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67)
EP.167 검은 고양이 네루
14구역의 뒷골목은 언제나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다.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와 동쪽으로 흘러간다. 공기 속에서 헤엄치는 인간도 그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이 내뱉는 악취나 먼지, 혹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모든 더러운 것들은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바깥으로 흐른다.
14구역에 존재하는 커다란 소각장은 그 모든 오물의 집합지였다.
커다란 자동마차가 쓰레기를 가득 싣고 들어오면, 그들은 길을 따라 흘러가다 커다란 구덩이에 쓰레기를 내다 버린다. 그러면 쓰레기와 별반 차이 없는 행색으로 다가온 노역자들이 태워야 할 것은 태우고, 묻어야 할 것은 컨테이너에 담아서 메타컨베이어 벨트에 실어 보낸다.
가끔, 쓰레기 더미 안에서 문드러진 시체가 나타나면, 노역자들은 헛구역질하면서도 그것을 소각장 안으로 보낸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체는 불에 타기 때문이다.
약 45분 뒤, 새카만 악취 속에 한 줄기 섞여 풍기는 고기 굽는 냄새.
그 냄새를 맡은 노역자의 입가에 맺히는 한 방울의 투명한 액체는, 군침일까 아니면 위액일까.
육중한 도시가 내뿜는 거친 날숨이자, 풍파에 지친 아미텐그라드가 피워대는 독한 담배.
한때 찬란했던 영화와 반짝이던 꿈이 공평하고 잔인하게 그을리는 소각장이 한눈에 훤히 보이는 건물에서.
본그림자, 울펜이 의자에 앉은 채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본은, 진짜 어둠을 보고 왔다.”
울펜 펜슈타인.
군국의 그림자 속에 숨어든 과거의 악은, 한층 우울한 어조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겸허하라. 우리는 그림자이다. 빛은 우리의 적이며, 진정한 어둠은 그림자조차 삼켜버릴지니. 우리는 주제를 알고 몸을 사려야 한다.”
그의 말에, 일곱 번째 반그림자가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본이여! 우리를 이끌어야 할 그대가 어찌 그리 겁을 먹었다는 말인가!”
울펜은 탁한 눈빛으로 일곱 번째를 바라보았다. 일곱 번째 반그림자는 귀와 꼬리를 꼿꼿이 세우며 발언했다.
“그대가 없는 동안, 우리는 자중지란을 겪었다. 그대의 심장이 멎지 않았기에, 구심점을 잃은 우리는 뭉치지 못하고 사방으로 숨어들어 서서히 말라 죽어갔다! 이제 그대가 돌아왔으니, 그대는 우리의 인내를 보상해야 한다!”
“본이 무엇으로 보상하기를 원하는가.”
“반그림자를 모아라. 계획을 세워, 옛 영화를 이룩하라! 본이여, 이건 오직 그대만이 할 수 있으며, 그대만이 해야 할 일이니!”
쩌렁쩌렁한 외침이 텅 빈 회의실을 크게 울렸다.
직언일까, 충언일까, 아니면 그냥 참아왔던 세월에 대한 한풀이일까. 본그림자에게 강하게 지적한 일곱 번째는 숨을 씩씩거렸다.
그런데도 울펜은 조금도 분노하거나 동요하지 않은 채, 탁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일곱 번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일곱 번째. 그대는 탄탈로스를 보았는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기껏해야 군국이 만든 감옥 아닌가.”
“아니다. 탄탈로스는 고작 감옥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일곱 번째는 울펜의 감정 없는 눈을 보고는 몸을 떨었다.
왕국의 그림자 시절의 울펜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였다.
뒷골목의 폭군으로 군림하던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일가족을 몰살하곤 했다. 날고 기는 기사를, 단순히 계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암살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울펜은 그림자였다. 밤이 오고 왕국이 어둠에 잠기면, 그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했다. 반그림자들은 감히 그의 힘을 의심하지 못하고 그에게 복종했다.
군국에 잡혀서 탄탈로스에 갇힌 이후, 그 두려움은 시간에 풍화되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무저갱이 아니라면 감히 품을 수 없는 존재만 모아둔, 악마들의 각축장이었다. 본의 피는 본의 것이 아니었으며, 어둠 역시 본의 편이 아니었다. 힘도, 무기도, 삶도, 의지도. 심지어 믿음까지 본을 배반한… 상식이 어긋나고 힘이 뒤얽히는 끔찍한 공간이었지.”
지금의 그는 마치 득도한 사람과 같아, 일곱 번째는 그 이질감에 두려움을 느꼈다.
