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44)
EP.144 경관의 지옥 -(하)
에델파이트로 돌아온 에비앙은 마을 사람들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훌쩍 뛰쳐나가서 집 나간 아이들, 그것도 자동마차를 타고 도망친 둘을 곧장 데리고 오는 경관은 꼭 요술쟁이처럼 보였다.
엘리와 데브를 향해 벼르고 벼르던 시선을 보내는 어른들은 에비앙이 그들을 놓아주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오랜만에 매타작을 벌일 심산인 듯했다.
그러나 에비앙은 그보다 먼저 소리쳤다.
“잠시만요. 연금원단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쟤네가 훔친 것 아니었소?”
“아니오. 연금원단을 빼돌린 이는 따로 있습니다.”
일단 그렇게 시선을 끈 에비앙은 곧장 베른의 집으로 향했다. 중간까진 말없이 따라가던 베른이 급히 물었다.
“잠깐. 왜 내 집으로 향하는 거니?”
“제보가 있었거든요. 그것을 찾으러 갑니다. 동행해주시죠.”
“…후. 그렇구나.”
베른은 한숨을 내쉬고는, 만사 다 포기한 표정으로 에비앙의 뒤를 따랐다.
엘리가 직접 증언할 필요도 없었다. 어젯밤 그녀가 파헤친 흔적은 명확했고, 뒤덮은 흔적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에비앙은 삽을 가져와서 그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거기에서 뼈를 발견했다. 에비앙은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흔적을 살폈다.
주위로 주민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세상에…. 정말 베른 씨 밭에 뼛조각이….”
“최근에 죽은 사람이 있던가…?”
“있다면 모를 리 없지. 다 화장했잖아?”
심각한 표정으로 뼈를 살펴보던 에비앙은, 곧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동시에 겁 먹은 주민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최근의 것이 아니군요. 어림잡아 30년 내외…. 그때 묻힌 시체입니다.”
관찰을 끝마친 에비앙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 시기 사라진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죠. 제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를 홀로 두고 마을에서 도망갔다고 알려진, 단 한 사람. 베른 씨가 직접 나서서 증언한 탓에, 모두가 그렇게 믿어버렸던.”
에비앙이 베른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읊조렸다.
“제 아버지.”
베른은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에비앙은 그를 무섭게 노려보며, 피도 눈물도 없던 냉철한 경찰로 돌아왔다.
“베른. 당신을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마을이 수군거렸다. 이번 웅성거림은 전에 비할 바 없이 컸다.
조카가 작은아버지를, 경찰이 촌장을 끌고 가고 있다. 베른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호송당하는 중이었다.
마을의 어른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그러면 베른 씨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말에는 에비앙이 대꾸했다.
“판결은 제가 내리는 게 아닙니다. 저에겐 그런 권한이 없으니. 다만, 죄인이 인정했고 전후가 확실하면 군정 판사에 의해 약식판결이 내려올 수 있습니다.”
“판결? 살인죄 판결은….”
“계획 살인은 사형입니다.”
에비앙이 차갑게 말했고, 마을에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누군가가 외쳤다.
“에비앙! 그는 네 작은아버지야!”
“무슨 상관입니까! 경찰 앞에는 죄인만이 있을 뿐입니다!”
에비앙이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공무집행방해는 죄질에 따라 3년 이하의 노역형에 처해 질 수 있습니다. 다들 비키십시오!”
노역형의 무게는 보통이 아니다.
공장, 광산, 교육대, 병참.
그런 곳에 소속되어, 자는 시간 이외에는 개처럼 부려먹히는 것이 노역형. 6개월 노역형을 지내고 오면 3년의 골병이 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제야 에비앙의 권위에 대해 조금이나마 실감한 이들이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에비앙은 군국의 경위답게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사람들을 헤치고 걸어갔다.
그러나, 그를 가로막은 어떤 한 여인 앞에서. 에비앙은 경위의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에비앙.”
“어머니?”
흐느끼며 다가온 에비앙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았다. 옷깃을 잡는 그녀의 손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를, 나를 잡아다오.”
“네? 무슨 말씀을.”
“…나다. 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이야….”
“뭐가요?”
아무리 에비앙이라도 홀어머니를 뿌리치고 갈 수는 없었다. 기껏 세운 권위가 무색하게 그는 어쩔 줄 몰랐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의 입에서 숨겨진 비사가 흘러나왔다.
