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60)
EP.160 군국의 아침
5분은 분명 짧은 시간이나, 그 찰나마저도 경제 논리에 따른다. 한시가 급한 이의 5분은 그야말로 천금 같으나, 여유가 넘치는 이들에겐 뚝 떼어 주어도 아깝지 않으니.
지금, 나에게 있어 5분은 천금과 같았다.
내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찌르, 툭.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꺼졌다. 어떤 천사가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으로 소중한 5분을 얻었다. 아침에 눈 뜨기 전 5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법.
“일어나십시오…. 3회 시도. 더 이상의 시도는 무의미하리라 판단. 다음 페이즈로 이행하겠습니다.”
무언가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지만, 그런 다소곳한 터치로는 내 단잠을 방해할 수 없다. 나는 간악한 침략자로부터 이 소중한 5분을 더 지켜낼 것이다.
나는 이불을 끌어올리며 대꾸했다.
“아웅, 5분만.”
“…3회 시도. 더 이상의 시도는 무의미하리라고 판단. 다음 페이즈로 이행하겠습니다.”
어라. 이 다음이 뭐였더라.
잠깐. 혹시.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앵!”
“꺄아아아악!”
어지간한 자명종 소리보다도 큰 외침이 내 귓가에서 들려왔다. 푹신한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나는, 이불을 저 멀리 던져버리며 냉큼 일어났다.
“오늘도? 오늘도 이 패턴이야! 어제는 내가 왜앵 해도 안 일어나더니!”
억울해. 왜 나만 당해? 나도 이렇게 깨우고 싶은데 왜 너는 안 일어나는데!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내가 어깨 두드려서 깨우라고 했죠? 아침부터 이게 뭔 난리야!”
벌써 제복을 차려입은 대위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미 시도했습니다.”
“시도는 무슨! 내가 안 깰 리가 없잖아!”
“본관은 거짓 보고를 하지 않습니다. 또, 귀하는 기상 시각보다 10분이나 늦게 일어났으면서 왜 이리 당당합니까? 태만입니다.”
“10분?! 제가 10분 늦게 일어났다고요?”
“긍정. 10분 늦잠을 자는 것은 필시 태만 행위. 그러니….”
“아, 뭐야. 얼마 안 지났네. 조금 더 있다가 깨워요. 하아암….”
내가 다시 침대에 누우려는데, 대위가 직접 내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일어나십시오! 태만이 몸에 배었습니까? 어떻게 여기서 더 잔다는 말입니까!”
“아, 나 피곤해요. 어젯밤에 친구 만나고 와서 잠을 통 못 잤단 말이야.”
“밤중에 몰래 나가기까지 했습니까? 귀하의 언행에선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뭐래. 자기도 어제 취침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잠들어놓고선.”
“부…부정! 아니, 사실 부정이 아니라 의지 부정! 본관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불가항력입니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면서도 대위는 내가 자도록 놔두지 않았다.
아, 이래서 동거인이 있으면 불편하다니까. 집은 혼자 쓰는 게 최고다.
“오늘은 그렇게 잠들지 않습니다. 본관은 여독을 풀었고, 충분한 수면도 취했습니다. 어제와 같은 추태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 그러세요.”
“긍정! 어제의 그 일은 불의의 일격이었습니다! 오늘은 다르….”
그렇게 외치던 대위는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 의문. 어제 본관은 욕실 안에서 잠들었을 텐데, 어떻게….”
“자. 아침을 먹으러 가볼까요! 미안하지만 오늘 아침도 안나가 요리한 콩입니다!”
벌떡 일어난 내가 느닷없이 문을 박차며 나서자, 대위는 순진하게도 의문을 뒤로 한 채 쪼르르 따라왔다.
“의문. 어째서 그게 미안한 일입니까? 그녀가 만든 콩 요리는 충분히… 아니, 대단히 맛있었습니다만.”
“콩 볶음을 또 먹을 수 있겠어요?”
“긍정. 하루 종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와, 사람이 개보다 음식을 덜 가리네.
오늘도 안나의 콩 볶음을 한입 가득 담은 대위는 눈을 반짝이며 맛을 만끽했다.
