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59)
EP.159 마술사가 돌아왔다
마술사는 행적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두에게 자신의 귀환을 드러내는 듯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미녀를 옆에 끼고, 군국의 뒷골목을 자랑하듯 활보했다. 알아차리지 못하기엔 너무,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이는 마술사의 귀환을 가장 반기지 않았던 그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면서도 곧장 감시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봉화’를 이용해 그의 후원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어둑하고 좁은 아미텐그라드의 뒷골목, 그곳에서 공허한 신호가 울려퍼졌다.
그건 모르는 이들에겐 그저 영문 모를 잡음의 집합체였으며, 아는 이들에겐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해야 하는 소리.
그를 함정에 빠뜨렸던 이들이 지레 겁을 먹고 준비한 봉화.
오직 한 존재만 기다리던 봉화가 오랜 침묵을 깨고 맹렬하게 울렸다.
마술사가 나타났다.
마술사가 나타났다.
마술사가 나타났다.
그렇게, 마술사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가 군국의 각 구역으로 퍼졌다.
그들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
이것으로써, 그들은 마술사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마술사가 그 낌새를 눈치채기 전에 알아차렸다….
라고 생각하겠지.
“흐…윽.”
신호소의 안톤은, 떨리는 손으로 흐느끼며 신호를 끝마쳤다. 파삭, 하고 신호용 보석이 형편없이 부스러졌다.
통신병이나 통신기기를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러한 신호를 보낼 때도 쌍둥이 보석을 활용해야 한다. 진짜 봉화를 쓸 것이 아니라면야.
어쨌건 쌍둥이 보석을 쓸 정도면 일반인은 아니겠지.
실제로 이 녀석은 일반인이라 하긴 어렵기도 하고.
안톤, 내 오랜 친구. 가장 앞자리에 앉았던 관객.
“해, 했어. 네가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살려 줘!”
안톤의 호소에 나는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주겠다 한 적은 없는데. 또 네 멋대로 내 행동을 곡해하고 기대하는구나, 안톤.”
딱히 죽인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안톤은 지레짐작하고는 공포에 떨었다.
왜 그럴까. 나는 정말로, 그냥 뭔가 하나 물어보러 왔을 뿐인데.
“나, 그런 기대를 받으면 조금 부담스러워. 너무 절박해서 들어줘야 할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껏 네 억지를 다 들어주었지만.”
“들어줘! 나는 결백해!”
안톤은 내게 매달리듯 호소해왔다.
“나,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네 명령대로 망을 봤는데, 헌병대가 너무 신속하게 움직였단 말이야! 거기서 연락했다간 나도 잡힐 줄 알았어!”
“거짓말하지 마, 안톤.”
“정말이야!”
“정말이라면, 이 감시소는 왜 네가 관리하고 있지? 왜 이 감시소의 주인은 너에게 이 막중한 책무를 맡겼지?”
안톤이 말을 멈추었다.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그러다 아, 하고 변명을 떠올렸다.
“아니야. 나는 너를 찾으려고, 마침 그때 그들도 너를 찾고 있었어. 네 후원자인, ‘아가씨’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의기투합하고, 그들이 나에게 지원을 해준 거야… 절대 네가 돌아올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
그러나 급조하여 만든 그의 변명에 허점이 없을 리 없다. 자기도 믿지 않는 잡소리를 들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었기에, 나는 조금 강압적인 수단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러니까, 꼬챙이를 꺼냈다는 소리다.
“안톤.”
안톤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꼬챙이를 빙글빙글 돌렸고, 그럴 때마다 안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죽일까, 안 죽일까. 그 두 개의 상념이 계속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직 그뿐이었다.
아아, 큰일났네. 딱히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만큼이나 기대를 받으면 나도 마음이 동해.
“안톤, 내 소중한 친구.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마, 말해주면. 살려줄 거야?”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야, 안톤. 하지만 나는 네가 꼭 대답을 들려줬으면 좋겠어. 이건 그, 일종의 고백씬이거든. 네가 어떤 생각으로 움직였는지는 네 행적이나 언행을 통해 대강 알지만, 그 상태에서 자기 입으로 완벽하게 펼쳐내는 건… 나름, 카타르시스가 있단 말이지.”
‘변태 자식…!’
한때 안톤은 나의 조수였고, 나의 제자였으며, 동료이기도 했다. 동시에 훌륭한 관객이었다.
그는 그렇게 되기를 바랐고,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톤은 어느 순간 나를 몰락시키고 찬탈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날 마침 갑자기 찾아온 헌병대에 의해 안톤은 바람을 이루었다.
아주 공교로운 우연. 혹은 안톤에게 주어진 기회.
하지만 내 귀환으로, 그의 짧은 꿈이 끝났다.
