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11)
EP.111 짐승, 짐승의 왕, 인간 – 마무리
불사자 라쉬는 누군가 그의 몸을 상하게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무저갱에서 약화된 상태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불사자 라쉬는 에본이 어떤 상태인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반쯤 죽어가는 상태였다는 것은 불사자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정권 세 방은 그에게 있어 치명적이라는 사실 역시도.
어찌 보면 공평하기도, 불공평하기도 한 것 같으나, 다른 전제를 가진 같은 상황의 공평성 여부 역시 불사자의 알 바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진지하게, 진중하게, 진심을 담아 전력으로 세 대를 때렸다.
그 결과, 에본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한 방에 끌어모은 보호하던 기공이 날아가고 두 방에 의식이 날아갔다. 세 방에는, 그에게 마지막 남았던 생명까지 전부 사라졌다.
코가 부러지고 이빨이 날아갔다. 얼굴 구멍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불사자의 힘을 버티지 못한 클로가 부러지자, 에본은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땅 위로 쓰러졌다.
와, 저렇게 때릴 거면서. 저번에 오른팔을 좀 썼다고 나보고 한 대만 맞으라고 했던 거야?
진짜 미친놈이네. 내가 맞았으면 즉사였다.
내가 혀를 내두르는 동안 한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 불사자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나를 향해.
“선생, 미안하오. 더 대답할 꼴이 아니게 되었군.”
와중에 나한테 사과하는 거 봐. 자기는 세 대 때렸으니, 이제 에본의 상태는 자기 알 바 아니라는 거지.
“아, 괜찮아요. 저는 대답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나는 생각에다가 물어보면 되니까 말이야.
내가 에본에게 다가가는 동안 불사자가 물었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오?”
“정말 죄송한데, 귀를 막아주실래요? 에본 중장 개인사에 관한 민감한 이야기를 할 거라.”
“귀를? 알았소!”
의외의 요구에도 불사자는 곧장 응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꽉 틀어막고는 소리쳤다.
“막았소! 마음껏 대화를 나누시오! 단, 혹시 모르니 지켜는 보고 있겠소!”
“야, 이걸 해주네.”
“뭐라고? 안 들리오!”
나는 엄지를 들어서 보여주고는 에본에게로 다가갔다.
최후를 직감한 에본은 부들거리는 손을 헛되이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이 땅을 긁었지만, 콘크리트 바닥은 제대로 움켜쥘 수조차 없었다.
그의 태생을 상징하는 듯한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콘크리트가 조금 가루 져서 떨어졌을 뿐.
에본이 피를 토하며 되뇌었다.
‘인류의 위대한 비원을… 이룰 기회였는데. 그분을, 찾아야 했는데. 찾아서….’
“인정을 받고 싶었죠? 고양이 수인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고양이 수인, 에본 크림슨와일드.
수인 혐오가 만연하던 왕국 시절, 자기 혐오에 빠진 그는 스스로 귀와 꼬리를 잘라가며 군에 투신. 그가 고양이 수인이라는 사실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 빼고는 눈치채지 못했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누군가’는 에본의 정체를 눈치채고는 그의 각오를 높이 평가했다. ‘누군가’의 지원 아래, 에본은 꽤 승승장구했다.
승승장구라는 것이 비단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에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왕국 시절 군은 기사단의 발닦개이자, 병기창에서 꺼내가는 무기와 비슷한 처지였다. 심지어 어떤 기사는 에본이 수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협박까지 했다. 에본은 돈과 공훈을 다 빼앗긴 채 그들의 노예처럼 지냈다.
날이 갈수록 왕국에 대한 증오가 커졌던 그는 쿠데타에 앞장섰고, 고양이 수인의 예리한 감을 이용해 잔당을 소탕하는 데에 일조했다. 에본을 협박했던 그 기사는 목숨으로 그 빚을 갚게 되었다.
그렇게, 에본은 고난을 겪은 끝에 군국의 장성이 되었다.
물론 시간과 경력만이 그를 장성으로 올려놓은 것은 아니다. 끝없는 노력과 고민, 피를 토하는 단련과 머리를 싸매며 계획한 작전.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그를 장성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자격을 갖춘 에본이 만물의 영장의 실체와 마주했을 때.
