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70)
EP.170 가짜 뉴스…?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아침은 반갑고, 햇볕은 따스합니다. 바람은 시원합니다. 홍차는 달콤하고, 이불은 포근하고, 요리는 혀를 즐겁게 합니다.’
‘사람들은 어울려 살아갑니다. 노역으로 노곤한 몸을 이끌고 식당에 마주 앉아, 서로 농담을 나누며 지친 하루를 보냅니다. 방금 만난 사람을 사귀어 친구가 되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키우며 잠듭니다. 고요한 밤에는 그들의 숨소리만이 들립니다. 본관은 이 모든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극이 있습니다. 안나는 누군가에 습격당해 크게 다쳤고, 장교조차 위협하는 이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며, 어둠 속에서는 조직끼리 아귀다툼을 벌이고, 어떤 시민은 똑같이 잠들었음에도 아침에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본관이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가겠지요.’
‘피치 못할 사고도 있으나, 예방할 수 있는 비극 역시 많습니다. 특히 혼란을 퍼뜨리는 악은 빠르게 처단해야 합니다. 군국의 그림자, 그리고 마술사. 정체를 숨긴 채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법자들.’
‘본관은 본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와 안나를 위해서라도.’
‘본관의 명이 다하기 전에, 그들을 배제하겠습니다.’
‘…그러려고, 했는데.’
집으로 돌아온 대위는 솟아나려는 감정에 돌을 얹었다.
꾸욱, 꾹. 딱딱하고 묵직한 의무감이 그녀의 마음을 억누른다. 주인의 마음도 모르며 싱숭생숭하게 부풀어오르던 마음은 점차 차분해지고, 그녀의 머리에서 열이 빠져나가고 이성이 돌아왔다.
한결 진정한 것처럼 보이네. 이제 슬슬 오해를 풀어줄까.
“대위, 혹시 제가 상황을 모면하려고 둘러댄 말에 삐진 건 아니죠?”
“….”
“네루 그 녀석은 태생이 짐승이라 그런가, 입에 고기가 물려있지 않으면 시끄럽게 짖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넓은 마음으로 아량을….”
“부정.”
“네? 뭘 부정.”
대위는 대답하지 않고는 방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침대와 쇼파, 램프와 조명. 바닥을 감싼 양탄자와 욕실 문까지.
모든 물품에 한 번씩 시선을 건넨 대위는, 굳게 결심을 하고 나를 보았다.
“본관은 귀하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
“아, 맞다. 협조를 요청한다고 그랬죠? 하지만 나는 공사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라. 말해 봐요. 요구 조건과 그 대가까지 다 듣고 판단해볼게요.”
한때 나는 해결사 비슷한 일까지 해보았다. 협조? 해주지. 단,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말이야.
이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대위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본관은 ‘군국의 그림자’라 불리는 범죄 조직과 ‘마술사’라 불리는 무법자를 찾고자 합니다.”
“네?”
앗. 그건 안 되는데. 마술사는 난데?
잡범의 본능일까. 내 앞에서 장교가 나를 찾으니 꼭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것처럼 몸이 굳었다. 어, 이건 못 도와주는데? 도와주려면 스스로 구속복 패킷을 꽂아야 하는데?
그나저나 갑자기 왜?
“그들은 왜 찾아요?”
“본관은 군인입니다. 군인이 범죄자를 감시하고 체포하는 것에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본부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휴가 아니었어?
‘2주가 지나기 전에 복귀’가 조건이라면, 당연히 2주 동안 사회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마지막 날에 설렁설렁 돌아가는 게 미덕 아니냐고? 왜 휴가 중에도 일하려고 하는 거야?
그것도 나를 잡을 일을!
“본관은 현지에 거주하며 지리와 정세에 해박한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본관에게 부득이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정보를 대신 전달해줄 연락책도 구해야 합니다.”
“저보고 하라고요?”
“긍정.”
“협력하는 건 상관없는데, 저는 맨입으로 일하지 않아요. 어떤 일을 해도 소정의 대가를 받아내죠. 받은 돈만큼 일한다, 그게 제 모토라서.”
한마디로 대가를 내놓으라는 말이다. 대위는 별달리 뭐라 하지 않고 수긍했다.
‘압니다. 귀하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무저갱에서도 사소한 부탁 하나에 대가를 요구하곤 하였지요.’
크크. 알긴 아는군.
이러니까 평소에 호구잡히지 않는 게 중요해. 이미지를 쌓아두니까 알아서 대가를 생각하잖아.
“단, 그 전에. 귀하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호오. 협상을 거는 거야? 감히 독심술사인 내 앞에서?
자. 어디.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으려나? 위험수당에 노동력에 기지 제공비용까지. 흠. 어지간한 돈으로는 안 될 텐데.
무슨 제안을 하는지 조금만 읽어볼까…. 가당찮은 조건을 걸면 바로 잘라야지.
내가 생각을 읽으려는 무렵이었다.
“본관과 결혼하십시오.”