‘왜, 왜 자기를 배신했냐고 물을 생각이겠지. 어떻게든 둘러대자. 마술사라도 남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어!’
미안하지만, 틀렸다. 하나부터 끝까지 다.
나를 왜 배신했는지 궁금한 게 아니다.
변명을 바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너는 나를 무서워했어, 안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느릿하게 섞었다.
탁, 탁, 탁, 탁. 섞이는 카드 뭉치에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안톤의 몸이 움찔거렸다.
카드가 다 보이도록, 나는 아주 느긋하게 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두려워하면서도 경외했고, 추앙했어. 그래서 내 곁을 졸졸 따라다녔지. 나는 딱히 그럴 생각도 없는데 멋대로 치켜세우고, 배신은 언감생심 떠올리지도 못했지. 그런데.”
그는 내 유일한 수족이 되기를 바랐다. 뭔가 대단해 보이는 사람 밑에서 우쭐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했다.
참 저열한 바람이지만, 나는 그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었다. 비록 그것이 악취와 함께 몰려든 바람일지언정 들어주기 어렵진 않았으니까.
오직 나만이 들어줄 수 있었고.
안타깝게도, 그 대가는 탄탈로스 노역형으로 돌아왔지만.
탁. 셔플이 끝났다. 나는 덱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우리 겁쟁이 안톤이 어떻게 그런 각오를 하게 되었을까?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변덕에 가까운 심경 변화 덕분에 나도 한 대 먹었지 뭐야. 너 같은 겁쟁이가 그 짧은 사이, 어떤 각오를 하고 나를 배신했는지. 그게 너무 궁금해서.”
계속 겁쟁이에, 두려워한다는 말을 불어넣은 탓일까.
안톤의 마음에서 그 반발심이 고개를 들었다. 안톤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고백했다.
“…씨발! 네가 못 돌아올 줄 알았지!”
어쩌면 후회이기도, 자책이기도 한 외침.
“돌아올 줄 알았으면, 이렇게 했겠냐고! 그들은 너를 돌아오지 못할 곳에 보내겠다고 했단 말이야…!”
‘철석같이 믿었다고…! 헌병대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가 말하는데, 어떻게 안 믿겠냐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니까 응했지!’
그런 것치고는 나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지.
안일했구나, 안톤. 뒷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어.
어리석은 도박사라고 해야 할까. 이 일이 성공했을 때 얻을 성취감에 취해, 실패의 두려움을 망각했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나를 잠깐이나마 치우는 데에 성공했네. 축하해. 어때, 잠깐의 꿈은 만족스러웠어?”
그들, 안톤에게 접근하여 나에 대한 배신을 종용한 이들.
안톤이 그들의 진정한 정체를 모르기에, 나도 그들을 모른다. 나는 어디까지나 생각과 기억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내가 돌아왔을 때는 어떻게 하려고 했니? 아, 별생각 안 했나?”
하지만 달리 말하면 안톤의 생각은 전부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히 생각을 읽은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연극조로 말했다.
“행운에 맡겼구나. 하긴, 너는 언제나 내가 카드게임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지. 내가 승부수를 던질 때마다 가슴을 졸이면서도, 성공하면 누구보다 환호했어. 실로 괜찮은 관객이었지.”
마음을 정확하게 찌르자, 안톤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자기 마음속의 외침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으니. 안톤은 내 말을 외면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 너는 내가 되고 싶었구나. 도박수를 마음껏 던져서, 성공해내고, 그 결과 나를 몰아낸 뒤 내 빈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구나….”
하지만, 나는 도박사가 아니다.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그렇기에 안톤은 진짜 도박사의 마음가짐을 모른다.
어디, 맛이나 보여주지.
“자, 안톤. 아주 간단한 게임을 하자. 여기, 카드 보이지?”
나는 그의 앞에 순서대로 카드를 내보였다.
스페이드, 하트, 클로버, 그리고 다이아몬드. 각 문양이 두 개씩 그려진 트럼프 카드였다. 나는 그것을 대강 섞은 뒤, 뒤집어서 책상 위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대강 무슨 일이 있을지 예감한 안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문양 중 하나만 골라, 안톤.”
‘하나를 골라, 그걸 맞추면 살려주겠다고? 네 개 중에 하나를?’
역시 훌륭한 관객이야.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다 예상해주니까.
“아, 안 돼. 그건. 제발.”
어허, 어딜.
도박사라면 자기 목숨 정도는 판돈에 올릴 수 있어야 하잖아?
나? 물론, 나는 아니다. 생각을 읽는 나는 언제나 이기는 싸움만 하기에. 내 목숨은 판돈에 올라간 적 없다.
그렇기에, 안톤에게 진짜의 마음가짐을 알려줘야지.
“과연 너는, 너 자신을 살릴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을까?”
