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55)
EP.155 짜잔 내가 돌아왔다
모든 길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군국을 끊임없이 도는 메타컨베이어 벨트라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오는 건 마찬가지다. 정처 없는 방황에는 목적지가 없으니. 어쩌면 길이란 건 결국 더 나아가지 못하는 어떤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걸어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곳은 아미텐그라드 기착지. 군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이자, 옛 왕국의 수도를 향한 모독.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도시는 커다란 폭탄이 폭발하는 순간을 멈춰놓은 것만 같았다. 회색과 검은색의 콘크리트가 무질서하고 커다랗게 자라나고 있다. 사방팔방 그저 빈공간을 메우기 위해. 콘크리트가 이리저리 들러붙으며 점차 몸집을 불려간다.
그 와중, 군국에 따라가지 못한 것들은 가라앉고 밀려난다. 건물, 사람, 장비, 쓰레기 등등은 외곽에 쌓이고 쌓여 폭발물의 잔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사실 잔해가 맞다. 군국이라는 폭발에 부서지고 나가떨어진 부속품들이니까.
아아. 군국. 이 빌어먹을 나라여.
마술사가 돌아왔노라.
내가 새삼스럽게 감상에 젖은 도중이었다.
수속을 끝마친 대위가 나를 따랐다. 기착지에서 내린 우리를, 줄지은 자동마차에서 나온 운전자들이 흘금거렸다. 몇몇 적극적인 운전자들은 우리를 향해 직접 다가오기까지 했다.
“대위님, 어서 오십시오. 이곳부터 아미텐그라드까지 거리가 꽤 되는데, 혹시 마차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대위가 뭐라 말하기 전에, 나는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 명. 탈 수 있어요?”
“물론입죠! 준비해드릴까요?”
“빨리.”
운전자가 희희낙락하며 자기 자동마차로 안내했다. 다른 운전자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른 승객을 기다리거나, 몇몇은 사람 대신 짐을 실으러 떠났다.
대위가 우리와 같이 내린 어머니와 아들을 보며 물었다.
“네 명? 혹 저들도 태울 겁니까?”
“네. 이것도 인연이겠다, 가는 길에 같이 가죠?”
나는 모자에게 그러한 제안을 건넸다. 어머니 쪽이 조금 경계했지만, 오랜 여행길에 지친 아이를 보고는 감사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신난 운전자가 끌고 온 자동마차에 올라탔다. 차창 너머로 커다란 기중기와 끌려온 노역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일부는 군국에 의해 잡혀서 일하는 중이고, 나머지는 하루 벌어 먹기 위해 노역에 참가한 것이다. 기착지는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니까.
부드럽고 조용한 자동마차에 타자마자 아들이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허벅지 위에 얹고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녀의 입가에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잠시 뒤로 미룬 듯한 자애로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이가 잠드는 바람에 나와 대위는 나란히 앉은 채 가게 되었다.
자동마차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곱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자동마차가 나아간다. 멀리서만 보였던 도시 전경이 점차 한눈에 보일 정도가 되자, 대위가 곁눈질로 나를 힐끔거렸다.
그렇게 자동마차가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아! 저는 여기서 내려주세요!”
나는 손을 들어서 운전자를 불렀다. 자동마차가 멈추고, 너무 금방 내려주게 된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조금 불퉁한 얼굴로 고개만 내밀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곳은 중심으로부터 한참 먼 15구역인데요.”
“문제없어요. 여기 볼일이 있어서요.”
“그럼 요금은….”
“아, 저 말고 다른 분들은 계속 갈 거예요. 삐 대위, 부탁해요!”
원래 운임은 마지막에 내리는 사람이 내는 거다. 그러니까 적당한 눈치를 보다가 일찍 내리는 센스가 필요하지.
지불 책임을 호쾌하게 뒷사람에게 맡기고 돌아가려는 때였다.
“기다리십시오!”
내가 손짓으로 인사하려고 하자, 대위가 갑자기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나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에요, 삐 대위?”
대위가 잠깐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귀하에게는 아직 혐의가 걸려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제 발로 헌병단에 쳐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설마 그걸 기대하신 거예요?”
“읏.”