“네? 뭐라고요?”
네? 뭐라고요?
생각을 읽는 능력도 읽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귀머거리와 다를 바 없다.
내가 어안이 벙벙해진 사이, 대위는 벗은 모자를 가슴에 품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이라는 사실은 본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관의 말을 천천히 들어주십시오.”
듣다 못해 생각을 읽고 기억도 파헤칠 작정이다. 도대체 무슨 회로를 거쳐서 그런 말이 나온 거야? 인생 첫 프로포즈가 이렇게 나오다니?
‘통신병인 본관은 귀하에게 정체가 발각되었습니다. 그 즉시 자결하거나 귀하를 사살하여야 했지만, 군국 국토의 반을 지나오는 동안 본관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관망하였지요. 이것은 무어라 더 할 말이 없는, 본관의 태만입니다.’
아, 이 패턴.
“본관은 귀하에게 큰 신세를 졌습니다. 귀하는 본관의 목숨을 구하였고, 거주지를 제공하였으며, 온갖 편의를 봐주었습니다. 그에 반해 본관이 귀하에게 제공한 것은….”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대가의 제공이 되지 않겠지요. 원칙대로라면 본관이 자결했어야 했기에. 따지자면 본관은 귀하의 도움 덕분에, 죽음의 마지막을 장식할 며칠 간의 유예를 얻은 셈입니다….’
“…전무합니다.”
알긴 아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갑자기 뭐?
“알아주니까 기특하긴 한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결혼해줄 테니 고맙게 여기고 평생 받들어서 살라는 뜻이에요?”
“부정.”
대위는 자세를 바로 한 채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하늘처럼 푸르고 투명한 눈은 굳이 생각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맑았다.
“현재, 군국의 10번대 구역에서는 의문의 범죄조직과 무법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귀하와 귀하의 주변을 위해서라도 치안을 바로잡고 그들을 일소하려고 합니다.”
너 따위가…? 라고 하기에는 보여준 능력이 너무 많다.
다른 것도 필요 없이 통신본부로 가서 정보만 제대로 흘리면 조직은 괴멸될 거다. 도처 곳곳에 숨겨진 골렘이 추적한다니, 평범한 범죄조직은 절대 뿌리치지 못하겠지.
단, 정체가 발각된 채 통신본부에 가봤자 자살당할 뿐이니. 최대한 정보를 모으고 갈 작정인 듯했다.
…아니면. 범죄 조직과 싸우다 죽던가.
“좋은 일 하시네요.”
“본관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본관은 앞으로 군국의 시민을 괴롭히는 무법자를 조사하고, 그들을 배제하기 위해 모든 수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는 장교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는 범법자들. 조사하는 과정에서 본관의 신변에 위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법도 규칙도 없으니, 본관이 살해당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요.”
여전히 살 생각이 없나 보다. 대위는 자기가 죽는다는 말조차 덤덤하게 꺼냈다.
“이것은 본관이 귀하에게 드리는 협조 요청이자, 동시에 지금까지 본관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합니다. 혹여나 본관이 죽는다면, 본관이 가진 정보와 사망 사실을 당국에 전달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 그러니까.”
이제 슬슬 알겠다. 거기서 왜 결혼 이야기가 나왔는지.
“임무 중 죽으면 사망보상금이 나오니, 이왕 사라질 돈 결혼해서 받아가라?”
“….”
“맞죠?”
“…긍정.”
‘본관이 귀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직계가족이 없는 본관은 받지 못할 자금이니, 최소한 귀하가 받아주었으면 합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이것을 대전제로, 대위는 안나를 공격하고 시민들을 불안에 빠뜨린 뒷세력을 조사하고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빚을 갚으려는 마음이 통통 튀다가 갑자기 결혼 이야기로 튀어나온 것이다.
“귀하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귀하가 탄탈로스에서 본관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사실을 알리면, 귀하에게 걸린 혐의를 일부 지울 수 있을 테니까요.”
“군국이 혐의를 지워준다고요? 세상에서 가장 신빙성이 없는 이야긴데요.”
“귀하가 본관을 도와 아미텐그라드까지 돌아온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본관이 그 사실을 강조하면 상부에서도 크게 탓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0레벨 떨거지에요. 탓하기 전에 체포당하지나 않을지.”
“문제없습니다. 3레벨 시민과의 결혼 시, 배우자에게 한시적으로 2레벨의 시민 레벨을 부여합니다. 귀하는 2레벨이 유지되는 동안 의혹을 다 풀면 됩니다.”
나는 0레벨 잡범 생활에도 그리 불만은 없지만, 모범적인 대위는 내가 다시 양지에 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귀하는 이제 모든 죄를 씻고, 충분한 재산을 가진 채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십시오. 이것이, 본관이 귀하에게 제공하는 대가입니다.”
너랑 결혼해서 말이지.
어, 마음은 고맙고 솔직히 돈도 고마운데. 좀 그렇지 않나?
