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74
073화 조선의 용 (5)
“전하께서는 공식적으로는 조선과 관계를 끊고, 오히려 척을 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공식적으로는 관계를 끊되, 개인적으로는 조선 여인과 혼사를 할 수도 있느니.”
말의 앞뒤가 너무 안 맞는데.
내가 뚱하게 킬방원을 보자, 그는 발끈해서 호통을 쳤다.
“조선 남자는 조선 여자랑 혼례를 올려야지. 조상님 뵙기 부끄럽지도 않으냐!”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나라는 유학의 본산, 제 예비 처도 제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네 조상은 명나라 말을 알아듣지 못할 터. 말도 통하지 않는 며느리에게 시부모를 모시게 하다니. 그 무슨 불효란 말이더냐!”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예비 처는 열심히 조선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워낙 총명한지라 금방 익히더군요.”
“어허. 그래도 이놈이!”
사관이…….
말대꾸?!
라는 표정이다.
“명나라 여자는 첩으로 하여라. 본처는 조선 여자가 제일이니라.”
“그…… 전하…….”
“왜?”
“그…… 행복하십니까?”
차마 ‘그래도 사랑하시죠?’라고는 못 물어보겠다.
너무 유명하니까.
킬방원과 원경왕후의 불화.
물론, 둘 사이의 문제는 킬방원의 책임이 99%는 된다고 생각한다.
후세 사학자들은 ‘태종은 외척을 견제하려고 일부러 후궁을 많이 두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하던데, 내가 보기엔 킬방원이 그냥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뿐이다.
원경왕후로서는 집안의 인맥, 가산, 그리고 본인의 내조까지 다 끌어모아서 왕으로 만들어줬더니 뒤통수 맞은 꼴이고.
“과인이 그대의 말을 믿었듯이, 그대도 과인의 말을 믿거라. 조선 여자가 제일이니라!”
인정한다.
킬방원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부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으니까.
그것도 전부 조선 여자로.
그렇게 좋아했으니까 부인도 많았겠지.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이다.
“숙고해보겠습니다. 그보다는 마저 천하를 논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날 터.
이렇게 몰래 만나는 의미가 없다.
“흥. 대마도 정벌은 당연하다.”
“그렇습니까?”
“만약 조선에서 거부한다면, 현 황제는 왜국을 통째로 정벌하려 들 것이야. 차라리 빠르게 왜구를 토벌하여 신경 쓰지 않게 만드는 게 제일이다.”
“왜국 정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하진 않겠지. 하지만 국력 소모가 무척 심할뿐더러 그 땅은 명나라가 가져갈 터인데, 왜 조선의 피를 흘려서 명나라 좋은 일을 시켜줘야 하는가.”
나는 일본 정벌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내가 만약 뛰어난 화학자이자 공학자, 과학자여서 질산암모늄과 항생제로 조선의 인구를 펌핑하고, 진짜 철갑함을 만들어 보낼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내 기본적인 방침이 웬만해선 싸우지 않는 것이다.
일본 정벌하는 데 국력을 다 꼬라박느니, 그 힘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게다가 고려가 원나라의 강압에 왜국으로 원정을 떠난 탓에 관계가 극히 나빠졌다. 만약 왜국 정벌이 실패한다면 후폭풍은 조선이 감당할 터. 안 하는 게 낫다.”
이건 그럴듯했다.
고려로서는 ‘우리도 압박을 못 이겨서 그런 건데…….’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고려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극우 사관에 의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정당화하는 이유로 이용된다나.
그렇다고 고려와 전쟁을 벌이기엔 이길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
국가적인 보복은 단념하고, 대신 왜구에게 약탈을 권장했다.
특히 대마도는 원정 때마다 첫 빠따로 처맞는 바람에 행정 기능이 완전히 붕괴.
왜구의 소굴이 되어 고려 말 수많은 왜구 침략의 단초를 제공했다.
“대마도는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다. 명분도 이쪽에 있고, 국력도 이쪽이 위다.”
“예. 전하.”
과정은 다르지만, 이해는 일치했다.
대마도 정벌은 그대로 준비하면 될 듯싶었다.
이제 남은 건 조선의 경제.
“그리고 이걸 받아주시옵소서.”
그에게 내가 쓴 책, 국부론을 넘겨주었다.
사실 이 책은 킬방원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은 책이다.
충녕대군도 봐주면 더욱 좋고.
동시에 그동안 썼던 동남아시아의 견문록도 넘겨주었다.
이 역시도 충녕대군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조선 밖 세상에도 흥미를 갖도록.
“바다로 뻗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상업이 발전해야 하고, 상업이 발전하려면 농업을 비롯한 생산력이 올라가야 합니다.”
명나라야 워낙 생산력이 엄청나니까 바로 중상주의를 도입해도 되지만, 현재 조선은 일단 생산력부터 올려야 한다.
방책이 있다.
전문 임금 노동자를 양성하여 수리 시설을 계속 만들고, 이앙법을 대대적으로 보급한다.
