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2)
EP.12 인간은 도구를 쓰는 동물
찌르르르르르르링–
오늘의 자명종 소리도 시끄러움을 넘어선 고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강철로 만들어진 매미가 격렬하게 운다면 이럴까. 귓가를 앏은 칼날로 난도질하는 듯하다. 참지 못한 나는 발작적으로 침대에서 뛰쳐나가 벽걸이 자명종을 껐다.
두통이 일과가 되어가는 과정은 썩 유쾌하진 않았다. 징하고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아으. 저 빌어먹을 자명종.”
군국의 자명종은 알람 시간을 앞당길 수는 있지만 늦출 수는 없다. 아무리 늦게 맞춰둔다고 한들 오전 8시가 되면 저절로 쩌렁쩌렁 울린다. 그 소음은 공격에 가까울 정도.
시체를 찾고 싶으면 자명종이 꺼지지 않은 집을 찾으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저 소음은 죽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편히 늦잠을 자려면 때려 부수는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야 내일 기상을 보장받지 못한다. 하루 일과가 톱니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는 군국에서 지각은 범죄에 가까운 일.
“악랄한 새끼들. 좀 온건하게 일어나게 해주면 덧나나.”
한껏 기지개를 편 뒤, 세면대 앞에 서 거울을 본다. 깨진 거울 안에는 실금 따라 갈라진 내 얼굴이 있다. 입가가 절묘하게 뒤틀려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입은 옷은 보급형 셔츠 한 벌. 구속복을 입기 전에 군국에서 지급했던 옷이다. 며칠 동안 입고 다닌 셔츠에는 벌써 주름이 잔뜩 졌다.
“슬슬 빨래도 해야 하는데. 여벌 옷도 찾고. 셔츠 하나로 단벌 신사가 될 수는 없으니.”
이곳도 사람이 살았던 곳이니 어딘가 입을 수 있는 옷이 남아있겠지. 나는 세수를 끝마치고는, 해진 옷가지라도 찾을 작정으로 밖을 향했다.
“멍.”
그리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손잡이를 꽉 당겨 조이고, 방문에 발을 꽉 붙여서 막은 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저 털뭉치가 왜 내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설마 아침부터 나를 산책에 끌고 나갈 생각인가?
“멍멍.”
안 돼. 절대 안 된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안 그래도 얘 밥 챙겨줄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매일 요리까지 해야 하는 몸이다. 이 끔찍한 식충이를 매일 산책까지 시키면 내 개인적인 시간도 없을 거다.
고작 산책 따위 해주면 어떻냐고? 상대는 개의 왕이다. 산책도 왕처럼 한다는 말이다.
“멍멍멍.”
앞발로 문을 박박 긁는 소리가 들린다. 노역자 숙소에는 잠금장치가 없기에, 앞발이 문을 때릴 때마다 문이 덜컹거리며 내 몸이 들썩인다.
아지는 지금 문을 부술 생각도 않고 그냥 긁고만 있는 중이다. 문제는 고작 그 정도 동작에도 공성추에 맞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진다는 점. 이대로 가다가는 문이 뚫리기 전에 내 힘이 다할 것이다.
수성전이 일어나면, 병력이 적은 부대인데도 성문을 열고 돌격하려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탈진해서 무력하게 쓰러지기 전에 무언가라도 하기 위해서이다.
나 역시, 함락을 앞둔 장수의 마음으로 문고리에 손을 댔다.
“승부다. 이 빌어먹을 짐승.”
두렵다. 손짓 한 번으로 나를 피와 살과 뼈로 분리할 수 있는 괴물과 맞서 싸우는 것이 어찌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개는 본디 인간에게 충성하는 짐승. 개의 왕인 아지는 인간에게 무한한 호의를 품고 있으며, 어지간해서는 공격하는 일이 없다. 반항의 표시로 살짝 물 수는 있지만 나를 아예 찢어발기지는 않을 터.
지금까지는 호감도를 쌓겠답시고 상전처럼 대접해줬지만, 지금부터는 아닐 거다.
인간은 더 이상 패배하지 않는다.