짐승의 왕을 모아 무기화한다는, 겉으로 드러난 유치한 목적이 아닌 그 안에 숨겨진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을 때.
에본은 그 끝까지 보기로 마음먹었다.
고양이 수인 에본은, 극단적인 인간우월주의 단체 ‘만물의 영장’의 간부가 되었다.
그를 매혹한 진정한 목적이란….
‘그분을…. 결국, 찾지 못하고….’
“왜 그분을 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분만이 유일하게 당신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에본의 희미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초점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그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무엇이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에본 씨. 어째서 당신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 그만큼 거창한 존재가 필요하죠?”
‘누굴, 찾는지도… 모르면서….’
죽기 직전까지도 함구할 생각인가.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깊숙한 본심을 보기 위해서는 말해줄 수밖에.
“인간이 명실상부하게 지상을 지배한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존재. 원년의 시작과 끝을 알린 존재. 가짜 왕들과는 다른, 인간을 지배할 능력도 자격도 있는 진정한 의미의 왕.”
땅 위를 거니는 수많은 짐승 중 인간이 명실상부하게 지상을 지배한 이후, 짐승의 왕은 인간의 육신을 취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끔 잊곤 하는 사실.
인간도 역시, 짐승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인간의 왕이, 당신에겐 꼭 필요했나요?”
어떤 인간은 단호히 부정할지도 모르고.
어떤 인간은 치부를 드러낸 듯 불쾌해할지도 모르나.
인간 역시 짐승이었고, 짐승이며, 짐승일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도 짐승의 왕이 존재했다.
고작 몇십만, 몇백만, 몇천만 명이 따르는, 알량한 권력을 지닌 가짜 왕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진정한 의미의 왕을, 에본은 찾고 있었다.
“정작, 인간의 왕은 원년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인간은 스스로 왕을 모실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왕은 필요치 않다.
그 선언 이후, 인간의 왕은 자취를 감추었다.
원년 이후, 왕의 시대. 인간은 왕이 없이도 자신들의 왕들을 모시며 발전해나갔다.
인간은 우월했고, 강했으며, 특별했다. 코끼리들도 밀림과 황야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산군도 산의 주인이 되었을 뿐 인간을 몰아내지는 못했다.
인간은 명실상부한 지상의 지배종이었다.
그렇기에, 짐승의 왕이 인간 형상을 취한 것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잃은 왕을 그리워하기엔 그들에겐 왕이 너무 많았다.
하나.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왕에게 신물이 난 왕국의 어떤 이들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왕을 찾고자 했다.
왜 진정한 왕을 찾는지, 그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다. 다만, 에본이 인간의 왕을 찾으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저는 당신이 기대하는 그가 아니지만.”
그는 인간임을 확언받고 싶었다.
너는 고양이 수인이 아닌, 진정한 인간이라고. 너는 나의 동족이라고.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는, 인간의 왕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제가 당신을 긍정해드리죠.”
‘어떻게, 감히…! 노역자 따위가!’
생명이 다하는 와중, 마지막 힘을 다해 나를 노려보는 그를 향해.
나는 담담하게 그를 위해 선언했다.
“에본 크림슨와일드. 당신은 인간이에요. 제가 보장할게요.”
‘네놈 따위가… 무엇을 알고…!’
“그것이 선의이든 악의이든,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계획을 세워서, 행하고, 실패하면서도 다음을 노리며, 쌓아간 모든 것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그 지성. 자기 목숨마저 더 높은 뜻을 위해 내던지는 그 뜻은 온전히 인간으로서만 가능하고, 기능한 것이에요.”
나는 마음을 읽을 뿐인 평범한 일반인.
“제가 본 건 그 일각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당신은, 명실공히, 확고하게, 인간이에요.”
그렇기에 대표하여 말한다. 에본 중장은 인간이다.
“수인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짐승의 특성 그 일부를 물려받은 인간. 단지, 당신의 먼 조상이 끔찍한 죄악을 저지르긴 했지만…. 뭐, 죄악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그냥 남들에게 자랑하기 힘든 낯부끄러운 광경을 들킨 셈이나 다름없지만요. 그런 특성은 부수적일 뿐이에요. 귀와 꼬리가 당신을 규정하진 않아요.”
그를 읽어낸 나는, 담담하게 에본을 위로했다.
