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57)
EP.157 군국 시민들의 일상
의복 패킷이 발명된 이후 피팅룸의 의미는 그저 의복패킷을 갈아입을 동안 시선을 가려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왕국 시절 사치의 상징이었던 피팅룸은 점점 좁아지고 어두워지는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러선 딱 사람 한 명 간신히 들어갈 크기로 변했다.
피팅룸 안에서 옷을 갈아 끼운 대위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왔다.
“…의문. 이것이 정말 일상복이 맞습니까?”
일상복치고는 제법 공들인 디자인의 옷이었다. 셔츠에다 색을 덧입혀 만든 상의에 천이 덧붙여진 주름치마는 제법 옷차림에 신경 쓴 상류층 시민 느낌이 났다.
대위는 자기 옷이 익숙지 않은지 연신 온몸을 힐끔거렸다.
“어때요. 기존에 입었던 거랑은 느낌부터 다르죠? 이게 보급품으로는 느낄 수 없는, 사제품의 맛….”
“…옷이 몸을 조이지 않습니다. 꼭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습니다.”
“네?”
저건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다고? 칭찬이라 하기에는 묘한데?
“그러니까 옷이 편하다는 거죠?”
“부정. 불편합니다. 옷이 몸을 감싸지 않으니… 뻑뻑함이… 부족해서.”
‘본관을 꽉 안아주는 감각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게 본관을 놓아버린 것 같습니다…! 불안합니다!’
그게 문제라고? 그러니까 옷이 불편하지 않아서 불편하다는 뜻?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에이비 대위.
내가 어이없어하는 거 이상으로, 스멘은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치욕스러워했다.
“살짝 타이트한 옷을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불찰, 제 불찰입니다.”
아니야. 저 대위는 타이트한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불편한 옷이랑 부자유스러운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거야. 잘못 자랐다고.
비장한 표정을 지은 스멘은 다른 의복 패킷을 가지고는 한쪽 구석에 있는 아키 아바타로 향했다.
“실수했습니다. 예전에는 직접 치수를 재며 손님의 기호나 취향을 묻곤 했습니다만. 의복 패킷이 발달한 이후 손님의 개인적인 선호를 소홀히했습니다. 아키 아바타에서 작업하면 손쉬우면서도 모두의 몸에 맞출 수 있으니까요.”
아키 아바타. 인간의 몸을 본뜬 마법적인 마네킹.
군국 7대 발명품 중 하나인 의복 패킷은, 이 아키 아바타가 존재해야 만들 수 있다. 아키 아바타에다 연금원단으로 옷을 짓고 패킷으로 만들면, 다른 생체 단말에 끼웠을 때 그 사람의 생체 단말에 입력된 아바타를 따라 그대로 옷이 지어진다.
“여기서 일정 부분 사이즈를 줄이겠습니다. 패킷을 끼웠을 때 살짝 타이트하게 붙을 겁니다.”
스멘이 아키 아바타에 대고 뚝딱뚝딱 옷을 고치고는 다시 패킷으로 되돌렸다. 새로운 패킷을 건네받은 대위는 피팅룸에 딱 들어가서 갈아끼우고 나왔다.
“아. 훨씬 편합니다!”
한층 밝게 말하는 대위의 옷은 제복과 다름없이 꽉 조여져 있었다. 나는 이마를 짚었지만, 스멘은 오히려 조이는 옷의 주인을 찾았다며 눈을 빛냈다.
스멘은 내친김에 드레스와 일상복, 그리고 잠옷까지 하나씩 건넸다. 패킷을 받아든 대위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는 자기 주머니를 뒤졌다.
“돈은 본관이 내겠습니다.”
그러나 대위가 돈을 꺼내기도 전에, 스멘은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거절했다.
“휴즈 님의 손님에게 어찌 돈을 받겠습니까. 그저 입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부정. 그렇다면 본관은 뇌물수수를 받은 셈입니다. 본관은 귀하를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금전적인 대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대위의 태도는 단호했다. 스멘은 작게 탄식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리를 더 숙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50알케만 주십시오.”
공장에서 만든 가장 기본적인 보급형 셔츠도 하나에 50알케는 한다. 직접 제작한 의복 패킷 세 장이 50알케면 거저나 다름없다.
만일 대위가 시세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알았다면 의아해했으리라. 그러나.
‘본관은 지급품과 보급품 말고는 써본 적이 없어서 시세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격이 50알케였습니까? 본관의 봉급보다 적게 느껴집니다만…?’
