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97
096화 성선설 (4)
아편은 현재 진통제와 해열제로 널리 쓰인다.
의학서에도 약재라고 쓰여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 아편은 그 아편이 아니잖아.
“어디서 났어?”
“예?”
“아편 어디서 났냐고?”
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거지?
수백 년 뒤에나 나올 문제가 왜 벌써 터진 거지?
“전하. 무슨 일이시어요?”
병필태감 문루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자가 피우려고 했던 것은 위험한 아편입니다. 잘못 퍼져나가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겁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스럽사옵니다만…… 확실한가요?”
“예.”
“전하께서는 어찌 아셨나요?”
“음?”
“소인은 황궁에 있으면서 상당히 많은 소문을 듣사와요. 하지만 아편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아요.”
무협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황제 직속 첩보기관 동창(東廠).
동창의 수장이 병필태감이다.
심지어 이걸 설치한 사람이 바로 영락제다.
정난의 변으로 황위에 오른 나머지 자신을 비판하는 명 사대부들을 너무 못 믿었으니까.
정확히 언제 동창을 설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창의 전신이 되는 기관을 비밀리에 만들어 놓았을 터.
따라서 그가 온갖 정보를 접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다.
“어느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편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말씀하셔요.”
“생아편, 약재용, 그리고 흡연용. 이 중에서 흡연용 아편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지니고 있어서…… 쉽게 말해 수은 중독보다 더 심각합니다.”
“그렇습니까. 전하께서 신기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아는바. 당연히 황제 폐하께 보고할 것이에요.”
병필태감 문루의 반응은 무미건조했다.
왜지?
설마 이 일에 문루가 연루되어 있나?
“하지만 정말 그렇게 나쁜 걸까요?”
“아…….”
그러네.
내가 아편의 심각성을 아는 이유는 아편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때문이다.
또, 현대의 국가들이 오피오이드나 메스암페타민 등의 부작용에 대해서 널리 알려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엔 그런 게 없다.
심지어 마약 중독으로 죽는다고 해도, 영양실조인지, 병 걸려 죽는 건지 잘 구분을 못 한다.
청나라에서 아편을 금지한 이유도 그 중독성이나 국민 건강 때문이 아니라, 국가 예산의 70% 이상에 해당하는 은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병필태감. 저는 제 번국과 저와 관련된 모든 기관에 아편을 강력하게 금지할 것입니다. 이 정도로 위험한 물건입니다.”
“전하의 의지는 전해졌사옵니다. 폐하께도 진지하게 말씀드릴 것을 약속드리겠사와요.”
영락제는 폭군이되 명군이다.
결코 암군은 아니다.
그 해악성을 확실하게 말한다면 분명…….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시어요! 아, 그리고 제가 이번에 해관을 맡게 되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불안하다.
아무리 봐도 병필태감 문루는 아편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영락제도 그럴 수 있겠지.
그러니 내가 준비해야겠다.
인간 같지 않은 녀석을 언제든 처단할 수 있도록.
***
병필태감 문루는 해관과 관련된 여러 일을 의논한 후 곧바로 남경으로 향했다.
“그게 그렇게 위험하다고?”
“대두국왕 강해인은 매우 경계하였사와요.”
환관은 황제의 측근.
특히나 영락제는 병필태감 문루를 총애했다.
그는 온갖 상인들을 수족으로 부리면서 천하의 정보를 정확하게 가져왔으니까.
“아편은 본래 약재지 않느냐?”
“예. 폐하. 하오나 능지처참을 집행하기 전, 사형수가 갑작스럽게 죽지 않도록 아편을 복용시킨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강해인의 주장도 일리는 있어 보여요.”
“어째서 그러하지?”
“모든 약은 독이기도 하기 때문이어요. 일시적으로 생명력을 높여준다면, 그 대가도 치명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병필태감 문루는 갖가지 약초를 다루는 데 능숙하다.
그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다만 확실하지는 않사와요. 아편 연기를 마신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흠…….”
황제는 가볍게 움직일 수 없다.
선제가 금지했던 일을 후대 황제가 뒤바꾸기는 어려우니까.
아편을 금지했는데 사실은 좋은 거라면?
앞으로 대명이 유지되는 한, 어지간해선 아편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자신처럼 추진력이 강한 황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시험해보지.”
