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96
095화 성선설 (3)
우리가 대만에 온 지도 3개월이 지났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한 평화.
나는 대두국의 발전을 위해 은을 아낌없이 풀었다.
그 덕에 나를 의심의 눈길로 보던 대만 원주민들은 점차 경계를 누그러뜨렸다.
나는 아직 내심 경계하고 있지만.
미안해. 내가 의심이 좀 많아.
“왕이여.”
“가오궈이. 일찍 왔네?”
오늘은 정기 부족회의가 있는 날이다.
모든 행정은 내 의지대로 진행하지만, 입법과 사법은 나와 부족장들이 모여 함께 결정한다.
정기 회의는 입법과 부족 간의 분쟁을 조율하기 위함이었다.
“옆에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고산에 사는 아타얄족의 부족장이외다.”
들어본 적 있다.
강인한 전사가 많고, 영역이 가장 큰 부족이라고 했다.
그는 머리를 숙임으로써 우리 왕국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환영해. 이걸로 몇 개 부족이 남은 거지?”
“남부의 시라야, 마카타오, 파이완, 루카이, 푸유마는 거부했고, 중간 지대에 있는 호아냐, 초우, 부눈족은 눈치를 보는 중이오.”
참고로 왕국의 수도이자, 중요 항구가 있는 땅은 파포라족의 영역.
가오궈이가 파포라족의 부족장이다.
“나도 이곳의 언어를 익히고 있긴 하지만, 아직 능숙하진 않다.”
대만 원주민들의 언어는 명나라 말과 아예 궤를 달리했다.
그렇다고 광동어나 대월어와도 다르고.
공부해보니 복건성 민남족이 쓰는 민남어 계열인 것 같은데, 부족마다 차이점이 많아서 어렵다.
마음 같아선 조선말을 표준어로 쓰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 되겠지.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반년 정도 후면 가벼운 대화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잘 부탁한다.”
가오궈이가 통역해 주었고, 아타얄족 부족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명나라 말을 익힐 것이라 하오.”
“그대들의 문화와 풍습, 언어 등을 이어 나가는 건 매우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편의를 위해 공용어를 익혔으면 좋겠다.”
이제 남부 부족만 남았는데…….
다행히 5천의 군대를 경계한 건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지만, 그래도 언제 습격해올지 몰라 불안했다.
이기는 건 확실한데, 피해를 우려한다고 할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장인들을 지도하는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옷을 갈아입고 깔끔한 모습으로 회의를 준비해야 하니까.
“오늘은 별일 없었어?”
“명나라 병사와 파지히족 전사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뭐?”
“별거 아니다. 단순한 치정 싸움이야.”
“쯧.”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군사가 치정 싸움을 할 정도면.
“장군에게 말해 군기를 다시 잡도록 하지.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야. 여자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니까.”
“여자를 내어달라는 건 무리요. 기껏 쌓아놓은 신뢰가 깨질 수 있소.”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어. 명나라 본토에서 여자를 들여올까 생각해.”
“명나라엔 여자가 많나?”
“엄청 많지.”
대만 내에서도 부족 간의 싸움이 있긴 하지만, ‘적당한 거리감’ 때문에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매우 적다.
그 때문에 여자가 조금 더 많기는 하지만, 남자의 수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반면 명나라는 달랐다.
홍무제가 30년간 농촌 사회를 복구하는 데 집중했다고 해도, 북원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젊은 남자들이 계속 죽어 나갔으니까.
또, 경항대운하의 증설과 자금성을 건축하는 과정에서도 사람이 엄청나게 죽어 나가고 있다.
덕분에 성비가 상당히 무너졌다.
여자가 넘쳐나는 것.
“충분한 정착금을 준다고 하면 지원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지 않을까 싶어.”
중국과 매우 가까운 섬이니까.
“정착하는데 돈을 준다고?”
“정착하고 결혼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
가오궈이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오늘 안건에 집중하자.”
“예.”
오늘의 안건은.
건국 선포다.
***
대두국은 대만 중서부의 부족 연맹 왕국의 이름이다.
하지만 중앙 집권 체제도 없고, 명확한 왕정 체제도 아니어서 왕국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점이 많다.
게다가 지난 3개월간 열심히 돈을 푼 덕에 북부는 물론, 고산족이라 불리는 동부의 부족들까지 참여.
대만 섬의 2/3를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두국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건국해야만 한다.”
“그걸 명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대두국은 자주국이지만, 내가 새로이 건국할 나라는 명나라의 번국이니까.”
“안 하면 안 되나?”
가오궈이는 얼굴도 모르는 영락제에게 고개 숙이기 싫은 모양이다.
이는 다른 부족장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안 해도 되지. 대신 대월 정복이 끝나면 이쪽으로 군대가 몰려오겠지. 한 10만쯤은 오지 않을까?”
