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83
082화 조선의 딜레마 (2)
“영실아~”
“히이익!”
18세 소년이 기겁하며 하던 일을 멈추고 뒷걸음질 쳤다.
꿈에 그리던 내가 돌아오니 믿기지 않나 보다.
“녀석. 형이 오니까 그렇게 좋냐?”
“왜, 왜 벌써 오셨어요?”
“너 보고 싶어서 빠르고 깔끔하게 끝냈지.”
“그 무서운 왜구들을…… 쓸데없이 능력만 좋아서…….”
“칭찬이지?”
“다,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한다.
장영실이 날 싫어하거나 피한다고.
이건 전부 나와 영실이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음모다.
혹은 장영실이 특별대우 받는 것을 질투한 자들의 협잡질이거나.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를 보자마자 노비 문서를 불태워서 면천해 줬고.
관노였던 어머니도 면천해 줬으며.
괜찮은 기와집 하나 사주고.
일에만 집중하라고 하인도 고용해주고.
건강히 지내라고 고기도 계속 먹이는데.
인생의 은인인 날 싫어할 리 없다.
역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장영실은 츤데레라서 날 흠모하는 마음을 숨기고 투덜대는 것뿐이다.
“네가 만든 새로운 대포를 써봤는데, 위력도 괜찮고 장전 속도도 괜찮아. 근데 열이 잘 안 식더라.”
그때야 떠올랐다.
한국군이 썼던 박격포에도 방열판이 있다는 것을.
원리는 간단하다.
매끈한 표면에 주름을 넣어 표면적을 넓히는 것이다.
“다음 거푸집을 만들 땐, 여기 표면을 구불구불하게 하자고.”
“……예.”
“그리고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는데, 우리가 대포를 만들 때 주철로 만들고 그 위를 청동으로 덮잖아.”
“우리가 아니라 제가 만들지요.”
“그렇게 따지면 네가 만드는 게 아니라 용광로와 거푸집이 만들지.”
장영실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할까 고민하는 자세가 무척 훌륭하다.
“자세히 보니까 어떤 대포에는 주철에 금이 가 있어. 아무래도 주철 쇳물에 기포가 있어서 내구력이 약해진 것 같아.”
그렇게 말하자 장영실은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역시 프로 정신이 대단하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기특해.
“……어떻게 할까요?”
“쇳물을 이렇게 생긴 관을 통해 넣으면 기포가 줄어든다고 들었어.”
U자관을 말한다.
물론 냉각 속도도 중요하지만, 이는 장영실이 알아서 했겠지.
“하지만 철을 주조로 만드니까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용광로가 자꾸 무너집니다.”
“벽돌을 내화벽돌로 써.”
“그건 어떻게 만듭니까?”
“간단한 방법은 벽돌을 만들 때 톱밥을 넣으면 돼. 톱밥은 벽돌을 구울 때 타서 사라지지. 그러면 구멍이 많아지면서 내화성이 올라간다.”
열을 효율적으로 방출하니까.
방열판과 같은 원리다.
“복잡한 방법은요?”
“다른 재료를 섞으면 된다.”
“그 다른 재료가 뭔가요?”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왜 그래.
아마추어처럼.
모르는 건 아니다.
알루미나를 쓴다고 알고 있다.
근데 알루미나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모른다.
알루미늄이랑 비슷한 건가?
그건 전기 없이 구하려면 금보다 비싸다던데.
“아~ 맞다. 명나라에서 백자를 만드는 데 쓰는 경덕진 고령토가 고온을 잘 견딘다고 했지. 그걸로 벽돌을 만들면 되겠다.”
계속해서 팔아야 하는 철화백자의 재료로는 쓰기 힘들겠지만, 용광로를 만들 때 들어가는 정도는 충분히 유통할 수 있다.
영락제 눈치 안 봐도 되니까.
“경덕진 고령토라면…… 헉. 어, 엄청 비쌀 텐데요?”
“괜찮아. 형이 널 위해서 그거 하나 못 사 오겠냐.”
“……절 위하신다면 안 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좋은 재료 없이도 해내겠다는 너의 마음가짐은 매우 훌륭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많으니까 일단은 좋은 걸 써서 성공부터 해보자고.”
고령토로 내화벽돌을 만든다.
부서지면 그 벽돌을 깨서 점토에 섞어서 다시 벽돌을 만들면 된다.
초기 투자만 하면 되니까 돈이 그리 많이 들지도 않는다.
“…….”
“녀석. 너무 기뻐하는구나.”
상상하던 모든 걸 구현할 수 있는 환경.
공돌이에게 이보다 좋을 순 없지.
