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88
087화 날개를 펴다 (1)
“통조림?”
“음식을 오래, 간편하게 보관하는 기술입니다.”
영락제는 통조림을 들어 올렸다.
“상당히 무겁군. 그런데 이건 어떻게 여는 건가?”
“특수한 따개가 있습니다. 날붙이라 이곳까지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허가해줄 테니, 조금 후에 보여주어라.”
“예. 폐하.”
“그런데 이거 두 개의 재질이 다르군.”
“하나는 잡철로 통을 만들고, 그 위에 주석을 덧씌웠습니다.”
양철을 말한다.
현대처럼 전기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도금하고 싶었는데, 전기를 만들 줄 몰라서 포기했다.
대신 녹인 주석에 잡철 통을 담갔다 빼는 방식으로 용융도금을 했다.
주석은 무척 비쌀뿐더러, 주석만으로 통을 만들면 무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주석은 팔렘방 앞에 있는 방카섬의 광산에서 채굴했다.
세계 최대의 주석광산이라고 들었는데 채굴 기술 수준이 낮은 탓인지 생각보다 양이 많진 않았다.
“다른 하나는 납을 이용했습니다.”
“굳이 나눈 이유는?”
“납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하여 이렇게 두 종류로 준비했습니다.”
주석은 비싸니까.
하지만 밀봉할 때 쓴 땜납에 주석이 들어간다는 게 함정.
심지어 골격을 싸구려 잡철로 했는데도 철 가격 역시 비싸더라.
아무튼 통조림은 내 생각보다 단가가 엄청 비싸다.
음식값이나 인건비는 생각보다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데, 광물 가격이 엄청나서.
조금이라도 광물값을 아끼고자 대용량으로 만들었다.
크기를 다양하게 해서, 멸균이 잘되는지도 시험하는 중이고.
“양철은 장군용, 납은 병사용이라고 상정하고 만들었습니다.”
“이 통조림이라는 게 운반 말고 어떤 장점이 있는가?”
“보존 기간이 깁니다.”
“어느 정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몇 년은 너끈히 버틸 거라 생각합니다만, 현재를 기준으로 증명된 시간은 반년입니다.”
덜컥!
영락제가 옥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있던 황태자 주고치와 대신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년? 확실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대월 원정 때 사용해보시면, 장군과 병사들이 폐하께 솔직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공식적으로는 내가 영락제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는 물론, 명나라 군부에는 티끌만 한 영향력도 없다.
그러니 그들은 매우 솔직하게 평가하겠지.
나에겐 오히려 더 좋고.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가?”
“이 통은 단조가 아닌 주조로 만들긴 하지만, 생각보다 생산 속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조림을 만드는 기술을 폐하께 진상하겠습니다.”
이 시대 모든 것은 황제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문의 비전’이라는 이유로 그 권리를 지켜주는 예가 상당히 많다.
물론 어느 정도 힘이 있을 때나 지킬 수 있는 권리이긴 하지만.
“엄청난 재물을 모을 수 있는 기술이라 보는데, 어찌하여 짐에게 진상하는가?”
“안타깝게도 소인의 능력으론 폐하의 충성스러운 장병들이 배불리 먹을 정도로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명 천하에 이를 공개하여 10대 거상을 비롯한 이들이 만들기 시작한다면, 대월 정벌뿐만 아니라 나중에 북원과 싸울 때도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명나라에도 주석광산은 많다.
특히 장강 이남에 많다.
하지만 명나라 상인들이 과연 손이 많이 가고, 비싼 주석으로 통조림을 만들까?
값싸고 쉬운 납으로 만드는 방법도 알려줬는데?
병사들이 납 중독으로 훅 가더라도 내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난 둘 다 알려줬고, 납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알려줬으니까.
……근데 솔직히 병사들이 죽어 나가도 납 중독이 원인인지도 모를 것 같긴 하다.
“보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폐하의 용맹한 군대가 그 힘을 십분 발휘할 것은 불문가지. 폐하의 위엄이 천하 만방에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태자야.”
“예. 폐하.”
“대월은 어떻게 되었나.”
황태자 주고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대명으로 피신하여 폐하께서 안남왕으로 책봉한 쩐 왕조의 왕족 진첨평이 폐하의 명에 따라 안남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안남은 베트남을 발한다.
대월은 민족, 안남은 지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호계리는 장남인 호원징에게 군대를 주어 지릉관에 매복. 진첨평과 그의 호위로 보낸 폐하의 군대를 기습하였습니다.”
“뭐라!”
영락제는 대로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연기다.
이 정도 중요한 사항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모르는 척 조용히 원정을 준비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려서 군대를 일으키려고 했겠지.
정벌의 명분으로 삼기 위해서.
호계리는 현 대월의 상왕 호꾸이리를 말한다.
말이 상왕이지 사실상 왕이다.
현 왕은 둘째 아들인 호한창(호안뜨엉)이고.