“……!”
‘맛있습니다…! 어제와는 또 다른 맛! 분명 외견은 똑같은데…!’
“맛있니? 오늘은 특별히 힘을 좀 써봤단다. 많이 먹으렴.”
안나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대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잡탕볶음을 입에 넣었다.
‘이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하면…! 큭, 불가능. 이 정도 되는 레시피라면 분명 기밀 정보에 해당할 터! 본관은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하긴 무슨.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높은 열과 충분한 기름.
아니, 잠깐만. 뭐가 하나 더 섞였는데. 이 아른거리며 잡내를 잡아주는 향기는 설마.
와. 이걸?
“안나. 그걸 여기다 뿌리면 어떻게 해!”
내가 책망하며 말했으나 안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조금밖에 안 뿌렸단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담길 만큼 살짝만 더했을 뿐이야. 내가 받을 10%의 수수료도 쓰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렴.”
“아주 자기 것처럼 막 쓰는구만.”
“저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깝니?”
“입에 금가루를 넣어줄 생각은 아니었어.”
내가 투덜거리자, 안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옆에 놓인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는 대위의 앞에 수프를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은 잠깐 다른 구역에 들렀다 올 거란다. 간이 식당은 오늘 휴점이니, 점심은 다른 곳에서 먹도록 하렴.”
“…?! 비상! 휴점 사실이 사실입니까?”
“후훗. 휴즈가 더 맛있는 집을 안내해줄 테니까 걱정 마려무나. 이 녀석은 발이 넓으니, 충분히 맛있는 곳을 알고 있을 거야.”
“부정….”
‘이보다 더 맛있는 콩 통조림 요리가 있다니, 불가능합니다!’
왜 콩에 한정 짓는 거야. 다른 요리를 생각한 적은 없어?
풀 죽은 대위를 보는 안나의 미소는 딸을 보는 어머니의 그것이었다. 안나는 모성애가 가득 담긴 미소로 말했다.
“할 수 있다면 저녁까지는 기다려보렴. 그때는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으니. 휴즈. 잘 돌봐주고 있어. 나는 네가 부탁한 일을 하고 올게.”
내가 맡겨 놓은 향신료를 팔고 온다는 뜻이다. 나는 투덜거렸다.
“뭘 돌봐. 혼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힘이 되어주라고 말하잖니. 혼자서는 씩씩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함께라면 잠시 어리광을 부려도 돼. 내 생각에, 너희에겐 그게 필요해 보인단다.”
“왜 자꾸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거야. 쟤 걱정할 바에는 내 걱정부터 하지.”
대위가 지금 뒷골목 물정을 몰라서 이러고 있지만, 그래도 제복 입고 부대로 가면 먼저 경례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통신병이라는 사실을 알면 무시할지도 모르지만, 본신일 때는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까 그냥 대위인 줄 알겠지.
“…돌아왔을 때는 갖은 재료로 더 맛있는 것을 해줄 테니, 너무 맛있는 것을 먹이진 말고.”
안나는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간이 식당을 떠났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13구역에 있는 시장. 거기서 뿌리는 금가루를 진짜 금으로 바꿔오겠지. 겸사겸사 야채도 사 오고, 돈이 남으면 추가금을 내야만 살 수 있는 1레벨 사치품, 생고기를 사 올지도 모른다.
흐음. 꽤 기대되네. 그러면 오늘은 간단하게 투어만 해볼까.
“삐. 다 먹었어요?”
그릇을 다 비운 대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긍정. 대단히 뛰어난 솜씨입니다. 본관이 먹었던 최고의 식사에 비견될 정도입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곤 하지만 콩 통조림 잡탕볶음을 가지고 최고의 식사라니. 군국의 군인 복지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안나가 돌아와서 선보일 요리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기대되는걸. 충분한 자금과 최고급 향신료로 조율한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의문. 안나는 누구입니까? 급양병 중에서도 저 정도 요리를 선보이는 이는 없었습니다. 전직 전설의 급양병이기라도 했습니까?”
“급양병에 전설이 어딨어요? 그냥 평범한 0레벨 시민이에요.”
“…0레벨, 말입니까? 그녀가?”
