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82)
EP.182 퍼진 데이
네 번째 반그림자는 지금 곤혹에 빠져있었다.
군국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불량배들. 원래는 그들을 이끌고 12구역에서 가장 큰 군사학교를 습격할 예정이었다. 제 인생을 스스로 망친 불량배들이 애꿎은 학교 탓을 하는 동안 네 번째는 독을 풀어놓을 계획이었다.
군국의 터부, 하멜른의 그 사건.
군사학교 졸업생 162명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의 단서. 그것을 뿌려놓을 장소로 학교만한 곳이 더 있을까.
독을 풀어넣기에는 최적인 곳이라, 그림자에서도 나름 신경 쓰고 있던 구역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속은 불량배들이 먼저 돌격했고, 그림자의 회합에 참가하고 온 네 번째는 그 뒤를 급하게 따라붙었다.
‘성질 급한 불량배들이 벌써 일을 끝마치고 돌아간 건 아니겠지?’
도착하기 전까지 네 번째가 걱정한 건 불량배들이 아니라 학교의 내구성이었다.
다른 시설과는 달리 군사학교의 경계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기숙사의 사감과, 불침번으로 선 군사학교 학생 몇몇이 전부.
성난 불량배들이 부술 수 있는 건 다 부수고 벌써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그 점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새끼들! 냉큼 엎드려뻗쳐!”
“군사학교 역시 군사시설이다!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
학교 연병장에 나타난 광경은, 네 번째의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불량배들은 하나같이 흠씬 두들겨맞은 채 오징어처럼 연병장에 늘어져 있었다. 그들의 곁에는 교관복을 입은 퇴역군인들이 몽둥이를 들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호소의 퇴역군인들이었다.
퇴역하기 전에도 소장이었고 퇴역하고 나서도 보호소장이 된 프론타인 전 소장.
노장은 지팡이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외쳤다.
“이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장교가 되지 못했으면 공병단에 들어가 기술이나 익히면 되지 않은가! 학교를 습격할 시간과 용기가 있다면 그 힘으로 노력을 해라, 노력을!”
“크윽…! 노인네들이 여긴 어떻게 알고…!”
“시끄럽다!”
프론타인이 번개처럼 달려와서는 중얼거린 불량배의 엉덩이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기가 막히게 조절된 힘은 어디 하나 부러뜨리는 일 없이 충격을 온전히 고통으로 바꾸었다.
불량배가 고통에 신음할 동안 프론타인이 주름진 얼굴을 찡그리며 외쳤다.
“우리에게 잡힌 것을 감사해라! 너희가 제대로 일을 저질렀다면 보호 처분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불량배라고 해봤자 갓 졸업한 학생들이 이끄는 불량 학생들의 모임이다. 퇴역군인으로 구성된 보호소의 교관들은 일개 불량배들이 상대하기엔 너무 노회하고, 체계적이며, 강력했다.
일격에 우두머리를 쓰러뜨리고는 서슬 퍼런 기색으로 윽박지르자, 불량배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줄줄이 딸려왔다. 임자를 만난 그들은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네 번째가 혀를 찼다.
‘…칫. 저들 틈에 숨어 있었다면 암습이라도 했을 텐데.’
그림자는 어디까지나 암살자. 불의의 일격으로 상대의 목숨을 끊을 수는 있지만,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심지어 상대는 한때 장성까지 도달한 인물. 그를 비롯하여 주변에는 한가닥 하는 퇴역군인이 가득하다. 홀몸으로 덜렁 가봤자 스스로 포위되는 셈.
‘글렀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학교에 숨어들어 독이라도 푸는 수밖에….’
네 번째가 사각을 비집고 은밀히 움직이려던 때였다.
그녀의 예민한 청각에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정말, 마술사의 말이 사실이었다니.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마술사?’
네 번째가 귀를 기울였다.
그림자도 그 소문은 익히 들은,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전설적인 잡범.
