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48)
EP.148 길은 여행자와 함께 흐른다 – 4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강처럼 흐르는 땅. 수많은 화물을 싣고 흐르는 군국의 대동맥.
그러나 벨트가 대단히 편리한 물류 운송 수단인 것과 별개로, 좋은 교통수단이냐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흘러가는 땅은 굴곡을 지날 때마다 미묘하게 갈라졌다가 다시 붙고, 그 충격이 몸으로 직접 전해지며, 비나 바람 같은 기상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중간에 멋대로 내리지도 못하는 채로 오로지 정해진 루트에 따라 이동만 하는 것이다.
거기다 군국 특유의 주요 시설에 대한 빡빡한 검문까지 더하면, 사실상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이동하는 사람은 새로이 발령받은 군인이나 벨트 근방의 도시 사람이 전부.
그래서 바람막이 뒤로 돌아갔을 때도 사람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컨테이너가 더 많은 수준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바람막이 뒤편으로 향하니 다섯 명 정도 되는 여행객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모습이 보였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나이 든 공병과 손을 꼭 잡고 앉은 모자(母子). 갓 임관하여 발령받은 의무관. 그리고….
“여행객이 많아졌군! 이제 지루하지는 않겠어! 야, 간드! 자리를 만들어!”
“…대위입니다만. 그렇게 서슴없는 태도로 되겠습니까?”
군국 육장성, 절창(絶槍) 파트락시온 장군.
그리고 그의 부관이자 제자, 간드 대령.
미친 것들이네. 장군쯤 되는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부대 하나를 이끌고 가도 모자랄 판에?
기억이나 조금 읽을 동안, 장군이 대령을 향해 손짓했다.
날카롭게 눈을 뜬 간드 대령이 대위를 흘끔거렸다. 몸을 뻣뻣하게 굳힌 대위를 위아래로 살펴 보며, 간드 대령은 소리를 죽여 파트락시온 장군에게 속삭였다.
“스승님. 일단 신분을 숨긴 채 휴가를 나왔다는 설정이 아니었습니까? 대위급한테 그런 태도를 보여서는.”
“아이 씨. 징그럽게 붙어서 속삭이지 마라. 소름끼친다.”
면전에서 면박을 받은 간드 대령이 아주 잠깐 미간을 찡그렸다. 두어 걸음 거리를 둔 그는, 무슨 수를 썼는지 이쪽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장군에게 전했다.
[…후우. 그러니까, 저 남자는 몰라도. 대위 쪽은 우리를 알아차리고 어쩔 줄 모르고 있잖습니까.]“쩝. 너무 유명해도 문제인가. 정체를 숨겼다가 뒤늦게 짠하고 밝히고 싶었는데.”
[육장성 중 제일 유명한 사람을 퍽이나 몰라보겠습니다…. 알면 이제 컨셉을 확실하게 정하십시오. 밝히든가, 입을 맞추든가.]“밝혀? 입을 맞춰? 자식, 너 노총각이라고 너무 사심을 드러내는 거 아니냐! 하하!”
[…노친네입니까? 작작하고 대위 입단속이나 하라고요.]발끈하는 간드 대령을 향해 장군이 투덜거렸다.
“농담도 못 하겠다니까. 반응이 재미가 없어.”
[재미없는 건 댁… 큭. 썩어도 스승님의 농담입니다!]“알았어, 알았어.”
장군은 손가락을 딱 튕기고는 대위를 쳐다보았다. 그의 입술이 자그맣게 달싹거렸다.
동시에 대위가 몸을 크게 움찔했다.
바람이 멎었다. 동시에, 대위를 향해 장군의 목소리가 직접 들려왔다. 공간을 뛰어넘어서!
대기마저도, 세차게 부는 바람마저도 장악하는 극에 이른 건기공만이 가능한 마술이었다.
[이봐, 대위. 우리 정체는 비밀로 해주지 그래. 우린 사실 휴가 중이거든!]강요 아닌 강요에, 명령 아닌 명령이었다. 일개 통신병인 대위가 결코 반기를 들 수 없는 명령.
육장성의 요구 앞에 대위가 굳은 고개를 간신히 움직였다.
“긍…정. 확인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너한테 존대할 짬도 아니니, 적당히 풀어진 척하라고. 사람들한테 좀 서슴없이 대하고. 대위랍시고 거들먹거려서 분위기 깨지 말고.]와. 정말로 신기한 기술이네. 분명 뭔가 말하고 있는데, 내 귓가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대위만이 이 목소리를 듣고 반응할 뿐.