“…네 아버지는, 멀리서 시집온 나를 마구잡이로 때리고는 했단다. 그 당시 촌장의 맏이였던 그를 누구도 막지 못했지….”
“네?”
“난폭한 그는, 내가 너를 가졌을 때도 손찌검을 했단다. 그러다 마침 돌아온 베른과 언쟁이 생겼고, 결국 싸우던 끝에, 그만….”
“네?”
“그 시체는, 내가 직접 묻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너에겐 말하지도 못하고, 마을을 뛰쳐나갔다고 거짓말했지….”
어머니의 입으로 들은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워낙 난폭한 나머지 인망이 없던 에비앙의 아버지였다. 마을을 뛰쳐나갔다는 설명에도 사람들은 납득했다.
사실, 의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없다고 나쁠 일이 전혀 없으므로.
마침 군정이 들어서며 어수선해지기도 했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를 대단한 양 치켜세웠지만. 진실로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어머니도 공범이었던 셈이다. 에비앙은 넋이 나간 얼굴로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았다.
군국은 가혹하다. 어떤 사정이 있든, 법에 어긋나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 에비앙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나 에비앙은 차마 자기 손으로 이들을 가둬놓을 수가 없었다. 파출소에 앉은 채로 고민하던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위가 여관에 묵고 있다고 했지….”
에비앙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이럴 때는 윗선에 보고라도 해야 했다. 에비앙은 힘없이 여관을 향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에비앙 경위는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간 뒤 대위에게 보고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던 금발의 장교는, 이야기를 다 듣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딘가에서 들은 적 있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확인했습니다. 다만,”
에비앙은 눈을 감고 판결을 기다렸다.
에비앙 역시 직급으로는 꿀리지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 대위부터는 까마득한 신분이다.
군국을 움직이는 ‘군인’들. 적용되는 규칙 자체가 다른 괴물들. 지닌 권한부터 가진 힘까지 에비앙과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될까. 어쩌면 상부에 밉보일지도.’
그러나 이어진 말은 에비앙을 놀라게 했다.
“25년, 군정 이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담당 수사관의 재량에 맡기고 있습니다.”
“네?”
살인사건인데, 재량? 에비앙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시효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군국에 시효란 없습니다. 다만, 재량만이 있을 뿐입니다.”
대위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그것만이 자기 의무인 것처럼.
“적용을 유연하게 해야 집행이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군정 이전에 벌어진 일은, 검거하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 시기는 행정공백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군국이야 노역자가 늘어나면 좋다.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효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재량도 크게 준다. 체포하면, 그대로 노역에 임할 수 있도록.
심지어 법이 소급 적용도 된다.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죄를 저질러도 수틀리면 잡혀간다.
하지만 군정 이전의 행정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므로, 그때 일어난 일을 묻을지 추궁할지는 에비앙의 재량이다.
“어째서 저는 그걸 몰랐죠?”
“시효 같은 건 알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죄를 저지른 이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국은 그런 지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리지 않습니다. 비록, 수사관이라도.”
덜 체포하면 문제지만, 더 체포해도 손해가 없다. 그야말로 군국다운 행보였다.
그 사실을 이해한 에비앙은 황망한 얼굴로 대위에게 경례를 붙이고는 물러났다.
“충성. 쉬시는 도중에 죄송했습니다. 그러면 소관은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닫히는 문 사이로, 대위의 작은 한숨이 들려왔다.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겁니까.”
“…군국은 왕국시절 범죄를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베른 씨.”
정작 운 좋은 사람은 어머니를 체포하지 않게 된 에비앙이었지만, 에비앙은 티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베른을 풀어주었다.
수갑 패킷을 벗게 된 베른이 팔목을 문지르며 침통하게 말했다.
“…미안하다. 뭐라 말해도, 나는 네 아버지를….”
“시끄럽습니다.”
에비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실, 그가 베른을 싫어하게 된 계기는 또 하나 더 있었다.
홀어머니와 베른, 둘은 가끔 에비앙을 놔둔 채 쑥덕거리곤 했다. 그를 향해 죄책감 어린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어린 에비앙은 그때 멋모를 질투심 때문에 베른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게 사실 아버지에 관한 일이었다면….
“수고하셨습니다, 에비앙 경위.”
그때 행정보급관 베르오 하사가 다가왔다. 에비앙은 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베르오 하사. 편의를 봐주어서 고맙습니다. 대위님이 없었다면 저도 곤란했을 겁니다.”
