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25)
EP.125 경사났네 경사났어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어지는 기쁜 일을 경사라고 부른다.
경사가 나면 사람들은 만인에게 자랑하고자 하며, 서로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면서 더욱 우정을 돈독히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선께서 찾아오셨다는 경사를 축하받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가는 도중 왠지 벽에 기댄 채 생각에 잠긴 회귀자와 인사한 뒤, 창고에 들어가 뚜껑이 닫힌 상자 앞에 섰다.
이 상자 안에는 어떤 불우한 존재가 갇혀있다. 나는 뚜껑을 열고 그 존재를….
“냣?”
야생의 나비가 나타났다. 비좁은 상자에 비집고 들어간 나비와 눈이 마주쳤다.
“네가 왜 거기 있냐?”
“너야말로 왜 냐의 안식을 방해하는 것이냐?”
뭘 봐, 하는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 나비. 나는 나비를 향해 손짓했다.
“네 엉덩이 아래 깔린 거 좀 꺼내게.”
“냐?”
그러자 나비는 이 작은 상자 안에서도 용케 몸을 움직였다. 움찔움찔, 머리가 아래로 들어가고 꼬리가 위로 솟구치더니, 태아가 뱃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한 바퀴 구르고는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나비의 입에는, 철사로 묶인 채 움찔거리고 있는 골렘이 물려있었다.
“냐아. 가져가라냐. 이런 깡통 장난감, 냐는 필요 없다냐….”
문 채로 그리 말하니 골렘의 몸이 위아래로 덜컥덜컥 흔들렸다. 나는 나비의 턱을 간질여주고는 골렘을 꺼냈다.
나비는 살짝 치켜 올라간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냐아. 그 커다란 암컷, 위험한 냄새가 난다냐.”
“네 몸에서 나는 마력초 냄새보다는 낫지 않을까.”
“공물은 신성한 거다냐!”
내가 본 어떤 골초도 담배 보고 신성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중독된 거냐.
나비가 상자 안에서 투덜거렸다.
“그에 비해, 그건 뭔가 위험하다냐. 멍청한 멍멍이들은 이상함도 못 느끼고 꼬리를 흔들지만, 냐는 안다냐…. 냐는 속일 수 없다냐….”
지금까지 약에 조련되고 고양이 수인에게 속아서 휘둘린 녀석이 말은 잘한다.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네가 못 이기는 상대면 위험할 만하지. 그런 의미에서 여기 있는 사람 태반이 너한테 위험하지 않냐?”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찌르자 나비가 하악질을 해댔다.
“냐학! 냐가 이 안에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거라냐! 아니었으면 당장 혼내줬을 거다냐….”
뚜껑을 닫자 소리가 잦아들었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아지자 만족스럽게 고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좁은 곳을 좋아하는 동물이라니, 참 신기한 생명체다. 어떤 골렘은 묶어두면 앓는 소리를 내는데 말이야.
나는 나비를 그대로 놔둔 채 골렘 조립을 시작했다.
먼저 스피커를 입에 다시 붙이고, 팔과 다리에 묶인 철사를 풀고, 눈을 가린 안대를 벗겨주었다. 그러자.
『…푸하!』
골렘이 부활했다.
오랜만에 감각을 되찾은 골렘은 웬일인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골렘의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대충 무슨 일이 있는지 아시죠?”
『….』
“낄낄낄. 아시는구나. 지선께서 여기 오셨거든요?”
지상을 감시하고 있으면서 모를 리 없지.
그리고 지선이 왜 왔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통신병, 탄탈로스 관리자라 그런지 묘하게 아는 게 많은 것 같거든.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일밖에 할 게 없던 통신병을 향해, 나는 탄탈로스에 난 경사를 자랑했다.
“하하하. 이거 어쩌죠? 아무래도 우리, 곧 밖으로 나갈 것 같아요!”
『…으극.』
“심지어 이거 준장님이 직접 빼내 주시는 거네요! 키야. 이러면 합법 아니야?”
『부정! 천부당만부당합니다! 귀하와 같은 노역자는 반드시 군법에 의거한 형벌을 받아야 하며, 노역을 끝마치기 전에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하는 것은 중죄입니다!』
“하지만 준장님이 무저갱을 없애주신다는데 어떻게 하실 거죠? 일개… 대위 주제에?”