공포와는 다른, 미지의 존재로 거듭난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였다.
“본은 그곳에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존재가 진짜 괴물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으며,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진짜 괴물들 앞에서 주제파악을 한 셈이지.”
탄탈로스에 갇혔던 20년의 세월 동안 악성과 독기를 전부 침잠시킨 듯, 얼핏 보기엔 맑고 투명한 눈.
그러나 단지 위와 아래로 분리되었을 뿐. 울펜의 마음속 더 깊은 곳에는, 더욱 끈적끈적하고 짙은 악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악마는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다. 세상을 바꿀 기회를 준다며. 그러나 본은… 호랑이의 꼬리가 되기보단, 고양이의 머리가 되기로 하였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본은 이 하찮은 도시의 지배자로 만족할 것이다.”
일곱 번째는 더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본이여! 입조심 하라. 우리가 고양이라는 말인가!”
“그 이하다, 일곱 번째.”
일곱 번째는 흠칫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석의 의자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그의 귓가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란 일곱 번째가 팔을 들어 올리려는 때. 어둠을 찢고 새카맣게 칠한 칼날이 솟아났다.
푹.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일곱 번째의 가슴을 파헤쳤다. 건조하고 단촐한 소리가 났다. 일곱 번째는 눈을 부릅떴다.
“일곱 번째. 세월이 많이 흐른 모양이다. 증오로 바싹 마른 몸은 어디 가고, 살찐 짐승만 하나 남았구나…. 어때. 네 가족은 너를 반겨주던가?”
“커헉…! 어, 어째서.”
일곱 번째를 향해 울펜이 답했다.
“본은 그대가, 패밀리에 몸담았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어찌, 그들이 걱정되더냐? 본이 인간이 되다만 그것들을 공격할까 두렵더냐? 그들이 정말 네 가족이라도 되었더냐?”
일곱 번째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그의 귀와 꼬리도 팽팽하게 곤두서며, 고통과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가 전신에서 드러났다.
“서, 설마. 본, 너…. 나를….”
“만 하루의 미행이면 충분하지….”
“안, 돼.”
“안 되는 것은 없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존재하지 않으니, 불가능이란 권력을 지닌 자가 멋대로 그어놓은 선이다. 그림자인 우리가 그것을 따를 이유 없다.”
푹.
칼날이 들어갈 때는 건조했던 소리가, 빼낼 때는 촉촉이 젖었다. 붉은 색채가 어둠을 적셨다. 일곱 번째는 자기 가슴에 난 상처를 바라보며 비틀비틀 물러났다.
이내 힘이 빠졌는지, 휘청이며 쓰러지려던 일곱 번째는.
넘어지려는 순간, 흉성을 빛내며 갑작스럽게 울펜에게 달려들었다.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 강맹하게.
“커허어어엉-!”
날카로운 손톱이 울펜을 찢었다. 그것도 모자라, 흉성을 내뱉은 일곱 번째는 울펜을 아주 산산조각이라도 내려는 듯 몇 번이고 팔을 휘저었다.
궤적에 걸린 의자가 박살이 나고, 책상이 갈라져 주저앉는다. 압도적이고 강력한 힘이 회의실을 뒤엎었다.
그러나.
“짐승이란. 이토록 어리석구나.”
일곱 번째의 가슴으로 다시 칼날이 튀어나왔다.
치명상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모든 힘을 발휘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인지. 일곱 번째 반그림자는 별달리 저항하지 못한 채, 가슴에 난 구멍으로 울컥 피만 쏟아냈다.
감각이 예민하기로 소문 난 수인조차 속이는 은신술.
울펜이 단검을 뽑았다. 일곱 번째는 이번에야말로 무릎을 꿇었다. 그림자에 녹아든 울펜은 다시 일곱 번째의 앞에 나타나서는 중얼거렸다.
“저물어라, 일곱 번째. 걱정하지 마라. 그림자의 칼날이 그대의 가족을 해치지는 않으리라….”
중얼거린 울펜은 일곱 번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회의실을 나섰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걸어감에도 그의 발걸음은 발밑에 융단이라도 깐 듯 조용했다.
“…터부를 들킨 이 나라가, 본 대신 그들을 짓밟을 터이니.”
끼이익.
죽은 이의 생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문이 쇳소리를 내며 닫혔다.
