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41)
EP.141 완벽?한 계산?
황무지를 맴돌던 셰이와 티르칸쟈카, 칼리스, 불사자는 무저갱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캠프를 만들었다.
막 뛰쳐나온 탈옥수답지 않게, 여기 있다고 광고하듯 새빨간 불을 크게 밝힌 캠프였다. 제발 누군가 찾아와달라고 애걸하는 듯했다.
사방에 빛을 비추며 모닥불에 둘러 앉은 그들은.
지금, 깊은 슬픔 속에 잠겨있었다.
티르칸쟈카는 하염없이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그녀에게서 울컥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셰이는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모닥불을 다스리는 척했다. 천앵을 모닥불 속으로 찔러넣을 때마다 불꽃이 활활 솟구쳤다.
칼리스와 불사자는 오늘만큼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둘은 서로 처음 본 사이처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 배려 아닌 배려에, 티르칸쟈카는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괜찮다.”
그렇게 말하며, 정작 이어지는 말은 모두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부담스러웠겠지. 나는 시조 티르칸쟈카. 모든 흡혈귀의 시조이자, 피를 탐하는 괴물…. 이런 내가, 누구에게 받아들여질 리 없거늘.”
그렇게 말하던 티르칸쟈카는 문득 얼굴을 찡그리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을 좀먹는 벌레가 있어, 그것을 빼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러나 고통의 근원이 잡힐 리 없다.
모든 피가 자기 의지에 따르는 흡혈귀는 처음 겪는 형이상학적인 고통에 몸부림쳤다.
인상을 찡그리는 티르칸쟈카와, 그녀를 보며 데굴데굴 눈알을 굴리는 일원들.
티르칸쟈카는 젖은 숨을 내쉬며 셰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보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거라. 정녕 그게 사실이느냐?”
“어, 어?”
느닷없이 지목당한 셰이는 겁을 집어먹었다.
차라리 적이라면 맞서 싸우겠지만,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러한 문제는 셰이에겐 너무 가혹했다. 셰이가 꿀꺽 침을 삼키며 힘겹게 대답을 고르려는 때였다.
다행스럽게도 티르칸쟈카의 주제는 다른 것이었다.
“…죄악의 왕이란 이가, 정녕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것.”
“아, 어! 그래. 내가, 그….”
회귀한다, 라고 말하려던 셰이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지금에 만족하고 있는 이들은 회귀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불안해한다. 셰이가 그리는 다음 회차에 그들의 행복이 없을까 봐.
그 순간, 셰이는 그들의 행복을 인질로 잡은 셈이 된다. 그들은 셰이에게 매달려왔다. 미래에도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똑같은 행복을 손에 쥐여달라고.
종말을 막아야 하는 셰이에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이것이 셰이가 회귀 사실을 함부로 밝히지 않는 이유였다.
밝혀봤자 성황청의 예지를 겪었다고 치부된 적도 많았고.
‘만일, 지금 내가 회귀 사실을 밝히면. 믿어줄 것 같지만….’
셰이는 조심스럽게 티르칸쟈카를 살폈다.
지금 티르칸쟈카는 되찾은 감정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회귀를 바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금 느낀 이 감정, 이 고동 모두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셰이는 말하려다가 꿀꺽 침을 삼키고는 말을 돌렸다.
“…응. 예지로 본 거야.”
“네가 직접 말이냐? 남자인 네가?”
“아, 아니! 내가 아는, 예언자가 하나 있는데! 걔가 좀 넓게는 못 봐도 세세하게는 잘 알아서! 성황청 소속은 아니래! 믿을 만한 사람이야!”
급히 말을 바꾸는 셰이였다. 티르칸쟈카는 셰이를 살짝 미심스럽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느냐.”
의심은 그쳤는지, 아니면 의심할 겨를도 없는지.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티르는 문득 말을 꺼냈다.
“내 너를 돕겠다.”
“…어? 정말?”
“그 예언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황청은 언제나 자기 유리한 대로 예언을 이끌곤 했지. 허나, 이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고 싶지는 않구나.”
“으음, 고맙긴 한데. 그래도 괜찮겠어?”
셰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무엇이 괜찮은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 대상은 이 분위기 속에 녹아있으므로.