실제로는 훨씬 적겠지만, 겁먹으라고 뻥 좀 쳤다.
“10만…….”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부족장들이 만날 일은 없을 테고, 명나라 관련된 일은 나나 척찬궁 장군이 처리할 테니까.”
“알았소. 그럼 특별히 달라지는 게 있소?”
“많지.”
종주국인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고, 하늘에 제를 올릴 수 없으며, 궁궐의 대문 수부터 용의 발톱 수까지 세세한 규정이 생겨난다.
이것 때문에 조선이 속국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생겨난다.
번국이라면 자치권은 대부분 갖고 있다.
하지만 조선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번국 군주가 자신을 지칭할 때 고(孤)라고 해야 하는데, 조선은 과인이라고 했으니까.
자주국과 속국의 경계선을 탔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나중에 일본 제국이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을 때 1조에 조선국이 완전한 독립자주국임을 승인하라는 조항을 넣은 것이다.
조선이 독립자주국이어야 나중에 합병해도 탈이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니 신경 쓰지 마. 그저 나를 부를 때 전하라고만 하면 된다.”
“알겠소. 전하.”
“아무튼 그래서 국가로 선포할 거면 체제를 갖춰야 하거든. 그래서 정해봤어.”
번국은 자치권이 있으니까.
반드시 명나라의 제도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우선 크게 세 개로 나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정치를 잘 모르니까, 삼권분립을 가져오자.
뭔가 좋으니까 현대의 많은 국가들이 채택했겠지.
다만 민주주의는 도입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이 시대에 민주주의는 오히려 독이라고 생각하니까.
“먼저 행정부는 내가 평소 하는 걸 생각하면 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나 보다.
돈맛이 달달한가 보네.
“입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 각 부족장이 입법부에 소속된다. 나는 이에 참견하지 않을 것이며, 대신 법률 제안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
“그대들이 만장일치로 만들어낸 법이라고 해도, 내가 거부하면 부결된다는 뜻이다. 거부할 때는 분명한 이유를 말할 테니 안심해.”
“전하가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되나?”
“그때는 총리가 대신한다.”
“……내가 전하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만.”
“정 이상하면 돌아와서 뭐가 문제인지 말해줄 테니, 그대의 신념대로 하면 된다.”
앞으로 자주 자리를 비울 텐데 국가 체제를 닦아놓지 않으면 금방 무너질 수 있으니까.
아직은 별문제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사법부는 법을 어겼을 때 재판하는 곳이다.”
마음 같아서는 법원을 따로 두고 싶은데.
인구도 별로 없고, 다들 대만섬에 넓게 퍼져 사는데 이게 되나 싶다.
“기본적으로는 각 부족장이 알아서 판단하지만, 부족끼리, 혹은 명나라 사람과 부족원 간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곳에서 판결한다.”
“판결은 누가 내리지?”
“당사자와 아무 관계가 없는 다른 부족의 지식인들. 예를 들어 오늘처럼 명나라 병사와 파지히족 간의 시비가 생겼다면, 다른 부족의 부족장들이 판결하게 되겠지.”
“그래도 되겠나? 명나라 병사를 우리의 법으로 처벌한다고?”
“정확히는 우리나라의 법이지. 다만 부족마다 금기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거로 아는데, 그 점은 미리 알려야 하고 실수로 어겼다면 관대한 처벌을 바란다.”
이 정도면 꽤 합리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가?”
가오궈이는 다른 부족장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설픈 대만 제어로 해석하건대, 대부분은 ‘잘 모르겠다.’라는 느낌 같다.
“그렇게 하지. 전하가 우리를 차별하지 않고 진심으로 위한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진짜로 아는 걸까.
아니면 앞에서는 굽히고 뒤에선 칼로 찌를 준비를 하는 걸까.
나는 사람을 못 믿겠는데, 이들은 나를 너무 믿는 것 같아서 오히려 당혹스럽다.
이걸 이용해서 상인들이 순박한 농민을 등쳐 먹는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군권은 내가 쥐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라 이름은 어떻게 할 건가?”
“원래라면 국호 역시 명나라로부터 받아 와야 하는데…….”
생으로 받아 오는 게 아니라, 국호를 두세 개 선정하고 영락제에게 보내어 하나를 선택받는다.
우리 마음대로 정하고 통보를 하면 영락제의 기분 상해죄에 걸려서 골로 갈 수도 있으니까.
조선의 경우 ‘조선’과 이성계의 고향인 ‘화령’.
이 중 하나를 선택해 달라고 했다.
근데 화령은 북원의 수도인 카라코룸(화림)과 발음이 비슷해서 명나라가 선택할 리가 없는 국호다.
그러니까 진짜 기획안과 버리는 기획안을 올리고 선택해 달라고 한 것이다.
