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bi hwan The hunter salesman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
애에에에엥!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터진 곳을 향해 질주하는 대형탑차.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몬스터를 끝으로 한동안 일이 없던 장원범은 오랜만에 탑차를 끌고 현장을 나섰다. 그런데.
차가 막히기 전에 도착해야 사체 한 마리라도 얻을 수 있다는 긴박감에 핸들을 잡은 장원범의 손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온다.
‘움직임이 굼떠졌어.’
심지어 운전 솜씨도 무뎌졌다.
사냥 감각을 잃어버린 동물원 안의 맹수처럼, 오비환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더니 렉카몬으로서 전투력이 줄어든 모양이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따로 있었다.
얼마 전 부동산 사장에게서 받은 한 통의 전화.
– 땅 주인인 영감님이 얼마 전 돌아가셨어. 그래서 자식들에게 유산이 돌아갔는데, 글쎄 그 땅을 바로 팔아버렸지 뭐야. 아마 새로운 주인이 연락할 거야. 집하고 창고 빼달라고.
그러고 보니 8년간 땅 주인의 간섭이 없긴 했다. 전세 1억 2천에 단 한 번도 인상 없이 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지내던 집이 갑자기 주인이 바뀌는 바람에 장원범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태로 오비환이 몬스터 사체를 가져오기라도 하면, 작업할 공간이 없어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집보다 창고가 급하네.’
이사하려고 모아둔 돈을 창고 임대하는 데 쓰게 생겼다.
문제는 창고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
돼지나 소를 키우는 목장들도 줄어드는 판에, 몬스터 사체를 도축한다고 하면 누가 빌려줄까.
이래저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친구가 도와줘도 이 모양 이 꼴이구나.’
별 나아진 것 없는 신세를 한탄하는 때.
오비환에게 전화가 왔다.
– 어디냐?
“어디긴, 일하러 가지.”
– 게이트 터진 곳에?
“그게 내 일이잖냐.”
–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미사리 조정경기장. 아무튼, 끊어. 운전하는 중이니까.”
– 하, 새끼. 바쁜 척은.
전화를 끊고. 장원범의 탑차는 겨우겨우 게이트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차에서 내린 장원범은 비장한 각오로 렉카몬이 모인 곳으로 다가갔다.
“장씨가 여긴 웬일이야. 그날 사체 대방출할 때 돈 엄청나게 벌어서, 렉카몬 접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어?”
“벌긴요. 제 것도 아닌데.”
말투가 반기는 건지, 비꼬는 건지.
미리 도착한 렉카몬 중 하나가 아는 척을 한다.
장원범이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자. 다른 렉카몬이 말을 내뱉었다.
“그때 번호표 뽑고 난리굿을 하길래 난 또 뭔가 있나 했네. 그냥 우리랑 똑같은 렉카몬이었수?”
“나름 이 바닥에서 꽤 굴러먹은 친군데. 처음 보는 거야?”
그날 몬스터 사체 대방출 당시 많은 렉카몬들을 만났다. 낯이 익은 자들도 많았고, 혹시나 몬스터 사체가 또 생기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건네준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곳에 온 장원범은 매력을 잃은 듯했다.
품평회 하듯 말을 주고받는 렉카몬들에게 관심을 거두고. 몬스터를 가져올 헌터들을 기다렸다. 나오는 즉시 영업을 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 모여든 렉카몬이 다섯. 거기에 상사들이 고용한 헌터들도 가세했는데, 그중엔 미도상사 노민철도 있었다.
‘하, 저 새끼 또 만났네.’
올림픽공원 게이트 당시 오비환에게 상처받은 자존심을 장원범에게 화풀이하는 D급 헌터.
한 번은 놈에게 구타를 당한 적도 있었다.
장원범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지만, 역시나 노민철은 이죽거리며 말을 건넨다.
“이야, 오랜만이네? 난 또 그만둔 줄 알았지.”
‘이놈만 보면 그 자식이 떠오른단 말야.’
나루상사 영업사원이었던 헌터 놈.
듣기로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데 그 이후론 통 볼 수가 없었다.
앙갚음이라도 할 겸, 간간이 마주치는 장원범을 툭툭 건드려 본 결과. 몇 대 때려도 끝끝내 친구 이름을 팔지 않았다.
남들은 의리라고 하겠지만, 노민철에겐 그저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일 뿐.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걸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게다가 적당히 저항하는 맛도 있었고.
지금처럼 자신의 말을 흘려버리는 싸가지 없는 모습 말이다.
“이 새끼가, 아직 덜 맞았나. 뒈질래?”
“후……”
“어디서 한숨이야, 미쳤냐?”
“엇! 끝났나 보다.”
사냥을 마친 헌터가 모습을 보이자,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 이따 보자.”