티르칸쟈카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는 세상이 멸망해도 자기를 지켜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하였지.”
“그 녀석이 그런 말도 했어? 언제?”
“무저갱을 나가기 전에. 만일, 네가 아는 그 예언이 참이라면,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너를 도와야 하는 셈이다. 기실, 그게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이 눈으로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
티르칸쟈카의 말은 기뻤으나, 그 뒤에 녹아있는 그의 그림자에 셰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쩜 저리 수상한 사람이 다 있을까. 세계 멸망? 그가 세상이 멸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 녀석, 정체가 뭐야? 성황청 소속이라도 돼? 으으, 수상해. 언제 한번 꼭 붙잡고 물어야 하는데….”
중얼거리는 셰이의 귀로 티르칸쟈카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아.”
그림자의 여왕이 내쉰 한숨에 모닥불이 불길하게 흔들렸다. 티르칸쟈카는 반짝거리는 은발을 어깨 뒤로 넘기며 셰이를 꾸짖었다.
“너는 정말 이기적이구나.”
“어?”
“휴에게 받은 도움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휴를 두고 수상하다, 캐내야 한다. 이러고 있다는 말이더냐.”
“…어?”
티르칸쟈카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건 적을 향한 적의나, 구차한 이에게 보내는 경멸이 아니었다. 따지자면 철없는 자식에게 보내는 차가운 시선과 비슷했다.
“처음에 내 거처에 발을 들이밀었을 때도. 그 뒤, 나에게 혈조술을 배울 때도. 이후 교육이라면서 우리를 가르칠 때도. 휴에게 배려를 받는 쪽은 너였다.”
“어….”
콩깍지, 아니야?
이렇게 툭 말하려다가 간신히 참은 회귀자는, 대신 입을 다물고 티르칸쟈카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왜 혼나야 하는 거지?’
머릿속으로 의문을 품고서.
그동안 티르칸쟈카는 쌓인 말을 다 풀어냈다.
“나를 시의적절하게 도발하고, 대화가 끊이지 않게 이어가고, 주책을 부리고, 자극을 주었으나. 결과적으로 너에게 득이 되었다. 위태롭던 네 긴장을 풀어주고, 이 무저갱에 활기를 주고, 우리 모두를 안팎으로 휘저었지. 휴의 노고가 적지 않거늘, 너는 어째서 의심스럽다고만 하느냐?”
그러나 가끔, 외부인의 시점으로 봤을 때는 조금 다른 게 보이는 법이다.
13번의 회귀를 거치고 벌써 14번째. 조금씩 달라지던 세상을 관찰하느라 바쁜 셰이에겐, 이 와중에도 타인의 시야로 세상을 보라는 요청이 버겁다.
그러나 티르칸쟈카의 설교에 셰이는 잠깐 다른 관점을 떠올렸다.
“나를 도왔다고?”
“지금도 그러하다. 만일, 휴가 정녕 죄악의 왕에 대해 알고 나에게 그러한 다짐을 받았다면. 그것 또한 너를 위해 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런…가?”
필터를 하나 끼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셰이는 그가 했던 행동 하나하나를 되짚었다.
결과적으로 지잔은 셰이의 손에 들어왔다. 그가 지선을 상대로 시간을 끌다가 내던진 덕분이다.
마지막 순간, 지잔이 이쪽을 선택하듯 궤적을 비틀긴 했지만. 그 역시 그의 작품이 아닐까.
그 전에, 에본 중장이 쳐들어왔을 때. 그는 대령을 공격하고 이쪽에 힘을 보탰다. 나중에 칼리스를 치료하면서 들어보니, 중장이 아지를 폭주시키는 것을 그가 막았다고 했다.
아지에게 워낙 친절했던 그라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그 역시도 도움이다.
그리고 핀레이 때. 그는 앞장서서 티르칸쟈카를 탈환하고, 시조의 심장을 되살렸다. 덕분에 시조는 언제 어느 때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 티르칸쟈카가 그에게 집착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차라리 이게 낫지 않은가. 피를 흩뿌리며 진군하는 것보다야.
“어라?”
셰이는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티르칸쟈카는 코웃음을 쳤다.