마술사란 그림자조차도 정체를 찾지 못한 신비한 존재였다.
소문을 듣고 조사해보려고 해도 근처만 더듬을 뿐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꼭 실체 없는 괴담을 쫓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괴담이라 하기에는 행적이 너무 명확하고 목격했다는 사람도 많았다. 길을 가다가 마술사의 공연을 관람했다는 아이도 수두룩했다. 마술사를 보지 못한 이는 그림자뿐이었다.
의문, 그와 동시에 살짝 자존심이 깎여나가는 기분. 그림자의 일원이 마술사를 떠올릴 때면 느끼는 기분이 딱 그랬다.
‘마술사가 우리를 방해했다는 말인가?’
호기심에 네 번째가 한 발짝 더 다가가려는 때였다.
예리한 감각이 그녀의 발을 잡아끌었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느낀 네 번째가 흠칫해서는 주위를 살폈다.
저편에 선 외팔이 교관에게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외팔이 교관은 이쪽을 향해서는 절대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건 즉 이쪽에 관심이 쏠려있다는 뜻. 네 번째를 감지한 게 분명했다.
‘마술사 이야기는 미끼였어! 퇴역군인이라고 해도 만만찮군!’
네 번째 반그림자는 미련을 깔끔하게 버리고 즉시 뒤로 물러났다. 건물의 그늘진 틈으로 그림자가 하나 숨어들었다….
기척이 사라졌음을 느낀 외팔이 교관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경계심을 드러내 버렸습니다.”
“에잉, 쯧. 실전을 안 겪으니 감이 많이 죽은 모양이구만….”
굳이 외팔이 교관에 국한된 말은 아니었다. 군인이라고는 하나 싸움밖에 못하는 이들.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불량배는 때려잡아도, 어둠 속에 숨은 그림자를 찾을 능력은 부족하다.
심지어 그들은 실전에서 몇 년은 떨어져 있던 퇴역군인. 어두운 학교에서 뛰어난 암살자의 기척을 쫓기는 어려웠다.
“요새 밤눈이 침침해… 저렇게 흐릿한 게 잘 안 보인다는 말이지. 마술사가 보낸 쪽지도 그렇고….”
프론타인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마술사는 카드 한 장과 함께 쪽지를 보호소에 보냈다.
그림자가 불량배들을 이끌고 학교를 습격하려 하고 있으며, 그 무리에는 아직 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정보였다.
불에 덴 듯 놀란 프론타인은 당장 연락이 닿는 모든 퇴역군인을 불러모았다. 이 야밤에 연락이 닿은 퇴역군인은 열 명 남짓에 불과했지만 하나하나가 기공을 익힌 노련한 군인. 오합지졸인 불량배를 때려잡기에는 충분했다.
“쯧쯧. 예전 같았으면 땅끝까지 달려가서 붙잡았을 텐데. 요새는 그럴 체력도 없고…. 정말 내키지는 않지만, 마술사에게 맡겨야 하나.”
그들로썬 어둠 속에 숨은 그림자를 잡는 건 불가능했지만, 애초에 그건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보호소의 역할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 군국의 적을 무찌르는 건 군국이어야 한다.
오직, 적만 무찌른다면 좋겠지만.
프론타인이 저 멀리 깜깜한 어둠을 바라보았다.
“마술사… 네놈의 뜻에 휘둘리는 건 별로 내키지 않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꼭두각시가 되어주마.”
하멜른.
처음 군국은 흑마법사들의 소행으로 의심하였으나… 어느 순간 모든 정보를 소각하고는 기밀로 붙인 사건.
장성조차도 감히 열람할 수 없는 기밀 정보.
마술사의 쪽지에는 그 이야기가 넌지시 적혀있었다. 프론타인이 늙은 몸으로도 급하게 움직인 이유가 그것이었다.
하멜른의 이야기가 흘러 나간다면, 이 소요는 단순히 소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숙청이 일어날지도….”