“그, 꼭 죽어야 하는 거예요? 적당히 하다가 목숨 위험하다 싶을 때 물러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대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본관은 본관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통신병의 철칙, 존재 자체를 절대 기밀로 할 것.
통신병이 가진 힘을 방금 견식한 참이라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앉은 자리에서 한 구역을 통째로 감시하며, 온갖 정보를 한번에 받아들이고 순식간에 정리한다.
국가의 기밀 정보나 작전을 다른 통신병 혹은 부대에 전달하는 동조 마법은, 개인적으로는 보잘 것 없으나 국가적으로 대단히 강력한 능력이다. 사령부의 명령을 딜레이 없이, 소모비용 없이 저 멀리 보낸다는 건 군국 전체가 한 마리의 짐승처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
원거리 통신, 정보 관제, 감시 및 관리.
통신병은 군국의 신경망. 절대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다른 부분이 타격받으면 그 부분만 상하고 마나, 통신병에게 문제가 생기면 군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휘청인다. 동조 마법의 특성상 한 명에게 생긴 문제는 군국 전체로 퍼지기에, 군국은 통신병의 취급에 주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군국은 통신병들에게 그들의 중요성과 의무를 세뇌하듯 때려 박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대위처럼.
“죽을 게 거의 확실하다는 말이로군요.”
‘부정.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도, 본관은 그러지 않을 작정입니다. 만일 배우자가 있다고 하여도 통신병에 대한 기밀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대위는 마음속과는 다른 말을 전했다.
“긍정. 그토록 위험한 일입니다.”
네 말뜻은 알겠다.
결국 같이 지내던 며칠 동안 삶의 즐거움은 충분히 알려줬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를 살리기 부족했다는 뜻이구나.
그렇다면야.
“…대위. 그랬다간 사망보상금을 노린 거짓 결혼이라고 여기지는 않을까요?”
“기우입니다. 미혼인 군인이 사지로 파견되기 직전, 급히 진행하는 결혼에 대해서는 탓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기 진작을 위해서다.
죽으면 사망보상금이 나온다. 유산조차 남길 수 없는 군국에서, 남은 가족에게 지급되는 사망보상금은 군인이 죽음을 각오하도록 만드는 훌륭한 수단이다.
죽을 각오가 없는 군인은 오합지졸. 따라서 군국은 결혼을 적극 장려한다.
인구 증가와 전력 상승을 위해, 동시에 군인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본관은 그 권리를 쓰는 것뿐입니다.”
뜻은 알겠다. 마음가짐 역시도.
나에게 손해될 일은 거의 없다. 결혼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끝. 자식도 없고, 부인도 곧 없어져서 사망보상금만 지급되다니. 이게 책임 없는 쾌락 아니겠어?
이곳은 군국. 성황청도 없으니 이혼했다고 손가락질하려는 사람도 없을 터.
“대위의 사망보상금에, 모든 혐의를 벗어던질 기회라. 저한테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이긴 한데…. 궁금한 게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위장 결혼해서 보상금으로 그 대가를 받아가라.
겉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인 제안으로 보이나, 의문이 하나 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군국 통신병 에이비 대위가, 순전히 금전적인 대가를 위해서 그러한 요구를 한 것일까?
네루와 했던 인터뷰가 어떤 영향을 준 건지, 아니면 거리 곳곳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인간이 뭔가 변한 건지.
아주, 아주 깊게 파고들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직 안 된다. 대위는 삶을 얻지 못했다.
조금만 더 내버려두자.
“이 계약은 어디까지나 계약일 뿐이죠? 제가 받을 사망보상금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죠?”
“긍정.”
대위는 즉각 반응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미리 준비된 듯한 대답이었다.
“뭐, 저 같은 경우에는 현물이나 어음도 받으니까.”
왠지 이걸 수긍하면 천하의 쓰레기가 되는 것 같지만, 알 바냐.
저쪽이 먼저 주기로 했다. 나는 수긍한 죄밖에 없어.
악수하기 위해 나는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협력하겠습니다. 대위.”
“잘 부탁합니다.”
대위는 내 손을 맞잡으며 말간 미소를 지었다.
‘…괜찮겠지요. 마지막으로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본관은 통신병으로, 온갖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결코 알아서는 안 될 기밀부터 콩 통조림 조리법까지. 군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관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품에 안겼을 때 느껴지는 고동이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듯한 부끄러움. 본관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아쉬움. 그리고 다시 보지 못할 이들에 대한 그리움. 본관은 여전히 그것의 정체를 모릅니다.’
‘…혹시 결혼하면 알 수 있을까요? 그토록 사람을 극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사지로 향하는 군인에게 용기를 주는 그것이라면. 본관도 달라질까요?’
‘결혼은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본관은 상당히 괜찮은 결혼을 하는 셈입니다.’
‘그는 본관의 감정을 알지 못하겠지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남은 시간이 없으니 자식을 가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본관은… 죽기 전에 결혼도 해보았습니다.’
‘본관은 가장 행복한 통신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