“다음. 배는 어떻게 됐어? 야야. 조선 맹선 진짜 쓸데없더라. 각국의 배 설계도 보여줄 테니까, 장점만 흡수해서 설계해봐. 쉽지?”
애초에 한선은 근해 수송이나 방어를 목적으로만 발전해왔으므로, 대양 항해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날렵하고 긴 갤리온 형태에 한선과 당선의 장점을 흡수해서 새로 만들어야지.
“그리고 은광을 얻었는데, 지금으로선 채산성이 안 나와. 회취법을 개량해서…… 아니다. 이건 무함마드에게 맡겨야겠다.”
화학이나 연금술에 더 가까울 것 같으니.
“내가 고민이 있는데, 조선 생산성이 너무 안 나와. 역시 도구로 보조해야 할 것 같아. 최소한 농업만이라도.”
구아노를 퍼오겠다고 했는데, 나우루가 생각보다 멀더라.
이제 겨우 뉴기니섬에 어떤 부족과 안면을 텄을 뿐이다.
“아, 미안. 최소한으로 하면 안 되지. 공업도 그래야 하니까. 먼저 가볍게 베틀부터 개량하자고. 이거 원리가…….”
“신기합니다.”
“뭐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일을 만들어 내실 수 있는 겁니까?”
“일자리를 새로 마련하는 건 내 특기지.”
녀석. 훌륭한 기업가라고 칭찬도 해주고.
역시 시대를 앞서나간 공돌이다.
“제가 죽기 전엔 끝낼 수 있겠죠?”
“당연하지!”
“휴우.”
“죽기 전에 못 끝낼 것 같다면 불로초라도 구해 오마.”
“후우…….”
장영실은 머리를 깊게 숙이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무언가 결심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렇게 감동하지 않아도 돼.”
“감동한 거 아닙니다. 단지…….”
“단지? 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영실은 서랍장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비단 두루마리.
장영실이 갖고 있기엔 무척 고급스럽다.
설마…….
“교지?”
“예. 교지입니다.”
황제가 내리는 명령을 담은 문서를 성지.
왕이 내리는 명령을 담은 문서를 교지라고 한다.
즉, 킬방원이 내린 명령이라는 뜻이다.
교지를 앞에 둔 순간, 지금처럼 친근하게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전하께서 내린 교지를 어찌하여 네가 갖고 있단 말이냐.”
“직접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펼쳐 보았다.
교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장영실을 조정에 불러들여 궐내 공장(工匠) 일을 맡기고, 킬방원이 친히 보호하겠다는 명령이다.
“이게 무슨!”
“나리께서 당황하시면 이걸 보여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서신을 넘겨주었다.
놀랍게도 발신자는 킬방원이었다.
+++
과인의 충성스러운 신하 강해인은 보아라.
그대는 20년 안에 성과를 보여주겠다 했지만, 과인이 보기엔 지난 반년으로 충분하였다.
특히 백성들에게 충효와 안분지족을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적절한 대가를 보장해 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대신들은 반대하지만, 차근차근 상업을 중시해나가도 괜찮을 듯싶더구나.
그동안은 백성들의 고통만을 생각하여 공사를 일으키는 걸 최대한 자제하였건만.
예산을 사용하여 전문 일꾼을 양성하는 것도 시험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의 말대로 필요한 공사를 한다면, 그 혜택은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요.
나라에서 품삯을 치른다면, 일꾼들은 그 삯으로 물건을 사게 되어 거래의 필요성이 점점 늘어날 테니 말이다.
다행히 현 재정은 여유가 있는바.
다시금 나라를 세운다는 각오로 씀씀이를 아끼고 이를 경세제민에 쓴다면, 10년 뒤 조선은 그렇지 않은 조선보다 더 나을 것이다.
다만 그리하려면 능력 있는 인재가 수없이 필요한 법.
기술과로 들어오는 인재만으로는 모자라고, 과인은 궁궐에 묶인 몸이라 일일이 인재를 찾아다니기 어렵구나.
장영실처럼 뛰어난 인재를 찾는 능력은 그대만 한 자가 없으니 그대의 노고를 기대하마.
앞으로도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고 키워낸다면 과인이 친히 중용하여 쓰겠다.
그대의 얼굴이 보고 싶구나.
속히 토벌을 마치고 무사히 한양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때 장영실도 꼭 데리고 오너라.
+++
와. 인성…….
그러니까 내가 내 돈 들여서 면천까지 시킨 장영실을 홀라당 빼가겠다는 거지?
진짜 생각지도 못한 전개라서 어이가 없네.
