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04)
EP.104 저스트 댄스
역사적으로 짐승을 가장 많이 죽인 도구는 무엇일까?
칼? 창? 아니면 돌로 만든 도끼?
전부 아니다.
예로부터 짐승을 가장 많이, 잔혹하게, 간단하게 죽인 도구는, 다름 아닌 밧줄이었다.
뭉툭한 손톱과 섬세한 손기술, 높은 지성과 그에 따른 타고난 잔인함을 가진 인간의, 인간만의 무기.
“끄흐으으읍! 커헉! 크읍!”
“어서오세요~. 환상의~ 나라로~.”
대령의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와 내 흥얼거림이 하모니를 이룬다. 나는 그의 등을 발로 밀며 밧줄을 더욱 세게 당겼다.
갑자기 목이 졸리면 공황 상태에 빠지기 마련이다. 대령은 본능적으로 목을 조이는 밧줄을 떼어내려는 의미 없는 노력을 했다.
‘무슨 일?! 목을, 졸리고, 있. 도대체 누가!’
생존본능이 대령의 모든 것을 일깨웠다. 중장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면서 생각도 굳었던 그는, 여기 내려온 뒤 처음 자기 스스로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기공을 끌어올려 목에 두른다. 반탄기공과 강기공으로 목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혈류를 확보한 그는, 눈을 부릅뜨고는 생각했다.
‘노역자! 감히, 죄수, 따위가. 장교를 기습하다니!’
생각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호흡을 멈추고, 잠시 상황을 판단한 그는, 극도로 분노했다.
‘고작, 목을 졸랐다고! 장교를 이기리라, 생각하는 거냐!’
뒤에서 목이 졸리는 상태임에도 적의가 솟아난다.
화가 나는 건 연소반응이 아닌가 보다. 산소를 막았는데도 타오르는 것을 보면.
‘힘의 차이를 보여주마!’
그래도 다행인 건, 몸 뒤쪽은 어지간하면 닿기 어려운 곳이라는 점이다.
등 뒤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며.
계획을 세우면 나에게 읽힌다.
자, 춤을 추자.
대령의 팔꿈치가 내 어깨를 노리고 날아왔다. 강맹한 뒤 돌려치기.
오른발을 반 보 뒤로 빼고 허리를 가볍게 젖힌다. 가동 범위의 한계 때문에, 그의 팔꿈치는 나에게 닿기 직전 멈추었다. 미리 합을 맞추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슬아슬한 동작.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목을 조르고 있던 밧줄을 잠깐 길게 늘인 뒤 그의 오른팔에 휘감아버렸다.
대령의 오른팔이 목에 묶였다.
‘오른팔이! 이 자식…!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다음은 발이다. 바짝 붙어서 시야가 가려진 지금, 뒷발로 나를 떨쳐낼 셈이다. 내가 생각을 읽지 못했다면 걷어 채였겠지.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을 읽지 못했다면, 말이지만.
그가 다리를 내뻗은 만큼 나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마치 커플 댄스를 추는 것처럼, 대령과 나는 서로 밀착한 채 한 걸음씩 움직였다.
커플 댄스?
방금 든 생각인데, 비유가 나쁘지 않네.
상대가 곰 같은 사내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야.
오늘은 이거다. 나는 대령의 귓가로 속삭였다.
“어딜, 놓아주지 않을 거야, 파트너.”
‘개소리, 를…!’
상대의 마음을 읽고, 그에 반응하여 그대로 따라가는 나.
처음 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추는 나는 분명 군국 최고의 댄스 파트너일 것이다.
‘아, 안 돼. 숨이….’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연달아 실패한다.
몸을 돌리려고 하면 밧줄을 바싹 당긴 채 동시에 턴.
팔과 다리를 휘저으면 딱 그만큼만 몸을 움직여 무리한 동작을 받아준다.
반탄기공을 펼쳐 나를 밀어내려는 대령. 그러나 밀고 당기기는 나의 분야다. 슬쩍 놓았다가 다시 잡으면 그만.
이리저리 난동을 피워보아도 대령과 나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반의반 보를 유지한다.
밧줄을 통해 미세하게 그의 맥박이 전해져온다. 어느덧 클라이막스가 끝나고, 남은 건 점차 잦아드는 피날레.
생명의 노래가 끝나기 전까지, 이 춤은 끝나지 않으리라.
‘내가, 죽는…다고?’
조금, 아니, 꽤 늦긴 했지만, 대령의 머리에 죽음이 스쳐 지나갔다. 공포와 함께 절실함이 그에게 찾아온다.
드디어 솔직해지겠구나.
“그룬트 맥킨시. 당신은 당신이 뛰어나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겠죠. 온갖 고난을 겪은 끝에 중장의 심복이 되어, 세상을 뒤바꿀 만한 일을 한다고 자신감에 차올랐겠죠.”