“귀와 꼬리를 잘라내서라도 목표한 바를 이루겠다는 각오는 역설적으로 당신의 인간성을 나타내죠. 수고했어요, 인간 에본.”
‘…설마.’
자격도 없이 내뱉을 뿐이었으나, 고작 이런 말로도 에본은 만족했다. 마지막 순간 그가 필요로 했던 말이 찾아왔기에.
수인으로 태어나 온갖 박해를 받고 자라, 그 온상인 왕국을 멸망시키는 데 일조한 그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일을 상대로 평생을 투쟁해왔다.
왕국을 무너뜨려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수인 혐오라든가, 증오스러운 왕국의 잔당인 레지스탕스라든가, 변덕스러워서 대하기 힘든 짐승의 왕이라든가, 노력에 비해 발전이 더딘 그 자신이라든가.
그의 고난은, 진심은, 노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오늘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죽음의 순간, 나에게서 조그만 위안을 얻은 그가 안심하고 눈을 감으려는 때.
어딜.
아직 놓아줄 수 없다.
“애초에, 고양이 따위는 인간에게 접붙이기도 아까운 하찮은 생물이잖아요. 그게 당신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한 건 아니죠?”
내 한 마디에, 금칠한 그의 인간성에게서 도금이 벗겨진다.
“귀랑 꼬리 조금 달렸다고, 인간의 위대한 이성이 사라지나요? 아니요, 그 귀와 꼬리는 태양 빛에 가려진 흐린 달빛, 아니, 그 흔적조차 보이지도 않는 별빛이에요. 당신은 귀와 꼬리가 달렸었지만, 그래도 찬란한 이성과, 끝없는 인내와, 노력과 학습을 거쳐 중장이 되었어요.”
인간을 긍정하고, 짐승을 부정한다. 그것을 넘어 짐승을 모욕한다.
그러나, 이게 과연 그가 원하던 일일까?
“고양이를 생각해봐요. 시궁쥐를 쫓는 주제에 깨끗한 척, 고상한 척. 귀엽지 않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하찮은 짐승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성격만 고약하죠. 쓸데없이 명만 질겨서는. 바깥에 내던져도 아득바득 목숨을 부지하며,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아남는. 그딴 더러운 털뭉치와 당신과 티끌만큼이라도 같은 점이 있나요?”
없다. 당연히, 수인이라고 해도 삶의 방식은 인간. 진짜 고양이와는 억겁의 거리가 떨어져 있기에. 에본 중장이 고양이 수인이라도 그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기뻐할 수 없다.
“마침이네요. 들어보세요.”
나는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갖다 대고는, 손을 오므려 귀에 대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저 아래쪽에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개의… 왕.’
아지의 포효. 직후, 땅을 박차고 도약하는 소리. 곧이어 이어지는 나비의 비명.
으직,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쾅, 쾅, 땅에 두어 번, 무언가가 묵직하게 메다 꽂힌다. 그 진동이 옥상에까지 전달될 만큼 강렬한 힘이 무저갱을 울린다.
‘…고양이의 왕은, 개의 왕에 비해 힘에 손색이 있다…. 인간을 끼지 않고 싸우면, 필패.’
에본의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냐하아악….
생명이 꺼져가며, 점차 저물어가는 신음이 들린다.
사슬을 벗어던진 아지가 지금껏 자신을 괴롭히던 나비를 단죄하는 것이다.
짐승끼리 통용되는 비정한 법칙으로.
“잠깐! 아지! 멈춰 봐! 그렇게 흔들면 죽어…!”
어라. 무언가 방해가 들어온 모양인데. 아무래도 고양이의 왕, 당장 죽지는 않은 것 같다.
뭐, 상관없지.
에본의 눈빛은 충분히 떨리고 있었으니까.
“보세요. 인간이 자비를 베풀어야 간신히 목숨이나 부지하잖아요? 고양이의 왕이라고 유난을 떨어봤자, 개에게 비할 바도 아니에요. 짐승으로서나, 왕으로서나. 격이 한참 못 미치거든요. 당신도 그래서 아지를 확보하려고 한 거고, 아지와 나비를 단둘이 두면서 꼭 사람을 붙이려고 했잖아요.”
