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6)
EP.16 인간의 적은 자명종이 아니라 아침
군국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세상 모든 분야를 연구하는 군국 연구소. 인간의 몸을 연구하는 인체공학자들과 재료의 특성을 탐구하는 재료공학자들이 같은 건물을 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실수로 서로의 방에 잘못 들어가고는 하는데, 퇴근할 때까지 자기가 잘못된 방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정말, 별로 재미도 없는 우스갯소리이다.
찌르르르르르-.
고통스러울 정도의 소음이 내 고막을 때렸다. 매일 아침 이렇게 혹사당하는 데도 멀쩡한 걸 보면 내 고막이 생각보다 일을 잘해주고 있거나, 아니면 군국 과학자들이 제대로 만들었다는 뜻이겠지.
휘어지되 부러지지는 않도록. 군국 재료공학자들의 모토. 저 소리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으으, 진짜 싫어….”
왜? 왜 나는 매일 아침을 저 자명종이 맞이해줘야 해? 어째서 나는 괴로움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해?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나는 딱딱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외쳤다.
“제발 누가 저 빌어먹을 자명종 좀 꺼줘!”
“멍!”
“어?”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누가?
멍청하게 한 마디를 흘리고 고개를 들자, 내 눈에 보인 건 하늘을 나는 아지의 모습이었다. 아지는 단숨에 뛰어올라, 벽을 한 번 박차고 솟구친 뒤. 앞발을 들어 시끄럽게 우는 자명종을 후려쳤다.
와장창!
내가 언제 자명종을 강철로 된 매미에 비유한 적이 있던가.
매일 아침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나를 괴롭히던 강철 매미는, 네발 달린 짐승의 발 아래 짓이겨졌다. 내장과 닮은 톱니바퀴가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소리를 만들어내는 얇고 넓적한 철판이 최후의 단말마를 내지르며 찌그러졌다.
자명종이 납작해지다 못해 벽에 반쯤 틀어박혔다. 저걸 해체하려면 돌벽을 파내야 할 것이다.
허공으로 톱니바퀴와 철판 잔해들이 어지러이 흩어진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에게 아지가 다가왔다. 칭찬을 받고 싶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뭐, 칭찬이라도 해 줘?”
“멍! 멍멍!”
“그래, 잘했다. 잘하기는 했어. 매일 아침마다 나를 괴롭히는 사악한 자명종을 끝장내줬구나…. 아예 고칠 수도 없게….”
주요 부품이 아예 박살 나버렸다. 탄탈로스 안에 대장간이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 살리기는 불가능할 터.
나는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아지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그거 아니, 아지야? 사실 나를 괴롭히는 건 아침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자명종이 아니야. 자명종은 첨병일 뿐, 진정한 흑막은 그 자명종을 울게 만드는 아침 그 자체란다.”
“멍?”
“그래. 모든 흑막은 바로 아침이야. 간신히 끝낸 하루를 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빌어먹을 아침. 너의 고결한 행동은 고맙지만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나를 보고, 아지가 처음으로 한 말은.
“바보?”
“…?”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입을 떡 벌리고 가만히 있는데 아지가 천장을 보고는 말했다.
“해, 안 보여. 여기 어두워. 아침, 안 와!”
“아니. 해가 안 떠도 아침은 아침이지.”
“멍! 안 보여, 아침 아니야!”
해가 안 보이니 아침이 없다니. 이걸 실증주의적인 표현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개소리라고 해야 할지.
“졸려우면, 자! 나, 자는 거 좋아!”
“그래. 나도 한없이 자고만 싶다. 그런데 일이 쌓여있으니 어쩔 수 없잖아.”
“멍? 일?”
“요리나 청소 같은 거 말이야. 내가 아침에 안 일어나면 네 아침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는데?”
그러자 아지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침대 위로 뛰어올라서는 내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겼다. 몸이 침대 밖으로 속절없이 끌려나온다.
“안 돼! 일어나! 밥! 바-압!”
“알았어! 챙겨줄 테니까 놔! 기다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아지를 뒤로 하고 채비를 갖추었다. 부서진 자명종을 발로 한구석에 대강 쓸어버리고는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하아. 자명종이 부서졌으니 내일부터는 어떻게 일어나지.”
내가 그토록 고통받는 동안에도 자명종을 깨부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그게 없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햇빛도 수탉도 없는 무저갱이다. 세상과 격리되어 시간이 의미가 없는 곳. 아침이 마중을 나오지 않으니 이쪽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아챌 도리가 없다. 그나마 신세 지고 있던 자명종은 웬 개가 박살을 냈고.
“알람 비슷한 거 없나….”
아지의 이마를 한 대 툭 치려다, 단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그래도 나를 생각해줘서 한 일인데 뭐. 솔직히 자명종 깨부술 때 속이 시원하기는 했다.
한 대 툭 치려던 손을, 방향을 바꿔 턱을 간질였다. 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손 위에 무게를 얹었다.
천진난만하기는…. 근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이니까 가능한 거겠지.
이게 애완동물의 장점이겠지만.
입고 있던 의복 패킷을 역소환하고 새로운 패킷을 꺼냈다. 역소환한 패킷은 세탁실에서 빨거나, 아니면 물에 담근 뒤 닦아내면 깨끗하게 다시 쓸 수 있다. 전자는 새 옷처럼 깨끗하지지만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 말리는 데 시간이 좀 들지만 어디서든 가능하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아지의 턱에서 손을 뗐다. 마치 끈끈이라도 붙은 듯, 아지의 얼굴이 잠깐 내 손을 따라오다가 멈췄다.
