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75)
EP.175 천의무봉의 극한
군국의 1번 구역.
그곳에는 수도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모든 것이 있다.
뼈대부터 장갑까지 전부 고레벨 연금강철로 만들어져 콘크리트 도시 한복판에서도 이질적으로 딱딱해 보이는, 수도의 방위를 총괄하는 방위사령부.
세계수 덩굴에 휘감긴 듯, 꽃봉아리 모양의 안테나와 넝쿨줄기를 닮은 마력전달선을 건물 외벽에 덕지덕지 달고 있는 통신본부.
지극히 효율적인 구조를 한, 그러니까 네모반듯하게 지어져서는 아미텐그라드의 크고 작은 일을 관장하는 아미텐그라드 청사.
2레벨 시민이 아니라면 구역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군국 수도의 중추가 1번 구역.
군국이라는 나라를 한 마리의 거대한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의 내장기관이 꽉꽉 들어찬 이 구역에.
건물이 옷을 입었다고,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진짜 말이 끄는 마차에 탄 대위는, 강철문 대신 휘장이 드리워진 정문을 통과하며 중얼거렸다.
“지주회사, 천의무봉….”
군국의 기둥인 다섯 개의 개인회사.
모든 것을 나라가 관리하는 군국조차도 국가 주도로는 그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여 자치적인 운영을 허락한 다섯 기술의 주인.
그중에서도 군국 시민들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의복패킷 기술의 발원지이자, 아키 아바타를 새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천의무봉의 3대 사장, 직녀 세피에르 바키아.
대위가 나를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귀하가, 어떻게 그녀를…?”
“그 대답은 천천히 해드리죠, 대위님.”
“하지만.”
“우리 이야기가 남에게 들려줄 만한 것도 아닐 텐데, 들어가서 누군가 들을 걱정 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세피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엄했다. 좋은 의미로 설명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타이르는 듯하고, 나쁜 의미로 말하자면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활용하여 상대방을 찍어누르는 화법이었다.
일단 정론이었기에 대위도 더 뭐라 말하지 못했다. 그동안 마차는 저택의 문 앞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갈기를 휘날리는 말을 보며 중얼거렸다.
“좋은 말이네요.”
“사자마라고 해요. 바람에 흩날리는 붉은 갈기를 갖고 있어서, 말이 무리 지어 달려가면 불길이 들판을 뒤덮는 듯하다며 화마(火馬)라고 불리던 말이죠.”
“이토록 귀한 걸 잘도 샀네요. 너무 희귀해서 사치품 항목에도 없겠다.”
말을 키우기 위해서는 넓은 마당과 말을 관리할 수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즉, 아미텐그라드처럼 땅을 얻기 어렵고 비좁은 곳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
하지만 군국 최고의 부자에게 사실상 불가능이란 가짜 불가능일 뿐이다. 충분히 많은 돈이 있다면 진짜 불가능과 가짜 불가능을 가려낼 수 있다.
“사치품은 아니니까요. 이 사자마는, 그래요. 따지자면 실험용이라 할 수 있겠군요.”
“실험용이요?”
“네, 스승님. 최근에 저는 동물의 본을 뜨는 연구를 하고 있거든요.”
본을 뜬다는 건 동물에게도 통용되는 아키 아바타를 만들겠다는 뜻. 아마 군국에게서 의뢰받은 프로젝트일 것이다.
만일 말의 아키 아바타를 만든다면 군국의 그 비루한 말들도 조금 쓸 만해지겠지.
“물론, 스승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바로 내어드리죠.”
“와, 정말요?”
세피는 내 말을 의문으로 받았다.
“제가 언제 스승님께 무언가를 아낀 적이 있었나요? 저는 제 사람에게 돈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내가 주는 물건은 냉큼 받아갔으면서. 튕기는 척하는 버릇은 여전하군요.’
나 없는 사이에 한이 많이 쌓였나.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려온다는 말이야.
혹시나 해서 다시금 물었다.
“정말 제가 가져도 돼요?”
세피는 한 점의 아쉬움도 없이 흔쾌히 대답했다.
“가시는 길에 마구와 채찍을 드릴 테니 챙겨가세요. 먹이도 양껏 챙겨가시고, 부족한 게 있으면 제 편에 연락 주세요. 배달부 편으로 필요한 모든 물품을 보낼 테니까.”
‘돈으로 바꿔먹지나 않았으면 좋겠군요.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서 슬쩍슬쩍 챙겨놓고는 장물아비에게 팔아버리는 건 무슨 경우인가요? 웃돈을 주고 장물아비에게서 되사오는 내 심정을 알기나 합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돈으로 내놓으라고 하던가요.’