분명 무투파 같은데, 육장성쯤 되면 별 신기한 기술도 쓰는구나. 아아, 부럽다. 나는 뭐 사기 기술 같은 거 안 생기나.
“자! 어서 이리로 와! 어차피 먼길 같이 지낼 예정인데, 편히 앉자고!”
어쨌건.
상대는 군국의 육장성. 조금 제멋대로기는 하지만, 내가 무저갱에서 왔다는 사실을 들키면 매우 곤란해질 것이다. 추궁당하는 건 물론이요 자칫하다간 즉결처분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정체를 숨기고 있다곤 하지만, 이 타이밍에 ‘휴가’를 신청한 이유를 생각하면… 무저갱의 정보에 큰 관심을 두고 있겠지.
어떻게든 이 맹한 대위로부터 시선을 돌려야 한다. 나는 대위의 손을 붙잡았다. 흠칫거리는 진동이 대위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삐! 뭘 멍하니 서 있는 거야? 며칠 동안 같이 지낼 사람들이잖아. 인사해야지!”
나는 대위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다가갔다.
공병과 의무관은 대위의 제복을 보고는 일어서서 짧게 경례했고, 민간인처럼 보이는 어머니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겁먹은 듯 웅크렸다. 나는 그들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 긴장하지 마세요! 우리 삐가 멋들어진 계급장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태도만 딱딱할 뿐 삐약삐약 병아리 하나 죽이지 못하는 착한 아이예요! 그렇지, 삐?”
나는 해맑은 미소에, 대위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그…긍, 정. 그렇, 습니다.”
“아유, 긴장한 거 봐! 괜찮다니까! 이럴 때 사람들하고 말하고 그래야지!”
“…본관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파트락시온 장군이 존재합니다. 조용히 있는 편이… 하지만,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습니다!’
조용히 있으면 안 되지. 싫든 좋든 하루 정도는 같이 지내야 한다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시끄럽게 해서 관심을 흐리는 게 낫다.
원래 비밀은 침묵이 아니라 소란 속에 묻어야 하는 법. 지금은 오히려 어물거리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수상해 보인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삐. 너 임관한 다음 너무 딱딱해졌어. 예전에는 오빠오빠 거리면서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는데….”
“?!”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말하자 대위가 골렘처럼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 망할 인간은 하필 곤란한 상황에도 장난을…! 어떤 상황에서도 글러 먹은 장난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겁니까!’
“하긴, 오빠보다 더 잘나가니까. 이제 나처럼 못나고 부끄러운 오빠는 아는 척도 하고 싶지 않겠지…. 흑흑.”
‘평생! 평생 아는 척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도 잊고 싶습니다! 싹 다!’
“괜찮아요, 여러분. 어릴 때부터 못난 제 아래에서 고생만 해서 그래요. 뻣뻣한 건 긴장한 거니까 부드럽게 대해주세요. 마음은 상냥한 아이니까요.”
‘웃기지 마십시오! 본관이 언제까지 장난에 휘둘릴 것 같습니까!’
언제냐니. 아마 헤어질 때까지 아닐까? 가짜 신분을 안 쓸 이유가 없잖아.
거기다.
“에이! 그러면 안 되지! 아무리 글러 먹은 오빠라도 그렇지. 그래서야 되겠나! 지금 이 기회에 화해하는 셈 치고 오빠라고 불러봐!”
오지랖 넓은 장군이 희희낙락하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곁에 있는 부관이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대위를 위해 나설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 잘, 못 들었습니다?”
“이 기회에 오빠랑 화해라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아까 보니까 둘이 정겹더만!”
“우, 으….”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가 애처롭다. 그러나 육장성의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다. 대위는 입을 꾹 다물고는, 부들부들 떠는 손을 꼭 쥐고는 말했다.
“그, 그만…. 오빠….”
“와아! 내 평생 오빠란 말을 다시 들을 수 있을 줄이야!”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심지어 쿨한 척 앉아있던 부관마저도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군은 내 어깨를 쾅쾅 두드리며 신나게 외쳤다.
“너도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빠가 되도록 해라! 그게 의무이고, 그게 가족이야!”
“감사합니다, 형님. 이게 다 형님 덕분입니다!”
거리감을 훌쩍 뛰어넘는 호칭에도 장군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형님? 하하하! 이 친구, 아주 싹싹하구만! 여기 앉아! 아우님처럼 싹싹한 사람이 있어서 이번 여행길은 심심하지 않겠어!”
