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92
091화 날개를 펴다 (5)
“황태자 전하께서 좋은 평가를 해주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본이 10배 늘어나는 거야 좋지.
근데 그 주식을 파는 건 내가 해야 하는데.
물론 지금까지 성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보지만, 그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나는 건 아무래도 귀찮다.
“다만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불균형을 말하는가.”
“예를 들어 팔렘방에서 10만 냥을 냈는데, 정작 팔렘방에는 1만 냥밖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그대가 알아서 잘 조정하면 될 것이 아닌가?”
황태자는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이해를 못 한 척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 주나라의 예를 본받고자 합니다.”
“상단을 운영하는데 주나라?”
“예. 현 창해 주식 상단을 주왕과 같은 위치에 두고 그 밑에 각국의 지사를 세워 제후 같은 위치로 놓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지주회사의 설립이다.
지주회사라고 하면 못 알아먹을 테니까 봉건제의 형태를 빌려 말하는 거고.
“각국의 자본은 그 국가에 투자케 하는 것이 분란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형평성 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지사를 키워서 각국의 국력을 높여주는 게 진짜 목표다.
지금 이대로 가면 명나라에 너무 끌려갈 테니까.
“……그대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리하라.”
“예. 전하.”
황태자는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히 이해를 못 한 것처럼 보였다.
이래서 사기꾼들이 사기 칠 때 혓바닥이 길어지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 아래 주식 추가 발행이 결정되었다.
***
인간관계는 기본 Give & Take다.
황태자가 무슨 이유로 주주 총회에서 나를 지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게 예의.
나는 곧바로 황태자의 제안을 지지해주기로 했다
“……따라서 해상 무역은 더없이 커질 터. 시박사에서 해상 무역을 관리하는 관청을 따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상 무역이 얼마나 커질지는 잘 안다.
따로 분리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이를 건의하기 망설였던 이유는 단순히 한왕 주고후와의 마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으로 바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터. 이에 따라 재정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전문적으로 해군을 양성하고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해군이라면 그대에게 양성하라 명을 내리지 않았느냐?”
영락제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래. 이 점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내가 군대를 이끌게 될 텐데, 조금만 문제가 돼도 숙청 각이 세게 잡힐 수 있으니까.
영락제든 킬방원이든 절대 황권, 절대 왕권을 추구하는 인물.
사병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구와 해적이 날뛰는 이 시대에 사병 없이 어떻게 무역을 하나.
그래서 조선에서는 수군을 대여하는 형식으로.
명나라에서는 원정대의 이름을 빌리는 형식으로 사실상 사병을 운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어차피 왕은 별도의 군대를 보유하게 되니까.
“물론 저는 대명을 지키는 바다의 만리장성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대명의 해군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다에 감당하기 힘든 적이 생긴다면 백성을 내륙으로 이동시키면 될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 시대 대륙인들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바다에 무지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어떤 바다의 적도 결국 육지에 있는 무지막지한 인구의 벽을 뚫을 수 없었으니까.
정성공이 명나라 부흥 운동을 할 때도.
아편전쟁으로 털릴 때도 청나라는 당당했다.
황제 입장에서 해적은 귀찮은 적일 뿐이지, 왕조를 위협하는 적은 아니었던 것이다.
수천 년 역사 중 바다의 적이 왕조를 위협하는 데 성공한 역사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나라’는 달랐다.
영국은 정복의 프로였고, 청나라의 약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곧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남경을 박살 내고 경항대운하를 봉쇄해 버린다.
북경 코앞에 있는 천진항도 봉쇄해 버리고.
그제야 엿 됐음을 깨달은 청나라는 항복하고 굴욕적인 외교조약을 맺게 된다.
“만약 바다로 수많은 군대를 옮길 수 있었다면, 짐은 진작에 왜국을 정벌했을 것이다.”
“그, 그것이…….”
할 말이 없다.
설득할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설득할 이유가 없어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두는 게 나한테 더 이득이니까.
“바다는 그대에게 맡겼다. 해군 양성은 알아서 하도록.”
“예. 폐하.”
“단, 굳이 그대가 육군을 양성할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짐에게 말하라.”
나름대로 견제책인 것 같지만, 글쎄…….
바다를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은데.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등신이라서 코앞에 있는 영국을 함락하지 못했던 게 아닌데 말이다.
“육군은 대두국의 치안을 유지할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래. 그것으로 되었다.”