커플 댄스에서는 사담을 빼놓을 수 없지. 밧줄을 바짝 잡아당기며 나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은 그냥, 조금 더 멍청하고, 운이 조금 좋을 뿐이었던 칼리스 중령인데 말이죠.”
‘내…가…. 저딴…. 리트머스랑…?’
“다른 사람의 목숨을 이용하는 위치에 있다고, 당신이 두 개의 목숨을 지니게 되는 것도 아닌데. 가끔 사람들이 헷갈린단 말이죠.”
포옥, 한숨을 내쉰다. 그가 이제는 내쉴 수 없는 한숨을 자랑하듯.
“이제 당신이 시험당할 차례에요. 삶의 마침표를 찍을 준비는 해두었나요, 그룬트 맥킨시?”
‘아… 안… 돼.’
그는 죽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에게는 별로 깊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중장의 명령에 따라 같이 떨어졌을 뿐.
그나마 스스로 가진 감정이라고는 칼리스 중령을 팽하면서 느끼는 비열한 우월감 정도. 본래는 그의 목에 걸었을 사슬을 대신 칼리스에게 걸며, 대령은 안도의 감정과 함께 우월감을 느꼈다.
중장이 그를 살려둔 이유는,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멍청해서인데.
살아있는 도구의 손이 헛되어 뻗어진다. 그의 간절한 시선이 나비에게 닿았다.
‘나비…! 나를 도와! 약이나, 빠는 같잖은 짐승아! 약을 줄 테니까, 나를 도우라고!’
나비가 약에 조금만 덜 절었더라도, 이 위기에 달리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이쪽은 보지도 않고 마력초 위에서 갸릉거리는 나비. 단념한 대령의 눈에 칼리스가 비쳤다.
‘칼리스…! 나를 구해…! 멍하니 있지 말고…!’
그가 사슬을 목에 감지만 않았다면, 칼리스가 잠깐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칼리스는 저항의 의지도 잃고 이쪽만 멍하니 보고 있다.
하지만 대령이 지금까지 쌓은 업보는 이미 일어난 일. 과거는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오직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지.
‘안…돼….’
최후의 최후. 대령은 비참하게 땅을 굴러서라도 나를 떼어내려 했다. 그가 모든 힘을 쥐어짜서 허리를 앞으로 숙이려는 순간이었다.
그 힘이 발휘되기 직전 나는 그의 다리를 툭 걸었다.
대령의 육중한 몸이 꼴사납게 앞으로 넘어진다. 덩달아 목을 조르고 있던 나도 딸려간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밧줄을 놓지 않은 채, 나는 한 바퀴를 굴렀다. 땅에 쓰러진 대령, 나는 그를 등져 누운 채로 밧줄을 내 가슴까지 잡아당겼다. 그가 왼팔을 뻗었으나, 팔 하나로는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밑에 깔린 이의 생각이 점차 어두워져 간다.
“안녕히 가세요, 그룬트 맥킨시. 한때는 찬란한 세상의 주인공이었으나… 자기 생각을 버리고 도구가 된 덕분에 살아남은 이여. 무언가의 복사본이 되어버린 책을 볼 때마다 늘 아쉽지만, 다른 관점으로 본 요약본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겠죠.”
그렇게, 점차 잦아들던 음악이 피날레를 마치고, 악보의 마침표에 닿아.
뚝, 끊어졌다.
한 권의 책에 마침표가 찍혔다.
나는 밧줄을 손에서 놓았다. 손아귀에 눌린 자국이 빨갛게 올랐다. 탈력감에 한숨을 내쉬며, 발에 숨겨두었던 꼬챙이를 꺼내고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다름이 아닌 티르였다. 티르가 혈마까지 대동한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만일 내가 춤 추는 도중에 나가 떨어졌다면, 혈마가 냉큼 달려와서 대령을 빈대떡으로 만들었으리라.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가능하면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티르를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꽤 보고 싶었어요, 티르.”
내 인사에 티르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괜찮으냐? 다친 곳은 없느냐?”
“마음이 조금?”
“어디, 그 무도한 놈들이 무슨 짓을 했길래! 마음이 어떻게 다친 것이냐?”
“나를 지켜줄 거라 믿었던 흑기사들이 박살나면서, 제 마음도 같이 갈래갈래 찢어져 버렸어요….”
움찔.
감동의 재회를 준비하던 티르는, 내 갑작스런 타박에 덜컥 멈추었다. 핏빛 눈동자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떨렸다.
“그, 미, 미안하구나.”
“아니요. 그럴 수 있죠. 흑기사들 은근히 쓸데가 없는 거야 익히 아는 사실이었으니…. 그런데 그거, 옛날에는 하나의 도시를 무너뜨렸던 권능이라면서요. 죄송한데, 그 당시 도시는 모래로 만들어졌나요?”
“그, 그것이… 예전에는 이보다는 강하였고…. 그리고….”