아주 잠깐, 에본은 분노했다. 그 뒤 그는 왜 분노했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는 고양이 수인이었지만 짐승이 되지 않고자 했고, 습성을 버리고 귀와 꼬리를 잘라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온전히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만물의 영장이라는 단체에 들어가기도 했다.
에본은, 누군가 자기를 인간이라 긍정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실.
“고양이의 왕이라면서 약에 절어서 미쳐버리기까지. 세상에, 짐승의 왕 중 그만큼이나 구차하고 비참해진 짐승이 어디 있을까. 정말 놀랍지 않아요? 차라리 죽어버렸어야 했는데. 고양이 수인이 존재하는 게 신기하다니까요?”
“그만…해!”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에본이 생명을 불태우며 소리쳤다. 더이상의 말은 그의 명줄만 단축시킬 뿐인데도, 피를 줄줄 토해내면서 격하게 반항했다.
“…나를, 모욕하지, 마라! 차라리…!”
“나는 고양이를 욕했는데요?”
“빌어, 먹을…! 거짓말은…!”
“하하. 드디어 솔직해졌네요.”
왜 화가 날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은 인간이 되고자 했던 게 아니에요.”
그 안에 있는 고양이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양이 수인, 그 자체로서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자신이.
“그래서 클로도 포기하지 못하고, 전투법은 묘하게 고양이를 닮아갔죠. 고양이의 왕을 경멸하면서도 동정해서, 최소한 곁에 두고 지켜보려고 했고.”
평생 함께한 고양이 부분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주제에,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었던 주제에.
수인이 받는 박해와 더불어, 만물의 영장에 몸담으며 깨달은 짐승의 열등함.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순수한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했다.
“거짓말쟁이. 순수한 인간이 되는 건 바라지도 않았으면서.”
마지막의 마지막,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지적당한 에본은 눈을 크게 떴다.
“안녕히 가세요, 에본 크림슨와일드. 귀와 꼬리는 잘라내었으나 발톱은 포기하지 못한 어정쩡한 인간이여. 고양이를 증오했으나, 고양이를 증오하게끔 만든 왕국을 더욱 증오한 복수자여. 왕을 경멸하면서도 끝까지 저버리지는 못했던 불쌍한 신하여.”
‘그랬던…건가. 나는….’
“당신은 자기 일부분을 잘라내려고 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렸어요. 왜냐면, 당신은 이미 당신 자체로 인간이었기에.”
‘…내가, 그다지 싫지 않았던 건가.’
끄트머리에 희미한 미소가 남는다. 그리고.
툭, 하고. 에본은 눈을 감았다.
파란만장한 삶이었고, 끝까지 치열했다. 그는 자포자기로 내려온 것도 아니었고, 공명심에 눈이 멀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를 향해 질주했다.
비록 중간에 크게 비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제 방향을 찾아서 다행이다.
나는 작게 그 여운을 느낀 뒤,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라쉬 씨! 끝났어요! 이제 내려가죠!”
대답은 없었다. 몸뚱아리가 진흙 비슷한 재질로 된 불사자는 귀를 막는 것으로 소리 대다수를 차단했다. 독심술로 읽어봐도 그는 내 목소리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는 멀뚱거리는 그를 향해 입모양을 크게 하며 말했다.
“라쉬 씨! 끝났다고요!”
“뭐라고? 안 들리오!”
하나도 안 들리는 모양이다.
잠깐, 그러면.
“야, 이 띨빵한 불사종족 새끼야! 그딴 주먹질을 할 거면서 나보고 한 대 맞으라고 했던 거냐? 지가 안 뒤진다고 딴 사람도 안 뒤질 줄 알아? 양아치가 양심도 없네! 귓구녕 그만 틀어막고 내려가…!”
라고 말할 때 즈음, 불사자는 이미 손가락을 반쯤 빼내고 있었다.
나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귀 막고 있겠다면서요.”
“분위기상 끝난 것 같아서 그랬소!”
“…못 들었죠?”
“다는 못 들었소.”
아하하.
서로를 마주 보고 이어지는 어색한 웃음. 한참 웃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런, 말을 너무 길게 하느라 ‘문’이 닫혔네요. 그래도 탈출에 대한 단서는 찾았으니 이만 내려가죠.”
“좋소. 그런데.”
불사자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 대만 때려도 되오? 살살 때리겠소, 진짜.”
“안 돼요. 죽어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