『…으윽!』
“내려와서 막던가?”
『할 수만 있었다면!』
거 참 신기하단 말이지. 분명 골렘일 텐데 목소리 바리에이션이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많다. 지금은 또 입술을 짓씹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단 말이야.
『그럴 일은 결단코 없지만! 설사 군 당국이 귀하를 석방한다고 하더라도! 본관은 귀하의 잔혹무도한 행위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잔혹무도한 짓을 얼마나 했다고. 골렘 가지고 논 거랑 대답 강요밖에 없었잖아.
그래도 이 골렘, 생각을 읽지 못하는 것치고 알기 쉬우니까.
내가 은근히 물었다.
“저, 관리자님. 혹시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어요?”
그러자 골렘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원망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이 대꾸했다.
『…가, 능하다면?』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습이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나, 인간의 학습은 조금 빠르고 선험적인 부분이 있다.
지금껏 나에게 학습된 골렘은, 조금 주저했으나 그래도 이전보다는 빠르게 결정했다.
『…가, 같이 산책이라도 할까요, 오빠?』
“네? 누가 당신 오빠입니까? 저란 사람이 오빠라는 말을 들으면 다 해주는 호구처럼 보여요?”
순간적으로 골렘의 관절이 삐걱거렸다. 그 직후 처량하게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인간의 학습은 조금 빠르고 선험적인 부분이 있어서, 원래 있던 보상회로가 망가졌을 때도 그 사실을 빠르게 피드백한다.
이대로 부탁을 안 들어주고 다시 창고에 처박아도 재밌겠지만, 벌써 망가뜨리기는 아쉽지.
“맞아요! 저는 호구입니다! 자, 가시죠!”
골렘이 뭐라 하기 전, 나는 골렘을 안아들고 걸어갔다.
마당에는 음식과 물자가 상자에 차곡차곡 쌓여 정리되어 있었다. 식량 대부분은 통조림으로 저장했다. 군국의 통조림은 연금술만 쓸 줄 알면 재활용이 가능하기에, 우리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내가 좀 고생했지. 여기서 연금술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상자 안에서 통조림을 하나 꺼내 뜯었다. 그 안에는 꾹꾹 눌러담은 신선미 쌀밥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골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자. 이거 보세요. 우리는 짐을 챙기고 있어요. 이곳에서 탈옥했을 때, 우리를 먹여 살릴 것들이죠.”
『…큿!』
눈으로 보니까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나는 신음을 흘리는 골렘을 안고 걸어가며 우리에게 있었던 경사를 자랑했다.
“이게 다 누구 덕분일까요? 바로, 여기 오신 지선 님 덕분에!”
척. 나는 마당 한복판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지선을 가리켰다. 이 땅의 맥을 느끼고 있던 지선은 나와 골렘의 발걸음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아. 군국의 전령이오이까. 오랜만에 마주하는구려…. 그런데 소인이 그대를 무어라 불러야겠습니까?”
“휴즈라고 불러주세요! 아직 이름을 부를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야, 너, 인마, 이렇게 부르셔도 괜찮아요!”
“길손이 어찌 함부로 그러겠소이까. 실례를 무릅쓰고 그대를 이름으로 부르겠소이다.”
“감사합니다! 아자, 지선 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어!”
지선에게 직접 이름을 불리다니. 인생업적이다. 도시에 있는 늙은 공병대원들한테 자랑하면 부러워 죽으려고 하겠지.
어쨌건. 나는 옆구리에 매단 골렘을 안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골렘은 황송한 듯이 다급히 경례했다.
『충성. 군국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본관은 탄탈로스를 감시 및 관리하고 있으며, 먼저 준장님의 복귀를 환영하는 바입니다!』
“고맙소이다. 다만, 소인은 복귀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무저갱을 없애러 왔을 따름이니.”
『그에 관해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다! 준장님, 무저갱을 없애는 것에 조금만 유예를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골렘이 제안하자 지선이 눈을 살짝 치켜떴다.
“그것은 군국의 의지오이까?”
『긍정. 군 당국은 무저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환경평가를 아직 치르지 않았습니다. 무저갱이 소멸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을뿐더러….』
“걱정할 필요 없소이다. 소인이 몇 번이고 확인하였으니.”