당연히 스멘이 후려쳐준 거지. 하지만 나는 대위가 의심조차 못 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50알케? 스멘, 못 본 사이 장사꾼 다 됐네요! 그만큼 받아서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뭣? 장사꾼? …아하. 그런 뜻이었습니까.’
아직도 그런 말 들으면 본능적으로 발끈하는구나. 그래도 스멘은 노회한 재단사였고, 옷은 물론이요 귀족의 비위도 맞춘 경력이 있는 프로다.
스멘은 여유를 잃지 않으며 내 장단에 맞춰주었다.
“이해해주십시오. 휴즈 님의 손님이라지만, 이 늙은이도 돈이 없으면 굶어 죽는 못난 사람에 불과하기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괜찮아요! 대위 월급은 이보다 훨씬 많을 거니까요!”
“그럴 형편이 되는 자에게 바가지를 씌워야지 않겠습니까. 어찌, 대위의 봉급으로도 부담스러우시다면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 명이 작당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고 했다. 물정 모르는 대위에게 시세를 속이는 데에는 두 명이면 충분했다.
사실 나 혼자여도 가능했을 것이다. 두 명도 과해.
“…확인. 지불하겠습니다.”
4레벨 기밀 정보는 알아도 시세는 모르는 통신병이라니, 이게 무슨 아이러니람.
스멘은 대위의 무지를 안타까움이 아닌 순진함으로 여기고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나를 향해 의복 패킷 하나를 건넸다.
“아, 그리고 휴즈 님. 늘 입으시던 옷입니다.”
“고마워요. 가격은 얼마죠?”
“그냥 가져가시지요.”
예상한 대답이지만 나는 모른 척 대꾸했다.
“그래도 돼요?”
스멘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구시대의 옷에 대한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휴즈 님께서 의복패킷 기술에 대해 직접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는데 이 정도는 가뿐하지요.”
“그렇다면야 뭐.”
독심술로 훔친 지식을 알려줬을 뿐인데 나를 은인 취급하다니. 큭큭. 이래서 잘 갚는 사람한테는 은혜를 입혀주는 게 편해. 마음의 빚이란 건 영원히 따라오는 법이거든.
나는 대위와는 달리 나에게 향하는 뇌물에 한해 긍정적인 편이라 공짜로 주는 옷을 거절하지 않았다. 의복패킷을 챙기는데, 스멘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일주일쯤 전인가, 아가씨께서 찾으셨습니다.”
“걔가요? 왜요?”
“저도 따로 묻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뵙지 못했다는 말만 드렸을 뿐.”
쩝. 그쪽이랑은 연관되기 싫은데. 그래. 일단 모른척하자. 정 급하면 그쪽이 먼저 연락해오겠지 뭐.
볼일을 마친 나는 스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쨌든, 고마웠어요. 이만 가볼게요.”
“살펴 가십시오.”
나는 아직도 아리송해 있는 대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금방 고친 옷임에도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살짝 조이는 옷을 입은 대위는 자기 몸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개방적인 건지, 보수적인 건지 모르겠다. 조이는 옷은 본인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기 존재감을 세상에 드러내겠다는 뜻인데 말이지.
어쨌든.
“자, 옷도 갈아입었겠다.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식사 말입니까?”
내 제안에 대위는 잠시 주위를 살폈다. 골목에 있는 시계에서 시간을 확인한 대위는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표했다.
“거절. 지금은 본관에게 허락된 식사 시간이 아닙니다.”
“식사 시간이 아니면 밥 안 먹게요?”
“…? 그것은 어떠한 의미입니까? 식사 시간에 식사하는 건 상식 아닙니까?”
뭔 소리야. 배고플 때 먹어야지.
나와 대위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서로 고개를 갸웃했다.
“삐. 혹시 밥은 정해진 시간에만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어요?”
‘통신병은 식사시간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무분별한 식사나 과식은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 몸이 둔해지거나 보급품이 모자라 추가보급을 신청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기밀입니다.”
교육이 잘 되어 있는 모양이다. 실수로라도 통신병에 관련된 정보는 발설하지 않도록 여전히 기밀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쨌건, 대충 알았다. 이런 타입의 사람은 따로 다루는 방법이 있지.
“삐, 이런 긴 여행을 한 뒤에는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든든하게 먹어줘야 한다고요.”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본관은 식사는 제 시간에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정해진 시간을 어길 필요 없습니다.”
“근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규칙도 더 나은 근무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잖아요. 배고파서 임무에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게 더 문제 아니에요?”
