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63)
EP.163 웰컴 투 뒷골목
에이비는 오랜만에 제복을 입었다.
마음에 들던 평상복은 패킷으로 되돌리고, 세탁해서 고이 보관해두었던 제복을 생체 단말에 넣었다. 평상복으로는 흉내 내기 힘든 압박감, 그래서 조금 낯선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그래도 몇 년 동안 매일같이 입었던 옷이다. 에이비는 금방 익숙해졌다.
안나를 간호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군국의 대위는 간호하는 자가 아니다.
에이비는 통신병. 고유마도로 군국 곳곳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별개로, 정보의 취합 역시 통신병의 임무.
안나의 곁에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지만, 통신병 에이비 대위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치안을 어지럽히는 존재를 추적합니다.”
대위는 딱딱한 정모를 깊게 눌러쓰고는 방을 나섰다.
“안나는 13구역의 시장으로 갔다고 말했습니다. 필시, 13구역에 존재하는 시민시장으로 향한 것이겠지요.”
저레벨 시민들에게 필요한 패킷, 식료품, 각종 소도구를 파는 13구역의 시민시장.
그곳은 2레벨 사치물품까지 판매가 허용되어 있기에 돈이 생긴 서민들은 한 번씩 방문하곤 한다.
그런 만큼 시민의 돈을 노리는 소매치기나 강도도 존재하나, 이곳은 군국이다. 걸렸을 때 리스크가 어마어마하기에 어지간한 각오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며, 그만큼 치밀하지 않으면 금방 꼬리를 밟혀서 노역장으로 끌려가기 마련이다.
“본관에게 위법 행위가 발각되었으므로, 본관은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모을 의무를 가집니다.”
경찰이나 헌병대에게 맡길 수는 없다. 0레벨 시민이 범죄를 당해도 그들은 수사를 나서지 않는다. 후일 잡힐 범죄자에게 덮어씌울 작정으로 기록해두기만 할 뿐.
그렇기에 에이비는 대위로서 움직이기로 했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모아 헌병대에게 건네기로 마음먹었다.
통신병이라는 신분을 밝히지 못할 뿐, 대위는 대위. 그녀에겐 자격이 있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그 말을 밖으로 내뱉으니 잠시 딱딱하게 몸이 굳었지만. 에이비는 굳세게 마음을 먹고 걸음을 내디뎠다.
죽기 전에 꽤 즐거운 일을 많이 겪어서일까.
새로운 것을 더 많이 경험해서일까.
에이비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이런 추억을 안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가기 전에, 안나를 위해 정보를 모으겠습니다.”
굳은 다짐과 함께, 에이비는 군국의 거리를 걸었다.
야심한 밤, 야간조 노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노역자들이 드문드문 오가는 길. 13구역에 도착한 에이비는 커다란 건물 벽을 등지고 섰다.
양손바닥을 벽에 붙이고, 마력을 사방으로 뻗는다. 은은한 마력광이 그녀의 손을 타고 뻗어 나갔다.
고유마도 부분개화, 나팔꽃 덩굴.
손가락을 뿌리 삼아 무형의 기운이 벽과 바닥을 휘감는다. 감싸고 올라갈 곳을 찾던 나팔꽃 덩굴은, 마력이 흘러가는 방향을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그에 편승했다.
마력전달금속을 지지대 삼아 타고 오른 덩굴이 이윽고 그 끝에 닿았다. 빈 곳을 찾던 마력이 그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키긱, 킥.
군국 어딘가에 존재하는, 오직 통신병을 위해 준비된 ‘창문’이 거친 쇳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생체 단말을 이용한 원격 접속이 아닌, 지근거리에서 고유마도를 펼쳐 싱크로하는 근거리식.
에이비의 고유마도는 나팔꽃. 근거리 침식에 특화된 동조 마법.
군국으로부터 ‘창문’이라 불리는 싱크로 타입 마도골렘을 50기 가까이 배정받은 것에는, 그녀의 고유마도 특성에 기인했다.