“우리는 같이 아미텐그라드까지만 가기로 했잖아요? 그쪽이나 군국은 인정 못할지 모르지만, 저는 성실하게 노역의 의무를 마쳤어요. 더 가두고 싶으면 영장 가져오든가.”
“그, 하지만!”
“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요?”
‘본관은 귀하를 처리해야 합니다. 혹은, 처리당해야 합니다. 본관의 신분을 아는 이가 활보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기밀입니다.”
“어? 뭐야. 혹시 저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
“…! 부정! 본관이 어째서! 다시금 말하지만, 본관은 할 수만 있다면 귀하와 만난 기억을 싹 지우고 싶습니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는 게 낫잖아요?”
“으읏…!”
‘하지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모른 척 살아가고 싶습니다. 차라리, 그 감옥에서처럼…. 골렘으로만 가끔 마주치는 관계였다면. 좋았을 텐데.’
“…기밀입니다!”
이 성실한 모범생을 어떻게 해야 하나.
흐음. 어쩔 수 없다.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다.
근묵자흑. 나쁜 친구랑 놀면 나쁜 물이 든다고. 그러니까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나처럼 나쁜 친구를 사귄 걸 원망해라, 대위. 내가 널 타락시켜주지.
둘 다 살기 위해선 태연히 거짓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불량해지는 수밖에 없잖아.
“어쩔 수 없네요. 저는 엉덩이 가벼운 남자라, 이런 유혹을 받고도 가만히 넘어갈 수 없죠.”
“본관이 언제 유혹을 했다는 말입니까!”
“헤어지기 싫다는 태도가 유혹 아니면 뭐예요? 어차피 일주일의 유예는 있죠? 그동안 짧은 휴가나 즐겨요. 자, 이리 와요.”
나는 대위의 팔을 잡아당겨서 출구 쪽으로 이끌었다. 남은 건 아이와 어머니뿐.
내가 아무리 절약정신이 투철하다고 하지만, 돈 없는 사람에게 마저 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건 사기잖아.
주머니에 연금화를 꺼내 운전자에게 내밀었다.
“아저씨! 돈은 미리 낼 테니까 이분들 원하는 곳까지 바래다줘요!”
“아이고.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웃돈까지 얹어 받은 운전자가 희희낙락했다. 내가 대위를 이끌고 자동마차에서 내리자, 안쪽에 아들과 남은 어머니가 허리만 굽혀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해야 할지….”
“에이, 뭘 감사까지야. 괜찮아요.”
행운에 기뻐하는 어머니를 향해, 나는 손을 내저으며 싱긋 웃었다.
“당신이 받기로 한 잔금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들에게 돈을 다 못 받아서 계획이 틀어지셨잖아요.”
어머니는 잠깐 내 말을 따라가지 못하고 멍청하게 되물었다.
“…네?”
“아차. 나 좀 봐. 길을 막고 있었네! 저희 내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내가 자동마차의 문을 닫았다. 뒤늦게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비밀이 탄로 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머니는 즉각 나를 따라 내리려고 했지만, 마침 그녀의 허벅지 위에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누름돌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아마 그녀에게 있어서는 지잔보다도 무거울 무게일 것이다.
어머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창에 얼굴을 내밀고 외쳤다.
“잠깐…! 제발, 죄송합니다! 용서를…!”
그러나저러나. 자동마차는 매정하게 움직였다. 어머니의 간절한 외침이 멀어진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대위는 의문에 휩싸였다.
“의문. 잔금이 무슨 뜻입니까?”
“별거 아니에요. 저분 사실 레지스탕스의 공조자였거든요.”
나는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대위가 흠칫 놀라며 멀어지는 자동마차를 바라보았다.
“의문. 어떻게 그게 사실임을 입증할 수 있습니까?”
못하지. 왜냐면 나는 마음을 읽었을 뿐인걸.
하지만 대충 끼워 맞출 수야 있다. 나는 내가 세기의 명탐정이라도 된 것마냥 느긋하게 걸으며 설명했다.
“메타컨베이어 벨트에 실리는 컨테이너는 크기가 세 가지로 나뉘지만 그 디자인은 다 똑같아요. 그래야 기중기로 들어 올릴 수 있으니까요.”
