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73)
EP.173 터부
13구역 변두리에는 작고 더러운 식당이 있다.
눈빛이 서늘한 주인이 언제라도 요리할 수 있도록 칼을 시퍼렇게 갈고 있지만, 정작 먼지가 가득 쌓인 테이블과 기름때가 낀 접시, 벽지 대신 도배된 곰팡이는 위생을 신경 쓰지 않는 0레벨 시민조차도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다. 이 정도면 손님을 쫓는 결계나 다름없다.
과연 주인장이 요리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째서 더러운 이곳에 칼날만은 날카롭게 갈린 것인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한적한 점포에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왔다.
다른 구역에서 온 게 분명해 보였다. 남자는 넥타이가 달린 반듯한 셔츠를 입고는 고급스러운 모자를 살짝 들추었다. 밀짚모자를 쓴 여자가 그 뒤를 따라 사뿐사뿐 걸어들어왔다.
비교적 부유한 차림새를 한 남녀는 가게에 들어선 순간, 더러운 벽과 먼지 가득한 테이블을 보고는 당황했다.
“어… 비야, 이곳이 맞니?”
따라 들어온 여자 쪽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대꾸했다.
“긍정… 아니, 그렇습니다. 본… 제가 알기로, 이곳이 사람이 몰리는 식당이라 전해 들었습니다.”
“잘못 안 거 아니야? 13구역에 있는,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식당이라고 해서 왔는데. 여기는 둘이 먹다가 식중독으로 죽어버릴 식당이잖아?”
“거, 말이 심하시네!”
손님이 들어오지도 않고 가게만 기웃거리고 있자, 주인장은 신경질적으로 칼을 쾅 내리쳤다.
남자가 크게 움찔했다. 주인장은 지저분한 머리카락 너머로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뭐, 시킬 거라도 있수?”
기세가 죽은 남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기, 이곳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게 무엇입니까?”
주인장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몇 개 빠져서 듬성듬성한 이빨이 드러났다.
“스테이크. 피가 뚝뚝 떨어지는.”
“히익.”
남자 쪽이 분위기를 더 잘 읽는 모양이었다. 겁먹은 표정을 지은 남자가 냉큼 여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주인장의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실, 실례했소! 다, 다음에 오겠습니다!”
“그러슈.”
오랜만에 온 손님을 놓쳤음에도, 주인장은 전혀 아쉽지 않은 표정이었다.
왜냐면 이 음식점은 사실 음식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딴 곳에도 기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군.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귀찮은 일은 덜었구만.’
음식점은 그나마 군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점포이다. 또 낯선 사람이 방문해도 별로 의심이 가지 않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조직들은 음식점으로 가장한 접선지를 만들었다. 조직원들끼리 접촉하거나, 여차할 때 집결하기 위해서.
‘결행일이 머지않았는데 오늘 귀찮은 일을 만들 수는 없지. 시체를 치우지 않아서 잘 된 일이군….’
주인장이 창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음식 재료 대신 시커먼 공간과 아래로 향하는 나무계단이 나타났다.
그림자가 군국을 뒤엎고 뒷골목을 차지할 때까지. 불과 며칠도 남지 않았다. 말단에 불과한 그는 결행일이 언제인지도 모르지만, 명령만 떨어진다면 이 나라를 뒤엎을 준비가 되었다.
주인장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떠올랐다….
“맞네요. 접선 장소.”
가게에서 나온 나는 모자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대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 가는 정황이 있었습니다. 유동량이 그리 많지 않아야 할 골목에 기이한 인구의 흐름이 관측되었습니다. 특정 시간대에 무리 지은 사람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는 이 가게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저쪽도 나름대로 의심을 피하려고 한적한 뒷골목에 접선지를 만든 거겠지. 잘 안 되는 음식점인 것처럼 가장한 채로.
하지만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군국의 통신병. 거리 각처에 숨겨진 골렘에 접속하여 이 도시를 손바닥 내려다보듯 볼 수 있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들에겐 사람이 북적북적한 대로변보다 한적한 골목이 더 감시하기 쉬웠다.
…뭐, 그들이 대로변에 음식점을 차리지 못한 건, 어디까지나 그만한 자금이 없어서겠지만.
그들이 어리석은 건 아니다. 나도 몰랐다.
통신병이라는 존재도, 군국이 그만큼 미친 나라인 것도.
“삐 대위는 진짜 대단하네요. 군국에 있는 수많은 골목 가운데 의심스러운 장소를 정확히 짚어내고.”
나는 생각을 읽는다.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추악한 비밀도 내 앞에서는 천박한 나신을 드러낸다. 세상 모든 고문을 버티는 밀정도 툭 스치고 지나가는 것으로 속내를 다 파헤치니, 인간의 심도란 나에게 의미 없는 것.