왕국이 무너지고 군국이 들어오면서, 수인들은 커다란 기대를 가졌다. 이제 구시대의 악습이 모두 사라지고 수인도 동등하게 대우받으리라는 희망이 수인들의 귀를 쫑긋거리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은 나라보다도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만 반증했을 뿐이다.
왕국의 잔재가 사라지고 군국이 힘을 뻗치는 와중에도 수인 차별은 여전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수인을 꺼렸으며, 수인의 범죄율도 비(非)수인에 비해 높았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범죄를 저질러 신뢰를 잃은 것일까 아니면 까닭없이 궁지에 몰린 이들이라 범죄 이외에는 대안이 없던 것일까.
이유야 어쨌건, 수인들은 핍박에 맞서기 위해 서로서로 뭉쳤다.
그것이 패밀리라고 불리는 수인 조직이 생겨난 배경이었다.
“…잠입을 보냈던 형제가 시체로 발견되었어.”
새까만 머리카락에 별반 다를 바 없는 귀와 꼬리. 한쪽 눈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다른 눈에는 안대를 쓰고 있었는데, 검은 고양이 특유의 얼굴상과 어우러져 퇴폐적인 면모를 강조되고 있었다.
수인만 모인 패밀리 중에서도 가장 짐승의 특성을 크게 물려받아, 행동대장인 동시에 얼굴마담으로 활동하는 대표.
군국에 몇 안 되는 사설 잡지 ‘검은 고양이’의 편집장이자, 오직 가십만을 파헤치는 파파라치. 또한 군국에 충성스러운 밀고자.
네루가 원피스 드레스를 입은 채로 내 맞은편에 앉아서 과일 주스를 쪽쪽 빨았다.
“힘 좀 쓰는 형제였는데 말이야. 흐음. 너무 안타까워. 어떻게 생각해, 자기?”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숨겨놓았던 전력이 발각당해서 죽었다는 말이지, 음.
내 생각은 정해졌다.
“와. 무섭네. 도망가야겠다. 그러면 안녕.”
“자기, 어디 가?”
일어서려는 태도를 보인 순간, 네루는 즉각 손톱 발톱을 세워서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테이블 위로는 내 옷소매에 구멍이 뚫렸고, 테이블 밑으로는 날카로운 발톱이 바지소매를 잡아당겼다.
이게 취재야, 아니면 협박이야.
“자기. 정보를 들었으면 그에 맞는 대가를 내야지?”
“나는 알려달라고 한 적 없는데.”
네가 내 앞에 앉은 순간 생각을 다 읽었다고.
전 왕국의 그림자 소속이었으면서, 왕국이 멸망한 뒤 패밀리에 가입한 네 동지가 나쁜 놈한테 죽었다며.
생각을 읽어보니 그 동지, 건곤까지 이룬 강자라고 하던데. 그런 그가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죽어?
도대체 탄탈로스 탈옥범 울펜이라는 놈은 얼마나 강한 거야? 탄탈로스에는 어떤 괴물이 살고 있던 거냐고?
쯧. 싸우고 싶지 않아. 나는 일대일 싸움에 약하단 말이야.
참고로 일대다 싸움은 문외한이며 다대일 싸움은 자존심이 용납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해줄 건 없다.
무서워서 얼른 도망가려고 했는데, 네루가 억지로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네루는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마술사는 이러지 않으면 정보를 교환하지 않잖아?”
“이게 교환이냐? 억지로 먹여놓고 토하게 만드는 거지.”
“우리는 그걸 교환이라고 해.”
수인들 인식이 안 좋아지는 데에는 분명 이놈들의 영향도 있을 거다. 특히 나. 오늘도 수인 혐오가 차오른다.
어쨌건 나도 패밀리를 이용하는 입장이었기에 마냥 배척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아무것도 몰라. 아미텐그라드로 돌아온 지 사흘밖에 안 되었다고.”
나는 아미텐그라드 3일차. 사흘 전 태어난 갓난아기와 별반 다를 거 없는 지식 수준을 가졌다….
이런 의미로 말했으나, 네루는 도리어 한쪽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아, 그것도 우리 패밀리의 공통된 의문점 중에 하나야. 자기, 어쩌다가 헌병대에 끌려간 거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나?”
“대충 알고 있잖아. 개자식 안톤이 배신했어. 손도 못 쓰고 잡혀갔다고.”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쉽지는 않았겠지만, 자기 능력이면 중간에 빠져나올 수도 있지 않았어?”
웃기는 소리.
헌병 둘이 내 옆을 지켰고, 보통 구속복을 차고 생활했다. 내가 구속복을 벗을 때는 보통 군인이 꽉 들어찬 재판정이었다.