짐승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다.
맞서 싸울 것이다.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굳게 다짐하고 문을 열어젖히자, 방문 앞에 주저앉은 아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수금하러 온 용역처럼 문앞에 진을 치고 앉은 아지를 향해, 나는 한껏 비장한 태도로 소리쳤다.
“무엇을 노리고 여기에 왔냐, 이 끔찍한 짐승아!”
“멍?”
만일 아침부터 뻔뻔하게 산책을 요구한다면 목줄을 채워서 집어 던지고, 돼지처럼 밥을 달라고 하면 향신료 잔뜩 뿌린 특제를 만들어서 개밥으로 주마.
싸워서 이길 능력이 없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 가만히 앉아서 패배할 수 없다는 오기!
승부다, 똥개!
“멍.”
그렇게 다짐하는데, 아지는 슬금슬금 기어서 내 발치까지 기어왔다. 그리고는 다시 툭 주저앉아서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어라. 산책을… 요구하지 않아? 밥 달라고 보채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분 정도 기다렸는데, 아지는 가끔씩 꼬리로 나를 툭툭 치기만 할뿐 가만히 있었다.
“그냥 온 거구나. 휴. 다행이다.”
개의 왕도 개다. 인간과의 교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여기 있는 다른 인간들은 개와 교감을 나누기에는 약간씩 하자가 있다. 회귀자에게는 여유가 없고, 흡혈귀에 이르러선 생명이 없다. 지금 개의 왕이 제대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나뿐.
나는 긴장을 풀고는 슬며시 손을 아래로 뻗었다. 늘어지게 하품하던 아지가 내 손을 보고는 얼굴을 비벼왔다.
“그래. 이래야 애완동물이지. 드디어 제 위치를 자각했구나!”
지상의 명실상부한 지배자는 인간. 그렇기에 짐승의 왕들은 인간의 허물을 입고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종의 대언자인 짐승의 왕은, 지상의 지배종과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개와 마찬가지로 과하게 활달하고 은근히 고집을 부린다지만, 언제 어느 때라도 의사소통은 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뒤틀었다.
“큭큭큭. 그래, 착하지. 순순하니 얼마나 좋냐? 내가 딱히 손을 쓸 필요도 없고 말이야!”
말만 잘 듣는다면 개처럼 좋은 짐승이 또 없지. 뭐, 좋아. 이 정도면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고분고분하니 잘 써먹을 수 있겠군. 따라와라, 아지! 관리실 뒤지는 데에 네 코를 좀 써야겠다.”
“멍!”
나는 관리실로 향했고, 아지는 곧장 몸을 일으켜 내 뒤를 따라왔다.
만일 이곳이 정상적인 감옥이었다면, 감옥 옆에 높다란 탑이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 탑은 교육대 옥상보다도 두 층 정도 위에서 고개를 뻣뻣이 세우며, 개미처럼 우글거리는 죄수들과 노역자들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심해어의 눈과 같은 수많은 탐조등을 매단 채 죄수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감시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죄수들이 탐조등의 빛을 피해 어둑한 그늘로 숨으면,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소리치며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다. 그 뒤 어떤 처분을 받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터.
하지만 이곳은 탄탈로스. 군국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극악무도한 죄수들만 가둔 곳.
여기서 죄수를 관리하며 살아남으려면 군국도 그만한 투자는 해야 한다. 군대를 배치하거나, 아니면 장성급 강자를 파견하거나.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한 전력을 고작 감옥 관리인으로 낭비한다는 건 극도로 비효율적인 일이기에.
아득바득 인력과 자원을 퍼부어 관리하기보다는 아예 방치하는 편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계산을 세우고는, 아예 감옥을 무저갱에 빠뜨린 뒤 손을 뗐다. 서로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고.
어쨌건. 그래서인지 탄탈로스에는 높고 권위적인 감시탑 대신 창고처럼 보이는 네모난 가건물만 있었다. 조촐한 담장으로 구분된 컨테이너 건물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온전한 상태도 아니었다. 나는 눈가를 찌푸리며 무너진 담장을 넘었다.