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왜 그만하냐는 듯 눈으로 묻는다. 더 하라는 투로 내 손을 향해 턱을 쳐들고 있다. 나를 쓰다듬는 기계 공 던지는 기계 아니면 밥하는 기계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에고. 내 팔자야. 내가 왜 개 식모 역할이나 하고 있담.
그래도 어쩌겠어. 키우는 개인데. 밥은 줘야지.
“멍?”
“가자. 밥 먹으러.”
“멍!”
세상에서 가장 착한 개가 있다면, 그건 밥 먹으러 가는 아지일 것이다. 하루에 세 번만 착해지는 개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어제 해놓은 콩스튜를 데워서 아침으로 먹고, 오후에는 다른 음식을 해줘야지. 오랜만에 고기나 요리해볼까. 저번에는 환심을 얻기 위해 고기를 구웠지만, 사실 고기라는 게 구이보다는 다르게 먹었을 때 더 만족감이 큰 재료….
어라.
왜 냄비가 비어있지? 분명 어제 남은 음식이 있었는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가증스럽게도, 아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정한다. 아지는 단 한 순간도 가장 착한 개인 적이 없다. 힘만 무식하게 센 똥개는 세상에 풀어놔서는 안 될 재앙이다.
“야! 너 어제 해놓은 스튜 몰래 먹었지!”
“멍멍?! 멍!”
“시치미 떼지 마! 너 아니면 먹을 사람도 없어!”
“멍!”
“오늘 아침은 압수다아앗!”
“아우우우우우!”
굶주린 개의 울음소리가 길게 울렸다.
“오늘 수업은 은혜도 모르는 짐승 다루는 법에 대해서입니다!”
“멍!”
교육실 뒤쪽에 엎드려있던 아지는 내 말에 반항하듯이 크게 짖었다. 내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자 콧방귀를 뀌더니 픽 하고 고개를 돌렸다.
흥. 그런다고 내가 눈 하나 깜빡할 줄 알고.
“본디 짐승은 은혜도 모르고 지성도 없기 때문에 뭘 해줄 필요 없습니다. 손해에요! 알아서 살라고 하세요!”
“멍! 멍! 으르르!”
나와 아지의 신경전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회귀자가 의무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또 별 시답잖은 일이겠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물어보는 척이라도 할까.’
들리는 생각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 나의 이 애통함을 터놓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가슴을 쾅쾅 두들기며 말했다.
“저 똥개가 전날 남겨놓은 음식을 다 먹었다고요!”
“왈! 으르, 멍!”
아지가 반항하듯 짖었다.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 썼지만 밖으로 나오는 건 짐승의 울부짖음이니, 이게 정녕 개소리이리라.
으으, 정말. 사고방식이 개만 아니었어도 생각을 낱낱이 읽어서 피할 수 없는 물증을 들이대는 건데. 이럴 때는 저 녀석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게 한이다.
그러나 회귀자는 이 사안의 중대성을 깨닫지 못한 듯했다.
“개가 음식 좀 먹으면 어때서?”
“음식, 좀? 좀 이라니요?”
나는 이마를 짚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모르는 모양인데, 셰이 교육생. 인간과 개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잔반으로 녀석들의 끼니를 때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개가 요구하는 음식량도 그리 많지 않고요. 하지만!”
나는 손가락으로 식충이를 가리키며 소리 높여 외쳤다.
“저건 내가 먹는 음식을 그대로 먹을뿐더러, 두 배나 처먹습니다! 심지어 저와 겸상까지 한다는 말입니다!”
“좀 먹이면 되잖아. 그거 가지고 쪼잔하게.”
“쪼잔? 쪼오잔?”
자기는 기연이다 뭐다 다 독식해서 재산도 많고 아이템도 뒤지게 많으니까 그런 말 나오는 거지! 나처럼 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에게 그런 말이 나와?!
심지어 아지에게 볼 일은 그쪽이 더 많으면서! 아지도 종말의 한 조각이라며! 그러면 회귀자인 네가 책임지고 관리해야지! 회귀라는 큰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큰 책임도 지라는 말이야!
라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생각을 읽는다는 사실을 밝힐 수가 없으니, 내 입으로 나온 건 투정일 뿐이었다.
“그러면 댁이 먹이던가!”
“아, 미안. 그건 불가능해.”
‘만한전석에서 나온 음식을 건네보았더니…. 영 먹지 않던걸. 가짓수는 많지만 하나하나의 양이 적어서, 아지가 먹을 양도 부족하고.’
회귀자의 기억 속에 떠오른 건 만한전석. 매 끼니마다 상다리 부러지도록 음식이 가득 차는 한 상이었다.
수많은 접시에 젓가락질 한 번이면 없어질 음식들이 담겨 있다. 한 끼 식사, 한정된 뱃속에 최대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설계된 거다. 허기마저도 자원으로 만들어버리는 사치스러움의 극치.
다만, 누가 만한전석 아니랄까 봐 맵고 짠 음식 투성이다. 비싼 향신료를 그따위로 처박으면 아지가 못 먹을만하지. 너무 귀해서 개가 못 먹으니 확실히 개밥은 아닌 모양이구나.
나는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개랑 겸상한다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손 뗍니다. 아지랑 아는 척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만 수업 끝.”
[잠깐. 끝이라고?]“네.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건 제 억울함을 들어줬으면 해서였거든요. 자, 오늘은 휴강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이 귀중한 순간을 즐기세요.”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그것은 바로 휴강. 놀라운 사실은 공급자인 교사마저도 휴강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휴강이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절대선이 아닐까.
나는 절대선을 발휘하고는 곧장 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