“아니, 영실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총명하신 나리께서 이해 못 하셨을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너 궁궐 가면 죽을 때까지 부려 먹힌다.”
차라리 킬방원은 괜찮지.
다음 대엔 더 무시무시한 왕이 기다리고 있어.
“나리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마! 그래도 난 휴가도 주고! 으이! 녹봉도 넉넉하게 주고! 으! 내가 일만 많이 시켰지…….”
“나리.”
장영실은 제 나이답지 않게 무척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결단을 한 듯했다.
“……네가 전하의 명을 받은 이유가 있더냐?”
“임금께 충성하고, 부모께 효도하는 것이 도리라 배웠습니다.”
“그것뿐이냐?”
“사내로 태어나 입신양명을 꿈꾸는 게 무에 잘못이겠습니까?”
장영실의 눈을 바라보았다.
맑다.
장영실처럼 총명한 아이가 오직 출세만을 위해 내가 베푼 은혜를 저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가 날 떠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리께서는 소인을 이해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지.”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깊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리를 이기고 싶습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순간 뇌 정지가 왔다.
“나리께서는 유학을 배운 선비로 약관 이전에 대과에 합격하시어 전하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곧 황제 폐하의 눈에 들어 원정대에 발탁되었으며, 그곳에서도 활약을 거듭하여 이제는 나리의 존함을 삼척동자도 압니다. 심지어 대명이나 왜국, 남해에서도 그런다지요?”
“운이 좋았다.”
“동래 장터에 오는 명나라 상인들이 그러더군요. 나리의 상재와 안목은 감히 비길 데가 없다고. 또한, 해전에 나가면 천하무적이라고요.”
“과장이고 허명이다.”
“오늘 다시금 확신이 들었습니다. 세세한 제작 기술은 몰라도, 공장 기술의 앎과 설계, 실천에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고요. 만약 제가 없어도 나리께서는 어떻게든 해내셨겠지요.”
장영실이 가까이 왔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주상 전하께서 하신 ‘과인과 함께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해보자.’라는 명을 받들기로 했습니다.”
“나는 네가 필요하고, 너 역시 내가 있으면 훨씬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이를 모르겠느냐?”
“저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최소한 공장(工匠) 일에 한해서는 나리를 이겨보고 싶습니다.”
장영실은 정성스레 절을 했다.
“나리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며 평생에 걸쳐 갚아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저는 나리를 이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영실이라는 자가 공장 일에 한해서는 천하제일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어린 소년의 당당한 포부.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
“삐졌네.”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삐졌네.”
부산에 마련한 내 집.
나, 이소군, 석피, 무함마드가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열었다.
그리고 장영실 이야기를 들은 무함마드는 웃으면서 나를 놀려댔다.
이소군과 석피는 조금 놀랐을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마. 그렇게 따지면 선장이 독립하겠다고 했을 때, 정화 제독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걸?”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조선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
“맙소사. 인재 하나 빼갔다고 역모를 논한다고?”
“멍청아. 말조심해. 그게 아니라 내가 조선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문제라고.”
“지금처럼 하면 안 돼?”
“그러기엔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도 나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다.
애국심은 주입하는 게 아니라 우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것이.
나에게 있어 조선의 딜레마다.
무시하고 내 갈 길 가자니, 그래도 정이라는 게 있고.
어떻게든 끌고 가자니, 내 발목을 잡네.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이익과 신뢰를 전제로 성립한다.”
조선을 명나라의 탱커로 키우려고 이 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되면 차라리 내 세력의 몸집을 키워서 탱킹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근데 이번 일로 신뢰가 깨졌어. 내가 조선에 힘써서 얻는 이익도 따로 없고.”
안 그래도 명나라라는 엄청난 괴물에게서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게 고민과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무함마드. 넌 오스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잖아. 하지만 생각해보면 돌아가 봐야 널 반겨줄 사람은 빚쟁이밖에 없지 않아?”
“그렇긴 하네.”
“그런데 넌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돌아가려고 하냐?”
그냥 내 밑에서 일하면 돈 넉넉하게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텐데.
“아무 이유 없는데?”
“뭐?”
“그냥 고향에 가고 싶은 거지 무슨 이유를 찾아. 가보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다시 나오면 되는 거고.”
“그러니까 오스만 술탄국에 임관하고 싶어서는 아닌 거네?”
“아무 이유 없다니까.”
자유로운 영혼이네.
하지만 그 말에서 답을 얻었다.
만나보고.
대답을 듣고.
그다음 결정하면 된다.
혼자 스트레스받아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까.
“다들 한성으로 갈 준비를 해놔.”
킬방원을 만나 담판 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