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56)
EP.156 군국의 신데렐라
나는 성큼성큼 거리를 걸었다. 대로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초저녁이 찾아온 듯 어둡고 복잡한 거리가 나타났다.
콘크리트를 붓고 더 부어서 만든 장난감 같은 건물에 창문이 다닥다닥 나 있다. 창문으로 가끔 꼬질꼬질한 얼굴이 드러났다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사라졌다.
빨랫줄인지 뭔지 모를 줄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거미줄처럼 오가고 있다. 마치 끈을 당기기 전의 구두 같다. 누군가 저 줄을 양쪽으로 잡아당긴다면 부실한 건물이 그대로 기울며 조여질 것 같았다.
몇몇 집안에서는 고함이 들린다. 소음에 짜증 난 사람의 외침이 이어지고, 그 소리에 다른 사람이 반응한다. 벽을 타고 점차 커지기만 하는 게 저물지 않는 메아리같다. 그러다가.
찌르르르르르-.
누군가가 울린 자명종에, 다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몸을 움츠렸다.
잠을 깨우는 종은 다른 소리를 모두 잠재웠다.
아아, 반갑다. 이 소란스러움.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내 독심술에서 들리는 소음과 절규.
사람 많은 곳으로 오니까 좀 실감이 나는구나.
“이곳은 15구역. 행정구역만 존재하고 별다른 시설은 존재하지 않는, 군국으로부터 버려진 땅이에요.”
그 소란의 한가운데. 나와 대위가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낯선 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흘긋 이쪽을 바라보다가 대위의 제복을 보고는 화들짝 도망가거나 몸을 숨겼다.
조금씩 움찔거리는 대위를 향해 말했다.
“삐 대위. 제복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다들 옷만 보고도 두려워하거나…증오하고 있어요.”
“…두려움과 증오는 불법이 아닙니다.”
“하하. 그럴 수 있지만, 그래도 불필요한 마찰은 줄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사람을 헤치고 나아가, 이 15구역에 그나마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거리에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꼬질꼬질한 동전과 조각 난 연금화를 가지고 물건과 교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원래 상가로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었다. 어떤 우연한 계기로 1층의 외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드러난 벽에서 장사를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장 거리였다.
그곳에서도 조금 으슥한 골목. 나는 그곳으로 대위를 이끌었다. 대위는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나를 따라왔다.
어라. 너무 순순한 거 아니야?
“그런데 좀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골목까지 함부로 따라오고 그래도 돼요?”
대위가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본관은 군국의 대위입니다. 설마 즉결처분의 위험을 감수하고 군국의 대위를 습격하는 범죄자가 있겠습니까?”
즉결처분이라니, 무서운 소리를.
대위쯤 되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야.
“보통은 없죠. 하지만 조심해요.”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마침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의 팔목을 잡아채며 다리를 걸었다.
우당탕. 아이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일어나려는 아이의 팔을 꺾은 채로 속삭였다.
“꼬마야.”
“아잇! 놔!”
“손버릇보다도 머리가 나쁘구나. 제복 입은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안 배웠니? 배웠으면 그 곁에 있는 사람도 건들면 안 되지. 바보야?”
“내가 뭐!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인정하지 않고 계속 악을 쓰는 아이. 사람들이 흘긋 이쪽을 보며 몰려든다.
어쭈. 시선 모으는 법을 아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향해 말했다.
“안 배웠구나. 그렇다면 너는 ‘보호소’쪽은 아니겠네. 귀가 안 달렸으니 ‘패밀리’는 아니고. 아하. 마켓이구나?”
“아, 아니야!”
“크린 점장이 그렇게 가르치고 다니디? 한번 경고를 해줘야겠는걸.”
자기 조직의 우두머리 이름이 거론되자 순간 아이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영악한 아이는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꿔서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배가 고파서. 제발 용서해주세요.”
‘칫! 점장님이랑 아는 사이였다니! 큰일이야. 일단 손바닥이 닳도록 빌어야 해! 그래도 나는 어린아이니까 잘만 하면 봐줄 거야!’
아무리 군국이라도 아이는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고아원에 끌려갈 뿐이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는 다 고아라는 건가. 군국의 교육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노역자에 비하면 낫지.
“도, 돌려드릴게요. 여기….”
아이는 공손하게 내게서 훔친 것을 내밀었다. 그러나 곧 자기 손에 들린 물건의 정체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짜잔이다, 이것아.
“뭘 돌려줘? 꼬질꼬질한 손수건? 이 자식, 내 지갑은 어디에 숨기고 이걸로 넘어가려고 해!”
“어?”
아이는 나와 자기 손 아래 꼬질꼬질한 손수건을 번갈아 보며 당황했다.
“지, 지갑이었는데….”
“발뺌하는 거냐? 조금 전에 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가는 걸 똑똑히 봤는데!”
나는 즉각 아이의 멱살을 잡았고, 아이는 잔뜩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당장 안 내놔?”
“지, 진짜라고요!”