그녀에게 배정된 창문이 다 부서졌기에. 지금껏 펼칠 기회가 없었으나….
“이것은 정보 수집의 일환. 통신병은 군국 곳곳에 비치된 마도 골렘을 다룰 권한을 가집니다.”
동조 마법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건 정체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다.
애초에 에이비가 골렘을 다루는 건 오직 정보 수집용. 골렘이 직접 나설 일도, 사람들의 눈에 뜨일 일도 없다.
따라서 이것은 규칙 위반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설득한 에이비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덩굴에 휘감긴 모든 골렘이 일제히 눈을 떴다.
“본관의 권한을 사용합니다.”
지극히 원칙적이기에, 원칙으로 비집고 들어간 틈.
보이지 않는 덩굴이 시계탑 꼭대기에 담겨있는 자그만 골렘을, 건물 옥상에 세워져 아래를 내려보는 골렘을, 탐조등 아래쪽에 숨겨진 머리만 달린 골렘을 휘감았다.
곳곳에 비치된 골렘이 일제히 눈을 뜨며 통신병의 동조에 응했다. 골렘의 제어권을 손에 얻은 에이비가 마력을 발휘했다.
창문 병렬 접속. 칼라이도스코프.
그리고 서로 다른 곳을 비추는 수십 개의 시야가, 깨진 창문처럼 조각조각 나뉘어 에이비의 시야로 들어왔다.
어둑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뇌리로 파고드는 압도적인 정보량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에이비는 비틀거리며 벽에 더욱 몸을 기댔다.
그러나 에이비는 정보를 다루는 스페셜리스트였으며, 병렬 접속이 가능한 몇 안 되는 통신병. 하나 된 뿌리는 온갖 덩굴에서 전해진 정보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그녀의 푸른 눈으로 수십 가지 빛이 비쳤다.
“탐색 시작.”
동공이 빠르게 움직인다. 시야 곳곳에 비추는 광경을 비교하고 분석한다. 사람의 흐름, 이질적인 속도, 괴상한 소음, 있어선 안 될 광경.
그녀는 군국의 눈이자, 귀, 그리고 입.
통신병은 군국의 머리. 파편화된 정보가 흐르는 신경.
그렇기에 그들의 정체에 대한 정보는 장성 정도는 되어야 접근이 허가되며, 설사 육장성이더라도 사사로이 이용할 수 없다.
“탐색, 탐색, 탐색.”
사방이 막힌 건물 안에 들어갔다면 찾을 방도가 없지만, 에이비는 그들이 밤중을 틈타 움직이리라고 예상했다. 물건을 훔쳤다면 다음날이 되기 전에 처분하고 싶을 터.
“탐색, 탐색, 탐색, 탐색, 탐색, 탐색….”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13구역의 거리 곳곳을 살피던 에이비는, 거동이 수상한 사내를 발견했다. 어깨에서 피를 흘리는 사내가 배를 움켜쥔 채 절뚝이며 달리고 있었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가까워 보이지만, 어쨌건 명백하게 범죄가 의심되는 광경.
“탐색, 종료.”
에이비는 다른 골렘과의 연결을 끊고는, 거수자가 발견된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도주 경로를 생각해본다면 거수자는 다음 블록을 지난다. 계산을 끝마친 에이비는 한발 먼저 다음 블록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 공포에 질린 채 달려오던 거수자와 마주쳤다. 거수자는 에이비의 옷차림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장교?!”
그가 죄를 저지른 강도라면 에이비를 보고 달아나거나 두려워할 것이었다. 혹 강도에게 쫓기는 피해자라면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만일 에이비가 찾는 그 강도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군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간 큰 이가 그리 많을 리 없으니, 추적하다 보면 언젠가 안나를 습격한 강도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에이비가 두 가지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세울 때였다.
“내, 내가 잘못했어! 나를 잡아가! 내가 1호야!”
그러나 거수자의 태도는 그 무엇과도 달랐다.