“그냥 지금 보면 안 됩니까?”
장원범을 싸늘하게 노려본 노민철은 이내 헌터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건은?”
“당연히 시세랑 비슷하게 쳐 드리지요. 바로 현금 지급할 겁니다.”
“저는 시세대로!”
치열한 영업이 펼쳐지고, 장원범도 여기에 가세했다. 그러나.
“가끔 나오는 사람이 이런 걸 빼앗아가고 그래. 친구가 헌터라며? 그 친구한테 달라 그래.”
렉카몬들과 헌터 영업사원들에게 치인 장원범은 이날 단 한 마리의 사체도 건지지 못했다.
영업을 못 해서일까? 그러기엔 다른 렉카몬들 역시 상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소리다.
반대로 노민철은 업계 2위인 미도상사와 헌터라는 이점을 활용해 몬스터 사체를 계약했다.
이것만 보아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렉카몬이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진짜 사양 사업인가.’
장원범이 내심 탄식하며 몸을 돌릴 때.
노민철이 소리친다.
“야, 서류 작성할 때까지 기다려 새끼야.”
가뜩이나 짜증 나는 상황에 노민철이 또다시 건드린다. 놈은 오비환에게 당한 분풀이를 자신에게 퍼붓고 있었다.
‘한 방 거리도 안 되는 게.’
물론 그건 오비환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자신은 힘없는 렉카몬일 뿐. 그나마 자존심이라도 세우려 입을 열어본다.
“그쪽하고 볼 일 없는데, 제가 왜 기다립니까.”
“그래, 그렇게 나와야 재미있지.”
뒤도 안 돌아보고 탑차로 돌아가는 장원범.
그걸 본 노민철은 서둘러 서류 작성을 끝마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달려가 뒤통수를 후려치려 할 때였다.
끼이이이익.
장원범과 노민철 사이를 미끄러지듯 바이크 한 대가 멈춰섰다.
“4만 5천 원 되겠습니다!”
“여기 카드요.”
“오롸잇! 헬멧 벗으시고!”
경쾌하게 카드를 긁는 사이, 뒤에서 내린 남자가 헬멧을 벗는다. 오비환이었다.
장원범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고.
노민철은 자리에서 굳어진 채 오비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럼 수고!”
부아아아앙!
바이크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오비환은 천천히 노민철에게 다가왔다.
각성하고 처음 만난 몬스터와는 싸울 생각도 하지 않은 이름뿐인 D급 헌터. 그리고 일반인인 자신의 친구에게 앙갚음했던 치졸한 놈.
오비환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연다.
“오랜만이네.”
“……”
“대답 안 해?”
짝!
언제 손을 움직였을까. 미처 보지도 못 한 사이, 노민철의 고개가 사정없이 돌아갔다.
그가 D급에 머물러있는 동안, 상대는 B급 헌터가 되어 둘의 실력 차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했다.
*
“8개월 만에 복수했네. 속이 후련하구만.”
탑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비환의 말에 장원범은 대꾸가 없다.
그의 심정을 대충 헤아려보면.
번번이 형처럼 나타나 해결하는 모습에 마음이 복잡하고, 신세만 지는 게 찜찜한 듯 보였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오비환은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예전에 그 자식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지? ‘날뛰지 마라, 눈에 거슬리니까.’ 크. 그래놓고 화풀이를 너한테 할 줄이야. 내가 진작에 족쳤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미친. 네가 뭘 미안하냐.”
“나 때문에 그 자식이 그런 거잖아. 그나저나, 밥은 먹었냐?”
“아직.”
“오케이. 일단 가다가 오장길드에 들르자.”
오비환의 말에 장원범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탑차 몰고?”
“어, 박 부장님 모셔와야 해. 같이 밥 먹으러 가기로 했거든.”
“이상한 새끼네, 그럴 거면 전화해서 나보고 오라고 하면 되지. 바이크는 왜 타고 왔어.”
“너가 바쁜 척했잖아. 그리고 인마, 인상 좀 풀어. 노민철은 너 때문에 족친 거 아니니까.”
“그것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장원범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뭔데?”
“흠냐… 아니다.”
“아니긴 또 뭐가 아냐. 너 혹시 땅 주인 바뀐 것 때문에 그런 거냐? 창고 구해야 해서?”
말도 안 했는데, 이걸 어떻게 알았지? 오비환의 말에 장원범의 눈이 커진다.
“독심술 배웠냐? 점점 무서워지네.”
“오전에 창고 들렀는데, 누가 땅 보러 왔더라고. 창고랑 집 다 부실 생각하던데.”
오비환의 말에 장원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고민하는 거야. 네가 몬스터 사체 들고 오면 내가 어디서 작업하겠냐. 그런 생각 하니까, 마음이 급해지더라고.”