“영광입니다!”
나는 장군을 쫄래쫄래 따라갔다. 내 뒷모습을 보고 있던 대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비록 휴가 중이라지만, 파트락시온 장군은 이 나라의 첫 번째 별. 왕국을 손수 무너뜨린 입지전적인 인물.’
걱정이 과한 것 같지만, 사실 눈앞에 있는 장군의 정체를 생각하면 이마저도 부족하긴 하다. 군국의 육장성이라고 하면, 괴물이라 불리는 장성 중에서도 아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 전쟁 기계 같은 게 아닌, 걸어다니는 전쟁 그 자체.
국경으로 향하는 것만으로도 주변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세계적인 강자.
‘어쩌면, 사소한 대화만으로도 우리의 정체를 짐작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본관은 귀하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로 돌아갔다.
“아우님에게 진지하게 묻겠네. 솔직하게 대답하게. 이에 따라… 우리가 ‘적’이 될 수도 있으니.”
장군은 양손을 턱에 모으고는,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눈으로 나를 흘끔거렸다. 그의 눈은 더없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를 앉힌 파트락시온 장군이 처음으로 말을 꺼낸 화제는.
“무기로써는 총이 나은가, 창이 나은가?”
무기론이었다.
그의 말에, 근처에 있던 모두가 손을 얼굴 어딘가에 대고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을 꺼낸 장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먼저 창 쪽이라는 입장을 밝히겠다.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니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해보도록.”
할 수 있을 리가. 다들 가만히 있자, 머리를 긁적인 장군은 가장 만만한 부하에게 소리쳤다.
“야! 간드!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저는 지금 창을 손질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묻는 거야! 창, 어때? 총보다 나은 것 같냐?”
힐끔 장군을 바라본 간드 대령은 자기가 들고 있던 창을 손질하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제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죠. 저도 창입니다.”
그러자 장군이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쳇. 재미없는 녀석.”
빠직. 창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간드 대령이 이를 악물고는 대답했다.
“…취소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창 쓰는 인간은 하나같이 인성이 글러 먹었습니다.”
“그러면 너도 포함인데?”
“스승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다면 제 얼굴도 같이 적시겠습니다.”
간드 대령의 말 이후에는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은근슬쩍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손을 들어 외쳤다.
“저는 총이요!”
당돌한 아이를 둔 어머니가 다 그렇듯, 당황해서 급히 아이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장군은 그보다 빨리 손을 내젓고는 물었다.
“꼬마 친구! 어째서지?”
“멋있잖아요! 쾅, 하고 픽! 하는 거요!”
“맞다! 확실히, 적을 위협하거나 견제한다는 의미에서도 총은 좋은 무기지!”
장군은 씩씩한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아이의 순수한 의견 덕분에 다시 말문이 트였다. 늙은 공병이 손을 들고 의견을 말했다.
“총에 한 표 건네겠수. 창잡이의 나라였던 왕국은 총잡이들의 손에 멸망했으니. 그게 총이 더 낫다는 뜻 아니겠수.”
말없이 앉아있던 의무관도 슬쩍 끼어들었다.
“저는 창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이유는?”
“총상보다 창상이 훨씬 거칠고 치료하기 어려우니까요. 관통해 봐야 살을 찢고 근육에 박히거나 뼈에 걸리는 총알과 달리, 창은 살과 근육을 부수고 뼈를 부러뜨리기까지 합니다.”
의무관은 곁에 지니고 있던 구급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실제로 끔찍한 상처를 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의견이라 무게감이 남달랐다.
“흠. 의무관의 의견이라 현실성이 있군! 자, 그렇다면 아우는?”
드디어 나의 차례인가. 목을 가다듬고 일장연설을 준비하는 동안, 대위는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파트락시온 장군은 절창(絶槍)이라는 이명을 가진 창의 달인입니다. 그의 앞이니 창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아마 귀하는 이 사실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니. 장군의 의견에 동의하겠지요. 믿습니다.’
좋아. 확실하게 전해졌다. 나는 눈을 빛내며 확고하게 말했다.
“단언컨대, 총이죠.”
‘어째…서! 귀하는 가장 끔찍한 선택만을 골라 하는 겁니까!’
대위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든다. 동시에 장군도 도전적으로 눈을 빛내며 내 의견을 구했다.
“호오. 이유가 뭔가?”
그 경지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붙은 이명이 절창. 왕국의 명운을 끊어버린 전설의 창수 앞에서 나의 무기관을 자랑스럽게 고집했다.