“대위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그저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우. 어쨌든. 이걸로 일단락되었군요.”
“일단락?”
아직 문제가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목소리였다. 베르오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용건을 꺼냈다.
“…그래서, 되찾은 연금원단은 어디 있습니까? 한 시간 뒤에 재고정리를 해야 합니다만.”
에비앙은 곧장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마을은 좁았고, 방금 이곳저곳 들쑤셨던 터라 범인은 금방 찾았다. 급전이 필요했던 이웃집 말포트 아주머니가 사실대로 고백해왔다.
왜인가 하니, 사실 여관 측 사람들 중에서는 연금원단을 조금씩 잘라 빼돌리는 게 관행처럼 되었다고 했다. 단, 마침 엘리가 도망가는 바람에 일이 커졌고, 이 일도 드러나게 되었다고.
이 일에 연루된 크고 작은 수십 명을 가둘 공간은 없었기에 에비앙 경위는 일단 근신을 명령했다. 일을 끝마친 에비앙은 탈진해서 파출소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의 전신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후우. 수십 년 동안 생길 일이 하루에 다 생긴 것 같군….”
-그리고 나는, 파출소 벽에 기대 그의 혼잣말을 듣고 내심 미소를 지었다.
그야 당연하지. 내가 다 들쑤시고 다녔는걸.
이런 한적한 시골 마을에는 베일에 싸인 사건이 몇 개 있기 마련이고, 나는 그의 주변부터 차근차근 기억을 읽어 그를 위한 무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수십 가지 단서를 마을 곳곳에 흩뿌려두었다.
거기서 실제로 쓰인 건 몇 개 안 되지만, 가장 큼직한 사건을 건져냈으니 충분히 만족했다.
“최악의 하루였다…. 정말 지옥 같았어.”
그게,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경관의 지옥이다.
그나저나 제법 잘 견뎌냈군, 에비앙 경위. 나름 공을 들여 준비한 선물인데 말이야.
“훗, 다음에 지나갈 때까지 그 견장, 잘 관리하고 있으라구.”
이번에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큼직한 것밖에 못 건드렸다. 아직 불륜 사건과 밭에서 호박을 훔쳐가는 범인의 정체 사건도 남아있는데 말이야.
그리고 사실 네 어머니와 베른 사이의…. 흠흠. 이건 여기까지 하고.
뭐, 어쨌건. 이거면 충분하지. 혹여나 다음에 에델파이트 근처를 또 지날 땐, 또 다른 지옥을 보여줄 테니까 말이야. 하하하!
내가 내심 웃으며 경찰서 앞을 스쳐지나갈 때였다.
‘…뭐지. 저 남자는. 못 보던 실루엣인데.’
탈진한 상태였던 에비앙 경위는, 갑자기 강철봉을 꼬나쥐고는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아니, 잠깐만. 왜 그래.
나는 아무런 잘못 없이 길 가는 사람 1이었잖아. 그런데 왜 느닷없이 강철봉을 들고 잡으러 오는 거야? 증거도 뭣도 없잖아?
하지만 여기서 겁먹고 달려가는 놈은 삼류. 일류 범죄자인 나는 의심을 받더라도 태연히 행동한다.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걸음걸이를 일정하게 하고 걸었다.
증거도 혐의도 없으니, 적당히 의심하다가 그만두겠지….
“거기. 멈춰라.”
뭐야? 어째서 나를 정확하게 짚은 거지?
원래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그리고 태연하게 대꾸하며 의심을 피해야 한다. 초보처럼 냅다 도망치면 자기 죄를 인정하는 꼴.
하지만 왜일까. 에비앙 경위에게서 느껴지는 이 묘한 확신은…!
‘언제 봤던 범죄자의 뒷모습과 닮았어. 내가 헷갈릴 리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내 감은 틀리지 않아.’
아니, 틀릴 수도 있잖아.
일단 지금은 안 틀렸지만! 그렇게 확신하다가 애먼 사람 잡을 수도 있다고! 백 명의 억울한 사람은 만들어도 한 명의 범죄자를 놓치지 말라는 군국의 모토를…!
잘 지키고 있네.
‘일단 제압하고 시작한다.’
좋아. 도망가자.
나는 냅다 뛰었다.
“거기 서라!”
에비앙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며 강철봉을 머리 위로 빙빙 돌렸다.
저물어가는 노을이 붉었다. 하루 새 오랜 비밀을 가득 푼 에델파이트에 다시금 어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