…됐다. 그냥 안 가져갈래.
절대 생각이 무서워서가 아니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그래. 그 주먹만 한 방에서 키우면 말이 불쌍하잖아.
“저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물건이네요. 오늘은 사양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스승님께서 직접 관리하기에 말은 너무 손이 많이 가요. 제가 잘 기르고 있을 테니, 스승님이 필요하실 때 얼마든지 빌리러 오세요.”
‘자기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이 말은 오죽이나 잘 키우겠네요. 또 어딘가에 팔아넘기겠지. 그냥 말 핑계로 저택에 부르는 편이 나아요. 최소한 정기적으로 생사는 알 수 있으니.’
너,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니…. 그래도 나 정도면 성실하지 않나? 돈 부족하면 손 벌리는 대신 내 손으로 벌어온다는 말이야.
“마음 써줘서 고마워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이제, 들어가실까요?”
세피가 손가락을 튕기자 빨갛게 칠한 저택 문이 저절로 열렸다. 잔뜩 긴장한 대위는 내 뒤에 딱 붙은 채, 딱딱한 발걸음으로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 저택이 독특해 보이는 것은 꼭 콘크리트의 도시 한가운데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대륙 어디를 둘러보아도 옷을 입은 듯한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다른 것을 다 떼어놓고 건물 양식만 살펴보면 분명 초원 부족이 주로 쓰는 커다란 천막을 닮아있었다.
3층 높이에다가 복층 구조에 네모나다는 것만 제외하면.
안감은 섬세하게 짜내어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한 천, 바깥은 대포조차도 튕겨낼 고레벨의 연금사.
어지간한 강철보다도 질기고 튼튼한 실이 이 거대한 옷을 붙잡고 있다. 콘크리트와 철근보다도 견고하며 강력한 실과 천이 있기에 가능한, 그야말로 옷감으로 지은 성.
“어서 오세요, 스승님. 그리고… 새로운 제자분. 제 저택이자 공방, 옷감의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바닥은 융단을 깐 나무였다. 소리를 죽이는 융단 덕분에 두 발을 크게 굴러도 전혀 울리지 않았다. 따스한 색을 가진 안쪽 벽면은 그 색만큼이나 따뜻했다.
“의문. 직녀, 귀하의 저택은 보안구역이 아닙니까?”
“제 허가가 있으면 괜찮아요. 이곳은 제 자택이니까. 혹 부족하다면, 제 권한으로 임시 출입증을 발급하도록 하죠.”
대위의 말을 단숨에 자른 세피는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새카만 휘장을 걷자 식당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는 전속 요리사가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손님이 온다는 사실이 벌써 전해졌는지 접시 세 개가 나란히 준비되어 있었다.
접시 뚜껑을 열자, 그 어떤 음식점에서도 보지 못했던 완벽한 생고기 스테이크가 나타났다. 세피가 접시를 가볍게 가리켰다.
“드세요. 제 집에 초대한 이상, 모두 손님으로서 대접받아야 해요.”
갈색으로 구워진 스테이크에는 본능적으로 침을 돋구는 마력이 있다. 그 위에는 뼈를 고아서 만든 소스가 뿌려져 있었고, 다양한 색을 가진 향신료와 구운 야채가 곁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와중, 대위는 눈앞에 있는 연두색 작은 콩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이건 무엇입니까?”
대위가 키메라콩을 축소해서 만든 듯한 조그만 콩을 보는 심정은 난쟁이를 처음 마주한 사람의 신기함과 비슷했다.
세피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 대답은 내가 했다.
“아. 햇콩이네요! 이야, 군국에서는 키메라 콩 말고는 찾기도 힘든데, 또 어디서 구하셨대?”
세피는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능숙하게 자르며 대답했다.
“스승님께서 저번에 옛날 콩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그랬나? 기억이 잘.”
앗차. 잘못 말했나? 나는 슬그머니 세피의 안색을 살폈다. 세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생각했다.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어렵사리 햇콩을 구해왔는데 기억도 못 하네요. 이래서 기억력 나쁜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하나요.’
응, 잘못 말했다. 오랜만에 봐서 적응이 안 되네.
와중에 대위는 콩만 수저로 퍼서는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탄력적인 콩알이 입 안에 달라붙은 직후, 대위의 눈이 커지며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환각이 보였다.
‘…이 콩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분명, 콩인데…!’