“이후 호계리는 포로로 잡은 진첨평을 쩐 왕조의 왕족이 아니라, 왕족을 사칭한 관노였다는 점을 명분으로 능지처참하였습니다.”
쾅!
“감히 짐이 안남국왕으로 책봉한 자를 능지처참했다고?”
“예. 폐하.”
“짐이 이걸 참아야 하는가!”
“““아니옵니다!”””
대전에 있던 대신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다들 연기 잘하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데.
“짐은 호계리를 용서할 수 없다. 80만 대군을 일으켜 대월을 정벌하겠노라!”
80만 대군을 일으킨다고 했으니까, 8만 명 정도 보내겠네.
하여간 구라는 오지게 쳐요.
“내각군보 강해인.”
“예. 폐하.”
“그대가 생각하기에 대월의 현황은 어떠한가.”
“대월의 국력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고, 왕조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내부의 혼란도 가라앉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기는 건 거의 확정이다.
지금 시대 명나라 장군들은 상당히 유능하기도 하니까.
“아유타야(태국), 애뢰(라오스), 참파 등을 통해 국경을 압박하게 하고, 쩐 왕조의 유신들을 회유한다면 폐하의 용맹한 장병들은 손쉽게 대월을 함락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국뽕 한 스푼 더 먹여줘야지.
“이는 원 세조(쿠빌라이 칸)도 끝까지 이루지 못했던 대업이나, 폐하께서는 하시고자 한다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듯합니다.”
“정이 장군 주능에게 명하라. 당장 군을 일으켜 호계리를 압송해 오라고.”
이렇게 대월이 가는구나.
대월이 정복되면 그쪽 상권을 먹고, 레 리를 만나서 힘을 키워줘야겠다.
……응?
당장?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 8만이지, 이들의 보급을 생각하면 하루아침에 군을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물자를 준비하는 데 적어도 반년은 걸린다.
“““예. 폐하!”””
하지만 대신들은 물론, 황태자 주고치까지도 아무런 반론 없이 허리를 숙였다.
이미 정벌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원 역사에서 언제 대월 정벌이 시작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각군보 강해인.”
“예. 폐하.”
“이 통조림이라는 건 얼마나 준비할 수 있나?”
“반년 동안 만든 것을 모두 분출한다면 대략 3만여 개 정도 됩니다.”
엄청 많아 보이지만, 8만 군대의 한 끼 식사분도 안 된다.
“그것들은 어디에 있느냐.”
“말씀만 하신다면 곧바로 광주에 준비해 두겠습니다.”
“좋다. 전부 짐이 사겠다.”
“폐하의 대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3만 개 전부 진상하겠나이다.”
홍보용이다.
통조림의 편리성을 한 번 맛보면, 현장에서는 계속 원할 수밖에 없으니까.
“참으로 충성스럽도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
백의민족에게 삼세번 거절은 미덕.
하지만 영락제는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자를 싫어한다.
그래서 다이렉트로 말하기로 했다.
“통조림의 독점거래권을 원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대에는 특허권 같은 개념이 없다.
그냥 좋은 거 나오면 베끼면 그만.
밀봉이나 멸균은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이 역시도 산업 스파이를 보내서 기술을 빼돌리면 그만이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다른 이들의 기술을 빼돌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매권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옵니다. 이 기술은 잘만 이용하면 대명의 위세에 큰 도움이 될 터. 저 혼자 쥐고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황실과 조정, 군에 우선적으로 납부할 수 있는 권리를 원합니다.”
명나라 전체에 기술을 퍼뜨린 후, 똑똑한 상인이나 장인이 더 좋은 양산 기술을 개발하면 내가 그걸 빼돌릴 생각이다.
그런 다음 거래권과 유통망을 이용해서 알짜배기를 독식하는 거지.
내 지식으로는 여기서 더 발전시키기 어렵더라.
그러니까 똑똑한 사람들 머리 좀 빌리자.
“태도가 많이 바뀌었구나. 조선에서 그대를 천대했기 때문인가?”
영락제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대 같은 인재에게 조선은 매우 답답한 나라이긴 하지. 안 그런가.”
“““예. 폐하.”””
시대를 고려하면 얼마 전에 조선에서 있었던 일을 영락제가 벌써 아는 게 말이 안 된다.
즉, 조선의 대소신료 중에 명나라에서 회유한 자가 있고, 그가 내 배에 타는 명나라 장병 중 누군가에게 밀서를 보내 사정을 알려주었다는 뜻이다.
이야. 정보력 대단한데?
이런 건 조선왕조실록에도 없는 내용인데 말이야.
“사내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에게 목숨을 바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소인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래? 하하하.”
영락제는 이 상황이 무척 기꺼운지 계속 웃었다.
“내각군보 강해인.”
“예. 폐하.”
“사흘 뒤 포상은 기대해도 좋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참 재밌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조선을 생각해서 막 나간 거였는데.
그게 이렇게 좋은 기회가 될 줄이야.