“하오면 해상 무역을 담당하는 관청은…….”
“황태자의 말에 의하면 해상 무역은 점점 커질 것이라 들었다.”
“예. 폐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시박사에서 따로 분리하여 천주에 해관을 설치하겠다.”
“천주에 말입니까?”
취안저우를 말하는 것이다.
대만섬 맞은편에 있는 항구.
본래는 광주가 아니라 여기가 중국의 국제 무역항이었다.
“광주가 점점 번성하자 천주에서 상소가 끊이질 않고 있다.”
천주도 주요 항구인 만큼 나도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떡고물에 묻은 콩가루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폐하의 뜻대로 해관은 천주에 설치하고, 저 역시도 조선과 왜국 무역은 천주에서, 남해 무역은 광주에서 담당케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좋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상세한 건 알아서 조정 대신과 협의하여 결정하겠지.
다만 찝찝하다.
그 영락제가 얌전히 내 말을 들어주니까 뭔가, 뭔가 허전하다고 해야 하나.
이래서 빌런이나 천적이 있어야 삶에 긴장감이 생기고, 오히려 더 활기차진다고 하는 것 같다.
알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나리. 왜 그런 표정입니까?”
“이상해서.”
“어떤 것 말씀입니까?”
“너무 순조롭잖아.”
내가 아는 역사라면 온갖 견제가 들어오고, 어떻게든 꾸역꾸역 나를 막으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순탄한가.
“전쟁에 관련된 격언 중 이런 말이 있어. 작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적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뜻이다.”
석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적왕을 상대할 때, 이렇게나 운이 없을 수가 있느냐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참 옛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1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게 소름 돋는다.”
“그만큼 바쁘게 사셨고, 많은 일을 하셨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제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도 있지.”
“그런 말도 있습니까?”
“추락하려면 일단 날아올라야 하니까.”
떨어지면 아프지.
많이 아프지.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 하는데, 이 이상 뭘 조심할 수 있나 싶다.
“비렁뱅이.”
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조심해야 할 게 정해져 있었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왕 전하.”
같은 왕이라고 해도 끗발이 다르다.
이 시대 명나라의 위엄은 진짜 미친 수준이니까.
얼마 전, 태감 황엄이 조선에 파견될 칙사로 선정되었는데, 영락제가 제주도에 있는 불상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황엄은 제주도에서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심지어 사람을 때려죽이기도 했다.
킬방원이 빡쳐서 교외로 영접을 나가지 않자, 황엄은 킬방원에게 불상을 가리키며 절을 하라고 요구했다.
조선이 숭유억불 정책을 펴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으니, 대놓고 엿 먹어보라는 갑질을 한 것.
킬방원은 극도로 분노했지만, 차마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이 탓에 조선에서는 ‘황엄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강해인이 낫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칭찬이겠지?
아무튼, 칙사라고는 해도 일개 환관이 이 정도인데, 영락제의 아들인 한왕 주고후는 어떻겠는가.
같은 왕이라고 해도 그 수준이 다르다.
더욱이 난 아직 영토도, 병사도 없는 왕이니까.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게냐.”
“황공하옵게도 폐하께서 알현의 기회를 주셔서 여러 가지 일을 고하였습니다.”
“네가 뭘 고한단 말이냐! 장사치답게 어서 가서 한 푼이라도 더 벌지 않고!”
이 녀석도 자본주의 맛을 봤네.
그렇지?
역시 돈이 최고지?
근데 이제 그 돈은 네 것이 아닌데.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올해에는 작년의 다섯 배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다, 다섯 배?”
주고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돈 걱정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그에게도 엄청난 돈인가 보다.
이 녀석만 아니었어도, 작년 수익이 최소 두 배는 되었을 것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니만, 비렁뱅이에게도 상재가 있는 모양이구나. 처음부터 그 길로 나가지 그러하였느냐.”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흥. 됐다. 오늘은 봐줄 터이니 계속 납작 엎드려 개처럼 일하라.”
“예. 전하.”
한왕 주고후는 기분이 좋은지, 천책위 두 명과 함께 나를 지나쳐 갔다.
“석피야.”
“예. 나리.”
“빨리 튀자.”
“네?”
“만약 내가 시박사에서 해관을 분리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걸 알면 바로 게거품을 물고 쫓아올 테니까.”
저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튀는 게 상책이다.