“긍정. 본관도 익히 아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레지스탕스는 어떻게 털 화물을 알아채고는, 절벽에서 밧줄에 매달린 채 뛰어내렸을까요? 잘못 내리면 어쩌려고.”
절벽에서 밧줄에 매달려 벨트 위에 올라탈 때 문제점. 혹시나 잘못 타면 말짱 꽝이라는 거.
그렇다고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거슬러 달리는 신개념 달리기 운동법을 할 수도 없으니, 레지스탕스에겐 목표로 된 화물을 정확하게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다.
자,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그들은 목표물을 어떻게 구별했을까? 통신병이라도 쓴 걸까? 아니면 메타컨베이어 벨트보다 빨리 달려서 온 걸까?
그럴 리가.
내 말뜻을 알아챈 대위가 입을 딱 벌렸다.
“…공조자. 저 모자가 화물 곁에서 그들에게 신호를 보낸 겁니까?”
“정확히는 어머니 쪽만. 아마 신호는 램프였겠죠.”
램프를 어떤 방법으로 폭주시키면, 저 멀리서도 잘 보이는 붉은빛이 난다. 아마 레지스탕스는 어머니에게 그 방법을 일러주었겠지. 그 빛을 신호로 삼고 습격해오도록.
진실을 알게 된 대위가 황망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램프를 잃어버렸다고….”
“잃어버린 게 아니라, 목표 화물에 램프를 올려둔 거예요. 원래는 그 곁을 지키려고 했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바람막이 쪽으로 피신한 것 같더라고요.”
램프의 온기야 빌릴 수 있지만, 바람막이는 구할 수 없으니까 말이지.
썩어도 통신병이라고, 대위의 머릿속에서 정보의 연결고리가 차곡차곡 이어졌다. 말없이 정보를 정리하던 대위는 문득 빈 구멍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레지스탕스가 우리가 있는 쪽을 습격해왔단 말입니까?”
아하하 그게 말이야.
사실 나, 그 마음을 읽고는 내 램프를 폭주시켰다. 그리고 바람막이와 살짝 벗어난 곳에 두었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레지스탕스에게 잘 보이도록 말이야.
설마 산에서 내려올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설명하기 귀찮았던 터라, 나는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밀이에요.”
“말하십시오!”
“싫은데. 제 얼굴에 금칠하기는 싫단 말이에요.”
아아, 어머니.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참 좋은데.
그냥 올려둔 램프가, 그 바람이랑 진동 속에서 계속 서 있을 리 없잖아요.
이대로 지나갔다면 필시 레지스탕스로부터 보복을 받았을 거다. 먹튀도 먹튀지만, 어머니가 군국에 밀고했을 가능성이 크니까.
나는 따지고 보면 어머니를 도운 셈이다.
열 명에 달하는 레지스탕스는 결과적으로 죽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뭐, 이해해달라고. 그건 정말로 너희 불운이야. 절창이 없었다면 성공했을지도?
조금 전까지 레지스탕스 공조자와 같이 앉아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위가 주먹을 꽉 쥐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귀하는 방금 잔금이라고 발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레지스탕스의 공조자에게 자금지원을 한 셈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지금이라도 자동마차를 타고 뒤따라 가면, 레지스탕스의 공조자 한 명을 잡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할 거예요?”
“그것이 법이고 규칙입니다. 규칙은 준수해야 합니다. 법을 어기면 처벌받고, 규칙을 어기면 제재받는 것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약속입니다.”
대위가 메뉴얼에 적인 군국제식체 글씨만큼이나 딱딱하게 말했다.
“귀하도 마찬가지. 공조자에 대한 자금지원. 그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 순간 귀하도 처벌받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어쩌고요?”
아주 잠깐 대위가 멈칫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세상 모른 채 잠든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고통과 죄책감이 얼굴에 스쳤다.
이러니까 창문 없는 방이 필요했던 거겠지.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 순백에 가까운 통신병이 오염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대위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에 익숙했다. 자기 마음에서 느껴지는 통증마저도 인내한 대위가 차갑게 말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군국은, 보호자 없는 아이를 위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업교육이랍시고 6살 때부터 일을 시키는 고아원 말이지. 잘 안다.
그리고 에이비 대위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지.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익숙하게 길을 헤치며 걸어갔다. 상념에 빠진 대위는 말없이 나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