그럼 명나라 엉덩이 밑에서 잠시 신세 좀 지겠습니다.
***
그날 저녁.
숨 돌릴 틈도 없이 황태자의 만찬에 초대받았다.
“오늘은 그대와 진솔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예의는 차릴 필요 없다.”
영락제 앞에 있을 때는 유능한 집사 같은 느낌이건만.
이렇게 따로 만날 땐, 황태자에게서 군주가 지녀야 할 자질과 위엄이 절로 느껴졌다.
“우선 내가 그대를 잘못 평가했음을 인정해야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대는 내 생각보다 유능했고, 명 황실에 충성스러웠다.”
원래 평가가 옳았고, 수정한 평가가 잘못되었다.
나는 명나라 등골에 빨대를 꽂아서 쪽쪽 뽑아 먹을 생각밖에 없는데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은 5천 냥을 냈다고 하지만, 명나라의 위세를 이용해 동남아시아 곳곳에 사업장을 세우고 쉽게 무역하고 있으니까.
할 거 다 하고 남는 돈을 세금으로 낸 것뿐이다.
명 황실에 준 뇌물을 세금이라고 하면 세금이라 할 수 있겠지.
“또한, 그 성장 속도가 엄청나니, 향후 명나라 재정의 대들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폐하의 은덕이고, 황태자 전하의 혜안이며, 제독 정화의 도움입니다.”
“정화가?”
“제독 정화는 남해의 여러 나라에 조공·책봉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공 무역 특성상 큰 이익을 볼 수는 없는 법.”
따거…… 천자국 체면이 있지, 신하 국가를 상대로 이익을 남길 수 없으니까.
다만 해상 무역이라는 이점과 희귀한 사치품 거래라는 특성 덕에 이문이 남는 편이다.
“따라서 많은 거래를 저에게 몰아주고 있습니다. 그 덕에 큰 이문을 남겼고, 소소하나마 황실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었지요.”
“훌륭하다. 충신들이 먼 타지에서 고생한 덕에 한결 근심을 덜고 있다.”
“전하의 근심을 덜어드릴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대의 행보가 우려스럽다.”
황태자가 예리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설마……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건가.
“어떤 점이 우려스러우신지 말씀만 해주신다면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그대가 잘할수록 시박사의 총책인 한왕 주고후가 횡령하는 자금도 많아질 것이 아닌가.”
아니구나.
하긴 황태자가 궁예도 아니고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
황실의 권력 암투인지라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한왕 주고후랑 멀어지고 싶다.
조선이 나에게 답답함을 준다면, 한왕 주고후는 내 몸에서 자라나고 있는 암 덩어리 그 자체니까.
이 시대엔 암 보험도 없는데 참 큰일이다.
돈 뜯어 가는 거야 각오했던 일이라 상관없는데, 내게 악감정이 있는지 자꾸 태클을 건다.
물건값을 후려치는 건 기본이고 일부러 상품을 준비 못 하게 방해도 하니까.
이것까지도 괜찮은데, 자꾸 내 사업장을 가져가려고 한다.
만약 명나라 대신들에게 주식 지분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명나라에 있는 알짜배기 사업장은 홀라당 뺏겼겠지.
“나는 시박사를 오직 육로 무역에 한정하고, 해상 무역을 담당하는 기관을 새로이 설치하고자 한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황태자로서는 당연한 조치다.
한왕 주고후는 아무 생각 없이 남해 원정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으니까.
정치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그와는 별도로 황태자 자리는 꽤 든든한 편인데, 황태자비인 장씨와 황태손 주첨기가 영락제의 엄청난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왕 주고후는 세력이 강해질수록 더더욱 분노 조절 장애를 표출하고 있어서 대신들이 그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아내와 아들 덕에.
그리고 강력한 경쟁자인 동생이 자멸하고 있는 덕에 황태자 지위가 굳건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게 이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다.
만에 하나라도 한왕 주고후가 황위에 오르면 황태자 주고치의 일가는 모두 처참하게 죽을 테니까.
그러니 황태자도 어떻게든 견제하려는 것이겠지.
“그대가 그 기관을 맡아주겠는가?”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오나 소신은 명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가?”
“적어도 10년은 제 충성을 더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정도 지나면 영락제의 나이도 50대 중반을 넘을 터.
기력이 많이 부족해지고 상황 판단도 바로바로 안 될 테니까.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대의 언행이 일치하고 있음을 폐하는 물론, 나 역시도 잘 알고 있으니.”
역시 내 배에 간자를 많이 심어놨나 보네.
상관없다.
난 모든 걸 투명하게 처리할 거고,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흐름이 오게끔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설마 또 부마 제안은 아니겠죠?
이 시대에 혈연으로 엮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다고 해도, 레퍼토리가 너무 뻔하면 재미도 없는데.
“그대가 직접 폐하께 해상 무역을 담당하는 관청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겠는가?”
뻔하고 재미없어도 되니, 그냥 부마 제안으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이라면 그 딜을 받아들일 생각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