“어후, 안이 아주 난장판이구만.”
한쪽 벽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웬 커다란 손자국 같은 모양이 나 있는 걸 보니 누가 손바닥으로 후려쳐서 벽을 부숴버린 모양이다. 건물에 덧댄 철판에는 누가 과녁삼아 화살이라도 쏜 듯 수십 개의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그 구멍 가장자리에는 철이 녹아내린 흔적이 있었다. 뭘 쏜 거야. 불화살로는 이런 거 만들 수 없을 텐데.
지붕은 형편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이유는 딱히 찾을 필요도 없었다. 공사 현장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철골 달린 콘크리트가 지붕을 내리찍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건물의 네 귀퉁이 중 하나는 무언가에 물어뜯긴 듯 이빨자국 모양으로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 입 크기를 가진 생물이 존재할 리 없으니, 착각이겠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잔뜩 움츠린 채 조심스레 걸어가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재빨리 몸을 낮추고 아래를 살피니, 누군가 콘크리트 바닥을 케이크처럼 깨끗하게 자른 흔적이 있었다. 이건 아마 회귀자의 작품일 것이다.
뭔가, 뭔가가 일어났던 것 같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독심술사.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마어마한 증오와 폭력이 휩쓸었다고만 추측할 뿐.
차마 발을 옮기지 못하고, 나는 괜히 턱을 긁적이며 아지를 돌아보았다.
“아지야, 너는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니?”
“왈! 다들 싸웠어!”
“어, 그러니까 누가? 왜 싸워댄 거야? 혹시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니?”
“멍?”
“아니야. 너한테 물은 내 잘못이지.”
아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충성스럽다는 뜻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무관심하다는 뜻도 된다. 내가 이리 호감도를 쌓아도 다른 사람과 싸운다면 아무의 편도 들지 않겠지.
생각해보니 빡치네. 내가 이리 잘해줬는데 내 편을 안 들어?
“하아. 들인 노력이 무상하구나. 아무리 밥을 먹이고 산책을 시켜도 결국 개는 개일 테니까….”
“나, 산책 좋아해!”
“나도 알아. 내가 너만큼 산책을 안 좋아해서 그렇지.”
“멍?!”
아지는 눈을 크게 뜨고는 경악했다. 산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갑자기 불안해지기라도 했는지, 아지는 팔짝팔짝 뛰면서 내가 본 것 중 제일 유창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멍! 산책, 좋아! 시원해! 가끔 신기한 거 보여! 재미있어!”
“그래, 그래.”
“산책하면 좋은 게 잔뜩이야! 기분 좋아! 넓어! 뛰어다녀!”
어쩌라고. 설마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거야? 하아, 내가 아무리 죄수로 전락했다고 한들 개한테 설득당할까.
자기 딴에 고급 어휘까지 써가며 열심히 산책의 좋은 점을 설파한 아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 산책 싫어?”
“산책도 좋아해.”
“멍!”
기뻐하는 것도 이르다. 빙글빙글 도는 아지를 보고 나는 짧게 덧붙였다.
“다만 누워서 자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할 뿐이지.”
“머, 멍?!”
“늦었다. 가자.”
그래. 너한테 물어봐야 뭘 쓰냐. 결국 내가 알아봐야지.
눈높이에 맞춘 대화를 나누며, 세 갈래로 찢어진 문을 넘어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뭘 어떻게 했길래 문이 종잇장처럼 찢겨진 거야? 그래도 철문인데?
역시, 그냥 돌아갈까.
건물 안은 조명이 하나도 없어서 어두웠다. 만일 지붕이 멀쩡하고 벽이 무너져있지 않았다면, 조명 하나 없는 내부는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건축가가 설계하지 않은 구멍으로 빛이 새어들어와 내부는 물체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는 밝았다.
관리실답게 무너지고 부서진 잔해 속에서 한때 기계장치였던 것들이 보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 형체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흩어진 볼트와 너트. 갈라진 톱니바퀴, 테두리가 뜯겨 떨어져나간 계기판. 을씨년스럽게 뜯겨나가 있는 골렘의 팔과 다리 등등.