착잡해진 프론타인은 몸을 돌렸다.
“우리 쪽 아이는 안 보이지? 그래, 우리 쪽 아이들은 다 착해서….”
“소장님, 우리 쪽 아이들은 저기 모아놨습니다.”
“야! 네놈들,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잘 가르쳐서 내보내줬는데 뭐가 아쉬워서 이딴 일에 손을 대! 너희는 일주일간 독방행이다!”
세 번째 반그림자가 마켓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켓 조직원이 운송 조합을 제압한 이후였다. 약탈을 위해서 희희낙락 창고로 쳐들어가던 운송 조합원들은 매복하고 있던 마켓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는 무력화되었다.
창고는 마켓의 성.
공간도, 도구도 전부 시장 상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운송조합원은 물자를 아낌없이 쓰는 마켓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방심할 만하건만, 운송조합원들을 꽁꽁 묶어서 창고 한구석에 몰아넣었음에도 마켓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상인들은 창고에 있던 조명과 탐조등을 아낌없이 켜서 사방을 경계했다.
점장 크린이 외쳤다.
“불을 더 밝혀! 그림자를 만들지 마!”
그러자 세 번째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혼란을 일으키고 독을 풀어야 한다. 그러나 독은 흩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사도 피부를 찢는 독니를 가졌고, 독초도 먹어야 효능을 발휘한다. 독이란 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무해하고 얌전한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당연히, 창고 안으로 들어가 그 흔적을 숨겨두는 게 효과가 좋다. 그러나.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오늘은 철야다! 내일 영업은 자면서 한다!”
‘경비가 삼엄하군. 난리통에 숨어드는 게 제일 좋았는데….’
그림자의 은신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환한 빛 속에서 모습을 숨길 수는 없다. 형체를 숨기는 흑영기공을 쓴다고 해도 새카만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면 의심스러워할 테니.
세 번째는 습관적으로 단검의 손잡이를 잡아 자기 턱을 문질렀다. 그의 시야에 비친 건, 온갖 물건으로 어질러져 있는 거대 창고의 내부였다.
‘흐음. 어찌. 저쪽으로 침입하기만 하면 하나하나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명을 다 꺼낸 탓일까. 창고 안쪽은 그리 밝지 않았고, 온갖 물건 때문에 그림자가 무질서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몸을 숨기기에는 저만큼 좋은 장소도 없다.
‘마켓이라고 해도 고작해야 상인과 창고지기의 모임. 흐음. 강행돌파를 할까?’
그렇다고 칼부림으로 다 죽일 수도 없다. 독은 살아 있어야 전신으로 퍼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다 죽였다간 도리어 환부만 도려내는 셈이다.
찔러들어가는 게 제일.
어떻게 할까. 그가 잠깐 고민하던 도중이었다.
고급스러운 마차가 마켓 쪽으로 접근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 마차를 끄는 시점에서 벌써 심상치 않았다.
‘말이 끄는 마차? 고급품이로군. 운송조합 쪽인가?’
군국에서 자기 말을 기를 만한 사람은 둘 중 하나다. 그만큼 부자던가, 아니면 생업으로 삼고 있던가.
좋은 생각이 났다. 자동마차와는 달리, 말은 궁둥짝을 한 대 때리면 제멋대로 날뛰곤 한다. 마켓은 날뛰는 말과 마차를 막기 위해서 틈을 보일 것이다.
‘저것을 빌릴까.’
세 번째가 몸을 날렸다.
마켓으로 향하는 도중이었는지, 마차는 마켓으로 접어드는 골목으로 향했다.
사람보다 말이 먼저 무언가를 느끼고는 급히 앞발을 박아넣었다. 끼기긱, 커다란 마차가 급정거에 가깝게 멈추었다.
“감이 좋은 말이군.”
스르릉.
