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36)
EP.136 비스듬한 천장과 웃는 시체들의 산 – 8
‘…묘하게 나를 탓하는 것만 같군.’
그야 당연하지. 기분 나쁘라고 말한 거니까. 지선이라는 분이 시체를 보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쌈박질이었잖아?
그래도 수양 높은 도사답게 지선은 표정을 수습하고는 나를 향해 요청했다.
“그것은 지모신교의 대종사가 만들어낸 유품. 소인은 그것을 건네받기를 바라외다.”
“싫은데요. 저는 유품의 시험을 통과했어요. 그러면 유사 이래로 존재했던, ‘주인 없는 물건 가장 먼저 줍는 사람이 주인!’ 룰에 의해 이 지잔은 제 거잖아요.”
갑작스레 생겨난 욕심 같기도, 혹은 정당한 선언 같기도 한 말이었다. 물론 지선에게는 전자로만 들렸겠지만.
“억지 부리지 마시외다. 불초 소인은 부족하나마 선(仙)자를 허락받은 지선. 모든 지모신도를 대표하여, 그것을 돌려받기를 청하외다.”
“지선 님이야 말로 억지 부리지 마시죠? 저는 세상에서 제일 평범한 인간. 모든 인간을 대표하여 이건 제 것이라고요.”
지잔이 부르르 떤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 같다.
요즘 죽은 것들은 참 이상하다니까. 시끄러워서 한 대 꽁 때렸는데 내 손가락이 아팠다.
‘눈앞에 있는 유품을 보고 갑자기 욕심이 동했나? 이래서 죄수의 성품은 믿을 게 못 되군.’
짧게 혀를 찬 지선은 나에게 마지막 설득을 시도했다. 이게 안 통한다면 힘으로 가져갈 심산으로.
“소인은 이 근원에 닿기 위해 20년, 자그마치 20년 동안 일해왔소이다. 탄탈로스조차 소인이 만든 것이오, 이 땅에 직접 내려와 소인이 땅을 뒤집었으니. 소인의 공로가 가장 크외다.”
“아, 지분으로 나누자? 지모신도보다는 모험가 같은 발언이네요!”
지선의 눈이 꿈틀거렸다.
모험가. 자칭 트레져헌터, 타칭 도굴꾼. 유품이나 보물을 찾아다니며 유해를 뒤집어 놓는 ‘모험가’라는 표현을 지모신도에게 쓰는 건 둘 중 하나다.
무지의 소치, 혹은 지금부터 서로 갈등을 빚어보자고 정중하게 요청하는 계산된 도발.
“무저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했죠? 그러면 됐네요! 이 지잔을 든 제가 무저갱을 없앨게요! 그리고 이거 내가 가지고! 딸꾹! 이야, 횡재했네! 횡재했어!”
“혹 취하셨소이까?”
“아니요? 전혀 안 취했는데요? 끄윽 끅. 캬, 기분 상쾌하네! 여기서 이런 보물을 주울 줄은!”
들떠서 이것저것 주워삼는 나를 두고, 지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뻗었다.
“취하신 모양이로구려. 그렇다면, 실례를 무릅쓰고.”
그렇게 내 손에 쥐어진 지잔을 낚아채려는 지선. 그녀의 손가락이 지잔을 움켜쥐려는 때.
빙글. 지잔이 살짝 뒤집히며 지선의 손을 동그랗게 밀어냈다.
밀릴 리 없다.
지선의 몸은 대단히 수준 높은 기공으로 가득 차 있으며, 걸음마다 대지술을 응용한 기공으로 대지에 흩뿌려 발밑에 뿌리를 박는다.
이게 그녀가 넘어지지 않는 이유.
경지에 이른 곤기공과, 그것을 수련하며 단단해진 감기공을 몸에 지닌. 그야말로 살아있는 고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목은 대지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리니.
‘아니?!’
끼기기긱.
반동 없는 검, 지잔이 그녀의 팔을 자연스럽게 비껴낸다.
지잔은 나에게만 가벼운 검. 타인이 느끼는 지잔의 무게는 가히 태산과 같다.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세상에서 가장 큰 바위의 무게를 지닌 검이다.
힘 싸움? 그런 건 없다. 저항? 하지 못한다.
이 지잔을 들고 있는 한, 나는 ‘힘’에서 밀리지 않는다. 그들의 힘은 지잔의 무게에 삼켜지므로.
그렇기에 지잔은 반동 없는 검이다. 내 손에 있으면 지팡이이긴 하지만.
‘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힘을 휘두르도록 허락받았다는 말인가…? 어째서?’
내가 간단히 팔을 떨쳐내자, 지선의 눈이 경악과 함께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내 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정말 지잔의 주인일 수도 있다는, 자격지심에서 생겨난 두려움.
지선은 한껏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휴즈 님이 어떻게 유품의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나. 다시 한번 요청드리겠소이다. 소인에게 그것을 넘겨주시외다.”