나에게 독심술이 있다고 해도, 손재주가 조금 있다고 해도 스펙 자체는 평범한 사람. 구속복을 혼자 벗지 못하며 그 많은 군인을 다 때려눕힐 힘이 없으니. 내가 잡혀간 건 당연한 수순.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얕보이고, 얕보이는 건 내 수명을 내가 깎아 먹는 행위다.
나는 한껏 허세를 부렸다.
“탈옥하면 그 즉시 중범죄자로 수배되잖아. 중범죄자가 되면 인생 살아가기 팍팍해지니까, 그냥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고 노역하려고 했지.”
“히야. 마술사는 역시 달라도 달라?”
‘후후. 역시 거물은 거물이야. 마음만 먹으면 탈출 정도는 쉽게 할 것처럼 이야기하네.’
마음 먹어서 되면 몇 번이고 뜯어먹지. 그게 되겠냐?
탈출 마술도 양손을 묶고 눈도 가린 채 시키지는 않는다. 마술사도 사람이야 사람. 내가 무능한 게 아니라, 군국이 너무 했다고.
너무 허세를 부린 탓일까. 바람이 잔뜩 든 네루는 나를 한껏 추켜세웠다.
“그거 알아? 자기가 딱 잡혀갔을 때 탄탈로스에서 탈옥사건이 일어났대. 나는 처음에 그 소식 듣고는, 군국이 드디어 미쳐서 탄탈로스에 자기를 던져 넣은 줄 알았어. 탄탈로스의 죄수들을 선동하여 탈옥시킬 사람이 자기 말고는 떠오르지 않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시기상으로 맞지 않잖아.”
“후후. 맞아. 자기가 잡혀간 건 탄탈로스 탈옥사건이 일어난 이후지. 아쉽지만, 자기가 탄탈로스 탈출쇼를 보여줄 기회는 사라져버렸어.”
“바라지도 않아.”
이건 진심이었다.
탈출 한 번 해봤는데 죽을 뻔했으니까.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갈라지며 시체산이 무너지는 전투를 네가 알아? 그걸 두 번 했다간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흐음. 역시, 아부는 잘 안 통하나?’
아부가 아니라, 경험자의 지혜다.
탄탈로스는 애초에 들어가지 마세요, 제발.
“그래서. 물어볼 건 그게 다야?”
“아니지. 방금 그건 에피타이저에 불과했어. 진짜 질문은… 이거.”
탁.
네루는 테이블 위에 짧은 메모지를 내려놓았다. 짧은 글귀가 자그만 손수건 끄트머리에 자수처럼 적혀있었다.
-군국의 터부. 들쑤시려 함. 조사 필요.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야. 이걸 끝으로 연락이 끊겨서 확인해보니, 14구역의 한 건물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맙지만, 위로는 조의금으로 해줄래? 특별히 정보로 지불하게 해줄게.”
쳇, 안 넘어가네.
“무슨 정보?”
네루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군국의 터부.”
“군국의 터부?”
“어때. 아는 바가 있어, 자기?”
“글쎄….”
나는 말을 끌었다.
몰라서? 아니, 너무 많이 알아서.
이 망할 나라는 터부가 얼마나 많은지, 어젯밤만 해도 걸어다니는 터부가 우리 집에서 잠들었다. 어찌나 비밀스러운 터부인지 정체를 아는 순간 자결해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이었다.
무저갱조차도 터부의 일부였다. 아마 전쟁 트리거 비슷하게 쓸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정보 통제에 진심이었지.
아는 게 너무 많아도 곤란하다. 터부라고 해도 뭘 말하는지 알아야 대답해주지.
정보상의 딜레마다.
“하아. 자기도 몰라?”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워.”
“다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수지타산이 안 맞네.”
“쩨쩨하긴. 우리가 그런 사이야?”
“아, 맞다. 우리 서로 안 친했지? 생각해보니 조의금 낼 필요도 없었네. 안녕.”
휙, 탁.
이번에는 네루가 뻗을 손과 발을 미리 읽고 뿌리쳤다. 팔을 뒤집어서 손등을 밀어내고 솟아오르는 발등을 반 박자 먼저 지그시 밟았다.
그 상태로 냉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이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독심술로 다 읽어서 더 볼일이 없었던 탓이다.
너흰 이제 단물 다 빠졌다고.
“자기, 요즘 장교 하나랑 동거하고 있다며?”
그 말이 들려오기 전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네루는 약점이라도 잡은 사람처럼 방긋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