“먼저 사정거리. 창의 사정거리는 날고 기어봐야 창의 길이만큼이죠. 그에 비해서 총은 그보다 몇십, 몇백 배는 길어요. 그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차이가 있죠. 창의 유일한 장점인 사정거리가 총 앞에서는 한없이 무색해진다고 할까요.”
“호오.”
정면에서 창을 부정당한 절창은 조금 못마땅한 듯이 중얼거렸다.
“정작 총도 근거리가 아니면 살상력이 없지 않나?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조금 단련했다는 사람 근육을 못 뚫고, 반탄기공을 두르면 코앞에서 쏜 것도 튕겨내는데.”
“기공 쓰는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죠. 그렇게 따지면 창도 기공사가 맨손으로 잡아챌 수 있잖아요?”
“하지만 창은 총알과 달리 기공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은가. 잡아채려는 맨손을 찢고 몸을 꿰뚫을 수 있지.”
이 역시 실제로 해본 적 있는 이의 발언이었다.
절창이라 불리는 파트락시온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직접 앞으로 나가서 적을 꼬치구이에서 빼낸 고깃덩이로 만들곤 했다. 지금껏 그의 창을 막아내려고, 쳐내려고, 잡아채려고 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누구도 그 업적을 자랑하지 못했다.
그의 창을 잡아채는 시늉이라도 했던 건, 창을 몸으로 받아내었던 예비 시체들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말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순진하게 반박했다.
“그건 기공이 강한 거지 창이 강한 게 아니잖아요?”
“푸흡.”
장군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절창의 부관이자, 같은 창잡이인 간드 대령은 손으로 입가를 쓸어내린 채로 무표정을 연기했다.
“저 배신자 새끼…. 파문시켜버릴까보다….”
심기가 불편해진 장군을 위해 나는 살짝 총의 단점도 나열해주었다.
“뭐,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정해요. 총은 갑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으니까요. 소모품인 총탄에 고레벨 연금강을 쓰는 건 타산이 안 맞지만, 자기 몸 지키는 갑옷은 삐까번쩍한 고급품을 둘둘 싸고 오니. 차이가 심하죠.”
“그런데 그 모든 걸 고려해도, 총이 낫다?”
“당연하죠. 애초에 사정거리는 무기의 전부예요. 천 명의 전사가 돌격해도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여덟밖에 안 되지만, 천 명의 궁수가 있다면 화살 천 대를 막아내야 하잖아요? 수적우위가 그대로 전력으로 바뀌는 거죠!”
“대단한 전쟁평론가 납셨군. 누가 보면 전쟁을 직접 해본 줄 알겠어.”
파트락시온 장군이 뚱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애매하게 웃었다.
“하하하. 이런 상상하는 걸 좋아해서. 뭔가 장군이 된 채로 명령을 내린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나잖아요.”
“흥. 직접 해보면 그런 생각 안 들걸.”
“그런 생각이 들지 안 들지 궁금하니까 직접 해보고 싶네요. 현실은 어설픈 잡졸에 불과하겠지만요. 그걸 고려해도 저는 총이 좋네요. 적과 멀리 있어도 사용할 수 있잖아요?”
거짓말은 아니다. 말을 꾸며내기 위해서는 진실을 조금 섞어야 더욱 실감이 나는 법.
나는 총이 좋은 무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가 창보다 총을 무서워하니까.
독심술사인 내가 어지간해서는 눈먼 창에 맞을 일은 없는데, 눈먼 총에 맞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자기 총알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쏴 재끼는 사람을 보면 정말 독심술사 하기 싫어진다.
생각을 읽었는데도 피할 수 없다니. 뭔가 불공평한 거 같지 않아? 왼쪽 심장을 노리는 살의를 읽고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었는데 총알이 내 오른쪽 귀를 스치고 지나간 적도 있다. 이게 싸움이냐? 제 총이 어디를 겨누는지도 모르는 바보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게 싸움이야?
뭐 어쨌건.
“아주 좋아. 아우님의 무기관, 잘 들었네.”
대범하지 못하게 나를 노려보며 벼르는 장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 책임을 떠넘겼다.
“전부 제 의견은 아니에요. 세부적인 내용 대부분은 제 동생한테 들은 내용이니까요.”
“호오. 남매가 쌍으로….”
‘?! 부정! 부정! 부정!’
느닷없이 지목당한 대위는 머릿속으로만 경보음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