콩 미식가 나셨네. 나는 대위의 접시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마음에 들었나 봐요.”
“긍정…! 처음 맛보지만, 익숙하면서도 감탄스러운 맛이…!”
“햇콩이라 그래요. 비료용으로 개발한 키메라 콩이 아니라 자연의 산물이니까. 여기 콩 좀 더 줄래요?”
“문제없어요. 주방장, 남은 콩을.”
‘지 먹으라고 둔 것을 계속 남이나 주는군요.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죠. 아무리 베풀어도 쌓이는 감이 없네요. 참, 저도 어쩌다 저런 못난 스승을 만나서는.’
어색하게 스테이크를 자르던 대위는 새로이 더해지는 콩을 보고는 나이프를 놓았다. 나는 대위가 먹다 남긴 스테이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스테이크 맛은요?”
“…맛있는 것 같긴 한데, 질감이 이상합니다. 옷감을 씹는 느낌입니다.”
물에 잔뜩 불린 고기 통조림을 익히면 고기 특유의 질감을 잃고 말랑말랑해진다. 대신 양이 많아져서 이득을 본 기분이 든다.
지금껏 고기 통조림을 그렇게 먹어 온 대위는 생고기의 질감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아이가 고기의 맛을 알까….
“이제 슬슬 알겠군요.”
탁.
나이프를 소리 나게 내려놓은 세피가 손수건으로 우아하게 입을 닦았다.
고급스러운 정장에도 한 톨의 얼룩 없이, 깔끔하게 식사를 끝마친 세피는 주방장이 접시를 내가자마자 양손을 모았다. 그 직후 식당을 감싼 모든 문이 닫히며, 이 식당은 완벽한 밀실로 변모했다.
“대위님은 안쓰러운 분이군요. 스승님이 왜 당신을 선택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대위가 움찔했다.
무어라 반박하고 싶어 했지만, 상대는 지주회사의 사장이자 병참에도 발을 깊숙이 들이민 걸물이다. 군부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영향력으로 인해 시민 레벨은 5레벨.
당장 세피가 사라진다면, 의복패킷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아키 아바타의 생산이 멈춘다. 더불어 군국의 특수병기, 군장의 성능 향상에 문제가 생긴다.
대위는 군부와 민간 양쪽 모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피를 어찌 대할 줄 모르고 어물거렸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태도를 지적했다.
“사람보고 안쓰럽다고 하는 거 아닙니다, 세피. 실례예요.”
“그 점은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제 태도와는 별개로. 스승님께서 그녀를 선택한 이유가 그것 아닌가요?”
세피가 날카롭게 물었다.
선택했다고 하기에는 그냥 인연이 닿아서 같이 오게 된 건데…. 쩝. 할 말이 없네. 실제로 불우이웃 돌보는 느낌으로 같이 움직이기도 했고.
‘거봐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해놓고선 제 태도만 꼬박꼬박 지적하는군요. 이게 적반하장이죠. 그걸 지적한 저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끌고 온 자기가 더 실례되는 행동인 걸 알까요?’
얘가 군국 물을 마시더니 마음에 날이 섰나.
세피는 내 마음을 꿰뚫어보듯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언제나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 혹은 부족한 아이를 찾아다니셨죠. 인정받고 싶어 했던 안톤도 그랬고, 왕국 시절의 찬란함을 잃어버린 구 왕국의 주민들도 그랬고.”
세피는 말을 하는 와중에 자기 왼팔 손목을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외투와 목도리가 푸른 연금사로 변하여 생체 단말로 빨려 들어갔다.
자기 몸을 다루듯 자연스러운 의복변환을 통해 붉은 셔츠 바람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어린 날의 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죠. 이제는 군국의 대위마저도 불쌍히 여기다니, 도대체 스승님의 수비 범위는 얼마나 넓은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아요. 이런 분께 품행에 대해 지적받은 게 억울할 정도로.”
스승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속마음이랑 내뱉을 말이 살짝 뒤바뀐 것 같은데.
‘와중에 무저갱까지 갔다가 돌아오셨으니… 부디, 무저갱에 갇혔다고 별 지랄 맞은 일에만 휘말리지 않았기를 빕니다. 세상 모든 것을 혼돈에 몰아넣는 스승님이 무저갱을 얼마나 휘저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으니.’
아니었네. 말이 생각보다 온전했구나. 의심해서 미안.
그나저나 갑자기 무저갱은 왜 떠올리는 거야? 내가 무저갱에 관해서 무슨 일을 했다고….