『…그에 더해 이로 인해 격변할 국제정세나, 교육생의 탈옥으로 인한 산발적인 문제나….』
“그 역시, 군국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외다. 무저갱이 사라지고 땅에 정기가 돌아오는 거야 지모신의 뜻이니 인간이 그에 맞추어야 할 것이며, 소인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안에 있는 이들은 무저갱에 있어선 안 될 정도로 선량하였소이다.”
혹시 우리가 사악한 면모를 보였다면 한 방에 지모신 곁으로 보낼 생각이었나? 후우, 다행이다. 나 뭐 잘못한 건 없겠지?
“더불어, 군국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으니. 진정으로 악한 이들은 이미 탈옥하지 않았소이까? 소인을 책하기 전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외다.”
『그렇다면, 최소한.』
연이은 책망에도 골렘은 꿋꿋하게 설득을 이어나갔다.
『…준장님을 따르던 신도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저갱이 없어지는 순간을 그들도 목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잠깐, 지선의 얼굴에 실금이 그어졌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지선은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오이까?”
지선이 묻자, 그녀의 마음이 바뀌었다고 착각한 골렘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1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당길 수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준장님께서는 군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신도들에게 연락하십시오. 군국 홍보부에서 준장님을 돕겠습니다.』
제 딴에는 아주 중요한 제안이라 생각하겠지만, 애석하게도 틀렸다.
지선은 별로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더 기다리게 하오이까. 그들을 가시밭길로 내몬 것이 소인이거늘. 그 처참한 실패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또다시 커다란 희망을 불어넣었다가,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지선의 얼굴에는 결연한 빛이 맴돌았다.
“소인은 먼저 행동으로 나설 것이외다. 무저갱을 없앤 뒤, 그들에게는 지모신의 분노가 가라앉았다는 소식만 전할 것이외다. 그대들의 바람을, 너무 늦게 들어주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준장님.』
“이미 결심했소이다. 군국이 이후 무엇을 하더라도 상관없으니, 소인은 맡은 일에 임하겠소이다.”
지선의 말은 굴러오는 바윗덩어리처럼 멈출 수도, 틀 수도 없어 보였다. 그 점을 깨달은 골렘은 가만히 지선을 보다가, 다시금 손을 올려 경례했다.
『…준장님께 무운이 깃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내가 군국 명령을 어기면 죽일 것처럼 굴더니, 지선에게는 무운이 깃들라네. 이거 사람 차별 아니야?
생각해보니 지선 정도면 차별대우를 받아도 되지. 인정.
더 말을 걸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는 골렘을 안아 들고는 감옥 안으로 향했다. 그동안 골렘은 힘없이 내 옆구리에 늘어져 있었다.
나는 골렘에게 말했다.
“어쨌건, 이제 아셨죠?”
『…무엇을 말입니까?』
“저는 근무지를 이탈한 게 아니라 근무지가 없어진 거예요. 그건 낙하와 점프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요. 즉, 나는 이번 일에 관해서는 혐의 없음. 아시겠어요?”
『그리 말해보았자, 귀하가 낙성을 일으킨 공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인 거 아니라니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장성을 해쳐요? 털끝 하나 건드리지도 못할 텐데.”
『군국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만일 귀하가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면 탄탈로스를 벗어난 이후 자수하여 수사에 응하십시오.』
“퍽이나 그러겠네요.”
『…동감입니다.』
골렘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비록 회색 별이라지만, 준장님의 이름은 군국 전역에 드높습니다. 특히 군국에는 장성 장병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존경하는 분이 많지요. 그러니 경고하건대, 만에 하나라도 준장님을 다치게 해선 안 됩니다.』
“뭔 소리야. 우리가 왜 지선을 다치게 해요?”
『…혹시나 강조한 것입니다. 지금껏 이곳에 떨어진 이들은… 전부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하였으니까요.』
“어이가 없네. 그럴 의지가 없는 건 둘째 치고, 그럴 능력도 없어요!”
딱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지.
그나저나,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읽어봐도 지선은 회귀자의 기억으로 남을 만한 일을 저지를 위인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둘 중 하나다.
회귀자가 사실 자기를 회귀자라고 믿는 정신병자라던가.
저 무저갱 밑바닥에 지선을 뿌리부터 뒤바꿀 엄청난 것이 숨어있던가.
지금이라도 첫 번째 가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나, 내가 고민할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