죄를 지은 것처럼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리는 티르.
한참 그렇게 끙끙거리던 티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그맣게 덧붙였다.
“내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다. 나의 혈조술이 온전치 못하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작스런 고백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네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둠이 그릇이라면, 피는 힘. 본래 흑기사에게 혈기를 담아, 내 힘의 일부를 담은 채 움직여야 했으나…. 어째서인지는 모르나, 지금 나는 혈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중령이 자살 패킷에 찔려 피를 흘렸을 때, 왠지 그 피가 움직이지 않더만. 의심했어야 했는데 너무 상식적인 광경이라 넘어가고 말았다.
그보다! 도대체 무슨 일이람! 내가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심장을 되찾아줬는데! 혈조술이 약해져?
사상 최고가의 투자 사기를 당한 나는 억울함에 소리쳤다.
“뭐? 내 편이 되니까 약해져?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에요?”
“그, 그으… 미안하구나.”
“아니요, 이게 다 내 탓이죠! 아지는 내 편인데 도움이 하나도 안 되고, 티르는 내 편이 되니 갑자기 약해지고! 이쯤 되면 내가 문제지, 내가 문제야!”
무안해하는 티르를 일부러 외면하고는 가슴을 뻥뻥 치며 한탄했다.
“세상 사람들! 걸어다니는 억제기가 여기 있습니다! 약해지고 싶다면 이리 와서 제 아군이 되세요! 약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 아니다. 너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다 나의 불찰이니… 곁에서 지켰어야 했거늘….”
“억울해라, 억울해! 이럴 거면 심장 돌려줘! 내가 준 거 그대로 내놓으란 말이야!”
티르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삼켰다. 슬프고 분한 얼굴로 땅을 내려다 보던 티르는, 이윽고 결심한 듯 눈을 꾹 감고는 자기 가슴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알겠다. 너의 것이니, 돌려주도록 하마….”
“아니, 그렇다고 진짜 주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우리, 농담은 농담으로 듣죠?”
심장을 뺐다가 다시 냉혹한 흡혈귀로 돌아온다면 나에게 어떤 짓을 벌일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약해져도 내 아군인 편이 낫지. 최소한 마이너스는 아니잖아.
내 필사적인 만류 덕분에 티르의 심장은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감이 엄청나게 떨어진 티르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일개 병사들이 저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대장보다도 낮은 중장이거늘, 저토록 강할 줄은…. 세상이 확연히 바뀐 모양이다. 따라가기 버겁구나.”
“아니, 당연히 강하죠. 대장이 무슨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보다 훨씬 낮은… 대령, 이었더냐? 고작 일개 병사조차 흑기사를 쉽사리 제압할 줄이야.”
“아니, 병사 아닌데. 장교인데.”
“…? 둘이 같은 뜻 아니더냐?”
아무래도 이분은 용병대장이니 경호대장이니 뭐니 하는 잡스러운 놈들과 대장이 동의어인 줄 아나 보다. 그 아래 있는 대령은 잡병 1이고.
중장 아래에서 개처럼 구르며 간신히 진급한 대령이 들었으면 복장이 터져서 죽었겠다.
아까비. 같잖게 나 따위가 주절대지 말고, ‘진짜’인 티르의 말을 대령한테 들려줬어야 했는데.
역시 군인 잡는 건 문외한인 민간인이라니까.
어쨌건, 12세기 전 소녀에게 군국의 편제를 설명하긴 좀 그렇지. 나는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자아. 셰이 씨가 대장도 뭣도 아닌 고작 중장을 느긋하게 정리하고 오기 전까지, 우리는 저 마약쟁이 고양이나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내 제안에 티르가 한결 자신 없는 태도로 되물었다.
“공격해야 하느냐…? 휴, 너도 아마 알겠지만, 짐승의 왕은 죽음의 문턱에서 흉성을 발한다. 흉성을 발하는 짐승의 왕은 대단히 귀찮은 상대다. 셰이도 고양이의 왕을 상대로는 싸움을 끌기만 했어.”
어라. 내가 언제 싸운다고 말이나 했나. 나는 가볍게 면박을 줬다.
“왜 굳이 싸우려고 하세요? 별로 강하지도 않으면서.”
“읏….”
이 반응, 조금 재미있을지도. 쪼그라드는 티르를 향해 피식 웃어주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 구슬려야죠. 마침 저 마력초도 있겠다. 약으로 조금 진정시켜볼게요. ”
그때였다.
죽은 대령의 입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나왔다. 비릿한 혈향이 풍긴다. 티르가 피를 지배하지 못하기에, 그 혈향은 서서히 퍼져나갔다.
어라. 교살로 죽었는데 왜 피가 나오지.
피 냄새는 짐승을 흥분시킬 수 있어서 최대한 안 나오게 하려고 했는데.
피 조금 정도는 괜찮겠지…?
안일하게도,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