“이제 눈높이가 좀 맞네요. 어때.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셨어요?”
“하문하시외다. 소인은 언제나 경청할 준비가 되었소이다.”
“아하하. 거짓말하지 마요. 자기만이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는데 경청은 무슨. 소 귀에 경 읽기겠지.”
말을 들어도 발끈하지 않는다. 이제 알아챈 것이다. 내가 가진 자격을.
그 앞에 콘크리트 건물이 있어도 쉽게 밀어내는 지잔은, 나에겐 고작 조금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체감상 안에 칼 숨겨뒀던 마술 지팡이와 비슷한 정도다.
나는 지잔을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요즘은 마법이 발달한 나머지 땔감 걱정도 없어서, 평범한 가정에서도 누가 죽으면 그냥 화장한다죠? 그런 시대에 시체를 몇이나 묻어봤어요?”
“…우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이 묻어보았소이다.”
“그런 것치고는 시체 다루는 일에 익숙하지 않던데요?”
“억지를 부리시는구려. 소인이 어찌 시체가 익숙하지 않다는 말이외까?”
이 시체들의 산 위에서도 태연한 모습을 보라는 듯 양팔을 펼치는 그녀에게.
나는 정확히 그 점을 지적했다.
“바로 그 점이요. 태연히 시체를 밟고 있는 거.”
내뻗은 팔이 뻣뻣하게 굳는다. 지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뭐라 하셨소이까?”
“어째서. 시체를 밟고 태연히 서 있을 수 있는 거죠? 어째서 시체로 된 땅에 기공을 흘려보내 태연히 몸을 지지하는 거죠? 어째서 시체 산을 뒤집어엎는 공격을 태연히 저지르는 거죠?”
회귀자는 시체를 꺼린다. 불사자의 잔해를 뒤집어쓰고는 몸이 잠깐 얼었을 정도다.
그래서 발을 디딜 때도 뒤집힌 탄탈로스를 박차거나, 디딤구름을 만들어서 발을 대거나 했다. 상대의 발밑을 무너뜨릴 생각은 쓰러지기 전까지 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체를 꺼리는 건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이니까.
“사람은 죽음을 싫어하니까. 그게 타인의 죽음이더라도. 따라서 우리는 시체를 꺼리고, 매장하며 가슴 속에 묻죠. 매장자들은 그 뜻을 받드는 사도들.”
그에 비해 지선은.
“하아.”
내 한숨에, 지선이 죄지은 학생처럼 움찔거렸다. 그녀의 귀로 내 준엄한 훈계가 꽂힌다.
“매장자로서는 셰이 씨 미만이에요.”
비난하는 기색은 하나도 없는, 담백한 진실로 된 훈계를.
“시체의 산을 보고도 가장 먼저 발을 내디뎠죠. 사명감이 남은 원혼을 보고도 그들을 알아채지 못했고요. 세상에나, 남이 만들어놓은 무덤을 뒤엎기까지.”
“그것은….”
변명하려는 듯 입을 뗐지만 정작 하지 못하는 지선. 나는 담담하게 그녀를 평가했다.
“당신, 매장자로서는 실격이군요.”
부끄러움과 수치. 그것과 동시에 반발심이 고개를 든다.
나는 지선이 발끈하기 전 양팔을 벌리고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하지만 괜찮아요! 시체 잘 묻어서 뭐하나요. 당신은 시체를 묻고 넋을 기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잖아요!”
거짓말이 아니다. 이 역시, 내가 품은 진심.
장례를 치른 횟수보다 만든 콘크리트 포대의 수가 백 배는 더 많을 거다.
묻은 이보다 살린 이가 몇 배는 더 많다.
그녀가 만든 건물과 시설은 지금도 군국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지탱하는 중이다. 살면서 군국을 욕하는 이들은 보았어도, 지선을 탓하는 이들을 보지는 못했다.
‘지선께서 댐보다 먼저 나라를 고치셔야 했는데.’
이런 장난스러운 원망만이 들려올 뿐.
나는 그런 지선을 향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표했다.
“저는 당신을 존경해요, 지선 님. 이건 거짓이 아니라고요.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을 만드는 것도 대단하지만, 산 자를 위한 건물을 짓는 것에 비할까요? 당신의 손에 묻힌 공병들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당신 덕분에 살아난 공병들이 행복할까요?”
대답은 없었고, 생각은 깊었다. 나는 그 생각을 하나하나 읽으며 말했다.
“당신은 지모신교의 성세를 되찾기 위해 무저갱을 없애겠다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죠.”
어쩌면, 그녀도 알고 있을 차가운 진실.
“무저갱을 없애도 지모신을 향한 신앙이 돌아오지는 않아요. 아무리 포장한다고 한들 그건 역사의 흐름이었으니까요.”
성황청이 득세하고, 전쟁이 이어지고, 합동 장례식이 유행하고, 마법과 연금술이 발달하면서 땔감 걱정이 줄어든 시기.