“일단 제안을 해봐.”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대두 왕국이 제일 좋다는 것 같다.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이상하지만, 본래는 ‘태양(낮)의 왕국’이라는 뜻이니 그리 나쁘진 않다.
“음…….”
근데 난 마음에 안 들어.
“오스만 조 로마는 어때?”
“…….”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상한 사람처럼 나를 쳐다봤다.
“아니면 아틀란티스나 프레스터 존 왕국?”
“전하가 제안할 정도니 깊은 의미가 있겠지. 근데 무슨 뜻이오?”
“그냥.”
있어 보이잖아.
“나는 앞으로 강력한 나라가 될 수 있는 이름이 좋소.”
가오궈이가 말했다.
“아타얄족은 산봉우리 같은 나라의 이름이 좋다고 합니다.”
역관이 말했다.
“바사이족은 이 아름다운 섬의 느낌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하오.”
가오궈이가 옆에 있는 부족장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그 뒤로도 온갖 의견이 나왔다.
“그러니까 산봉우리처럼 강력하고 부유하며, 앞으로 큰 나라가 될 것이며, 부족 간의 화합과 평등, 그리고 이 섬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국호를 원한다는 거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포르투갈인들이 대만섬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대만섬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름다운’이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인 ‘포르모사(Formosa)’라고 불렀다.
따라서…….
“결정했다.”
모두가 기대의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앞으로 국호를 미국(美國)이라 하겠다.”
산봉우리처럼 강력하고 부유하며.
빠르게 커져 나간 큰 나라이고.
부족 간의 화합(물리)과 평등(물리)도 이룩한 나라다.
국호 자체에 아름다울 미가 들어가기도 하고.
“그게…….”
모두가 당황했지만,
“나를 믿어라. 이보다 확실한 국호는 없다.”
내 확신에 찬 대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우리의 국호는 ‘미합중국(美合衆國)’.
그리고 영락제에게 보낼 더미 국호는 ‘대만 남보원(臺灣 南保元)’으로 정했다.
원(元) 자가 들어갔는데, 설마 영락제가 후자를 선택하진 않겠지.
***
시박사는 육로 무역을 담당하는 육관.
그리고 해상 무역을 담당하는 해관으로 분리되었다.
다만 당초 예정과는 달리 내가 해관을 담당하지는 않았다.
이미 자치권과 병권을 부여받은 내가 너무 큰 힘을 가지면 안 되니까.
육관은 한왕 주고후가 맡았는데, 비단길의 붕괴로 육로 무역은 사실상 조공 무역이 된 만큼 이윤을 낼 수 없다.
말 그대로 좌천이다.
아무래도 영락제가 황태자에게 제대로 힘을 실어주기로 했나 보다.
해관은 환관 중 이인자인 병필태감이 지휘하기로 했는데, 환관 일인자인 사례 태감의 측근이다.
참고로 정화도 직책은 제독이지만, 계급은 태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냥 태감이다.
진짜에겐 수식어가 필요 없으니까.
아무튼, 병필태감이 해관의 총책이 되면서 잠시 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나를 만나고 싶다며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어서 오십시오. 병필태감.”
“니예. 오랜만에 뵈어요. 전하.”
환관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횡포를 저지를 정도로 강하진 않다.
게다가 나는 친(親)사대부, 친환관, 친상인, 친군부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아직은 대놓고 적대하는 자가 없다.
한왕 주고후 빼고.
“아직 제대로 세워진 건물이 없고, 보다시피 명나라에 비하면 발전도 더뎌서 제대로 대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호호. 그 점은 미리 알고 있는바. 걱정하지 마셔요.”
분명 남자……였는데 과하게 여성스럽다.
외모도 거의 여자 같고.
병필태감의 이름은 문루.
정화가 그를 가리켜 눈치와 셈이 무척 빠르다고 칭찬한 적 있다.
아무래도 좋은데, 그의 손가락을 볼 때마다 섬뜩하다.
열 손가락이 전부 거무죽죽하니까.
만약 내가 환생한 곳이 무협 세계였다면, 독공의 고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전하의 대접. 감사히 받겠사와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좋았는데, 내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잠깐만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시어요?”
“저 상인 뭔가 이상합니다.”
그에게로 다가갔다.
병필태감과 병사들이 뒤따랐다.
“너.”
“예?”
“지금 입에 물고 있는 거 뭐야?”
“곰방대입니다만.”
그래. 그게 이상하다고.
곰방대를 물고 부싯돌을 부딪치는 모습이.
담배는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곰방대가 왜 필요해?
“대체 뭘 피우려는 거냐!”
일국의 왕이 분노하는데도 상인은 여전히 느긋했다.
보통 상인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아편입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직 명나라 초기인데 아편이 퍼져나가고 있다고?
“아무래도…….”
인간 같지 않은 녀석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