“말을 해야지, 그럼.”
“말하면, 창고가 뚝 딱하고 생기냐? 솔직히 내가 창고랑 장비가 있으니까, 일을 맡긴 거지 아니면 네가 굳이 나랑 일 할 필요 없었잖아.”
장원범의 말에 오비환이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친구 사이라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도움도 안 되는데, 뭐 하러 일하겠냐.”
“새끼, 말을 돌려서 할 줄을 몰라요. 아무튼, 나도 그런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나중에 창고 준비되면 그때 일거리 챙겨 줘.”
“알았어, 알았어.”
이제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장원범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오장길드 인근 도로에 멈추자, 오비환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박 부장님 모시고 올 테니까.”
“설마, 이 차로 갈 거야?”
“누워서 가도 되겠구만. 공간 충분하잖아.”
“뭐… 그렇긴 하지.”
잠시 후, 오비환은 박경미를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장 사장님!”
“어이구, 사장은 무슨요. 뒤에 타시면 편하실 거에요, 부장님.”
“네, 사장님!”
“사장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가자!”
*
“여기에 밥집이 있냐?”
“잠깐 어디 들를 데가 있어서.”
“탑차를 택시로 사용하네.”
투덜거리던 장원범이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송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남의 한 창고.
냉동식품 회사였는데,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해서 매물로 내놓았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자, 박경미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지하에는 300평 되는 냉동고가 3층 건물 높이로 되어있고, 지상은 보다시피 창고 한 동이 있습니다. 그 외 부지까지 하면 추가 확장이 가능해서, 작업하기에 편리할 것 같더라고요.”
장원범은 멀뚱멀뚱 창고를 올려다 봤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는 게 느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이때,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오비환이 박경미에게 물었다.
“추가로 냉동고를 더 지어도 문제가 없을까요?”
“확인해 봤더니, 용도변경과 면적 확장 신고만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다만, 몬스터 사체라는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합니다. 시청 직원이 확답을 못 주더라고요.”
“그건 직접 찾아가 봐야겠네요.”
‘몬스터 사체…’
이제야 이곳에 온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장원범의 심장박동이 빨라질 때, 박경미가 창고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안에 들어가 보죠. 제가 열쇠를 미리 받아왔거든요.”
부동산 직원처럼 박경미는 자연스럽게 둘을 창고 안으로 안내했다. 이것저것 둘러본 끝에.
오비환이 장원범에게 물었다.
“어때 보이냐?”
“…… 작업하기 좋아 보여. 일단 주차장이 넓어서 마음에 들고.”
렉카몬 차량 30대는 족히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주차 공간은 여유로웠다.
“또?”
“지하 냉동고에서 리프팅으로 올릴 수 있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들어. 물건 쌓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리프팅이 있으면 작업하기 엄청 편하거든. 몇 개 장비만 추가로 세팅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마음에 든다 이거지?”
“어… 일단 나는 그래. 근데, 너 여기 언제부터 알아본 거야? 내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네.”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물건 가져온 때부터, 생각해둔 거야.”
장원범의 말에 오비환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작업하는 거 괜찮겠지?”
“나야 좋지… 김씨랑 노씨도 좋아할 거야.”
“오케이. 그럼 회사명은 뭐로 할까.”
“어? 굳이 있어야 하는 거야?”
“당연하지. 새로운 사업인데. JWB 어떠냐?”
“JWB, 그게 뭔데.”
“뭐긴 네 이름 약자지.”
장원범이 흠칫하며 오비환을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본 박경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바빠지실 거에요, 장 사장님. 사업자 개설하고 새롭게 허가도 받아야 하니까 저랑 시청에 갈 일 많을 거예요.”
“…….”
“그리고 이곳은 포스에서 매입하고, JWB에서 임대하는 거로 할 겁니다. 대출도 포스에서 알아서 할거에요.”
“아……”
장원범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오비환이 재빨리 말을 내뱉었다.
“친구 사이라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너니까 손잡고 일하는 거다. 앞으로 네가 사장이니까, 김씨 노씨도 직원으로 고용하고 렉카몬들 모아서 일 좀 크게 벌려봐. 몬스터 사체는 원 없이 가져다줄 테니까.”
“너 이색… 이런 건 미리 말이라도 하지…”
“말하면 뭐 달라지냐. 집 하고도 멀지 않아서 딱 좋지?”
“어… 딱 좋다.”
“자세한 건 가면서 말하자.”
“어… 가자.”
이로써, 포스의 계열사가 하나 생겨났다.
만약 잘만 한다면, 이곳을 렉카몬들의 허브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장원범의 창고로 돌아가는 길.
박경미는 자금 계획을, 오비환은 앞으로의 미래를 떠올리고.
장원범은… 말없이 운전대를 잡으며 울먹거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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