***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고후는 귀를 의심했다.
“말 그대로다. 시박사에서 해상 무역을 담당하는 관청인 해관을 분리하기로 했으니, 이에 따르라.”
황제의 말은 추상같았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었다.
주고후는 시박사 총책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자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시박(市舶)은 외국의 선박을 의미합니다. 시박사 자체가 본래 해상 무역을 관장하는 관청인데, 어찌 핵심 기능을 따로 떼어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시박사는 당나라 시대에 파사인 상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광주에 처음 설치되었다.
나중에 비단길로 향하는 육로 무역까지 관장하게 되었긴 하지만, 본래 담당하던 역할은 해상 무역이다.
“해상 무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느니. 좀 더 전문적인 관청으로 거듭나려면 낡은 형태를 벗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해관을 제게 맡겨주십시오! 폐하께서는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시박사를 얼마나 잘 성장시켰는지를요. 대명 역사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후우…….”
황제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멍청한 아들은 정말 황제인 자신이 모르리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네가 공금을 횡령하고, 뇌물을 착복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
“어떤 놈이 그런 모함을 한단 말입니까? 강해인 그자입니까?”
그러고 보니 아까 강해인이 폐하께 무언가를 고했다고.
분명 녀석이 고자질한 게 틀림없다.
“쯧.”
황제는 주고후의 불타는 눈동자를 보며 다시금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강해인이 말하진 않았다.
오히려 대신들과 중신들이 이를 고발했다.
이를 솔직히 말하면 주고후는 분명 황태자가 사주했다고 생각할 터.
형제간에 피바람을 불게 하느니, 차라리 오해를 유도하는 게…….
“여러 말 말고 잠시 근신하라. 네가 충분히 반성한다면 다시 요직을 맡길 터이니.”
“폐하!”
“어서!”
천하에 무서울 게 없다는 주고후라지만, 그 역시도 아버지인 황제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주고후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쯧쯧. 저놈이 언제 정신을 차릴꼬.”
누가 봐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주고후의 뒷모습에 황제는 혀를 찼다.
***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퍽!
주고후는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환관을 발로 찼다.
“저,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고정? 고저엉?”
퍽! 퍽!
“네가 날 잘 보필했다면 이런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정?”
“송구하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럼 죽어야지!”
퍽! 퍽! 퍽!
원래는 알현을 끝내자마자 강해인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황궁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감히 빌어먹을 오랑캐 주제에 천책상장을 농락해?
“전하.”
이러다 사람 하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 신하가 빠르게 다가왔다.
몸집이 무척 푸짐한 데다, 눈 주변에도 살이 쪘는지 거의 실눈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한왕 주고후의 얼마 안 되는 심복.
장원기다.
그는 주고후가 시박사를 맡게 되면서, 육로 무역을 전문적으로 맡았다.
“네놈이 뭐라고 감히 한왕의 행보를 막느냐? 너도 맞아볼 테냐?”
“좋은 소식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장원기는 성품이 간사하긴 하지만 능력은 확실하다.
그가 ‘좋은 소식’이라고 할 정도면 진짜 좋은 이야기라는 뜻.
“다들 꺼져!”
일방적으로 구타당하던 환관은 물론, 궁녀들도 입을 틀어막고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건 한왕 주고후와 장원기뿐.
“그래. 좋은 소식이 뭔데?”
“이것입니다.”
장원기는 목함으로 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오래된 된장처럼 굳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뭔가?”
“양귀비의 꽃봉오리와 꽃씨에서 나온 즙을 굳힌 것입니다.”
“난 또 뭐라고. 아편이지 않은가.”
아편은 진통과 해열에 쓰이는 약재다.
워낙 오래전부터 쓰였던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이것은 다릅니다. 아편말이라고 하여 새로이 개발된 것입니다.”
강해인은 계속 새로운 상품을 발굴하고 철화백자나 홍차 등 여러 물건을 개발해 수익을 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주고후는 본인도 큰돈을 벌 생각으로 신제품을 만들어내라고 실무자들을 독촉했다.
그 결과가 이제 나온 모양이다.
“뭐가 어떻게 다른 것이냐?”
“생아편을 물에 녹여 거른 후, 염전처럼 태양 빛에 말려서 굳힌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이를 곰방대에 넣고 불에 태워 연기를 흡입하면 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이딴 걸 어디에 써먹겠느냐.”
그 말에 장원기는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 천상의 기분을 느껴보면, 절대로 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