“시험이요?”
“우선은 대월 정벌군에게 넘겨라. 순간적으로 생명력을 높여준다면, 치명상을 당한 병사를 조금 더 써먹을 수 있게 될 터이니.”
“예. 폐하.”
어차피 치명상을 당한 병사는 짐이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직접 죽여주기도 할 정도로.
그럴 바에야 조금이라도 더 나라를 위해 목숨을 쓴다면 더 가치 있는 목숨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모굴리(위구르) 상인들을 이용해 은밀히 북원에 퍼뜨려라. 그렇게 안 좋은 거라면 짐이 북원 정벌을 나갈 때쯤엔 큰 도움이 되겠지.”
“역시 폐하의 혜안은 누구보다 드높사옵니다.”
병필태감 문루는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으로 영락제를 올려다보았다.
가히 광기에 가까운 충성심이다.
“하오면 대명 내에서는 어찌할까요?”
“일시적으로 금지해라. 효능과 해악을 확인한 후에 다시 결정하겠다.”
“예. 폐하.”
이 정도면 괜찮은 결정이겠지.
“음…… 그런데 말이다.”
“예. 폐하.”
“대두국왕 강해인이 이번에 섬을 통합하면서 국호를 바꾸겠다고 했는데…….”
미합중국(美合衆國).
대만 남보원(臺灣 南保元).
종주국으로서 번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만큼 달래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 법.
웬만하면 국호는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낫다.
“국호가 전부 이상하단 말이지. 대체 뭘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로 다른 무리가 합쳐진 아름다운 나라.
혹은 서로 다른 무리가 아름답게 화합한 나라.
미합중국.
섬 이름을 대만으로 한다.
그리하여 남쪽을 지키는 으뜸가는 보루가 되겠다.
대만 남보원.
어느 쪽 국호도 명나라 문법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헷갈린다.
“대신들이 말하기를 ‘그는 매우 독특하고 이질적이니 화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의 만리장성이 되겠다고 했으니 후자가 더 원하는 국호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소신은 잘 모르겠사와요. 확인하고 올까요?”
“되었다.”
웬만하면 원하는 국호로 해주겠지만, 그렇다고 ‘진짜가 뭐냐?’라고 묻기엔 종주국의 체면이 있다.
어쨌거나 결정권은 천자에게 있으니까.
“대두국왕 강해인은 현지 원주민들과 격의 없이 잘 지내고 있사와요. 소인이 생각하기론 미합중국을 더 원하지 않나 싶사옵니다.”
“흐음…….”
대신들은 대만 남보원이 옳다고 하고, 병필태감은 미합중국이 낫다고 생각한다라…….
하지만 나라 이름에 ‘무리 중(衆)’ 자를 왜 넣겠는가.
모름지기 나라는 군주가 중(中)심을 잡아야 하거늘.
“병필태감.”
“예. 폐하.”
“사대부는 사대부가 잘 알겠지. 하지만 대만 남보원은 국호로 삼기엔 너무 길다.”
대명의 내번국인데 체면이 있지.
국호가 두 글자를 초과하면 안 되지.
“내일 회의 이후 ‘대만’을 국호로 하도록 칙서를 내릴 테니 그렇게 전달하라.”
“예. 폐하.”
***
오늘도 바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왕궁을 지었다고 해도 시간 관계상 건물 하나만 딱 만든 상황.
우리 가족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그래서 따로 집을 짓고 일단은 그곳에서 살고 있다.
참고로 아직 혼례를 올리지는 않았다.
왕이 결혼하는데 허름한 데서 하면 국격이 떨어지니까.
1년에서 2년 정도 준비한 후에 올릴 생각이다.
딱히 오버하는 것도 아닌 게, 국가 중대사는 본래 이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그때쯤이면 왕궁이 아니라 궁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건물도 불어나겠지.
집으로 들어온 나는 허신애와 이소군 앞에서 종이 한 장을 펼쳐 보았다.
“이거 어때?”
“전하. 이게 무엇입니까?”
허신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미합중국의 국기로 쓰려고.”
아직은 국기를 쓰는 문화가 없지만, 이제부터는 필요할 거다.
바다를 다니며 여러 국가를 만날 테니까.