“조금 굶주린다고 본관이 임무에 소홀히 하는 일은 없습니다.”
대위는 당당하게 그렇게 주장했으나.
“콩 조림, 콩 스튜, 고기 콩 찜.”
“…츄릅. 읍!”
내 유도에 반사적으로 흐르는 침. 대위가 입가에 흐르는 침을 급히 닦았다.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탈 동안 찬 바람 쐬면서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한 몸이다. 배고프지 않을 턱이 없지.
골방에 박힌 자는 절대 모르는, 바깥을 나다니는 자의 굶주림이다.
“콩 소리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일 지경인데 괜찮은 거 맞아요?”
“부, 부정. 문제없습니다. 조금 침이 났을 뿐.”
“임무를 그렇게 할 겁니까? 음식 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면서 참 잘도 근무하겠습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더 열심히 일할 생각 해야지!”
“큭.”
“대답해! 긍정이야, 부정이야?”
내가 윽박지르자 대위는 고개를 수그리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그, 긍정.”
마침 시장 거리에는 식당 비슷한 게 있었다. 나는 대위를 데리고 사람이 복작거리는 노점으로 향했다.
식당 한구석에는 사람이 일자로 된 테이블에 빼곡하게 앉아있었다.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앞에 놓인 그릇에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음식을 담고 먹고 있었다. 나는 모퉁이 쪽 사람 없는 부분에 자리를 잡고는 테이블을 쾅쾅 두들겼다.
“안나, 여기 오늘의 메뉴 하나.”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쪽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몇몇은 나를 알아보고는 아는 체를 해왔다.
“휴즈?”
“뭐야. 쟤 갑자기 사라져서 죽었나 했더니만.”
“저 새끼가 뒤질 리 없잖아?”
나는 일일이 미소로 화답해주고는, 안쪽 철판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볶고 끓이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이모! 나 배고파!”
배고프다는 말을 꺼내자 주인장이 그제야 반응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생활감 넘치는 중년의 여인이었다. 이마에 두른 두건부터 소매를 걷어붙인 팔까지, 생활에 대한 전문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은 차림새.
그녀가 내 얼굴을 보고는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휴즈, 오랜만이구나! 옆에는 누구니?”
“새로 사귄 친구야.”
“네가 친구라고 말하니까 수상쩍구나. 범죄자는 아니겠지?”
“이제 슬슬 범죄자로 만들려고.”
‘?! 그럴 작정이었습니까?!’
기겁하는 대위였지만, 자기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압도된 나머지 ‘반박!’하지도 못했다. 그동안 안나는 팔을 다시 걷어붙였다.
“네가 늘 데리고 다니던 그 칙칙한 아이…. 이름이 뭐였지?”
“안톤 말하는 거야?”
“맞아, 그 아이! 그래, 안톤보다는 화사한 아가씨가 낫지! 훨씬 보기 좋잖니. 아차, 내 정신 좀 봐. 잠깐만 기다리려무나, 한 그릇 볶아줄게.”
안나는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미리 불려놓은 콩 통조림을 쏟아냈다. 새하얀 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환성이 울려 퍼졌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대위는, 황급히 시선을 떼고는 내 쪽을 보았다.
“의문. 귀하,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보는 겁니까?”
참나. 별 사소한 의문도 다 있네. 사람이 알아보는 것 정도로 의문을 가지면 어떻게 해?
“제가 여기서 살았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들이랑 안면을 터놓고 지냈겠죠. 다들 친구 백 명 정도는 있잖아요?”
“하지만….”
대위는 나와 내 동행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의 무게를 느끼며 내심 생각했다.
‘보기에는 상당한 인망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의문. 어떻게 이토록 수상쩍고 신뢰할 수 없는 잡범이 사람들의 인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뭐, 이 자식아?
“방금 그 하지만, 의 뜻은 뭐예요?”
대위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기밀입니다.”
“웃기지 말고!”
골방에 틀어박힌 채 비자발적 외톨이… 아니, 자발적 외톨이? 군국적 외톨이? 이걸 뭐라고 해야 해.
에휴, 내가 참자. 불쌍한 사람이다, 불쌍한 사람이야.
대위가 나를 향해 수상쩍은 사회 부적응자라고 말해도 돼. 잡범이라고 윽박질러도 돼.
하지만 나는 대위한테 네가 군국에서도 손꼽히는 외톨이인 거라고 말하면 안 돼. 그건 너무하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