대위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찔러 들어갔다.
“방금 그 생각했죠? 고작 0레벨이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니! 억울해, 라고!”
“부…!”
부정을 말하려던 대위는, 곧 말을 삼키고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을 부정. 그럴지도 모릅니다. 본관은 저레벨 시민은 전부 고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저레벨 시민이 좀 고되고 비참하긴 한데, 통신병 네가 이상한 거야. 너에 비하면 어지간한 저레벨 시민도 상대적으로 귀족이 될 정도니까.
…아니다. 그래도 대위는 보훈처에 봉급이 꾸준히 저금되기는 할 테니. 그 돈이 어떻게 사라질지는 몰라도 0레벨보다는 낫겠지.
“그래도 행정상 반쯤 버려진 것으로 취급되는 0레벨 시민의 생활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군요. 군 당국도 이를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본관이 군국에 충성하는 게,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어라. 사고방식이 이상하다.
보통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0레벨도 이만한 사치와 자유를 누리는데, 왜 본관, 아니, 나는 3레벨이면서 이 꼴입니까? 불만! 반항! 파업! 혁명! 오늘부터 임무를 정지하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는데. 도리어 군국에 충성한 게 잘한 일이라고 뿌듯해한다고?
생각 이상이네. 순수한 건지, 아니면 굳센 건지. 이 정도면 통신병이라는 걸 만들어낸 군국이 대단할 지경이다.
“저는 긍정하지 못하겠네요. 과연 그럴까요? 사람은 더불어 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여유 없는 이들의 문제는, 그들에게 고난이 닥쳤을 때 발생하지요.”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거주구역 곳곳에서 자명종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젯밤과는 달리 그 누구도 이러한 소음에 불평하지 않았다.
일어나지 못해 지각이라도 한다면, 노역 일자가 늘어날 수도 있으므로.
일반 시민들에게 자명종의 존재란 그야말로 애증. 아침의 단잠을 고통스럽게 몰아내면서도, 소중한 일상을 지켜주는 신호였다.
내쫓기듯 일어난 시민 대부분은 아침도 먹지 않고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시체처럼 거리를 걸었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대부분 비슷했고, 그래서 사람들의 행렬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몇몇 청년은 복도에 서서 문을 거세게 두들겼다.
“야! 필립! 일어나!”
“죽은 건 아니지? 젠장, 피곤해 보이던데, 어제 일찍 보낼걸.”
청년들이 후회하는 동안, 굳게 닫힌 문 안쪽에서는 날카로운 자명종 소리가 여전히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대위가 물었다.
“저들은 왜 타인의 집을 두드리는 것입니까?”
“혹여나 자명종 소리를 듣고도 잠에서 깨지 못할까 봐, 서로 깨워주기로 한 거예요. 지각이라도 했다간 그날 노역이 무효가 될 수도 있잖아요.”
이 도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협동심이 발휘된 거지. 필요에 의한 연합이다.
그러나 자명종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는 바른 생활 대위는 이에 공감하지 못했다.
“의문. 어째서 잠에서 깨는 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제시간에 잠들고 제시간에 일어나면 되는 문제입니다만.”
“사람을 다 당신처럼 생각하지 마요. 어젯밤 저처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게 잠든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그건 귀하가 불량하여 생긴 일이잖습니까!”
대위가 꽤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에, 나는 한번 그녀와 같이 이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대로를 터덜터덜 걷던 사람들이 몇 그룹으로 나뉘었다.
털털거리며 다가온 커다란 자동마차에 짐처럼 빼곡히 올라타거나.
중심가에 있는 커다란 건물 앞에 도열하거나.
아니면 커다란 창고처럼 보이는 공장 안으로 삼켜지듯 들어가거나.
“일부는 공장에, 일부는 물류창고에, 일부는 기착지에, 일부는 공병대나 보급대에… 그날의 노역을 하러 가지요.”
농사지을 땅도 없는 군국의 하층민들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어리뿐. 따라서 그들이 할 일 역시 몸으로 때우는 종류가 전부.