그래서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만선을 기원하는 용왕기는 나중에 분명히 꼬투리 잡혀서 문제 될 수 있을 테니.
“도교에서 따온 것 같군요.”
“어. 태극기라고 해.”
“하지만 태극 문양이나 사괘의 위치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소군이 바로 지적했다.
역시 배운 사람이라 바로 알아보네.
“그럼 이건 어때?”
다음에 보여준 것은 조선 국왕의 어기인 태극 팔괘도.
붉은색 바탕에 팔괘가 전부 그려진 어기다.
어기이긴 한데, 아직까진 쓰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니 내가 먼저 써야지.
“전하의 뜻대로 하시면 되겠지만…….”
“왜? 소신껏 말해줘.”
“태극 팔괘도는 도교 문화입니다. 유학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나 회교도나 불교도, 힌두교도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만 원주민들은 주로 토착신을 믿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게 문제인가?”
“전하께서 바다로 넓게 뻗어 나가시려면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건 어때?”
이번엔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보여주었다.
별은 하나만 그린 거로.
“전하께서 하신 일이니 분명 깊은 뜻이 있겠지만, 무지한 소첩이 보기엔 근본이 없어 보입니다.”
와우. 역시 원조 천조국 국민답다.
천하의 미국 국기를 근본 없다고 까버리네.
사실 명나라인 입장에선 근본 없기는 했다.
우리가 13개 주로 시작한 것도 아니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지?”
“전하께서 정하신 십계명을 넣으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십계명이란 입법부가 작동하기 전, 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열 개의 계율을 말한다.
이는 일종의 헌법 같은 역할을 한다.
주요 골자는 인종, 종교, 부족, 국가 등으로 차별하지 말고, 서로 잘 지내라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교육의 중요성과 근면·성실, 그리고 자본주의 내용을 담았는데 잘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다.
“차별 없는 평등이라.”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기회의 평등과 인류의 화합을 말하는 것이니까.
미리 안 해놓으면 나중에 분명히 문제 될 것 같아서.
“그럼 이건 어때?”
즉석에서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오륜기다.
올림픽에 쓰는 그 깃발.
지금 이 시각에 색이 있는 먹을 구하기는 어려우므로 검은색으로 원만 다섯 개 그렸다.
“원은 각각 오방색으로 할 거야.”
“괜찮아 보입니다.”
“전하. 오방색으로 할 생각이시라면 이게 더 낫지 않을까요?”
허신애가 슬쩍 끼어들어 다시 그렸다.
가운데에 원이 있고, 교집합이 생기도록 동서남북에 원을 추가로 그려 넣는 방식이었다.
“이것도 괜찮겠네.”
“내일 안료를 써서 제대로 그려본 다음에 부족장들과 의논하심이 어떨는지요?”
“그게 낫겠다.”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오방색에는 흰색이 들어가는데.
흰색 천을 바탕으로 하려면 흰 원 대신 녹색 원을 넣어야 하나?
“전하!”
한가한 고민을 하는데, 밖에서 석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왕궁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터라, 후궁이나 하렘처럼 금남 구역 같은 곳은 없다.
“무슨 일이야?”
“호아냐족 전사가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마카타오족과 시라야족이 연합하여 호아냐족을 기습했다고 합니다.”
마카타오족과 시라야족은 대만섬 남부 부족.
호아냐족은 우리 왕국과 남부 부족 사이에 있는 중립 부족이다.
아마 우리 왕국이 급격하게 세를 불리니, 예방책으로 사이에 있는 호아냐족의 세력을 꺾어놓으려는 속셈이 아닌가 싶었다.
“석피야. 부족장들에게 사람을 보내. 당장 전사들을 준비하라고.”
“예!”
남부 부족 전사들의 숫자는 대략 200명.
명나라군을 끌고 가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은 내부를 통합하는 데 매우 좋은 수단이다.
이왕 전쟁이 벌어진 거, 확실하게 이용해서 깔끔하게 마무리 짓겠다.
“다녀올게.”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이소군은 꾸벅 허리를 숙였고, 허신애는 서랍장에서 총을 꺼냈다.
“전하.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와 가족들은 제가 지킬 테니까요.”
“……응. 고마워.”
나 주려는 게 아니었구나.
아무튼.
이걸로 확실하게 대만섬을 통일하고 미합중국의 건국을 선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