“어이가 없더구나. 그토록 도움을 받았으면서, 아무도 돕지 않는다고? 세심한 배려 속에 젖어있으면서도 가장 도움에 목말라하며, 그를 의심한다니. 정녕, 그래야겠느냐? 너에게 도움을 주었던 휴를 그대로 받아주면 안 되겠느냐?”
그가 했던 모든 행동이, 조금씩 의미를 가진다.
정말인가? 사소한 도발에 발끈하게 하는 것도. 수련하던 그녀를 끌고 와서 수업을 듣게 하던 것도. 매번 셰이와 티르칸쟈카 사이에서 서로를 밀고 당기며 장난스레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도?
“…도움?”
“휴가 없었다면, 네가 나와 이리 같이 말을 나누고 있었겠느냐? 혹은 이들과 함께 평온히 앉아있었겠느냐? 지모신교의 도사는? 어찌 되었겠느냐?”
만일, 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무저갱에서, 셰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사실, 사는 것 자체는 문제없다. 셰이에게 고독은 익숙했다. 폐관수련도 몇 번 했으니, 아마 별일 없이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서 앉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서로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을 끝내고, 곧장 떠났겠지. 아무런 미련도 없으니까.
“그…런, 가? 나를… 도왔어? 왜?”
“천성이겠지. 개의 왕도, 나도, 그리고 너도. 명확한 악의를 가진 이가 아니라면 다들 돕지 않았느냐.”
“어….”
아무리 의심스러운 부분을 떠올려봐도,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셰이에게 도움이 되기만 했다. 의심만 한 거품 걷어내면 안에 있는 것은 달콤한 과실뿐이었다.
‘도운…거네. 그러게.’
셰이는 솔직하게 인정했고, 동시에 조금 기뻤다.
그녀의 마음을 무언가가 톡톡 건드렸다.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을 하나를 건드렸더니 다른 쪽에서 진동이 전해지듯, 나는 아직 이어져 있으며, 서로 붙잡고 있겠다는 안도감.
선한 이도 많이 만났다. 도움도 꽤 받았다. 다투었을지언정, 공통된 목표를 앞에 두고 협력한 이도 많았다.
친구라고 부를 이는 회귀를 거듭하며 사라졌으나 동지는 여럿 있었기에, 셰이는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사실 의무감과 부채감까지 더하여 그녀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이건.
앞으로 내미는 게 아니라, 팽팽 잡아당기는 호의가 아니라.
한껏 풀어주는 듯한…. 편안함이.
“그으, 그렇구나.”
잠깐 말을 흐린 셰이는 천반경으로 평정을 되찾았다.
무안한 듯이 시선을 피하고 있자, 티르칸쟈카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잠시 말없이 모닥불 타닥거리는 소리만이 캠프를 메웠다.
침묵의 끝에 셰이가 입을 열었다.
“티르칸쟈카. 미안한데. 심장을 되살렸을 때.”
“…또.”
“아니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서!”
미간이 좁아지는 티르칸쟈카를 향해 손을 내저은 셰이가 말을 이었다.
“그의 능력, 아주 조금이지만 알 것 같기도 해.”
“무엇이냐?”
“유품.”
셰이는 옆에 고이 뉘어 놓았던 지잔을 들었다. 아무런 장식도, 손잡이도, 무늬도 없는 길고 뭉툭한 몽둥이.
“이토록 강력한 존재의 유품에는 시험이 있기 마련이야. 시험을 어떻게 치르냐에 따라 해방되는 힘이 달라.”
그리고 셰이는 지잔을 땅에 댄 다음, 손목을 이용해 톡 들어올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잔에 닿았던 땅. 그것이 빠르게 자라는 죽순처럼 솟아올랐다.
“그런데 그가 건넨 유품에는 시험이 없었어. 동시에 모든 힘이 해방되어 있었지. 원래는 ‘몽둥이’으로서의 힘만 해방되었는데… 지금은 미약하지만 이 검을 매개로 대지술도 쓸 수 있어.”
“흥미롭구나… 헌데, 그것과 나의 심장과는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이냐?”
“호문클루스의 딜레마. 그것을 우회하는 방법은 하나야. 바꾸는 사람이 자기 자신일 것.”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것은 최소한 자연스럽다.