일반 서민들이 버는 돈 대부분이 노역장에서 나오며, 그들은 노역으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산다. 당연히 그 봉급은 전부 군국에서 나오며, 군국은 노역장에서 나온 제품을 거두어간다.
사실상 노역자를 쓰는 곳은 다 군국의 관리 아래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 정도는 본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역의 종류나 강도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죠? 어떤 노역이 주로 선호되는지도.”
“…긍정.”
“크크. 대위면서 그것도 모르네.”
대위는 자존심 상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대위가 더 삐지기 전에 제안했다.
“말 나온 김에, 오늘은 노동 체험이나 갈까요?”
“그게 체험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었습니까?”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 다 잘 이야기하면 뚫리게 되어있어요.”
“…경고. 귀하의 그 발언은 대단히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군국에는 법으로 금지한 사안이 존재하며, 그것을 어긴다면 금지 레벨에 따라 커다란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리 말하면서도 대위는 내심 공장 안쪽이 보고 싶은 듯 나를 따라 행렬에 합류했다.
인도어 파인 대위에겐 조금 벅찬 일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노동의 고됨을 깨닫는 것도 괜찮겠지. 어쩌면 이게 더 큰 자극이 될 수 있고.
그때였다.
인파 한복판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 도둑 새끼가!”
팍, 거센 발길질이 조그만 소년을 강타했다. 소년은 데구르르 구르면서도 손을 내저었다.
“아, 안 했어요!”
어제 내 몸에 손을 댄 소매치기 소년이었다.
그는 아직 소매치기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는지,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사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소매치기하려는 걸 다 봤어! 어디를 숨기려고!”
지나가던 모두들 한 번 정도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뿐.
걸어가던 시민들은 소년과 사내의 행색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다시 자기 갈 길을 걸어갔다. 그들이 취한 태도는 무관심이었다.
“도와줘요! 저 사람이 저를… 악!”
도둑맞은 이나, 도둑질하고 맞는 이나.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사실, 어제 내게 붙들린 아이를 보고도 직접 끼어들거나 거든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단지 군국 대위가 곁에 있으니 단순히 적대감에 쳐다보았던 거지.
타인의 일에 직접 나설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은, 최소한 이 구역에는 몇 없다.
“…소매치기는 범죄입니다. 죄질이 그리 무겁지 않다고 하나, 어제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히 같은 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한 커다란 문제입니다.”
그리고 대위에게도 그러한 여유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기이할 만큼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소녀는,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를 위해 나서려고 했다.
“다만. 사적인 제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에게 죄인을 멋대로 단죄할 권리는 없습니다.”
군국에 그대로 내놓았으면 가장 먼저 망가졌을 사람이다. 여유가 없음에도, 자신을 내어주어 틈을 만들어내는 이.
군국은 통신병을 보호한 걸까, 이용한 걸까.
“…말리지 마십시오.”
“아니요. 말려야겠네요. 당신이 끼어드는 건 아이도 바라지 않는 일일 테니까.”
나는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느긋하게 걸음을 조정했다. 출근 시간에 늦을 뻔한 사내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걷어차고는 냅다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소년은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실눈을 떠 사내의 뒷모습을 살피곤 벌떡 일어났다. 신음이 절로 흘러나오는 입에는 묘하게도 한 줄기 미소가 걸려있었다.
“…헤헷, 출근 시간에는 걸려도… 어지간해선 고아원에 안 끌려가서… 할 만해….”
소득은 없었지만, 손해도 없다.
소년은 그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다시 거리로 사라졌다.
마침, 아주 우연히 그때 소년의 옆을 스쳐 지나가게 된 대위는, 그 소리를 듣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군국의 판결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본관이 끼어들었다면, 두 사람 모두 바라지 않는 결과를 맞이하였겠지요.’
군인이 된 바, 그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자기 의무에 태만한 셈이 된다. 죄를 지은 소년은 마땅히 고아원으로 향해야 하고, 사내는 사적 제재 대신 죄를 신고할 의무를 저버렸기에.
그러나 대위는 방금 전 끼어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여기고 있었다.
나는 고뇌에 빠진 대위를 위로하는 척, 은근히 말했다.
“하하. 서운해하지 말아요. 이게 일상이니까요.”
대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