‘…혹시, 무저갱에서 나온 이들이 스승님을 쫓아 아미텐그라드까지 온 건 아니겠지요. 스승님이라도 무저갱 속 괴물을 어찌하지는 못하였겠지만…. 심증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 점을 확언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두렵네요. 저는 도대체 무엇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걸까요?’
무엇이라니? 나를 꼭 역병으로 취급하지는 말라고….
잠깐만. 뭐? 무저갱을 나온 이들이 아미텐그라드까지 왔다고? 거기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군국의 수도에?
왜? 설마 나 하나 찾아온 건 아닐 테고. 군국 부수기를 하려고 그러나?
이번 회차 군국 망해? 나라가 드디어 문을 닫나?
제길, 그러면 그림자를 정리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한데. 저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말아먹을지 모르는데 그림자니 뭐니 다스릴 시간이 어디 있겠냐고.
안 되겠다.
“세피. 잠깐만. 여기 있는 것 좀 써도 돼요?”
“당연히. 여기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스승님의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또 제 재산을 자기 것마냥 사용하려는 셈이겠죠? 후우. 어쩔 수 없지만…. 과연 이번에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을까요?’
슬슬 생각과 행동의 괴리가 무서워진다. 한참 예전에는 꽤 솔직했던 것 같은데,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원한다면야 못 해줄 것도 없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지만, 말은 무형자산이라 가치가 격동한다. 갚을 수 있을 때 차곡차곡 갚아야 하는 법.
“고마워요, 세피. 역시 나는 제자 보는 눈은 있다니까요.”
정말 간단하게 건넨 공치사일 뿐이었지만 세피의 미간과 함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밑 빠진 독에도 보람은 있었군요. 참, 비위 맞추기 힘든 분이네요.’
세피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까만 장갑을 낀 손에서 손가락을 하나 폈다.
“다만, 저도 스승님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부탁? 뭐, 좋아.
내가 살 집도 마련해주고 자금도 지원해준 세피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나 들어주도록 할까.
“뭔데요?”
“스승님의 본을 뜨게 해주세요.”
본을 뜬다, 라. 어떤 의미려나.
‘무른 연금강으로 만든 거푸집에 알몸으로 들어가서 1분만 열기를 견디는 일이지만, 지금 말하면 꺼려하시겠죠. 어떻게든 구슬려서 거푸집 앞으로만 보내도록 해야겠어요. 저는 그러면 스승님의 아키 아바타를 그대로 재현한 바디 아바타를 얻게 되네요. 후훗, 그 장난감만 있으면 재미있는 옷 입히기 놀이를 할 수 있겠군요.’
이건 안 되겠다. 내가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만 이건 존엄을 상하게 할 여지가 있어.
“하하. 농담도 지나치시네요. 설마 제 아래에서 배운 세피가 그런 요상한 요청을 할 리가 없잖아요.”
“후후. 예리하시네요, 선생님. 제 농담을 그리 쉽게 간파하다니… 칫.”
어허. 뒤에 혀 차는 소리 집어넣어.
내가 은근히 거절하자, 세피는 대신 까만 손으로 대위 쪽을 가리켰다. 지목당한 대위가 움찔거렸다.
“그러면 대신, 이분을 조금 빌려주실래요?”
“왜요? 본을 뜨게요?”
“그럴 생각은 없지만, 내키면요.”
‘본?! 본관의 본을 뜬다고 하였습니까?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당해보면 알아. 참고로 나는 모르니까 당한 다음 소감을 알려줬으면 한다.
나도 흔쾌히 승낙했다.
“많이 빌려드릴게요. 오늘 껴안고 자도 돼요.”
“…?! 귀하? 그것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그렇다면 협상 체결이네요. 살짝 아쉽지만 만족스러운 협상이었어요, 스승님.”
“뭘요. 이런 부탁이라면 몇 번이고 들어드릴게요.”
“본관을 몇 번이고 팔아넘길 생각입니까…! 경고! 이 협상에는 본관의 자유의지가 고려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새 통신병은 자유 의지를 들먹이네. 부품이 말대꾸도 하고.
“잘 쓰고 돌려주세요.”
“스승님의 물건인데 여부가 있을까요.”
“부정! 본관은 군국의 군인이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겁을 먹은 대위를 뒤로하고, 나는 식당을 감싸고 있는 천을 젖혔다. 소리는 물론 냄새까지 삼키는 새카만 천을 닫자, 안쪽에서 대위의 비명 비슷한 게 뚝 끊겼다.
자. 슬슬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