사람들은 점차 매장 대신 화장을 선택했다. 성황청은 값싼 비용으로 장례를 대신 치러주었기 때문에, 묻을 땅도 관 짤 돈도 없는 가난한 이들은 성황청에 장례를 부탁했다.
그렇게 점차 매장자는 수요를 잃었다.
그 시기 승왕도, 패왕도 나란히 지모신교를 꺼린 이유가 뭘까. 그 전까지라면 몰라도, 대종사 이후 지모신교는 확실한 기적을 지니고 있었는데.
패왕은 귀찮아서라고 퉁 쳤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터.
“그냥 죽음이 너무 많아진 거죠, 뭐. 땅도 좁고, 묻기도 힘들고, 전쟁하느라 바쁜데 매장자랍시고 신원 미상의 존재들이 돌아다니면 어쩌겠어요. 확실히 귀찮죠.”
천신교는 이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포장하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지금 지모신교의 성세가 잠깐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건 오래된 고집을 꺾었기 때문이죠. 어느 나라를 편들지 않겠다는 고집을 꺾고, 죽은 이들의 무덤 대신에 군국의 기반을 다진 덕분에.”
군국이 그들을 불렀을 때, 지모신도들은 경계했다. 예로부터 종교가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건 금기였으며, 불려갔다가 싹쓸이를 당한 패왕의 예도 있었으므로 더욱 거부감이 심했다.
그러나 지선은 강행하여 군국과 지모신교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 딱딱한 군국이 명예직이라지만 별을 달아주었고,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모신도는 점차 인정을 받았다.
“정확히는, 지선 님이 열심히 일하신 덕분에. 당신이 살린 목숨이, 당신이 만든 시설이, 당신이 이룬 업적이 곧 성세라고요. 없어졌던 성세가 ‘돌아온’ 게 아니라. 지금 새로이 ‘만들어진’ 거예요.”
낯부끄러울 정도로 한껏 칭찬을 건네준 뒤, 나는 살짝 몸을 틀어서 대종사를 보여주었다.
이 시체의 산 위에서 공손히 무릎을 꿇은 대종사는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홀로 외로이 죽어가며.
그에 반해, 묻는 자보다는 짓는 자에 가까운 지선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녀는 나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넘어지지 않으니.
“당신은 대종사의 뜻을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정말 그래요? 1300년 전 지모신교의 대종사와, 지금의 당신. 무슨 공통점이 있죠?”
지모신교라는 이름만 같고, 쓰는 힘이 비슷할 뿐.
너무나도 다르다고. 나는 그 사실을 자각시켰다.
“그러니까. 휴즈 님의 말씀은 그것이로구려.”
숨을 크게 들이쉰 지선은 대종사의 앞에서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소인은, 지잔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요. 평범한 모든 이들과 동등한 자격이 있는 거죠.”
“그러니, 소인은 이 유품의 정당한 소유자가 아니라.”
“주워야 하는 거죠.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좋소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내 입을 통해 자기 욕망에 진실로 마주하게 된 지선은.
“휴즈 님의 말씀이 옳소이다. 확실히, 소인은 지잔을 앞에 두고 보이지 못할 꼴을 보였소이다. 무덤을 더럽히다니. 왜 스승님께서 교만을 주의하라 경고하셨는지 알겠구려….”
한결 솔직해졌다.
“하나. 소인은 대지모신을 모시는 이. 대종사의 유품이자, 이 비사를 담은 그 증표가 필요하외다. 흩어진 신도를 모으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성황청의 죄를 묻기 위하여.”
그러니까, 본색을 드러냈다는 뜻이다.
“그걸 내놓으시오.”
‘주지 않는다면, 힘으로라도 가져갈 것이니.’
나는 크게 웃었다.
“아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당연하다. 행동하는 데 자격 따위는 필요 없다. 능력의 부족 말고 무엇이 한계를 결정짓는다는 말인가.
이미 죽은 이를 대변한다고? 감히 누가 그럴 수 있을까.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대변한다고. 그것도 1300년 전의 일을.
“하하. 아주 좋아요. 저는 이런 솔직함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요! 차라리 이렇게 말씀하셨어야죠!”
“허면. 주시겠소이까?”
“가져가세요!”
지잔이 든 손을 냉큼 내밀었다. 그러자 저 아래 시체와 콘크리트에 깔려 끙끙거리던 회귀자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주면 안 돼!”
아, 뭐야. 갑자기 억울하네.
네가 외친 탓에, 내가 네 말 듣고 마음을 바꿔서 안 주는 것처럼 보이잖아.
사실 아직 줄 생각 없었는데!
지선의 손아귀가 허공을 움켜잡았다. 내가 절묘하게 지잔을 움직여 그녀의 손을 피해낸 것이다. 힘 빠진 소리가 났다.
지선의 눈가가 움찔거렸고, 내 얼굴에는 환희가 깃들었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