결정한단 말이냐!”
뭔 개소리지?
내 혼사니까 내 마음대로 하지.
“혼례는 인륜의 중사이니, 마땅히 예로써 매빙하여 혐의를 구별하고, 은미함을 밝혀야 할 것이 아니냐! 빙칙위처 분칙위첩을 모르느냐!”
“…….”
빙칙위처 분칙위첩(聘則爲妻 奔則爲妾).
예를 갖추었으면 처가 되고, 임의로 관계를 맺었으면 첩이 된다.
에 나오는 구절로 쉽게 말해 본처가 되려면 중매로 해야 하고, 자유연애로 혼례를 올리면 첩이 된다는 뜻이다.
아직은 고려의 풍습이 진하게 남아있으므로 백성들은 상관없고, 양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또, 유학에서는 남편과 본처의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베갯머리송사 등으로 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고 한다.
즉, 남편과 본처 간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하는 셈.
이것이.
양반들이 본처와의 관계는 소원하되, 첩을 사랑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하오나 전하. 소신은 조실부모하고, 문중은 물론 일가친척도 없는지라 중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완벽한 대답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예?”
“과인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킬방원의 대답은 완벽 그 이상이었다.
“과인이 참한 조선 처자로 중매를 설 터이니, 그대는 따르기만 하면 되느니라.”
“…….”
아까는 ‘오히려 조선과 척을 지어라. 어차피 가족도 없지 않으냐.’라고 했으면서.
하여간 세상에 나만 정상이니까 살기 힘드네.
근데.
혹시 그 참한 조선 처자가 님 딸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