“어디서 큰 소리야? 안 되겠다. 너를 이대로 끌고 마켓 본점으로 쳐들어갈 거다. 크린 앞에 네 얼굴을 들이밀면서 따져야겠군. 아, 옆에 있는 군인도 데려가야지. 그래야 크린 놈이 위기감을 느낄 테니.”
“제, 제발! 그것만은!”
“캬하하. 어딜! 혼쭐을 나봐라! 너 같은 아이는 아주 그냥 호되게 맞아야 해!”
사악하게 미소를 짓는 내 뒤로 선 대위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대위는 내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귀하. 현재 지금 귀하의 호주머니에 있는 건 뭡니까?”
“이거요? 제 지갑이요.”
“그게 왜 거기 있습니까?”
당연한 질문을.
“제 지갑이니까 제 주머니에 있죠. 그러면 어디에 있어요?”
“주머니에서 꺼내가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이 꼬맹이를 곤경에 빠뜨리게 하려고 내뱉은 거짓말이죠. 제가 코 묻은 손의 소매치기에 당할 것 같아요?”
이제야 자기가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꼬마가 침을 탁 뱉으며 내 손을 뿌리쳤다.
“칫! 재수 옴 붙었구만!”
어디서 배운 말이야. 진짜 가서 따질까.
꼬마는 냅다 거리를 달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즉각 외쳤다.
“앗! 소매치기가 도망간다! 대위, 뭐 해요? 빨리 붙잡아요!”
“…부정. 본관은 헌병대가 아닐뿐더러. 실제로 저 소년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기에 혐의를 씌우기 어렵습니다.”
“에잉. 저 꼬맹이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 기회였는데.”
몰려든 사람들은 어느샌가 사라진 이후였다. 아이가 도망치자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대위에게 찍히는 건 두려웠던 모양이지.
나는 투덜거리며 아이의 주머니에서 빼낸 지갑을 높이 던졌다가 잡아챘다. 그대로 걸어가려던 대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곤 되물었다.
“…그건 뭡니까?”
“그 자식 지갑이요.”
“그게 왜 귀하 손에 있습니까?”
“소매치기했으니까?”
감히 내 앞에서 소매치기라니. 어림도 없지. 녀석에게 소매치기 선배로서 혹독한 가르침을 내려줘야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거리에서는 귀하가 가장 위험해보입니다만.”
“네에? 무슨 소리를. 저는 무해한 존재예요. 독 없는 뱀처럼요!”
꼬마의 지갑은 텅텅 비어있었다. 하긴, 지갑 패킷도 꽤 대중화된 요즘 소매치기 당할 사람이 없지.
그래도 내 전리품으로 삼아주마. 나는 꼬마 녀석의 지갑을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조언했다.
“어쨌든, 보세요. 방금 제복 입은 대위를 보고도 제 지갑을 노렸잖아요? 이곳은 그만큼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에요.”
“소매치기는 범죄이기는 하지만, 형량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손실액의 50배를 보상하거나, 혹은 노역하여 갚으면 됩니다.”
“맞아요. 경범죄죠. 하지만 이곳은 그런 경범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요. 가볍기 때문에 더더욱.”
이곳은 기묘한 치안의 논리가 지배하는 구역이다.
아무리 반쯤 버린 구역에다가 사람이 죽어 나가도 모르는 곳이라 해도, 사람을 마음껏 죽이는 쾌락살인마가 거리를 활보하는 건 불가능하다. 수틀리면 헌병대가 찾아와서는 싹 다 잡아가서 노역에 처넣어버리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이곳은 군국이다.
뒷골목을 지배하는 어둠의 존재? 그딴 게 존재할 리가. 만약 그만한 존재가 군국의 경계망에 들어온 순간 장성이 이 구역을 뒤엎는다.
혹 장성보다 강한 존재가 나타나면? 그러면 육장성을 포함한 군대가 쑥대밭을 만들겠지.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말이야.
강자와 약자가 확연히 갈리는 땅. 이곳에는 막후의 지배자 따위가 탄생할 수 없다. 나라의 어두운 면에 있으면 모를까. 이런 더러운 뒷골목은… 그에 걸맞는 약자들이 각자도생하는 야생.
“이곳은 잡범들의 천국. 별의별 기상천외한 상황이 일어날 거예요. 거기다… 대위 제복을 입고 있다면, 잡범 속에 숨겨진 진짜 위험한 녀석들의 표적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모퉁이를 돌면 곧장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나는 그곳으로 대위를 안내했다. 대위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걸어들어왔다.
나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 끝에 있는 고풍스러운 문을 열며 말했다.
“옷이나 갈아입죠.”
문을 들어서자 포근하고 따뜻한 냄새가 나를 반겼다. 끓어오르는 주전자에서 나는 홍차 향기가 뭉근하게 피어오른다.
사방을 가득 메운 건 돌돌 말린 각양각색의 원단.