호문클루스 딜레마에 빠진 경우와 달리, 조정이 별달리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티르칸쟈카의 심장은 대단히 안정적인 상태였다.
“그는 네 살아있을 적 기억을 유품으로 만든 것 같아. 네가 이미 죽었다는 점을 이용해서.”
셰이가 날카롭게 추리했다.
“그는 아마 유품의 힘을 끌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 거야. 이 지잔도 그렇고. 네 심장도 그렇고.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유품….”
티르칸쟈카는 자기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그가 심장에 박아넣었던 한 장의 카드. 그건 아직 살아있던 시절 그녀의 기억을 벼린 유품이었던 것인가.
“일리가 있구나. 그 이후, 휴는 제 자신을 잃었으니….”
티르칸쟈카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모은 채 중얼거렸다. 셰이도 지잔을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확실히, 그 녀석의 힘이 있으면, 조금 더 편해질 것 같긴 한데.”
그러나 세상은 넓다. 훌쩍 떠나버린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셰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 녀석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갈 작정인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정말 아무것도 몰랐네….”
“…휴가 밝히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누구도 모를 것이다.”
“응? 선생은 자기가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만이 요란했다. 라쉬의 폭탄선언은 역으로 모든 소음을 앗아간 것만 같았다.
셰이와 티르칸쟈카는 반 박자 늦게 되물었다.
“뭐?”
“…무어라?”
라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대작하면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니면 그마저도 거짓인지 모르겠소! 어쨌든 말은 한 적 있지!”
“아니, 그건 됐고. 뭐라고 했는데?”
“자기는 이미 범죄자라면서, 딱히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더군!”
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있던 곳? 그곳이 어디지?”
그 대답을 할 사람도 마침 이 자리에 있었다. 크게 헛기침한 칼리스가 또박또박 보고했다.
“그는 아미텐그라드 13-3구역에서 사기 도박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구속되었으니, 그에게 은닉해둔 재산이 있다면 회수하러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기도박? 정말 사기도박으로 잡혀 온 것 맞아?”
“제가 본 관련 문서에 거짓이 없다면, 그렇습니다. 저도 감찰관 자격으로 온 터라 그 이상의 보안 레벨을 가진 문서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달리 말하면, 더 높은 보안문서에는 다른 정보가 있을 수 있다는 뜻.
그건 셰이에겐 꽤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의 소재를 알았고, 그의 행방도 드러났다.
남은 문제는 하나뿐이었다.
싫다고 그들을 떠난 사람을 찾아 군국 한복판으로 들어가도 될 것인가.
“아우우우우.”
그때였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아지가 작고 길게 울었다. 말 없던 짐승의 왕이 입을 열자, 모두 말을 멈추고 아지를 바라보았다.
아지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채로 말했다.
“나, 가야 해.”
“어디로?”
“인간의 나라. 나와 약속한 나라.”
아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호의를 담은 커다란 눈망울에 별빛이 비쳤다. 그 모습은 홀로 밤하늘 별을 보며 감상에 빠진 듯했다.
‘이런데 어떻게 개처럼 대하냐고.’
셰이가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는 동안 아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약속을 지켰어. 이제, 그들이 약속을 지킬 차례야.”
“그들이 누구야?”
“인간들의 나라. 많은 인간을 가진. 나, 거기 가야 해.”
“거기는 어딘데?”
물어보면서 셰이는 아차 싶었다. 인간이 멋대로 붙인 도시의 이름을 과연 아지가 알까? 셰이는 아지의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개’다운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걱정했다.
“아미텐그라드.”
다행스럽게도 그 걱정은 기우였다. 아지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의지를 담으며, 흘러가는 별을 바라보았다.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래. 나, 그곳에서 약속을 찾을 거야.”
티르칸쟈카와 셰이는 서로를 보았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안다.
그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안다.
마침, 갈만한 구실도 생겼다.
“나는 추하게 나를 두고 떠난 이의 뒤를 쫓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침 가는 길이 같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티르칸쟈카는 타오르는 모닥불을 눈에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번에는 군국을 싹 뒤엎어야겠어. 겸사겸사 그 녀석에 대한 비밀도 알아내면, 뭐, 좋겠지.”
셰이도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그렇게, 두 여자의 눈빛이 모닥불 너머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