카드는 놓였다. 이제 남은 건 선택뿐.
안톤의 앞에 네 장의 카드가 있다. 그는 안쪽을 훔쳐볼 수 없기에, 오직 행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말도 안 돼. 마술사라면, 내가 고른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과연 그럴까?
그는 과연 진정 도박사가 될 수 있을까?
‘제발… 마술사에게도 인간의 마음이 있기를…!’
“…하, 하트.”
나는 안톤의 결정을 다시 확인했다.
“하트? 확실하지?”
“그, 그래.”
“좋아. 잘됐네. 이제 여기서 하나 골라. 그 카드가 하트면.”
이제 그에게 남은 건, 그의 목숨을 결정할 선택.
중요한 선택은 시간을 오래 끌기 마련이다. 나는 책상에 걸터앉아 카드를 섞으며 차분히 결정을 기다렸다.
무저갱에서 만든 카드뭉치. 정들었지만 이제 슬슬 헤어질 때인가.
좋아. 이 덱은 소모품으로 두고, 내 원래 덱을 갖고 다니자. 마술 도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내가 잡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안톤은 식은땀을 흘리며, 내 눈치를 흘긋 보다가, 살짝 고개를 낮추어 카드를 보았다. 그렇게 하면 아래쪽을 엿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아….’
그러나 뒤집힌 카드는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엿보는 것을 포기한 안톤은 눈을 꼭 감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른손에서 가장 먼 곳의 카드를 손으로 짚었다.
가장 멀리, 그 약간의 수고가 행운을 가져올 것처럼.
나는 다시 물었다.
“그거 고른 거, 맞아?”
“그, 그래. 너, 수작 부리지 마. 내가 고른 건 이거야. 바꿔치기할 생각은 꿈에도….”
안톤이 끄덕거렸다. 혹여나 내가 뒤집힌 카드에 무슨 수작이라도 부릴까 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아아, 그런 생각은 하지 마.
진짜 수작 부리고 싶어진다고.
“그래.”
꼬챙이를 빙글 돌려, 안톤이 짚은 카드를 꿰뚫었다. 그 과정에서 안톤의 손이 그 위를 덮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팍, 하고 날카로운 꼬챙이가 나무 책상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뒤이어 격렬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나는 안톤의 어깨를 짚으면서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쉬잇, 안톤. 진정해.”
“흐, 흐윽. 흑.”
흐느끼는 안톤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며, 나는 빈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건 내가 건네는 배려야. 나는 마술사잖아. 그런 내가 카드에 장난질을 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
“내, 내 손이….”
“네 걱정을 없애주기 위해서, 특별히 이 카드에 장난치지 못하도록 고정해뒀어. 자, 이제 너는 온전히 너에게 주어진 운명만 확인하면 돼.”
그가 온전히 카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나는 여전히 거리를 유지한 채 그를 재촉했다.
안톤은 피가 흐르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뒤집었다.
‘씨발…. 잘못 생각했어…. 저딴 괴물에게, 인간의 심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카드가 붉다. 그게 하트의 붉은색인지, 아니면 안톤의 피 색인지.
안톤은 흘긋 보이는 붉은색에도 기뻐하지 못하고는, 덜덜 떨면서 피 흘리는 손바닥을 뒤집었다.
지금, 그에게 손바닥 뒤집기는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날카로운 꼬챙이가 한가운데 꿰뚫고, 그곳에서 빨간 핏물이 배어나오는, 피의 무게를 얹은 그 잔혹한 카드의 문양은.
하트 2.
안톤이 눈을 끔뻑였다. 그는 처음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카드를 보다가, 나를 한 번 돌아보다가, 고통도 잊은 채 다른 쪽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씨발, 살았다! 살았다고!”
얼마나 신이 났는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승리했다는 희열에 가득 찬 채 그는 팔을 휘저었다.
“네가 졌어, 마술사!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해!”
그 말대로다. 안톤은 게임에서 이겼으니, 나는 그를 죽이지 못한다.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이런. 운이 좋네. 행운의 여신이 네게 미소를 짓는 모양이구나.”
아니, 애초에.
그는 죽기를 바라지 않았으니, 나 역시 그를 죽일 수 없었지.
“내기에 진 패배자는 이만 물러가야겠지. 아, 그 전에. 내 물건 좀 돌려줘.”
“빨리, 당장 꺼져!”
안톤은 멀쩡한 손으로 책상 위에 늘어져 있던 다른 카드를 단번에 회수했다. 나름 내 뒤를 쫓아다니며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카드를 잡는 손길에 거침이 없었다.
“어?”
그러나.
뒤집힌 다른 카드를 회수하려던 안톤은, 문득 카드의 문양을 발견하고는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하트…?”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클로버, 하트. 분명 하나씩 들어있었는….’