패킷이 상용화된 이후, 다른 천을 다 제치고 새로 떠오른 연금원단이었다.
그곳에서, 단정한 정장을 입은 초로의 노인이 외눈안경 너머로 손님을 바라보았다.
“손님… 아, 휴즈 님이셨군요. 오셨습니까.”
빼빼 마른 몸이나, 그 탓에 옷이 더욱 드러나는 체형이다. 마치 옷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그를 향해 마주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스멘.”
“오랜만입니까. 후후. 이 늙은이는 나이를 너무 먹었나. 아직도 휴즈 님 옷을 지어드리던 때가 어제 같습니다.”
스멘이 잔에 홍차를 따르고는 우아하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제 집처럼 털썩 앉고는 홍차를 홀짝였다. 대위도 쭈뼛쭈뼛 내 맞은편에 앉았다.
스멘이 대위 앞에도 홍차를 내려놓았다.
“드시지요. 이 늙은이가 홍차 하나는 괜찮게 끓인답니다. 몇 안되는 재주지요.”
“수, 수용.”
옛 왕국 시절 무도회가 있으면 이럴까. 아마 비슷할 것이다. 스멘은 그때 무도회를 이끌었던 사람 중 한 명이니까.
분위기에 휩쓸린 대위는 소심하게 홍차를 홀짝였다.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빛내며 연신 혀를 적셨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여행 좀 갔다가 돌아왔거든요. 옷 한 벌씩만 맞춰줘요.”
“한 벌씩이라면. 여기 이 아리따운 숙녀분의 옷도 말입니까?”
“네.”
홍차를 아껴 먹던 대위가 곧장 손을 내저었다.
“거절. 본관은 군국의 군인으로 귀하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대위를 힐끔이며 스멘과 토론했다.
“색은 맡길게요. 가능한 자유로운 분위기로.”
“대충 정해두었습니다. 다만 손님의 기호를 무시할 수는 없지요. 자, 아가씨. 좋아하는 색이라도 있으신지요?”
“거절! 하겠습니다! 그건 뇌물입니다! 뇌물수수는 받은 사람은 물론, 준 사람마저도 노역에 처할 수 있는 중죄입니다!”
에이, 고지식하긴.
“삐 대위.”
‘본관의 명칭을 부르지 않는 건 고마우나, 삐 대위라는 명칭이 굳어지는 건 대위의 위엄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삐 대위에게 잘 보이려고 뇌물로 바치려는 것 같아요?”
쾅. 일부러 홍차가 쏟아지지 않을 정도로 책상을 내리친 내가 대위를 향해 외쳤다.
“삐 대위. 지금 장난해요? 일주일 동안은 저와 함께 있고 싶다면서요!”
“부, 부정…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만.”
“어쨌건, 짧은 휴가를 즐기려고 하든 아니면 나를 감시하려고 하든! 그 복장으로 일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내가 대위의 빳빳한 제복을 가리켰다. 사흘에 한 번씩은 꼭 세척과정을 거친 제복은 오래 썼을 게 분명한데도 여전히 말끔했다.
“최소한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변장하려는 노력은 해야죠!”
“…노, 노력 말입니까.”
“그래요! 휴가를 즐기든, 아니면 감시를 하든! 제복을 입고 하면 퍽이나 잘 되겠습니다! 아예 비밀 임무를 맡은 대위가 여기 있다고 사방팔방에 광고라도 하시죠! 제가 해드릴까요? 세상아, 보아라-! 삐 대위가 여기 있었다-!”
“멈추십시오!”
‘본관은 통신병… 수면 위로 드러나서 좋을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좋아. 거의 넘어왔다. 나는 쐐기를 박듯 더 당당하게 외쳤다.
“들키기 싫으면 평상복을 입어야지!”
“하, 하지만 본관은 군국의 군인. 제복을 입지 않으면.”
“비밀 작전 중에는 허용된다며!”
“읏. 하, 하지만 본관에겐 이미 일상복이.”
“셔츠 한 장이 일상복이야? 스멘. 이게 말이 되어요? 잘 때나 입는 셔츠를 보고 일상복이래!”
스멘이 고개를 젓고는 한탄을 내뱉었다.
“허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옷에 용도가 분명한데, 어떻게 옷 한 벌로 살 수 있습니까? 옷에 대한 모욕이자, 혹사지요. 옷에게 손과 발이 있었다면 당장 들고 일어났을 겁니다.”
“들으셨죠? 여기 있는 스멘은 과거 왕국에서도 재단사로 일했던 옷 짓기의 달인. 비록 의복 패킷의 개발 이후 주류에서 조금 밀려났지만, 절치부심하여 패킷 기술도 익혀서 시대에 따라붙은 전문가입니다! 이분의 조언마저 무시하실 건가요!”
대위는 이제 부정을 말하지도 못하고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자. 그러면 일상복이라도 입어요! 알았어요?”
“…수용.”
결국, 내 설득을 받아들인 대위는 스멘이 건넨 패킷을 받고는 피팅룸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