하지만 인간 자체가 얄팍하면, 나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부품 역할에 익숙해진 이 군국이라면 특히.
“군국의 그림자라는 놈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점조직이라서 저도 찾아내는 데 애를 먹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털어도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터는 맛이 안 나. 삐 아니었으면 이곳은 못 찾았을 거예요.”
“부정. 공치사가 과합니다. 본관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해야 할 일을 잘했으니 칭찬하는 거죠. 첫 번째 시도 만에 접선지를 알아낸 건 쾌거잖아요.”
진짜, 나처럼 깊이 파헤치지는 못하지만, 이토록 넓은 범위를 뒤덮는 감지능력은 확실히 나에게는 없는 힘이다. 그걸 또 해내는 대위도 대단하긴 해.
내 칭찬에 대위는 쓰고 있던 밀짚모자 챙을 붙잡고 내리며 중얼거렸다.
“…부정.”
‘…칭찬이, 과합니다. 본관이 업무에 관련하여 칭찬을 받은 것은 처음…. 본관은 본관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데.’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대위는 내심 감격했다. 신이 난 대위는 의욕 가득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질러 갔다.
“다음 의심 장소로 향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그러나 대위가 찾아낸 다음 의심 장소는 13구역 뒷골목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이었다.
낙담한 대위를 위로한 건 인품 좋은 주인장이 제안한 특선 메뉴였다. 대위는 또 다른 맛에 눈을 빛내고 두 접시를 비웠다.
군국의 그림자는 점조직…이라기보다는 그냥 도마뱀 꼬리만 미끼 삼아 주렁주렁 매단 문어에 가깝다.
본체인 ‘왕국의 그림자’ 중 몇몇이 자기들의 힘을 보이면, 그에 혹한 길거리 양아치들이 몰려든다. 그러면 그림자들은 달콤한 말로 양아치들을 꾄다.
우리 같이 힘을 합치자.
이 끔찍한 나라를 뒤집어엎자.
뒷골목을 지배하게 되면, 너희에게 이 구역을 맡기겠다.
뭣도 모르는 양아치들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안 믿고 반항하는 양아치는 ‘그림자’가 죽여버리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아치, 혹은 불량배, 한량이나 밑바닥 인생들은 그림자가 누구인지,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들을 믿고 따른다.
자기들이 그토록 위험한 조직에 몸담은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쯧. 여기도 별다른 단서는 안 보이네요. 접선 장소는 맞는데 진짜 장소만 있네.”
보이는 접선 장소마다 독심술로 정보를 캤지만 쓸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 있는 모두는 한 번 쓰고 버려질 말이었으며, 동시에 도마뱀 꼬리처럼 언제든지 끊어버릴 수 있는 미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위는 얻은 정보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접선 장소만 스무 곳 이상. 예상 동원 인력 약 사백여 명…. 본관이 발견하지 못한 접선 장소와 그들의 본체인 ‘그림자’까지 따지면, 못해도 천이 넘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천 명의 조직 폭력배들이 일제히 일으키는 소동이라면 반란, 못해도 폭동 수준이다.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천 명이 동시에 일으키는 소동이라니. 거기에 다른 불만을 가진 녀석들이 합류하면 어지간한 폭동 이상인데요? 진짜 큰일나는 거 아니에요?”
“부정. 이 사태가 일정 이상 커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그러나 대위는 단칼에 부정했다. 천 명에 이르는 무법자들이 수도 곳곳에서 폭동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통신병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지 못했다.
내가 물었다.
“왜요? 헌병대의 힘을 쓰면 천 명 따위는 단숨에 도륙을 낼 수 있어서?”
“귀하의 발언 자체에는 긍정하나, 그것이 이유는 아닙니다. 귀하의 말처럼, 천 명이 동시에 소동을 일으킨다면 모르나… 그들에겐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능력이라면, 조직력?”
“긍정.”
잠깐 고민한 대위는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김에 나를 향해 설명했다.
“본관과 귀하가 조사한 결과, 군국의 그림자를 자칭하는 단체는 아미텐그라드 10번대 구역에 소규모로 무리 지어 있었습니다. 너무 소규모라 본국이 그들을 포착하기 어려우나, 동시에 그림자라 칭한 불온분자가 명령을 내리는 데에도 장애가 생깁니다. 그들에겐 서로 연락할 수단이 극히 한정적일 터이니.”
“그렇긴 하죠.”
수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길거리에 양아치들에게 그토록 손쉽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군국이 왜 어마어마한 자원을 들여 통신병을 키우고 마도골렘을 만들겠는가?
“또, 본관이 직접 오가며 관찰한 결과… 그들의 접선 장소는 대부분 열악했으며, 또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이들에겐 체계적인 작전 수행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긴 오합지졸 같긴 하더라고요.”