자기를 1호라고 칭한 거수자는 숨을 격하게 들이쉬며 에이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강도 짓을 했어! 1호, 2호, 3호와 같이! 2호는 밀센이고, 3호는 갈렌이야! 제발, 나를 잡아가!”
이건 예측 범위 안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황해서는 통신병이라 할 수 없다. 에이비가 딱딱하게 대꾸했다.
“…무슨 일인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를 바랍니다.”
“그럴 시간이 없어!”
거수자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혹은 볼일이 급하거나. 혹은 둘 모두이거나. 에이비의 상식으로는 그게 아니면 설명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는 배를 움켜쥔 채,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인 얼굴로 범행을 자백하고 있었으니까.
“2호, 아니, 밀센 그 새끼가, 조직에 다 알렸어. 내 배에 황금이 있다고…! 다들 내 배를 가르려고 달려오고 있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힘듭니다만, 귀하는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것이라 예상됩니다. 지금 귀하는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것입니까?”
“맞아! 맞아! 시, 신변을 보호해줘!”
거수자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건, 에이비는 정보라도 얻을 셈으로 물었다.
“수용. 단, 그 전에, 귀하에게 정보를 요청합니다. 전말을 알기 위해선 귀하가 어떤 물건을 누구에게 빼앗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어떤 행위를 당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지는 몰라. 시장에서 독을, 아니, 향신료를 팔려고 하던 어떤 아줌마였어…. 그걸 빼앗고 좋아하고 있는데, 그가, 그가…. 그걸 내 입에.”
정황상 안나를 공격한 게 분명해 보였다. 이토록 쉽게 범인을 찾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그 범인을 찾은 것과 그를 체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거수자의 표정에는 그 이상으로 공포와 고통이 가득 담겨있었기에.
“그가…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던 그가. 독이 든 유리병을. 나에게.”
중얼거리던 1호는 갑자기 자기 얼굴을 붙잡았다.
에이비는 평가를 수정했다. 이전까지 보여주고 있던 표정은, 지금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 비하면 공포의 편린도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아아. 마술사. 맞아. 마술사…! 그가 분명해! 왜, 왜 떠올리지 못한 거야…!”
미친 듯이 홀로 되뇐 거수자는 이제 눈물을 흘리며 대위의 바짓단을 잡았다. 다른 손은 여전히 배를 붙잡고 있었는데, 만일 손을 뗀다면 금방이라도 배가 갈라지리라 믿는 태도였다.
“제발.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진 않아. 믿었던 동지들에게 배를 갈려서 죽는다니, 이게 뭐야…! 나, 나는. 이러려고. 이러혀고 한 게 아니헜한, 흐윽. 아, 아.”
애걸하던 1호가 느닷없이 눈을 크게 떴다. 몸이 움츠러질 정도로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무언가 그의 머리와 다리를 잡고 배배 꼬는 것처럼, 그는 꼬인 혀로 폐부가 쥐어짜이는 소리를 냈다.
“아허아. 안, 해.”
그러던 어느 순간.
“끄아아아아악! 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악!”
1호는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그는 세상 모든 고통을 단신으로 빨아들인 듯, 양다리를 휘적거리며 땅을 거세게 내리쳤다. 주먹이 까지고 온몸이 멍들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는 눈을 까뒤집으며 툭 쓰러졌다. 입에서는 비누거품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그의 생명과 함께.
그동안, 에이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이비는 통신병이지, 군의관이 아니었기에.
“…사망 사실을 확인. 살인 사건입니다.”
아무리 군국이라도 살인사건을 방치하지는 않는다. 살인은 노역을 계속해나가는 귀중한 인력을 없애는 중죄이므로, 살인자에게는 노역으로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 탓에 범죄자들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했다간 군국의 경계망에 잡힐 테니까.
그러할 텐데….
“…이 밤 중에 무리를 지어서 그를 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위가 다가온 인파를 보며 말했다. 어둑한 거리 그림자 너머로, 서늘한 눈빛을 지닌 마른 사내가 장검을 어깨에 걸친 채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