비스듬히 잘린 가로등이 도로 위로 쓰러졌다. 빛을 내뿜던 가로등이 땅에 떨어지며, 불빛을 내는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이 다한 파편은 빛을 잃었다.
그 그림자에 숨어 있던 세 번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차를 놔두고 꺼져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마부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안쪽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페토. 그냥 지나가도 되었어요. 고작 가로등 따위에 찌그러질 마차가 아닌데.”
마부가 안쪽을 향해 대답했다.
“아이고, 아가씨. 그러면 말이 놀랍니다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죠. 당신 일이잖아요?”
“마부 일은 예정에 없었는데요….”
“그래요? 그만할래요?”
“아니요, 아니요. 백수가 된 저를 거둬주신 아가씨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죠.”
페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차에 묶인 줄을 풀었다. 사자마는 목을 얽매던 줄이 풀리자 반갑게 푸릉거렸다.
“그래. 기사의 종자보다는 사장님 비서가 낫지, 뭔들 그것보다 나쁘겠어?”
말을 그렇게 하면서 페토는 말 위에 올라탔다. 등자고 무엇도 없는데, 페토는 능숙하게 말을 몰며 세 번째의 앞에 섰다.
세 번째가 중얼거렸다.
“종자라. 어쭙잖게 말을 타는 걸 보면 허언은 아닌 모양이군.”
“아, 그딴 말 꺼내지도 마라. 나쁜 기억이 나니까.”
종자를 아끼는 기사 중에는 무기 쓰는 법이나 말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기사의 총애를 받는 페토는 어릴 적부터 기사가 손수 내리는 가르침을 받곤 했다.
페토가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래 보았자 종자. 기사도 아닌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갑옷도, 무기도 보이지 않아.’
계산을 끝마친 세 번째 반그림자는 페토를 향해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경고하지, 종자. 그 말에 아가씨를 태우고 도망쳐라. 그러면 너희는 무사할 것이다.”
‘군국에서는 찾기 힘든 고급스러운 말과 마차. 누군지는 몰라도 대단한 상류계급이 분명하다. 여기서 보내면 군국 상부에서도 이번 일에 주목하겠지.’
나름대로 계산을 세우고는 살기를 내뿜었지만, 페토는 그걸 느낀 건지 느끼지 못한 건지 태연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가장에겐 가장의 무게가 있다고. 사장님한테 밉보이면 일가가 길거리에 나앉아. 때려죽여도 너와 싸워야 한다.”
“독주를 마시다니….”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다 정리한다.’
세 번째가 어둠 속을 미끄러졌다. 가로등이 부서진 거리에서 흑영기공으로 몸을 뒤덮은 그는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혹여나 싸우게 될 때를 대비해 가로등을 미리 부수어놓았다. 이 어둠 속에서, 짐승만큼 예민한 감각이 아니라면 그의 흔적조차 잡지 못하리라.
“아, 그리고 조심해라. 이 말은 사자마라고 부르는데.”
그래. 짐승이 아니라면.
사자마의 갈기가 뻣뻣하게 곤두섰다. 바람에 휘날리던 갈기는 어느덧 멈춰, 정확하게 세 번째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직후, 화가 잔뜩 난 말이 콧바람을 내뿜으며 세 번째를 향해 달렸다.
‘뭣?’
흑영기공은 모습은 물론 소리와 온도도 그림자 속에 숨기는 기공. 이 기공으로 건곤을 이루면 형체가 어둠에 잠긴 것처럼 흐려진다.
심지어 말은 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동물. 그런데 어떻게 곧장 그를 알아보았을까?
애초에, 겁많은 말이 왜 미친 소처럼 달려드는 것일까?
“생김새도, 성격도 사자를 닮아서 말이지. 길들이는 것도 고생했다고.”
히히히힝!
페토의 중얼거림에 호응하듯, 사자마는 거칠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단 두 걸음 만에 거리를 좁힌 말이 앞발을 쳐들었다.