동시에 구아노를 퍼다 나르고, 동남아시아의 벼와 교잡까지 진행한다면 생산력은 극대화될 터.
진짜 국부론과는 달리, 내가 쓴 국부론에는 농업에 관련된 내용도 상당히 많다.
이 점은 허가장의 가주, 허관영에게 감사한다.
“화폐를 유통하려면 백성들이 화폐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고, 화폐의 필요성을 느끼려면 거래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거래가 활발해지려면 작물과 상품이 많아야 한다.”
“예. 그 아래에도 쓰여있지만, 화폐의 기본은 신뢰입니다. 국가가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하지요. 종이 화폐보다는 금속 화폐가 훨씬 유용할 것입니다.”
태종과 세종 때 화폐를 보급하려 애썼다더니.
바로 그쪽에 관심을 두네.
“조선에는 구리나 은이 부족해 화폐를 주조하기 어렵구나.”
“여기를 보십시오.”
팔렘방 위 방카섬을 가리켰다.
“이곳은 엄청난 주석의 산지입니다. 팔렘방을 통해 쉽게 수입할 수 있지요.”
이어 뉴기니섬 서부를 가리켰다.
“이곳은 구리의 엄청난 매장지입니다. 아직 본격적인 개발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 양은 정말 어마어마하리라 확신합니다.”
확신 정도가 아니라 확정이다.
서뉴기니의 그래스버그 광산은 현대를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금광이자 세계 2위의 구리 광산이니까.
세계 1위 구리 광산은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이고.
“구리같이 귀한 광물을 퍼가게 허락해주겠는가?”
“이곳은 나라가 없고, 부족 사회입니다. 따라서 잘 교역해서 자리를 잡으면 이 엄청난 자원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로 먹을 생각은 없고, 미리부터 호감도를 충분히 쌓아 둘 생각이다.
내 세력으로.
“금광이나 은광이 있으면 좋았으련만…….”
서뉴기니의 그래스버그 광산엔 세계 최대의 금광이 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모든 걸 다 보여주면 내 밥그릇을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미국 서부나 호주 동부에도 골드 러시가 있었을 정도로 큰 금광이 있다고 알고 있다.
상세하게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으니 광산 전문가를 데려가면 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현시점에서 세계를 뒤흔든 은광 중 개발이 된 곳은 없다.
한때 세계 은 생산량의 7%를 차지했다는 일본의 이와미 은광.
한때 세계 은 생산량의 60%를 차지했다는 볼리비아의 포토시.
달러의 기원이 된다고 할 정도로 유럽 경제를 뒤흔든 체코의 성 요아힘 계곡 은광.
이 광산들을 개발하면 나라를 살 정도의 돈을 모으지 않을까.
……아무래도 무함마드를 시켜서 미리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해둬야 할 것 같다.
“하늘이 도운다면 이 넓은 천하에 괜찮은 광산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러길 바라야겠지.”
일단은.
대마도 정벌 준비와 장영실 스카우트부터 해보자.
***
이야기를 마치고 태평관으로 돌아오니 벌써 해가 졌다.
한양에 있는 내 집에는 내일에나 가봐야겠다.
“음?”
그런데 내 숙소인 태평관의 누각 앞에 한 무리가 있었다.
혹시 간덩이가 부어서 칙사를 해하려는 무리인가 경계했는데, 횃불을 든 채 당당히 있을뿐더러 관복 색으로 보면 내시들이다.
그 앞에 있는 인물은…….
“세자 저하. 태평관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조선의 왕세자다.
왕세자인 만큼 봉호가 없지만, 나는 편의상 양녕대군이라 부른다.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만.
“그…….”
왕세자는 머뭇거렸다.
그거네.
양녕대군은 여흥 민씨 가문에서 자랐다.
그만큼 민무구, 민무질 등과 상당히 친할 터.
사면을 부탁하러 온 것이겠지.
안타까운 말이지만 이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송구하오나…….”
“내 칙사께서 옆에 둔 여인의 용모를 본 후로 마음이 심란하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떠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네?”
“이소군이라는 여인 말입니다! 실례가 되는 줄은 알지만 한 번만 더 뵈면 안 되겠습니까?”
조선의 왕세자.
후에 양녕대군.
12살.
여자에 눈을 뜨다.
“세자 저하!”
무척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또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통통한 왕자.
충녕대군이다.
“세자 저하께서 여긴 어인 일이시옵니까?”
“아, 충녕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예? 무엇이 아닙니까?”
귀엽네.
태종이 끔찍이 아끼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그런데 충녕이 너는 이곳에 어인 일이냐! 태평관은 황제 폐하의 칙사께서 머무시는 곳이니라.”
“알고 있사옵니다. 칙사께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서, 설마 너도?”
“예? 설마 형님도?”
이래서야 이목만 끌 뿐이다.
“잠시 들어오시겠습니까?”
내가 왕자들을 데리고 다녀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왔으니 어쩌겠어.
““그리하겠습니다.””