마켓도, 패밀리도. 괜히 같은 고민을 품은 이들이 모인 게 아니다. 조직이 모이려면 중심이 될 구심점과 서로를 끈끈이 이어주는 동질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군국의 그림자, 양아치들의 모임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를 표했다.
“이상하긴 하네요. 이런 종류의 폭동은 무리를 지을수록 커져요. 천 명이 일으키는 폭동에는 피가 끓어올라 참가할 이들도, 열 명끼리 나눠서 하라고 하면 미적거릴 가능성이 높아요. 사람이 많을수록 두려움이 덜해지니까.”
군국의 그림자는 양아치들이 모인 오합지졸. 그냥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따를 가능성이 극히 작다. 심지어 그 명령이 자살 특공이나 다름없다면 더더욱.
“아무리 혼란을 퍼뜨리는 게 목적이라 해도, 오합지졸을 가지고 이토록 복잡한 작전을 구사할까요? 의문이긴 하네요.”
아, 어디 ‘그림자’ 하나 안 나오나. 생각만 읽으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래서 독심술이 별로라니까. 그림자고 뭐고 숨어다니는 놈들이 나타나질 않으면 생각을 읽을 수가 없어요. 아이 갑갑해, 정말.
최소한 상대방의 의도만 읽을 수 있다면….
아.
“삐. 혹시 터부에 대해 아세요?”
어느덧 삐라 불리는데 익숙해진 대위는 그 호칭에 한 점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고 대답했다.
“터부? 문장 구성요소가 부족합니다. 더 발언해주십시오.”
“정보원이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지금까지 까먹고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상도의에 어긋나는 짓이라 숨기고 있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네루, 미안. 네 정보는 대위에게 건네줄게.
“네루가 그러던데, 본그림자 울펜이 군국의 터부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군국의, 터부말입니까?”
“네. 뭐 대단한 정보인 양 넌지시 흘리던데, 도대체 뭘 말하는지 몰라서 잊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생각나서.”
나는 슬그머니 말하며 생각을 살짝 읽었다. 과연, 군국 통신병은 터부에 대해 얼마나 알지….
‘난해. 의심 가는 항목이 너무 많아서 하나를 정할 수 없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이 미친 나라.
너희는 나를 잡아갈 자격이 없다. 나는 최소한 잡혀갈 때 내 죄목이 뭔지 정확히 안다고.
대위는 뭔지 터부를 떠올리기를 포기하는 대신 네루 쪽을 경계했다.
“네루라면, 잡지사를 운영하는 고양이 수인을 말하는 것입니까…. 한 번 수사할 필요성이 있겠군요.”
아하하.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미안, 네루.
억울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하잖아? 나한테 알린 순간 전해지리라 생각했어야지.
어쨌건.
“정말 짚이는 게 없어요?”
“긍정. 본그림자 울펜은 20년 동안 탄탈로스에 갇혀있었습니다. 본관이 파견되기 전부터 계속 고립되었으며 탈출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군국의 터부와 같은 고레벨 보안 정보에 접근할 기회는 전무합니다.”
군국 초창기부터 잡혀있었다고 했지. 그러면 저 무저갱 속에 갇힌 울펜이 알아낼 수 있는 건 없겠네.
아니, 잠깐. 그 말에는 맹점이 있다.
꼭 울펜이 터부를 알아냈다고 확신할 수 없잖아?
“만일, 울펜이 같이 탄탈로스에 갇혔던 누군가에게 터부에 대해 들었다면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정보 교환의 가능성….”
내 말에 대위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의심 가는 정황이 있습니다.”
촤라락. 대위의 머릿속에서 책이 펼쳐졌다. 무저갱을 거쳤던 이들의 목록이 펄럭이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교육생의 인적사항 하나하나를 떠올린 대위가 찾아낸 한 명의 인물.
‘…탈출 주동자, 전(前) 대령 란카르트. 최연소 마도병단장이자, 연방과 거래하여 신비를 팔아넘긴 반역자.’
한 명의 인적사항이 좌르륵 펼쳐진다. 어디까지나 서류로 접한 정보이기에 언급하기 전까지는 떠올리기 힘드나, 한 번 생각이 닿자 연관된 정보가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군국의 천재마법사, 최연소 진급자. 그리고, 하멜른의 생존자.’
하멜른.
그 단어를 떠올린 순간 대위의 표정이 전에 다시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5레벨 보안 정보, 하멜른의 그 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란카르트가 그 사건에 숨겨진 진상을 알렸다면.’
“…취소하겠습니다. 본관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대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몸은 오한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군국의 그림자는, 그들의 수족이 아닙니다. 군국으로 하여금 뒷골목의 모두를 죽이게 만들 맹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