분명 그랬다. 최소한 내가 그에게 보여주었을 때는.
그러나 안톤의 손 안에 있는 카드는.
하트 3.
하트 4.
하트 5.
나란히 하트였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안톤은 놀라지도 못했다. 그저, 넋 나간 얼굴로 눈앞에 놓인 카드를 내려보았을 뿐.
“와. 내가 뒤집은 카드가 다 하트로 바뀌었네! 이런 행운까지 있다니! 너는 정말 올해 들어서 최고로 운이 좋은 사람이 틀림없어!”
“어, 떻게.”
“운이 좋은 사람은 뭘 해도 된다니까!”
‘뒤집은 이후 마술사는 손대지 않았어. 그러면, 언제부터. 나는, 분명 뒤집은 이후에, 하트를 고르겠다 했는.’
생각이 멈춘다. 한없이 헝클어진다. 앞과 뒤가 뒤죽박죽으로 섞이며, 온갖 변형과 어그러짐 끝에 감정의 이름은, 공포와 경외.
‘처음부터, 내가 하트를 고르리라고? 그, 럴 리가.’
“축하해, 안톤. 너는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노력한 끝에 목숨을 구했어. 행운의 여신이 너에게 미소를 지어줬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친 표정은 후회였다. 두려움의 끝에, 결국은 그것을 넘어선 신비를 갈구하는 눈.
“어떻게, 한 거야…?”
“안톤, 트릭을 알고 싶어? 정말로?”
내 말에, 정신을 차린 안톤은 화들짝 고개를 저었다. 그의 이빨이 딱딱 떨렸다.
‘안 돼! 마술사가 트릭을 알려주는 상대는 죽은 사람이나, 곧 죽을 사람뿐이야!’
그는 신비를 경외했다. 하지만 신비를 파헤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추앙하고 받들었을 뿐이다.
데리고 다니면서 오히려 내가 그를 망친 거구나. 신비 그 자체를 추앙하는 그에게, 내가 여전히 신비롭게 놔두었어야 했는데.
너무 곁에 두고 다녔다. 가까이 지낼수록 그의 마음속엔 불만만이 커져갔다.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내 행동으로 어떻게 변할지, 그건 모른다.
그의 진정한 바람을 모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바람대로 나를 대신하게 둘 수는 없으니, 다른 바람이라도 이루어주겠다고 한 건데.
역시, 작은 바람은 큰 바람에 먹히고 마는구나.
어쨌건.
“이것도 줘야지, 안톤.”
“어?”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꽂힌 꼬챙이를 쥐었다. 그리고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쑥 뽑았다.
찌를 때와 비슷한, 혹은 약간 더 큰 비명이 흘러나왔다.
“끄아아아악! 크흡, 크악, 아아악!”
“틀렸어. 고마워, 라고 해야지. 원래 몸에 박힌 것을 뽑아낼 때는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야 덜 아픈 법이거든. 새로 나기 전의 이빨처럼 말이야.”
피 묻은 손을 움켜쥐며 땅을 뒹구는 안톤. 오늘 약간의 피는 잃었지만, 그래도 근심 하나는 덜었다. 이제 내가 찾아와서 보복할 일은 없을 테니.
이제부터의 안톤의 삶은, 안톤의 바람은 모두 안톤의 몫이다.
나는 그를 뒤로 한 채 가볍게 문을 나서며 말했다.
“잘 살아가, 안톤. 네 삶이 계속되길.”
“끄흐, 끄흐윽!”
‘미친, 자식…!’
극찬에 가까운 인사에,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들며 관객이었던 이에게 인사했다.
“아하하. 고마워. 나도 만수무강할게.”
쿵. 문이 닫혔다. 역할을 끝낸 감시소에서는 피에 젖은 흐느낌만이 새어나왔다.
어두운 밤, 피로에 찌든 사람들이 가득한 군국의 뒷골목. 대부분이 1레벨 혹은 0레벨에 불과한 15구역 거주구역.
아련한 달빛과, 그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야간등이 비추는 무대를 걸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경고를 보냈으니 반응이 올 것이다. 접근하는 녀석들의 생각을 읽으며 차근차근 걸어올라가면 된다.
물론, 그 끝이 너무나도 커다란 존재일 경우에는 나도 도망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지만 말이야.
아아, 이래서.
사람은 분수에 맞게 놀아야 하는데.
삶은 아련한 불꽃, 지치고 힘들어 숨을 죽일지라도, 언제나 다른 것을 삼켜 타오를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다른 이들이 무엇을 삼키려는지는 모르나, 나의 양식은 바람이다. 옮겨붙을 바람만 있다면 나는 영속할 수 있다.
문득, 내 집에서 잠자고 있을 대위가 떠올랐다.
삶을 되찾게 된 대위는, 어떤 바람을 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