애들이 귀여운 걸 보면, 나도 슬슬 결혼할 때가 되긴 했나 보다.
내시들에게 눈짓하여 왕궁에 알리라고 한 뒤,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을 태평관 누각으로 데려갔다.
“오셨습니까, 대인.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하마연에서 뵌 기억은 있습니다만…….”
“왕세자 저하와 충녕대군이야.”
이소군은 몸을 단정히 한 후, 우아하게 예를 갖췄다.
“왕자님들을 뵙습니다. 내각군보의 첩, 이소군이라 하옵니다.”
심지어 언제 익혔는지 조선말까지 써가면서.
근데 아직 결혼 안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장 찍어버리네.
허신애에게 배운 걸까.
“예쁘다…….”
양녕대군은 이소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입에 침까지 흘렸다.
열두 살인데…….
조숙하다고 해야 하나.
싹수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소군. 차와 먹을 것 좀 준비해줘. 맛있는 거로.”
“예. 대인.”
방으로 데려가자 충녕대군은 차분히 무언가를 기다렸고, 양녕대군은 콧김을 뿜어대며 흥분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 평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중전마마께서 무척 슬퍼하실 말씀이로군요.”
“사실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명나라에는 원래 미인이 많습니까?”
“미인이 많긴 합니다만, 이소군의 경우 절세미인에 드는 편입니다.”
내 평가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평가가 그러니 맞겠지.
아마도.
“하오나 조선에도 미인은 무척 많습니다.”
조금 전까지 킬방원에게 조선 여인 예찬론을 듣고 오는 길인데.
“명나라는 조선보다 사람이 열 배는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인도 열 배는 많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절세미인이 탄생할 가능성도 열 배는 높고요!”
열두 살 아이의 생각이라고 하기엔 무척 총명한 말이다.
근데 그 총명함이 이상한 곳으로 발휘되는 것 같은데.
“차를 올리겠습니다.”
이소군은 허가장에서 가져온 홍차를 준비했다.
내가 전에 말했던 대로 우유와 설탕을 곁들여서.
이어 다과도 함께 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아련히 쳐다보는 양녕대군.
“충녕대군께서는 태평관엔 어인 일이십니까?”
“칙사께서 선물해 주신 흑당봉과 말린 망고를 먹고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혹시 다음에 오실 때는 더 넉넉하게 가져오실 수 없겠습니까?”
충녕대군.
후에 세종대왕.
9살.
식탐에 눈을 뜨다.
“그…….”
외삼촌들의 목숨이 간당간당한 시점이라, 울며불며 사정하러 올 줄 알았는데.
참으로 조선의 미래가 밝다.
아직 어린아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그게 정말입니까?”
근데 단거 너무 먹이면 당뇨병이…….
세종대왕께서 오래 살아야 하는데 이거 괜찮나?
……괜찮을 리가 없지.
“이것도 드세요.”
어떻게 무마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이소군이 다시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들고.
“아, 잠깐만.”
“예?”
“밤이니까 이건 안 좋을 것 같아.”
이소군이 가져온 것은 치킨.
순살 닭고기를, 밀가루와 향신료에 버무려 숙성한 후, 새로 짜낸 콩기름에 튀겨낸 다음, 간장 베이스로 양념한 리얼 순살 치킨이다.
하마연 때 제대로 못 먹어서, 킬방원 만나고 난 후 배고플까 봐 부탁했던 거였는데.
괜히 만들라고 했다.
“그건 무엇입니까? 먹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한발 늦었다.
충녕대군은 이소군을 본 양녕대군처럼 콧김을 뿜어내며 흥분했다.
“그…… 예. 조금만이라면요.”
충녕대군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빨리 한 점 먼저 먹으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도 인내심을 발휘하는 걸 보아 될성부른 떡잎인 듯싶었다.
바삭!
“잘됐네? 고생했어.”
“대인의 마음에 드셨다니 노력한 보람이 있습니다.”
이어 양녕대군과 충녕대군도 순살 간장 치킨을 입에 넣었다.
“절세가인이 만든 음식은 시커먼 남자 숙수 따위가 만든 음식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감미롭습니다. 그대가 만들어 준 음식을 평생 먹을 수 있다면, 내 수명의 절반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이소군을 향해 어른인 척 느끼한 대사를 날리는 양녕대군.
“맛있습니다. 이보다 맛있는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황홀하게 치킨을 탐미하지만, 그 와중에도 예법을 지키는 충녕대군.
오늘도 조선의 미래는 밝다.
“저…… 대인.”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석피가 조심히 안으로 들어왔다.
“응?”
“바, 밖에 엄청난 분들이 오셨습니다.”
“엄청난 분……들?”
내게 엄청난 분이라면 킬방원밖에 없는데.
아들 찾으러 원경왕후와 함께 왔나?
“손자와 조카를 찾으러 태상왕 전하와 상왕 전하께서 태평관에 오셨다고 합니다.”
태상왕과 상왕이라면…….
“맙소사.”
태조 이성계와 정종 이방과가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