한때 이곳을 관리했을 기계장치와 마도 골렘들은 무언가의 습격에 의해 완전히 궤멸한 상태였다.
“탈옥하면서 다 깨부쉈나 보네. 그 마음 이해는 가지.”
신세 많이 졌으니까 신세 질 처지로 만들어드리자. 아주 올바른 자세다. 나는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산더미 같은 잔해를 뒤적였다. 군국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물건이나 장비가 있으면 내가 주워다 쓸 요량으로.
하지만 잔해는 많았고 내부는 어두웠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한 어둠 속에서, 나는 허리를 펴고 땀을 훔쳤다. 밖에서 볼 때 좁게만 보였던 건물이 내가 직접 뒤지는 입장이 되니 짜증날 정도로 넓어보였다. 거기다 잔해들이 하나같이 무거워서 들어올릴 때마다 끙끙거리는 신음을 내야 할 정도였다.
저 어둠 속에 보물이 숨어있다고 한들 내가 찾아낼 방법도 손에 넣을 능력도 없다.
“쩝. 허탕인가?”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그때, 아지가 고개를 퍼뜩 돌리더니 잔해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지가 양손으로 땅을 파헤칠 때마다 큼직한 잔해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았다. 나는 주저앉은 지붕 아래로 숨어 난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철근 꽂힌 콘크리트와 커다란 안테나를 간단히 옆으로 내던진 아지는,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며 그 속에 널브러져 있던 작은 캐비닛을 가리켰다.
그것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중요 물품 보관함이잖아? 그걸 용케도 찾았네.”
“나, 잘했어?”
“그래. 착하다, 착해. 너는 최고의 강아지야.”
“멍!”
칭찬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지는 캐비닛 주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나는 캐비닛 옆으로 손잡이를 힘껏 당겼다.
그러나 옆구리가 움푹 찌그러진 캐비닛은 단단히 잠겼는지 아니면 뭔가 걸렸는지 힘을 줘도 열리지 않았다. 뭔가 걸려서 구조적으로 고장 난 것 같았다. 내가 힘이 부족한 게 아니고.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지성을 갖춘 인간이다. 인간의 특징이라고 하면 바로 도구.
“1종, 2종. 그리고 3종. 이 경우 필요한 건 몇 종 지레일까?”
“멍! 산책!”
“1종이다. 멍청아.”
“멍? 나, 안 멍청해!”
나는 찌그러져 벌어진 틈으로 철골을 끼워넣고는 힘껏 눌렀다.
…열리지 않았다.
흠흠.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지성을 갖춘 인간이다. 내 힘이 부족할 땐.
“아지야, 나 도와줄래?”
“멍? 나, 안 멍청해!”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자, 멍멍펀치!”
“멍멍?”
“여기를 앞발로 후려쳐달라는 의미야. 세게.”
“멍? 이렇게?”
아지가 발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내 뒤로 아지의 팔이 흐릿하게 휘어졌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캐비닛이 허공으로 3m 가량 떠올랐다. 단단히 잠겨있던 문짝은 핑그르르 회전하며 저 위로 날아가 지붕에 틀어박혔고, 지렛대 삼아 넣었던 철골은 V자로 휜 채 땅으로 떨어졌다. 허공을 부유하던 캐비닛은 머리부터 거꾸로 땅에 떨어졌다.
멍멍펀치 성능 확실하네.
“아유, 착하다. 역시 너는 세계 최고의 강아지야.”
“최고?”
“그래. 최고.”
“멍! 나, 최고야!”
의기양양한 아지를 뒤로하고 나는 캐비닛 안쪽을 살폈다. 안쪽에는 예비용으로 마련해둔 것처럼 보이는 수정구슬 몇 개와 종이로 된 서류 몇 장이 보였다. 이게 끝인가? 뭔가 아쉬운데.
미련을 가지고 캐비닛 안쪽에 시선을 한 번 더 던지는 때, 저 안쪽에서 납빛으로 빛나는 둥근 물체가 보였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손을 깊숙이 집어넣어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세상에. 이게 남아있었어?”
이건. 써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